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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보다 반짝이는 도시들
엄마와 희망을 여행하다
발칸 반도 Balkan peninsula
두 번째 이야기
수도보다 반짝이는 도시들
만약 한 나라에서 오직 한 도시만 여행할 수 있다고 할 때, 과연 어떤 도시를 선택해야 할까? 아마도 대다수는 그 나라의 수도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한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며 매력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 바로 수도 아니던가. 그래서 나도 같은 공식을 따르곤 했다. 엄마와 세상의 절반을 돌아다니는 동안 발 디딘 나라의 수도만큼은 꼭 방문하려 애썼고, 한 나라에 할당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때면 어떻게든 수도부터 발 도장을 찍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발칸 반도를 여행하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세상엔 수도보다 반짝이는 도시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사랑이 번지는 거리
불가리아Bulgaria의 플로브디프Plovdiv
때로는 한 장의 사진으로 여행이 시작될 때가 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가 이름만큼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예정보다 빨리 다음으로 여행할 도시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웹상에서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바로 플로브디프라는 도시의 사진이었다. 특히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도시 스펠링 중간에 끼워져 있던 알파벳 ‘E’ 자 때문이었다. 누구의 재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시 이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이 스펠링 하나로 그 이름은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갖게 되었다.
‘PLOVEDIV’
단어의 한가운데에 살며시 자리 잡은 ‘LOVE’는 진한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플로브디프는 분명 낭만적인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도시라고 하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플로브디프로 향했다.
소피아에서부터 핑크빛 ‘사랑’이 반짝이는 도시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렸다. 워낙 기대가 많았던 도시라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날 야간버스를 타고 루마니아로 넘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밥 먹을 시간도 아껴서 이 도시를 둘러봐야 했다. 우리는 플로브디프역에서 피자 한 조각씩을 급하게 해치우곤 곧바로 시내에 들어섰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탓인지 여행 내내 엄마에게 ‘길 찾기 달인’이라는 소리를 듣던 내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완전히 길을 잃어 똑같은 골목 간판을 세 번이나 봐야 했고, 엄마를 땀범벅으로 만드는 불효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플로브디프의 구시가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우와 거리가 그냥 미술관이네!”
엄마가 땀을 닦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정말이었다. 구시가지를 메우고 있는 거리의 화가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작품들을 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히 노천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장기여행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싶어 했다. 그만큼 지금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그림이 너무 많다고 했다.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대로를 걷고 있으니 플로브디프의 스펠링을 바꿨던 그 누군가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대로 양옆으로 늘어선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과 작가의 창의성에 절로 미소가 나오는 조각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자신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듯 손을 말아 귀에 갖다 댄 남자 조각상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랑에 빠진 듯한 연인 한 쌍이 차례로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인 뒤 입을 맞추고 지나갔다. 그들은 과연 바로 옆의 연인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속삭인 것일까? 비밀일까? 소망일까? 사랑일까?
한 건물의 벽엔 성화로 보이는 수준 높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상점들의 간판들도 재기발랄했다. 예술가들이 몰려들 만한 도시였고 실제로도 거리의 화가들이, 시인들이, 공연자들이 이 사랑스러운 도시를 수놓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낯익은 풍경을 발견했다. 사진으로 봤던 ‘PLOVEDIV’ 글자가 새겨진 돌담이었다. 사진보다 ‘LOVE’라는 글자가 훨씬 진하고 또렷했다. 글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명의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각자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러브’라는 말은 앞에서 뒤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살금살금 사랑이 번지는 도시 플로브디프. 왠지 하늘에서 이 도시를 내려다보면 하트모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마주친 어여쁜 그대
루마니아Romania의 티미쇼아라Timişoara
“얼마 전까지 운행했었지만 올해 여름부터 중단된 상태예요. 기차로 세르비아Serbia까지 가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네요. 죄송합니다.” 기차역에 이어서 찾아간 버스회사에서도 세르비아로 가는 차편은 없다고 했다.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르는 엄마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여행 중 만나는, 꽤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우리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şti에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최선이었던 기차가 사라지고 차선이었던 버스까지 날아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숨 쉬기와 엄마 눈치 보기뿐이었다.
