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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전주 객사 근처, 웨딩거리라 불리는 아담한 일방통행 도로. 이곳에 밤이 찾아오면 일제 강점기 때 지은 오래된 목조 건물의 불이 켜진다. 이곳의 소유주는 미국 미시간 출신의 양조사 존 가렛John Garrett. 자신을 ‘좌니’라 소개한 그는 이곳에서 6년째 맥주를 빚으며 한국인 아내와 함께 전주의 수제 맥주 브랜드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웨딩거리와 전주한옥마을에 자리한 노매딕의 탭룸에서 현지인도 관광객도 그의 향긋한 맥주를 달큰하게 들이켠다.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이하 노매딕)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대한 기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걸어와 날 반기는 사람은 이곳을 이끄는 좌니. “여기가 우리 양조장이에요.” 유창한 한국어 소개에 엄지를 치켜세운 나는 공간을 다시 둘러봤다. 이곳이 노매딕의 맥주가 탄생하는 공간이구나.
노매딕은 ‘크래프트 비어’라고도 불리는 수제 맥주를 직접 양조하고 판매하는 브랜드다. 크래프트 비어란 대형 마트, 음식점에서 만날 수 있는 맥주와 달리, 소규모 양조장에서 독립적으로 제조되는 맥주를 뜻한다. 외부 자본의 간섭 없이 운영되는 노매딕은 공인 브루마스터 좌니가 엄선한 재료로 다양한 제조법을 실험하며 개성 있는 맥주를 빚어낸다. 원재료가 양조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잔에 담기기까지 모든 과정을 정성껏 다루는 것이 이곳의 철학이다.
좌니는 그 무대로 왜 전주를 택했을까. 그는 원래 종교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교수를 꿈꿨지만, 아일랜드 유학 시절 도서관보다 펍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양조사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하지만 학비가 없어 곧장 양조 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기에 우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전주를 고른 이유는 이 도시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양조장의 문을 연 지난 여섯 해 동안 노매딕에서는 일흔 종이 넘는 맥주가 탄생했다. 물, 맥아, 홉, 효모 네 가지 기본 재료에 로컬 과일, 꿀 등으로 개성 있는 향을 더하는 방식. 술을 음식과 함께 내어주는 ‘탭룸’은 총 두 곳인데, 양조장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노매딕 비어 템플’과 한옥마을에 있는 ‘노매딕 비어 가든’이다. 손잡이를 내리면 맥주가 흐르는 ‘탭’은 템플과 가든 각각 열여섯, 열두 개. 손님들이 방대한 선택지를 좀더 쉽고 재밌게 즐기도록 좌니는 맥주를 레벨 1부터 3까지로 분류했다. 레벨 1은 맛이 부드럽고, 레벨 3은 강한 식. 여러 가지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 순으로 마시는 걸 추천한다.
노매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환경이다. 맥주는 본질적으로 물, 곡물, 꽃, 균류처럼 환경이 준 선물로 만들어지기에 최대한 자연을 존중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 불필요한 화학물질이나 첨가물을 배제한 ‘클린 라벨’ 맥주를 만든다.
잠깐!
맥주 용어 알아보기
“비어 가든에서 즐기기 좋은 맥주를 고민하며 만들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무겁지 않아 계속 마시기 좋고,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죠. ‘한옥 스테이’라는 이름은 전주한옥마을 내 스테이 업계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에서 지었어요. 유기농 한국 쌀에서 얻은 당분으로 맥주를 발효해 독특한 드라이함과 실크처럼 매끄러운 질감을 선사하며, 은은한 홉 향이 어우러져 한층 세밀한 맛을 냅니다.”
“어느 날 아침 시나몬 롤을 먹다가 영감을 얻었습니다. 계피, 바닐라, 곡물이 어우러진 조합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이 독특한 재료 조합을 강조한 맥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크리미하면서도 뚜렷한 곡물의 풍미를 표현하기 위해 오트 몰트를 썼고, 베트남산 계피와 마다가스카르산 유기농 바닐라를 사용했어요.”
