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명작이거나 망작이거나

30시즌 이상 진행 중인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의 장르는 코미디. 종종 액션이 펼쳐지고 때때로 로맨스가 가미되며 의도치 않게 공포물로 변하기도 한다. 내가 감독이고 주인공인 이 드라마의 새 시즌 장르는 모험, 특별히 해외 로케이션이다. 과연 망작으로 평가받던 지난 시즌을 뒤엎을 만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까?

“원래 서핑을 좋아했어요?” 퇴사 후에 발리로 서핑 여행을 떠날 거라고 하자 동료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서핑왕이 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어요.” 나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강백호처럼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었다. 직장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가 재미없어서, 이 일을 계속한다면 더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환경호르몬이 살아 숨 쉬는 시멘트 건물 안에서 가능한 가장 먼 곳을 상상했고, 그때 문득 떠오른 두 단어가 바로 발리와 서핑이었다. 힙스터라면 꼭 한 달은 살고 간다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발리. 구릿빛 가슴팍을 뽐내며 범고래만 한 파도 터널을 통과하는 서퍼들. 그 두 개의 조합이라면 ‘능력이 달려서 일을 그만두는 얼간이’가 아닌 ‘번아웃을 피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 멋쟁이’처럼 보일 것 같았다. 도망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재빠른 나는 바로 일주일 뒤 떠나는 발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돌아올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내 안의 히피가 속삭였다. 

‘이 친구야, 인생은 노빠꾸야.’

군대를 전역하고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을 때 내겐 유럽과 인도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나를 순수하게 걱정하는 가족들은 유럽을, 나를 변태같이 사랑하는 친구들은 인도를 추천했다. 당시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에 빠져 있던 나의 선택은 인도였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도에 가면 자아라는 걸 찾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한 달간의 인도 여행에서 드라마틱한 인생의 변화를 경험했다. 사랑에 빠졌고, 사랑 때문에 자퇴를 했고, 자퇴와 동시에 큰 병에 걸렸고, 병에 걸린 김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 그걸로 오늘의 밥벌이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작은 우연들이 연결되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방구석 깊숙이 잠들어 있던 배낭을 꺼냈다. 첫 인도 여행 이후로 15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여행 메이트였다. 아무리 빡빡하게 채워도 10킬로그램을 넘지 않는 이 낡은 가방이 다시 한번 내 삶을 변화시키진 않을까? 보다 획기적인 사랑이 찾아오진 않을까? 그런 기대와 함께 언제 잃어버려도 괜찮을 것들로 짐을 꾸렸다. 

“인도에 또 가? 발리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동생을 사랑하지만, 가끔 이런 멍청한 소리를 할 때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섬이고, 인도랑 인도네시아는 소 곱창과 돼지 곱창만큼이나 거리가 멀어.”, “그게 그거지. 둘 다 맛있잖아.” 동생은 순진무구한 말투로 사람을 킹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어쨌든 일찍 돌아와. 인도인지 인도네시안지 다 돈다고 고생하지 말고.” 

발리는 인도네시아 18,200개의 섬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을 딱 하루씩만 여행해도 80살이 될 때까지 다 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도네시아를 여행한다고 하지 않고 발리를 여행한다고 말한다. 경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발리에선 시간이 몇 배로 빠르게 흐른다. 그만큼 경험할 것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나름의 사전 조사를 해보니 발리를 여행하는 유형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숲이 울창한 우붓 지역에서 채식과 요가를 즐기는 힙스터, 풀빌라가 있는 리조트 타운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푸른 파도에 몸을 던지는 서퍼, 그리고 약쟁이들. 애인도 없고 고기도 포기할 수 없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바다뿐이었다. 가진 게 몸뚱이와 시간밖에 없는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게 더 뭐가 있겠는가.