뭐라도 해보라는 엄마의 강한 눈빛에 떠밀려 다시 기차역을 찾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와는 다른 창구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대답은 똑같았다. 다시 한숨을 쉬며 뒤돌아 가려는 찰나 창구 너머 직원의 입에서 ‘티미쇼아라’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그게 도시 이름인지도 몰랐다. 직원은 세르비아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라며 그곳에 가면 아마도 하루 두 번 세르비아로 넘어가는 기차가 있을 거라고 전해줬다. 불확실한 정보였지만 일단 티미쇼아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차도 버스도 안 되면 택시를 타는 방법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7~8시간 동안 택시미터기를 보며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냉큼 티미쇼아라행 야간열차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좁은 기차 칸에서 기지개를 켜며 티미쇼아라의 아침을 맞이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오후 늦게 출발하는 세르비아행 기차를 예매할 수 있었고,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있기는 답답해 예정에도 없던 티미쇼아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법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거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시내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도시의 첫인상이 심상치 않았다. 청명한 초가을 날씨라 하늘이 유난히 파랬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었지만 단지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엔 도시의 모습이 지나치게 화사했다. 티미쇼아라를 한 명의 여인으로 비유한다면, 그녀는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총천연색의 꽃을 품에 앉은 채 파란 하늘을 보며 웃고 있을 것이다.
기습적인 매력에 빠져들며 우리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중앙 광장에 들어섰다. 바람에 살랑대는 수많은 꽃 때문에 광장 전체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 솜사탕 같은 모습을 한 채 산들대는 나무들이 광장의 흔들림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광장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는 중후한 대성당과 작은 건물들 또한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공평하고 균일하게 아름다웠다. 기대치 않았던, 있는지도 몰랐던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흥분했고 조금 더 말이 많아졌다. 굳이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지 않던 엄마 역시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분수대 앞으로 달려가 포즈를 취했다.
중앙광장을 지나자 도시의 북쪽으로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광장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피에로 복장을 한 거리 공연자들이 막대풍선으로 귀여운 강아지를 뚝딱뚝딱 만들어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네 꼬마들이 까르르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때마다 모이를 쪼던 수백 마리의 비둘기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달랑 2량짜리 보랏빛 트램이 보기보다 날쌔게 그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정신없이 도시를 보다 보니 어느새 기차 시간이 가까워졌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모습은 너무나 예뻤다.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하면서도 그 어여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자꾸 뒤를 돌아봤다.
호수로 변한 거인의 꽃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오흐리드Ohrid
“그렇다면 오흐리드가 정답이지!” 밀로스는 확신에 찬 말투로 외쳤다. 몇 달 전 인도네시아에서 며칠간의 ‘여행 방학’을 가지며 몸과 마음을 재정비했던 우리는 긴 여행에도 가끔은 쉼표가 필요하다는 여행의 지혜를 자연스레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 시점이 발칸 반도 여행의 쉼표를 찍기 적당한 시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Skopje에서 만난 친구 밀로스에게 여행보단 휴양이 적합한 곳을 알려달라 부탁했다. 밀로스는 주저 없이 오흐리드를 추천하며, 자신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오흐리드의 맑은 호수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오늘도 일만 없으면 우리와 함께 오흐리드로 향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찌 됐든 마케도니아에서 두 번째로 찾아갈 도시는 명확해졌다. 이왕 휴식을 취하기로 한 거 늘어지게 쉬다 올 생각을 하고 오흐리드로 방향을 돌렸다.
오흐리드에 도착하니 밀로스에게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원했던 휴양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호수인지 모르고 온 사람이라면 바다로 착각한다는 거대한 호수는 너무도 맑고 투명해 마치 커다란 유리판 같았다. 맑기도 하거니와 호수를 감싼 초록빛 산과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이 잘 어우러져 여행자들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일이 없어 보였다. 먼 옛날 거인이 하늘에서 던진 꽃이 호수로 변했다는, 전설마저도 아름다운 호수다.
호숫가엔 가족단위의 휴양객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호수 위에 보트를 띄워놓고 그 안에서 낮잠에 빠져든 청년이 있는가 하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릴없이 앉아있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모습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고 그 사이에서 우리도 어제까지의 근심을 모두 집 창고에 가둬놓고 온 듯 나른했다.
