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마음

행복하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누군가를 저격하고 비난하는 영상이 심심치 않게 뜬다. 그건 종종 뒤에 숨어서 남 망하는 꼴 훔쳐보는 못된 심리가 반영된 것이겠지만, 때로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들이를 하는 장면이었다. 동료 연예인들의 선물을 받자 그것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마다하는 장면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달렸다. 그러나 그 비난은 이 사람을 이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결정문인 거지, 진짜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취향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들을 넣어 둘 곳만 넉넉하면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요즘 샴푸나 로션을 고를 때, 향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용기의 크기로, 되도록 크지 않은 용기, 크더라도 옆으로 넓기보다는 위아래로 긴 형태의 용기, 즉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용기를 고르려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요즘은 점점 크게 와닿고 있다. 바로 인생은 면적의 문제라는 것이다. 화장실은 좁은데 샴푸는 크다. 샴푸는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싼데, 혹은 비쌀수록 기능이 많아 보이니 사고 싶어지는 법인데, 큰 용량으로 살수록 가격은 절약이 되니 샴푸는 자꾸만 커지는 것이다. 샴푸도, 린스도, 바디로션도 전부 다 커다란 것으로 사 놓으면 나는 어디에 서 있나…. 과장 조금 보태자면 샴푸와 로션들 때문에 커다란 남자 서너 명이 같이 샤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샴푸 용기들이 내 좁은 화장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화장실 용품들은 예쁘고 화려하고 통통한 것들보다는 각지고 작고 효율적인 것들로 갈음하고 있다. 이렇게 점점 디자인에 인색해지는 건가 싶기도 하다. 화장실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쓸데없는 걸 많이 사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것들은 습관적으로 줄여 나간다. 입지 않는 옷은 버리고, 컵도 버리고, 책도 버리고, 가구도 버리고, 버리려다 절반은 되돌아오고, 그렇게 하나씩 버리면서 공간을 늘려 나가면 내가 조금은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빡센 도시 안에서 이만큼 빈 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휴식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글 쓰는 친구들은 나보다 더해 책의 면적에 대한 예민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책이 면적을 차지하면 얼마나 차지한다고…. 그러나 책과 뒹굴며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요즘은 과한 포장으로 두꺼워진 책을 사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왜냐하면 다른 책보다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고작 몇 밀리미터 더 두꺼운 게 그들에게는 그렇게 크게 와닿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그에 덧붙여 어느 철학자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자꾸 출판사에서 자신에게 책을 보내주는 데 불만을 갖고 “이제부터 책 보낼 거면 책 보관료도 같이 보내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굳이 생각해서 선물로 보내주는 책인데 안 보고 싶으면 버리면 그만이지, 이게 무슨 생투정, 생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 보내지 말라고 징징거리는 한편으로 버리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최근 냉장고를 여닫을 때마다 집 안에 가득 김치 냄새가 퍼졌다. 그것 때문에 냉장고 문을 닫은 뒤에도 내 머릿속은 냉장고를 떠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냉장고 주변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무엇을 할 때도 나는 계속 냉장고 생각을 놓지 못했다. 칸칸마다 여러 종류의 김치로 가득 찬 냉장고는 냉장고라기보다는 박물관에 가깝다. 몇 번 꺼내 먹지 않았는데도 저 멀리 뒤쪽으로 밀려가 유물이 되어버린 불쌍한 김치들… 이미 어떤 건 형태까지 끔찍하게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에휴….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그건 다 엄마 때문이라고. 그렇다, 다 먹지 않았는데도 새로 김치를 가져가라고 하는 엄마 때문이다. 티브이에 나온다면 어느 연예인보다 매서운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장면이다. “조금만 줘요.”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해요.” “아, 이걸 누가 다 먹어!” 지랄발광하며 거세게 저항해 보지만 엄마 반응은 한결같다. “응, 그건 네 사정.” 국물이 새지 않도록 꽁꽁 싸맨 김치 한 통이 냉장고에 또 추가되었다. 김치야 늘 먹으니까, 먹고 먹고 다 먹지 못하고 남는 건 버리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버리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게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데….

줄이고 줄이고 줄여 간략화된 이 집에서, 쓰레기봉투마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싫어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쓰는 서울의 작은 집에서, 이 최적화된 삶에서 면적의 훼방꾼이라면 이제 선물뿐이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 샴푸를 다 버리고도 집에 남아 있는 것은 퉁퉁한 핸드로션, 그건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집 안을 모두 비우고 나서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건 선물로 받은 도자기, 선물 받은 책, 선물 받은 가방 등 선물 받은 것들이다. 농담으로도 차마 선물 준 사람을 원망하지는 못하겠지만, 집 안에 김치 냄새 진동하는 지꺼분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집에 있다는 것은 냉장고 문을 닫은 후에도 김치 냄새가 떠나지 않는 그런 묘한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그리고 선물을 받을 때 그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서 선물을 살 때 몇 번씩 고민하고 몇 번씩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겠지만, 이젠 거기에 더해 면적까지 고려해야 할까? 무언가를 건네는 따뜻한 마음씨에 받는 사람의 면적까지 담겨 있어야 할까? 혹시 모르니 교환권을 넣어주는 것처럼, “혹시 모르니 안 쓸 거면 가져와, 내가 쓸게.”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물은 오로지 받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는 오해.

선물은 당연히 주는 사람의 것이다. 공을 던질 때는 공 던지는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말을 걸 때는 말 거는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선물을 하는 것은 주는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엄마는 넘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랩으로 꽁꽁 싸서 나에게 건넸다. 옛날엔 사랑의 열병에 빠진 친구들이 몇 날 며칠 긴 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것도 많이 보았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받는 사람 좋으라고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선물은 당연히 주는 사람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나는 선물을 더 쉽게 하게 되었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을 다른 색으로 사고 싶어서 내 친구에게 사주기도 했고, 친구의 전시 오프닝에 참석했을 땐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어울리는 색의 꽃을 골라 들고 있었다. 선물은 오롯이 주는 사람의 맘이기에 오히려 마음은 받는 사람이 잘 다스려야 한다.

“흑흑 엄마 미안해.”를 연신 외치며 한가득 비닐봉지에 담아 김치를 버렸다. 모두 비웠지만 또 금세 채워질 냉장고. 그렇기 때문에 난 더 담대해지기로 했다. “그만 줘.” “너무 많아.” “어차피 다 못 먹어.”를 반복하기보다는 그냥 덜 미안해하기를 선택했다. 누군가의 선물에 고마워하고 난 후 한쪽에 처박아 둘 줄도 아는 센스를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어, 이게 뭐였지?” 하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무심함도, 어느 순간 필요 없으면 버리기도 하는 결단력도 가지기로 했다. 정말 중요한 건 그걸 버리는 데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순간에 즐거워하는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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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