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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서는 여행이다

모든 독서는 여행이다

 

© 노란 풍선의 세계 여행

우리 집 아이들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늘 23개월 때였다. 24개월부터는 한 사람 몫의 비행기 값을 지불해야 하기에,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우되 비행기 값은 10퍼센트만 내도 되는 23개월에 여행을 떠난 것이다. 꽃님이는 싱가포르에서, 꽃봉이는 뉴욕에서 두 돌 생일을 맞았다. 뉴욕에 갈 때 꽃봉이야 23개월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일곱 살 누나 꽃님이는 뉴욕에 관한 그림책을 잔뜩 읽고 갔다. <배트맨>, <나 홀로 집에2> 등 뉴욕이 배경인 영화도 몇 편이나 보고. 뉴욕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그곳을 여행하는 감회가 남다른 것은 아이도 똑같을 것 같아서였다. 똑같이 로마에 여행을 가도 <로마의 휴일> 영화를 본 사람과 아닌 사람에 따라 “아 여기!”가 주는 감동이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꽃님이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여기가 엘로이즈가 사는 곳이구나. 우와. 내가 여기에 실제로 와 있다니.”라고 감동하기는커녕 어느 책에서 봤는지 기억조차 잘 하지 못했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책을 보면서 “우와. 여기는 내가 갔던 플라자 호텔이잖아!”라고 놀라곤 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아이들은 자기가 주인공이구나. 남 때문에 어떤 곳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은 자신이구나. 아마 나도 어릴 때는 이랬을 텐데…. 언제부터 어떤 장소의 의미를 갖는 것이 ‘나’가 아니라 유명인과 유명 작품이 되었을까?

© 머나먼 여행

그 후로는 어떤 곳을 여행하든 그곳에 대해 미리 알려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행의 경험을 하나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바탕으로 잘 써먹곤 했다. 파리 여행을 한 후, 에펠탑이 뭔지도 몰랐던 1학년 꽃봉이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더 즐거워졌는지 모른다. “엄마, 저 빵집에 또 에펠탑이 있어! 저 앞에서 회전목마를 탔지. 그때 하늘이 얼마나 예쁜 분홍색이었나 몰라. 내가 핑크는 여자 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 저녁노을 때문에 핑크를 좋아하게 된 거 알아?” 거리에 숱한 ‘파리바**’야, 고맙다. 간판에 에펠탑이 있는 너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파리 여행을 되새기는구나. 

아이들에게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 나 때문에 모든 것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여행은 주인공의 배경을 더 다양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노란 풍선의 세계 여행》을 처음 봤을 때,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책장에는 꽂기도 힘들 만큼 커다란 판형의 그림 위로 각 나라의 모습이 펼쳐져 있고, 그 위를 노란 풍선이 날아다니는 그림책인데, 그림 안에 깨알 같은 디테일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구름 둥둥 하늘만 봐도 구름 사이로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있고, 아기를 물어다 주는 황새가 날고 있다. 그 옆의 화려한 기구에는 《80일간의 세계 일주》 주인공들이 타고 있고, 그 아래로 개성 만점의 유모 ‘메리 포핀스’가 트레이드마크인 우산을 타고 착륙 중이다. 기구 위로 날아가는 저 기러기들은 뭔가? 맨 앞에 타고 있는 건 닐스. 《닐스의 신기한 모험》에 나오는 애다. 어? 대포알을 타고 날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 ‘뮌히하우젠’ 남작이다. 이 아저씨는 얼마나 뻥을 잘 치는지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대포알을 타고 적진 위로 날아가 정찰을 한 다음 마주 오는 대포알로 갈아타고 오는 중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바론의 대모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바다로 가면 또 어떤가.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도 있고, ‘인어공주’도 있다. 인어공주 옆에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손에 세 갈래로 나뉜 삼지창을 들고 있다. 아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구나. 

누가 얼마나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아내나 남편과 내기를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없겠다 싶었는데, 꽃님이는 우리보다 훨씬 더 이 책을 즐기곤 했다. “여기 불났어. 소방차가 오고 있네.” “여기 하얀 산이 있어. 눈이 왔나 봐.”