“우리 양조장의 시그니처 인디아 페일 에일’IPA’입니다. IPA는 오랜 시간 ‘이스트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로 양분되어 왔어요. 이스트 코스트 IPA는 바디감이 두텁고 달콤하며 주스 같은 풍미가 특징이고, 웨스트 코스트 IPA는 가볍고 드라이하면서 쓴맛이 강조되는 스타일인데요. 제가 만든 ‘서드 코스트Third Coast’ IPA는 이 두 스타일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한 제3의 스타일입니다. 서드 코스트라는 이름은 제가 자란 미국 오대호 지역을 의미하기도 해요. 은은한 오렌지빛을 띠며, 달콤한 몰트3에서 비롯된 풍부한 바디감4 위로 시트러스와 열대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룹니다. 이 과일 향은 홉에서 추출한 천연 오일 덕분에 더욱 섬세하게 살아납니다.”
“브래것Braggot은 꿀과 맥아를 50 대 50으로 발효한 음료예요. 엄밀히 말하면 맥주가 아니고, 맛도 맥주와는 완전히 다르죠. 오히려 와인에 가깝다고들 합니다. 개발 전까지는 브래것을 마셔본 적도 없는데요. 전주에서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다정한 양봉가와 그의 멋진 양봉장을 알게 되었고, 그 에너지에 깊이 감동받아 브래것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국내산 유기농 쌀을 활용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음료를 만들었죠.”
브랜드 이름은 방랑한다는 뜻의 ‘노매딕’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노매딕이라는 이름은 취미인 캠핑과 더불어, 도시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사는 저의 라이프스타일을 뜻해요. 제가 캠핑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시간 동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뭔지, 브랜드를 어떻게 이끌지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미시간 출신인 저는 인디애나·에콰도르·아일랜드·독일에서 양조를 공부했고, 지금도 여름과 겨울엔 한 달씩 고향에서 지내는데요. 이런 삶의 방식은 세상과 나에 대한 신선하고 건강한 시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공간 곳곳에서 “균형 있는 삶을 위한 균형 있는 맥주” 라는 문구가 보여요.
균형은 인생에서 가장 값지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가치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지만, 방법을 터득하기란 쉽지 않죠. 저는 그 해답이 마음, 몸, 영혼을 고루 돌보는 데 있다고 믿어요. 이 세 단어는 우리 양조장의 발효조에도 새겨져 있어요. 우리 삶의 각 요소가 제 역할을 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하듯이, 맥주도 똑같아요. 물, 맥아, 홉, 효모 네 가지 원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되죠. 균형 잡힌 맥주는 제게 균형 잡힌 삶을 위한 관점을 가르쳐줬어요.
탭룸은 두 곳이에요. 전라감영 근처에 있는 노매딕 비어 템플부터 소개해 주세요.
노매딕 비어 템플은 양조장 맞은편에 있어요. 2년 전 건물을 인수해서 본래 모습에 가깝게 조금씩 복원하고 있고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2층짜리 벽돌 건물로, 목조 천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죠. 1층은 오래된 원목 바닥과 아름다운 목재 보, 그리고 굵은 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벽돌 또한 원형 그대로예요. 이 역사적인 건물의 관리자가 저라니 영광일 따름이죠. 마치 한국의 타임캡슐 속에서 맥주를 따르는 기분이랄까요? 이곳에서 맥주를 마실 때 ‘벽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를 상상해 보면 재밌어요. 2층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는 가끔 하우스 음악을 디제잉하거나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해요. 음악은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라 앞으로 이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다음으로 노매딕 비어 가든은 어떤 공간인가요?