사실 나는 무척 게으른 편이다. 말이 좋아 자유로운 영혼이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서핑이고 뭐고 맨날 술만 마시는 방탕한 여행자가 될 게 뻔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일정이 틀어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내겐 일종의 강제성이 필요했다. “일어나, 서핑 가야지!” 하고 멱살을 잡아끌어 줄 장치 같은 것 말이다. 찾아보니 발리에는 한 방에서 합숙하며, 일주일에 6일동안 쉬지 않고 서핑만 하는 캠프가 있었다. 이거다 싶어 한 달 일정으로 캠프를 예약했다.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송금하며 손이 조금 떨렸지만 술을 조금 마시니 괜찮아졌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회사에 남아 나의 뒤처리를 해야 할 동료들에게 퇴사 짤을 날리고 단톡방을 나왔다. 그렇게 서핑왕이 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망했다. 그 말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설명하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렴한 항공권을 구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경유를 선택했고,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환승 시간이 가장 짧은 티켓을 구입했으며, 공항 터미널을 이동할 때 입국 심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한 시간이 지나도록 입국 심사대의 대기열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출입국 관리 공무원은 마음 급한 여행자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입국자의 신상을 꼼꼼히 파악했다. 겨우 내 차례가 됐을 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여권과 내 얼굴을 번갈아 노려봤다. 마치 ‘감히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우린 호락호락하지 않다고!’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가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척 급한 상황이라는 티를 내기 위해 발까지 동동 굴렀다. 

비굴한 자세로 겨우 입국 도장을 받고 짐을 찾으려는데 이번엔 내 행운의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더럽고 낡은 가방을 가져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겨우 수화물 레일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배낭을 찾아 들고, 터미널 연결 철도를 타기 위해 환전을 하고, 공항철도 게이트를 찾아 헤매고, 철도를 반대로 타고,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발권 카운터로 달려갔지만 이미 창구는 닫혀 있었다. “이봐요,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왜 안 들여보내 주는 겁니까? 나는 보기보다 달리기가 빠르다고요!”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항공사 직원은 단호했다. “규정입니다. 달리기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늦게 도착한 당신 잘못입니다.” 재수없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럼 바로 다음에 출발하는 티켓으로 교환해 주세요.” “발리로 가는 가장 빠른 티켓은 내일 오전입니다. 저런, 환불이 불가능한 티켓이네요. 새로 구입하시겠습니까?” 조금 더 떼를 쓰고 싶었지만, 공항 경비가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군말 없이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 영혼 없는 걸음으로 카운터를 빠져나가는 내게 직원이 말했다. 

“즐거운 여행하세요.”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나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을 검색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반값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겨우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송장 상태였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말한 방은 이미 다 나가고 없네요. 지금 남은 건 스위트룸뿐입니다.” 나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전혀 스윗하지 않은 스위트룸에 일주일 치 생활비를 지불했다. 커다란 침대 위에 장미가 뿌려져 있고, 작은 라탄 바구니에는 사과 두 알과 비스킷이 들어 있었다.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티브이를 틀자 코미디언처럼 보이는 사람이 스탠딩 코미디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방청객이 웃는 타이밍에 맞춰 따라 웃었다. 

그때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말레이시아 어느 지역에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현장 화면 속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연신 집 안의 물을 퍼내고 있었다. 바로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내 처지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지구 어딘가에는 나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 나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슬픔을 상상했고, 다만 그들이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살짝 잠이 들었다 깼더니 배가 고파졌다. 호텔에 딸린 식당에 내려가 락사를 주문했다. 해산물과 카레를 이용해 끓인 말레이시아 전통 음식이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말레이시아 음식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레스토랑 한편의 작은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Fly Me To The Moon’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좋다.” 하고 소리 내서 말해버렸다. 그러자 진짜 이 여행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건 나 자신이니까, 짜증이 난다거나 열 받는다는 말 대신 가능한 한 긍정적인 말로 자신을 달래주면 상황이 훨씬 나아지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아직 발리에는 도착도 못 했지만 벌써 여행의 절반은 마친 느낌이네? 아, 좋다 좋아! 오히려 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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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