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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플레리
바람을 불어넣었다,
빛을 담았다
라 스플레리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잔을 바라봤다. 여름의 빛이 잔에 담겼다. 빛과 그림자를 모으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 유리. 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 스플레리La Soufflerie’를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 스플레리는 ‘(바람을) 부는/불어넣는 자’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의 유리 브랜드다. 파리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기술을 이용해 재활용 유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라 스플레리의 설립자이자 아티장Artisan인 세바스티앙과 그의 파트너 발렌티나를 여름, 서울에서 만났다.
Interview
설립자 겸 아티장 세바스티앙 노빌레 Sébastien Nobile, 발렌티나 노빌레 Valentina Nobile
“유리 세공의 전통을 살리는 것도 저희에게는 정말 중요해요. 예술적인 부분보다는 유리 세공이라는 기능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일반 가정집에서도 이렇게 만들어진 실용적인 공예품을 소유하고 즐길 필요가 있어요.”
먼저 라 스플레리를 소개해주세요.
발렌티나 라 스플레리는 2007년부터 시작된 가족 사업이에요. 함께 일하는 세바스티앙은 제 남편이고요. 그가 몰드 메이킹Mold Making(틀에 석고를 부어 굳히는 주형 작업)을 해온 지는 아마 25년 정도 됐을 거예요. 라 스플레리를 통해 우리 둘은 유리 세공Glass Blowing과 몰드 메이킹을 하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발렌티나 플로리스트와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예요. 꽃이 가진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화병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꽃의 종류에 대해 공부했고, 종류마다 어울리는 모양을 찾고 가지각색의 화병을 디자인했죠. 저희는 이렇게 주어지는 상황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해요. 그래서 제품의 연대기를 살펴보면 그 흐름이 다소 들쑥날쑥해 보일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 만든 유리 제품은 몇 종 정도 되나요?
발렌티나 처음에는 4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260가지 정도 되네요.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한테 영감을 받으면서 이룬 결실이에요. 그중에는 꽃집과 여러 숍, 레스토랑들이 있죠.
어떤 식으로 제안을 받는지 궁금해요.
세바스티앙 그들은 모두 하나의 용도를 가진 가장 전형적인 모양의 용기를 부탁했어요.
발렌티나 저희는 그들이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상황과 용도에 가장 적합한 모양을 연구해요. 그래서 제품마다 독특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냥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골동품처럼 저마다 과거가 있는 거죠.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데요. 혹시 지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세바스티앙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디캔터를 원했어요. 많은 양의 와인을 담으면서도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디캔터요. 테이블이 좁은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넓이 대신 높이를 늘렸죠. 한 친구는 발사미코Balsamico(발사믹 식초)를 담을 아주아주 작은 용기를 부탁했어요. 정말 좋은 발사미코는 가격도 비싸고, 조금씩만 뿌려 먹잖아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발사미코를 위한 병을 만들었죠. 정말 아담해요.
라 스플레리의 제품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는데요. 실용성을 먼저 따진 제품들이었네요.
발렌티나 저희가 만드는 물건은 모두 실용적이에요. 그리고 유기적인 형태에, 재활용 유리를 사용하고, 전부 입으로 불어 만들죠. 유리 세공의 전통을 살리는 것도 저희에게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유리 세공의 예술적인 부분보다는, 유리 세공이라는 기술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실용적인 공예품을 소유하고 즐길 필요가 있어요.
일하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아요.
발렌티나 ‘항상’ 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작업에 관한 대화는 끊이지 않죠. “지금부터 일 시작!” 하고 일을 시작하고 멈추지는 않으니까요.
세바스티앙 그리고 저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훌륭해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죠. 엄청나게 복 받은 거예요.
디자인은 두 분이 하시나요?
세바스티앙 네. 유리 세공은 테크닉 위주이기 때문에 과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능숙해야 해요. 디자인과 제작이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직접 디자인해요. 그리고 그 과정을 사랑해요.
발렌티나 저희가 만드는 모든 제품은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돼요. 구상한 것들은 일단 만들어 써보는 게 중요해요. 생각대로 안 될 수도 있잖아요. 써봐야 알죠. 그 과정을 매일 반복해요.
디자인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누가 갖고 있나요(웃음)?
세바스티앙 결국 끝에는 제가 결정하죠(웃음). 가끔은 발렌티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그녀도 제가 원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만, 괜찮아요. 결국 저희는 그것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단 만들고 봐요. 그 후에 프로토타입을 보고 다시 대화를 하는 거죠.