양조장을 연 지 6개월 뒤, 두 번째 공간으로 한국 최초의 독립형 비어가르텐(맥주와 음식을 내어주는 독일식 야외 공간)을 열었어요. 탁 트인 하늘과 언덕 풍경, 전통 건축물에 둘러싸인 야외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죠. 전주한옥마을에 이곳을 오픈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어요. 대부분 번화가나 서울, 제주 같은 곳에 두 번째 매장이 생길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당시 한옥마을 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거의 비어 있었고, ‘임대’ 간판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이 문화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비어가르텐이 한옥마을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고, 많은 분들이 이곳 덕분에 거리가 다시 살아났다고 고마움을 전하세요. 이제는 임대 간판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활기를 되찾았답니다.
열 평짜리 공간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저는 성장만을 위해 브랜드를 키운 적은 없어요. 단기적 이익보다 노매딕이 지향하는 문화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더 옳고, 그 방법이 결국 성공을 가져올 거라 믿어서요. 과거를 회상해 보자면, 초기엔 정말 힘들었어요. 낮에는 맥주를 만들고 밤에는 맥주 서빙을 했고,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영어 강사 일을 병행해야 했거든요. 코로나가 닥쳤을 땐 노매딕을 접을 뻔했지만, 다행히 그 무렵 문을 연 비어 가든이 큰 사랑을 받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단계적 일상 회복 기간에 야외 음주가 엄청난 인기를 끈 덕분이죠. 지금 노매딕이 이룬 성취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결과예요. 게다가 저와 노매딕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훌륭한 팀원들이 있어요. 우리는 회사라기보다 맥주와 전주, 자연을 사랑하는 부족에 가까워요. 이제는 그 회사를 함께 유지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멋진 사람들이 함께하네요.
전주에서 양조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여요.
많은 사람들이 서울, 부산, 제주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이 저한테는 오히려 도전이 됐고, 이젠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노매딕은 전주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공간이 되었고, 세대를 아우른 손님들과 외국인까지 함께 어울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트렌드에 순응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대도시의 압박에서 벗어난 덕분에 노매딕만의 개성을 더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었고, 서울이었다면 어려웠을 아름다운 건물도 가질 수 있었죠.
맥주를 빚을 때 지역 농산물만 고집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노매딕에는 ‘Farm To Brewhouse(농촌에서 양조장까지)’라는 맥주 시리즈가 있는데요. 우수한 현지 농산물을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시도했어요. 지금까지 딸기, 살구, 수박, 복숭아, 배 등을 써봤고, 인기가 좋아서 빠르게 소진돼요. 사실 수입 과일 퓌레를 사는 게 훨씬 비용이 절감되지만, 노매딕에서 직접 맥주에 쓸 퓌레를 만드는 게 문화적으로 훨씬 풍요롭다고 생각해요. 지역 사회를 도울 수 있고, 품질 관리에도 좋고, 제 구매력은 지역 농가들이 지속가능한 농법을 쓰도록 설득하는 힘이 되죠.
지역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건 왜 중요할까요?
지역 양조장은 지역 빵집, 음식점, 로스터리만큼 중요한 존재예요. 지역 양조장들은 로컬 농산물을 우리 일상으로 가져오는 규모 있는 움직임이고,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은 맥주와 긴밀하게 연결돼요. 예를 들어 손님들은 양조장에 자주 드나들며 맥주 제조법을 질문하고 양조사에게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죠. 실제로 저도 손님들과 맥주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누고, 받은 피드백을 반영해요. 특히 우리 양조장은 탭룸이 운영되는 밤에 기계를 가동하기 때문에 손님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양조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요. 이 기억은 단순히 노매딕 맥주를 매대에 올라간 상품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만들어줄 거예요.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는 앞으로 무엇을 꿈꾸며 나아가게 될까요?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 목표예요. 우리 공간이 시간을 멈추고 긍정적인 자기 성찰을 돕는 ‘신성한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되면 좋겠네요. 모든 삶의 형태를 환영하고 축복하는 다문화적 장소가 되길 바라고요. 저는 노매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신중하고 의미 있게 브랜드를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