하긴 여행을 가도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눈으로 여행을 한다. 어른들은 유명한 곳, 이국적인 곳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여행길에서 좋아하는 것은 의외로 표지판, 길거리의 여러 차들,우리 동네와 다른 신호등 모양 같은 것들이다. 아직 아이들은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가질 만한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선 이국의 사원에는 관심 없고, 그 앞에서 흙을 파고 개미를 보느라 넋을 잃어서 부모에게 본전 생각이 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해외여행 못 간다고 미안할 일 하나도 없다. 매일 일상이 모험이요, 여행인 아이들에겐 동네 큰길가만 해도 멋진 여행지니까 말이다. 

어쩌면 해외여행 따위 없는, 어른들 눈에는 지루한 일상이 아이들에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주는 안전한 느낌이야말로 아이들의 정서에 그렇게나 유익하다니까 말이다. 너무 지루하다 해도 아이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낸다. 상상의 세계로 저 혼자 알아서 여행을 간다.

《머나먼 여행》의 주인공 소녀도 그렇다. 아무런 특별한 일 없는 무채색의 일상 속에서 아이는 문득 빨간 펜으로 문을 그린다. 어? 요술 펜이었나 봐. 정말 문이 생겼네. 그 문을 열자 그 안은 생생한 컬러의 세계다. 소녀는 보라색 새를 따라 모험을 시작한다. 책의 끝부분에서, 소녀는 보라색 마술 펜을 들고 있는 소년과 만난다. 소녀와 모험을 함께한 보라색 새는 이 소년의 상상의 새였을까? 책 겉장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면지에 이미 소년이 마술 펜을 들고 소녀의 동네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이 책은 매번 페이지마다 다음 페이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다.

작가는 이 소녀의 얼굴을 일부러 무표정하게 그렸다고 한다. 소녀가 어떤 감정일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도 어떤 아이는 두려워하고, 어떤 아이는 신나게 즐기잖아요. 독자 마음대로 느끼면 됩니다. 주인공의 얼굴에 하나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독자들은 하나의 이야기만 읽게 되겠죠.” 

어쩌다 보니 두 권 모두 글자가 없는 책이다. 원래 여행이란 게 별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그 어떤 정보나 지식보다도 여행은 그 자체로 이미 배울 것, 느낄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오히려 지식은 때로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여행은 서서 읽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든 독서는 여행이다.

노란 풍선의 세계 여행
샤를로테 데마톤스 | 마루벌
노란 풍선이 세계 여행을 한다. 페이지마다 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모습이 펼쳐지고 그 위에 노란 풍선이 떠 있다. 노란 풍선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탈출한 줄무늬 죄수복의 남자와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를 타고 그를 쫓는 마술사, 파란 자동차 등 몇몇 등장인물이 계속 나와서 숨은그림찾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기존의 역사적 사건이나, ‘헨젤과 그레텔’, ‘배트맨’ 등 유명한 등장인물들이 그림마다 잔뜩 나와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찾아내는가가 책을 즐기는 포인트. 앞 장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싣고 가던 토마토를 쏟은 트럭이 다음 장에서는 농장에 가서 새로 토마토를 산다든지 하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 숨어 있다.

머나먼 여행
에런 베커 | 웅진주니어
《머나먼 여행》, 《끝없는 여행》, 《비밀의 문》 3부작 중 첫 번째 책으로 2014년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다. 첫 그림책으로 칼데콧 상을 받은 에런 베커는 그림책을 그리기 전 오랜 기간 세계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 여행이 이 책에 영감을 주었을 것은 당연하다. 인생의 모든 일들이 그저 흘러가지 않고 인생의 다음 단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앤서니 브라운의 《마술 연필》, 크로켓 존슨의 《해럴드와 자주색 크레파스》 등 요술 펜으로 그림을 그리자 실제의 것이 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요술 펜으로 무엇을 그리고, 어떤 세계를 만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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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