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과 가까워지는 작고 낮은 상

소반

바닥과
가까워지는
작고 낮은 상

소반

집에 커다란 식탁이 있지만, 어쩐지 그곳에서 밥을 먹는 일은 드물다. 주로 작은 상을 펴놓고 앉아서 먹는다. 혼자 먹을 일이 더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 적당히 온도를 높인 바닥에 앉는 게 좋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고 낮은 상을 쓰다 보면 자주 바닥과 가까워진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집에 여러 가지 테이블이 있다. 여섯 명이 거뜬히 앉을 수 있을 만한 큰 식탁이 있고, 자투리 나무로 만든 침대 옆 간이 테이블이 있다.작은 접이식 테이블도 있고, 거실 테이블도 있다. 이불장 겸 장식장으로 쓰는 테이블도 있다. 혼자 사는 데도 이렇게 받치고 살 게 많다. 책상까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주로 쓰는 것은 접이식 테이블 하나다. 밥도 먹고, 일도 하고, 물건을 올려놓고 치우지 않기도 한다. 노트북을 올려두고 영화를 보다가 그대로 눕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높이다. 상 하나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릴 때 집에서 쓰던 소반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소반 위에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고, 밤이면 감자를 쪄서 가져다주기도 했다. 작은 소반은 들에 나간 아빠를 위한 새참을 나르는 상이 되기도 했다가 간혹 손님이 많이 오는 명절이면 몇 사람을 위한 식탁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소반은 식사 때 식기를 얻는 상으로 반(소반의 위판)과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다리가 낮거나 없는 경우 소반은 쟁반의 모습에 가깝고 다리가 길면 책상이나 탁자에 가까워진다. 모든 계층이 사용했기에 종류와 형태도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바닥에 앉아서 식사하기에 적당한 높이의 다리와 식기를 받치고 있는 상판으로 구성되어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운반을 위해 크기가 중시되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소반은 너비가 50센티미터 내외인데 이 길이는 한 사람이 소반을 이고 이동할 때 힘을 많이 쓰지 않도록 계산된 크기다.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를 쓴 아사카와 다쿠미는 소반은 아마 인류가 목재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최초의 물건 가운데 하나였을 거로 추측한다. 처음에는 하나의 판을 도마로 쓰다가, 상으로 썼을 것이라고. 소반은 밥상뿐만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뒤까지, 생활 속에서 존재했다. 산모에게 산기가 있으면 상에 쌀과 정화수를 받쳐 놓고 산모의 순산을 기원했고, 출산하면 정갈한 소반에 밥, 미역국, 정화수를 올려 삼신께 먼저 바친 뒤 산모에게 주었다. 태어나면서도 소반과 더불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반을 사용하는 마음에는 낮은 곳을 향하는, 단정하고 정갈한 빛이 깃들어 있다. 

예전 시골 장터에 가면 백반百般이라고 불리는, 칠을 하지 않고 거의 반제품인 상태로 파는 소반이 있었다. 이런 소반은 집으로 가져가 사용하면서 손수 붉은 칠을 하거나 들기름 또는 생칠(불에 달이지 않은 옻칠) 등을 사용하며 윤을 내며 사용했다고 한다. 가장 자주 쓰는 물건을 오랜 시간과 정성으로 길들이며 사용한 것이다. 일상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것과 보살피는 것이 하나였다. 그때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길이 든 쟁반을 보면 평소 마시는 차의 질까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쓰면서 물건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려는 태도는 물건에 그대로 밴다. 소반에 대해 알아보다 새로운 상을 사려는 생각을 접었다. 대신 자주 쓰는 낮은 테이블을 하나 길들여 보고 싶어졌다.

근대화상회

근대화상회는 오래 쓸수록 좋은 살림살이를 제안하는 문화상품점이다. 전통 빗자루, 화문석, 마미체 공예품, 소반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명인의 이야기와 물건을 꾸준히 소개한다. 현재 온라인으로 운영 중이다.

T. 02 793 2231 H. mulnamoo.co.kr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