발렌티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간이 있어요. 일단 여섯 시간 가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땐 우리도 뜨거워요. 다음 날이 되면 물건이 나와 있어요. 눈으로 보면서 충돌하고 멈췄던 대화가 다시 이어지죠. 디자인을 보고 바로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의 제품을 위해 몇 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나요?
세바스티앙 20개 정도 만드는 것 같아요. 그중 19개는 실격하고 하나만 생존하는 셈이죠. 실격된 프로토타입은 모두 녹여서 다시 재료로 쓰고요. 이런 과정이 저희에겐 정말 중요해요. 좋은 유리 제품을 만들려면 많이 만들어야 해요. 그것이 최적의 형태를 찾는 과정이에요.
발렌티나 그리고 가끔은 프로토타입을 만들다 생긴 의도치 않은 형태, 혹은 제품의 결함에 반할 때도 있어요.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발렌티나 지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요. 식탁에 놓인 것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피는 거죠. 저희 어시스턴트에게서 얻기도 해요. 어느 날 저희 브랜드 제품 하나를 가져오면서 그러더라고요. “저 이거 샴페인 잔으로 쓰고 있어요.” 근데 그 물건, 그릇이었거든요. 그때가 아니었다면 그릇에 샴페인을 따른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렇게 한 제품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고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요.
두상 모양 잔의 모델은 세바스티앙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세바스티앙 맞아요. 처음 나온 컵은 제 얼굴로 시작됐죠. 그 후에 다른 머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발렌티나 그런데 그 컵에 대한 배경,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저희가 뚜렷이 밝히지 않은 것도 있고요.
내 얼굴 모양의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 상상하면 조금 민망할 것 같아요.
세바스티앙 아니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발렌티나 말처럼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기도 했고요.
재활용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세바스티앙 자연스러운 색감과 질감을 위해서요.
발렌티나 재활용 유리 대신 새 유리 재료로 만들었다면 모두 똑같이 나왔겠죠. 하얗고 투명하고 깃든 영혼도 없고요. 유리에게도 두 번째 삶을 주는 거예요.
세바스티앙 (잔을 손에 들며) 이 색, 보이죠? 전 이게 좋아요. 브라운 같기도 하고 레드 같기도 한, 뜨거운 톤의 컬러. 이런 색을 내기가 정말 어려워요.발렌티나 그날 준비된 유리에 따라 색이 완전 다르게 나와요. 그 과정이 제품을 더욱 특별하게 하죠.
세바스티앙은 성당 등의 조형물을 복구하는 복원가였잖아요. 석고 작업을 하다 유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세바스티앙 유리에 대한 열정은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어릴 때 유리 세공 장인을 만난 적이 있거든요. 유리 덕분에 여행을 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게 됐네요. 유리는 정말 재미있어요. 하지만 좋은 유리 제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유리 제품을 만드는 건 쉽지만, 좋은 유리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맞추는 건 힘든 일이에요.
만드는 과정도 힘들 것 같아요.
세바스티앙 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최소 10년은요. 공예니까요. 어려운 건 다 똑같아요. 정말 잘 만든 유리그릇은 힘을 빼고 쉽게 만든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요. 베테랑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요.
발렌티나 그리고 엄청 더워요. 체력적인 소모가 크죠. 좋은 견습생을 찾는 것도 어렵고요. 배경지식과 경험이 모두 풍부한 견습생이요. 이제 생산 자체에 손을 대지 않거든요.
어린 시절에 만난 유리 세공 장인에게서 배운 건 무엇이었나요?
세바스티앙 그가 가르쳐준 건 유리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거예요. 좋은 일, 좋은 음식, 좋은 인생. 그래서 그의 곁을 수년 동안 지켰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어요.
발렌티나 하지만 아직 저희는 우리를 전문가라고 여기지 않아요. 늘 배우고 있거든요. 오늘도 유리공예가 여럿을 만나서 많이 배웠어요. 이런 만남이 소중해요.
1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요?
발렌티나 전 세계 곳곳에 유리공예가가 있어요. 계속 배우는 게 정말 중요해요. 아직 많이 어리기도 하고요.
세바스티앙 유리 세공도 나라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요. 미국과 이탈리아의 공예가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들이 공유해준 테크닉이 달라서 흥미로웠죠.
집에 유리 제품이 많을 것 같아요.
발렌티나 집에는 디자인마다 딱 하나씩만 있어요. 어떤 종류의 물건이건 여섯이나 열두 개씩 가지고 있는 일반 가정과는 조금 다르죠.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뭔가요?
세바스티앙 거대한 샐러드 볼을 사랑해요. 그냥 그 자체가 좋아요.