우리는 호수가 훤히 보이는 언덕 집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자마자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따고 담그셨다는 산딸기 잼을 건네주셨다. 귀한 손님에게만 주는 거라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오흐리드 호수를 한눈에 품으며 달곰한 산딸기를 오물거리는 것으로 우리의 여행 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마는 곧 산딸기보다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깡충깡충 언덕을 뛰어 내려와 호수에 발을 담갔다. 이번 여행이 잊지 못할 순간들을 참 많이도 선물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호수 위로 퍼져나갔다.
“아, 진짜 좋네.” 싱겁게 혼잣말을 하며 호수에서 발을 뺐다. 그리고 호숫가 풀밭에 비스듬히 누웠다. 나른하게 햇볕을 쬐며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살짝 따분해질 때면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까 하릴없이 앉아 낚시찌만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손바닥만 한 물고기를 건져 올리곤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행복에 포만감이 들었다. 내일도 모레도 이러겠노라 다짐했다. 역시 여행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천 개의 창을 가진 마을
알바니아Albania의 베라트Berat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로 향하는 길은 그 어떤 때보다 험난했기에 알바니아에 들어서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머리를 꽁꽁 싸매다 겨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기분이랄까.
알바니아는 위치상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둘러싸인 형국인데 두 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예전부터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물며 유고슬라비아가 거듭된 내전으로 인해 일곱 개의 나라로 갈라진 지금 알바니아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바로 옆 나라인 마케도니아의 주요 도시에서조차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Tirana로 가는 차편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흐리드 현지인에게 수십 번 길을 묻고 또 본능에 몸을 맡기며 여차여차 알바니아에 무사히 안착했다. 그럴 때면 여행이 한 개인의 모든 잠재능력을 다 끌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티라나를 거쳐 베라트라는 작은 마을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천 개의 창을 가진 마을’이란 신비스런 별명을 가진 곳이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베라트의 첫인상은 특별할 것 전혀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광장에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들이 수다를 떨고 계셨고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길가에 앉아 채소나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천 개의 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오르면 좀 보일까 하고 마을 언덕에 위치한 성채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오르막에선 급속도로 방전되는 엄마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겨우 성채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아도 천 개의 창이라고 할 만한 풍경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성채 안엔 고풍스러운 돌담길과 고즈넉한 전통가옥들이 합심하여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그건 우리가 찾는 풍경은 아니었다.
그때 전통가옥 한곳에서 청년 한 명이 튀어나왔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기에 손짓 발짓을 해가며 우리가 찾는 곳을 설명했다. 나는 그 청년이 나온 집의 창문을 가리키며 열 손가락을 반복해서 펼쳐 보였다. 청년은 무릎을 탁 치더니 흙바닥에 물결무늬를 그리고 그 옆에 집 모양을 그렸다. 나도 무릎을 탁 쳤다. ‘아, 강가에 있구나.’
마을 광장 반대편으로 돌아가 강가로 발걸음을 돌리니 역시 저 멀리 다닥다닥 붙은 전통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왼편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쓰인 간판이 자랑스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강가에 다다르니 드디어 우리가 애타게 찾던 풍경, 천 개의 창이 드러났다. 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창문을 가진 백여 채의 집이 강 건너 산자락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어릴 때 도화지에 그리던 세모 지붕에 네모 창문을 가진 집들이었는데 집집이 네댓 개의 똑같은 창문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똑같은 업자에게 창문 시공을 맡긴 것도 아닐 텐데 마치 스탬프로 창문을 찍어낸 듯 그 크기와 모양이 거의 일치했다.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귀여워 보이기도 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미로 같은 집들 사이를 찬찬히 걸어보니 뜻밖에 많은 집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마을은 고요했고 바람 소리와 삐걱거리는 문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오랜 세월을 품은 옛집들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한 발짝, 두 발짝 우리의 발자국 수가 많아질수록 천 개의 창을 가진 마을은 하나씩 하나씩 숨겨놓았던 예쁜 나무 창문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글·사진 태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