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공

행복하고 싶어요

백련산 인근의 아주 조용한 동네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곳이지만 높은 산 위에 있어 답답하지 않고 전망이 좋았다. 창문 밖으로는 숲이 가까이 있어 리조트에서나 봄 직한 자연이 매일 황홀하게 펼쳐지는 곳이었다. 난 그곳이 마음에 들었고 오래 살 생각으로 공들여 집을 가꾸었다. 바닥에 붉은색 카펫을 깔고, 조명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 가구를 사는 대신 모두 제작했다.

그러나 그곳은 내 집이 아니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선반 하나를 벽에 걸어두고 싶은데 벽에 못을 박을 수 없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라서 그랬던 걸까? 많은 시간 동안 못을 박을까 말까 망설이며 빈 벽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무타공’이라는 글자를 검색하니 수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무타공 선반, 무타공 액자, 무타공 휴지걸이…. 남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벽에 무언가를 붙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타공으로 시작하는 상품의 대부분은 벽에 구멍을 내는 대신 널찍한 접착제를 벽에 붙이는 형태였다. 벽에 나무 선반을 붙이기 위해선 얼마나 널찍한 스티커가 필요할지 상상해 보았다. 벽에 선반을 붙이기 위한 스티커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등에 붙이는 파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스티커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부모님 집에 살았을 때는 벽 앞에 서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냥 원하는 곳에 구멍을 뚫고 못을 때려 박았다. 선반을 만들어 원하는 곳에 걸어두고 책과 잡동사니 등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선반을 옮겨 달고는 했다. 집에 못을 박는 일은 꽤나 특별한 권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특권이라면 예전에는 그런 걸 생각했다. 매일매일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아무리 어질러 놓아도 줄지 않는 여유 있는 공간. 시간과 공간을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차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고, 사실 그런 특권은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사는 데 딱히 불편함은 없다. 그러나 벽에 못을 박을 수 있는 특권은 다르다. 벽에 못을 박는 일은 간단한 일이다. 꼭 필요하며 누구나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손에 못을 들고도 하지 못하는 것이니 불편하고 답답했다. 손으로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못을 박아야 하는 곳에 널찍한 접착제를 붙이는 건 간지러운 곳에 밴드를 붙이는 기분이랄까?

어느 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팔려고 한다며, 예의상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혹시 이 집을 사겠냐고 물었다. 집을 소유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래서 이 집이 얼마냐고 되물었다. 구매하기엔 벅찬 금액이었고 그제야 부동산에서는 그들이 정말 해야 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집을 보여줘도 괜찮겠냐고. 어쩔 수 없으니 알겠다고 대답해 놓고서 나는 좀 기분이 이상했다. 혼자서 ‘꽁냥꽁냥’ 살아가는 귀여운 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다니, 모르는 사람에게 일기장을 보여달라고 하는 부당한 요구처럼 느껴졌다. 일기장 같은 내 집을 숨길 수는 없으니 대신 내가 숨겠다고 말하며, 차라리 빈 집에 손님들을 모시고 오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그래도 아무도 없는 집에 누굴 데려올 수는 없다며 부디 시간에 맞춰 집에 있어주기를 부탁했다.

집을 구경 온 사람들과 그들을 안내하는 부동산 중개인은 무척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했고, 집 안에서 신발을 벗으면 어수선할까 봐 집 밖에서부터 신발을 벗으며 들어올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치 지뢰밭을 건너는 군인들처럼 조심스레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무척 조심스러운 듯 행동하며 두 눈으로는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는 모습. 누군가가 온몸을 훑어보는 것처럼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 나는 누가 봐도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중학생 같아 보였을 것이다. 표정과 자세에 잔뜩 심술이 묻어나 있었다. 어정쩡한 자리에 서서 어정쩡한 자세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팔을 꼬아 팔짱을 끼거나 허리에 두 손을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물 틀어봐도 돼요?” “네.”
“방음은 잘돼요?” “네 다 괜찮아요.”
나는 심술이 났지만 속 좁아 보이고 싶지 않아 성실하게 대답했다.
“어머나 남자분이 집을 참 예쁘게 가꾸고 지내신다.”
“…….”

중개인과 손님은 미지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집을 나섰다. 나는 차가운 현관 바닥에 발끝만 딛은 채로 문을 닫았다. 네 수고하세요. 문이 닫히는 찰나에 집 밖으로 물건을 툭 던지듯 인사를 내보냈다. 이들은 내내 조심스러웠고 그럼에도 나는 불편했다. 내 집을 예쁘다고 해줘서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편했다. 내 집이라고 여기던 이 집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해서, 그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모르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 또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다. 공들여 집을 고쳐 놓았는데 집주인이 바뀌며 그들이 이 집에 들어와 산다고 했다. 이전에도 두세 번이나 집주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나는 이사를 해야 했다. 집주인이 바뀌면 이번에도 본인이 들어와서 살려나? 그럼 나는 또 이사를 가야겠지? 이번에도 내 집에서 스스로를 쫓아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위치가 바뀌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 전 손님으로 방문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이 집에서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집주인이 될 사람은 젊은 부부였다. 그중 아내가 될 사람은 집을 고치는 데 큰 관심을 가진 듯 보였고, 내 집이었던 곳을 좋아해 주었다. 이제 곧 이사 오게 될 사람으로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제가 집을 좀 고치고 싶은데 혹시 다시 방문해서 실측을 해도 될까요?” “네….” “저번에 바닥 높이를 안 쟀는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 집을 고치실 때 그린 도면도 있으신가요?” “네에….”

내가 공들여 꾸민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난 그런 일로 누굴 탓할 정도로 낭만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집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날은 문을 열어주었고, 어느 날은 실측 때 빼먹은 치수를 알려주었다. 집주인이 요구한 것도 아닌데, 집을 고치면서 만든 3d 파일까지 찾아 보내드렸다. 아무쪼록 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아름다운 집에서 잘 사시라고! 메일에 파일과 함께 간단한 인사말을 남겼다. 그렇게 메일을 보내려다 말고 한 줄 더 추가해 물어보았다. 혹시 집을 모두 새로 고치실 생각이시라면 사는 동안 못 좀 박게 해주실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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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