언제 그 볼을 사용하나요? 샐러드용으로만 쓰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발렌티나 집에서는 과일을 담기도 해요.
세바스티앙 생선도.
발렌티나 무스 쇼콜라Mousse Chocolat도요.
세바스티앙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파스타든, 스프든요!
평소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요?
발렌티나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과수원이 있어요. 20종의 과일나무를 키우죠. 시간이 나면 그곳에 가서 잼을 만들어요. 바비큐도 하고, 아이들과 숲에서 뛰어놀기도 해요.
세바스티앙 배나무가 있는데요. 꽃이 피었을 때 가지에 병을 매달아 놓아요. 그러면 병 안에서 배가 자라거든요. 그걸로 리큐어 드 포아Liqueur de Poires(배 리큐어)를 만들어요.
일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발렌티나 둘 다 저녁 식사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걸 좋아해요. 큰 테이블, 많은 와인, 잔도 종류별로 두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요.
세바스티앙 저는 형제만 일곱이에요. 남자 여섯에 여자 하나. 저희 아이들에게는 스물다섯 명의 사촌이 있고요. 그래서 늘 집에 손님이 많아요.
발렌티나 그때 아이들을 위해 테이블 위에 가지각색의 유리잔을 늘어놓는 것 또한 저희가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네요.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죠? 어땠나요?
세바스티앙 리움미술관이 좋았어요. 화병이 많더라고요.
발렌티나 한국의 고대 도자기에 관한 책도 구입했어요. 그리고 경주도 다녀왔고요.
세바스티앙 아, 정말 놀라웠지.
영감을 준 게 있을까요?
발렌티나 음… 일상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좋았어요. 식당에서도 영감의 순간을 잡을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물건을 손에 쥐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서요. 모든 게 새로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내일 비행기에 타면, 무언가 표면에 떠오르지 않을까요? 그때 다시 물어봐주세요.
저는 오늘 라 스플레리의 석고 워크숍에서 아이 머리 모양의 석고상을 만들었는데요. 이 ‘머리’를 어디에 두면 좋을까요?
세바스티앙 집과 사람에 따라 달라요. 부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부엌도 좋고, 침실이 그렇다면 침실도 좋고요. 화장실도 좋겠죠?
발렌티나 저희는 ‘머리’ 오브제를 병 위에 뚜껑처럼 얹어놓기도 해요.
프랑스에서는 이런 석고상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잘 쓰이나요?
세바스티앙 수년 전에는 석고가 아주 유용했어요. 저렴한 비용으로 예술을 할 수 있는 재료거든요. 머리와 가슴에 있는 것, 또는 표현하고 싶은 개인의 아름다움을 꽤 만족스럽게 구현할 수 있었죠. 100년 전만 해도 석고로 만든 장식품은 프랑스나 유럽의 가정에서 흔한 풍경이었어요. 생 쉴피스 성당Saint-Sulpice에 가면 석고 작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죠. 공예의 세계에서 100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때는 워크숍은 물론 공예가들도 훨씬 많았겠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세바스티앙 석고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발렌티나 석고와 유리의 연결점을 찾아 둘을 함께 보여주는 방법도 찾고 싶고요.
세바스티앙 어쩌면 내년에 ‘머리’ 오브제들을 유리로 다시 만들지도 몰라요. 유리병을 위한 뚜껑을 만들고 싶거든요. 위스키나 물을 담는 큰 병을 디자인한 적이 있는데, 코르크 대신 ‘머리’를 끼워도 근사할 것 같아요. ‘작은 머리’를 가진 큰 병이죠.
방에 두고 싶은
라 스플레리의 유리들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01 White Wine Glass
투박해서 더 아름다운 화이트 와인 잔. 1980년대 에릭 로메르의 여름 영화에 등장했을 것 같다.
02 Verre Tête
얼굴이 그려진 그린 컬러의 잔. 화병과 연필꽂이로 활용할 수 있고, 칵테일 잔으로 사용하면 파티 분위기가 한층 즐거워진다.
03 Napoli
요술램프 모양의 물병. 주둥이로 물이 나온다. 화병으로 사용해도 좋다.
04 Tree
나무가 양각된 사각 병. 물병이나 화병으로 적당하다.
이 인터뷰는 라 스플레리의 친구이자 라 스플레리의 전시와 석고 워크숍이 열린 페르마타에서 진행되었다. 라 스플레리의 다양한 유리 제품은 패션 브랜드 페르마타의 쇼룸 겸 콘셉트 스토어에서 찾을 수 있다.
라 스플레리
H. lasoufflerie.com
페르마타
A.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36길 30
H. la-fermata.com
T. 02 6081 9633
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