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덕후 6인

면 요리 열전

면덕후 6인의
면 요리 열전

제대로 성공한 몇몇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 하나같이 무언가에 미쳐있는 모습들이었다. 참 대단하다. 나는 무엇에 미칠 수 있을까? 살면서 한 번쯤 성공이란 걸 해볼 수는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하얗게 지우기를 반복했다. ‘쳇, 성공 따위.’ 냉면을 먹으면서 그런 오타쿠 같은 조소를 지었는데, 마침 나도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평양냉면이라면 나도 남 부럽지 않게 먹고 있지는 않나? 문득 주변의 ‘면덕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01 

밴드 ‘달콤한 비누’에서 곡을 만드는
조용석은 콩국수를 좋아해

콩국수가 왜 좋아요? 맛있으니까. 소금을 넣어도 맛있고 설탕을 넣어도 맛있어요. 아니야 콩국수 그 자체가 맛있어. 그리고 순결해요. 순결하다는 건 어떤 의미죠? 새하얗다? 탁하지 않은가? 아냐, 내 눈에는 순결해요. 크림 파스타랑 뭐가 다른가요? 일단 식물성이라 부담이 덜 하고. 대지의 맛을 음미하는 기분이랄까. 대지를 맛본 적 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소면을 삶고 콩 국물을 소면 위에 부으며 면이 젖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에로틱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제대로네. 고소한 맛과 시원하고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이 면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내 몸을 하얗게 만드는 기분이란…. 어느 가게 콩국수가 제일 맛있어요? 그건 함부로 말하기가 좀 그런데. 흰 소가 일을 잘한다고 하면 검은 소가 서운해할 거고. 검은 소가 일을 잘한다고 하면 흰 소가 서운해 하는 기분이라서요. 그럼 콩국수계의 흰 소와 검은 소는 어디예요? 집요하네. 보통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게 진주회관이긴 해요. 거기 아니면 대치동의 맛자랑이 좋아요. 그렇지만 저는 대학교 앞 콩국수도 좋았고, 중국집 콩국수도 맛있었어요. 콩국수에 경쟁을 붙이는 건 의미가 없죠. 만약 더 이상 콩국수를 먹을 수 없다면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두유를 먹을 거예요. 너무 달지 않은 걸로. 콩국수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해주세요. 일단 지금 베트남에 출장을 나와 있어서 늘 콩국수가 그리워요. 한국에 가면 많이 먹을 거예요. 나에게는 항상 콩국수에 대한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이 있어요.

02 

사진 왕이 될 사나이
안선근은 라멘을 좋아해

라멘의 맛을 묘사해줘요. 두툼한 차슈(돼지고기 고명)의 느끼함과 청경채의 감칠맛이 조화로워요. 하지만 단지 느끼한 걸 좋아해서 먹는 건 아니에요. 제가 남들보다 많이 먹는 편인데 장어는 두 마리 이상 못 먹거든요. 입에 촥 감기는 무언가가 있어요. 간혹 차슈가 대패 삼겹살처럼 얇게 나오는 집이 있는데, 그런 곳은 다신 안 가요. 면 같은 경우 병아리처럼 노란 색깔이 매력적이에요. 쫄면처럼 쫀득하지 않으면서 식감이 적당해요. 라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중학교 때였나. 일본에 가려고 여권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준비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계획이 무산됐어요. 그때 자주 라멘집에 가서 아쉬움을 달랬어요. 나무로 실내를 장식한 라멘집에 있으면 일본에 간 듯한 기분이 들곤 했거든요. 뭔가 그럴싸하잖아요. 자주 가는 가게가 어디예요? 집 근처에 24시간 문 여는 라멘집에 자주 가는데, 이태원이라 주말 같은 경우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야 해요. 그럼 뭔가 심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늦은 밤에 가는 편이에요. 얼마나 자주 먹어요? 평일에도 종종 먹고 주말에는 거의 라멘을 먹어요. 그런데 최근 건강검진 결과 때문에 충격받아서 다이어트 시작했거든요. 조금 줄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몸무게가 몇인데요? 살면서 최고 몸무게 찍었어요. 그렇게 참다가 만약에 세상에 라멘이 사라진다면 어쩌려고? 그건 생각도 못 해봤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가 직접 만들고 싶어요. 없어지면 해 먹어야지 별 수 있나.

03 

기사를 쓰고 가끔 사진도 찍는
김건태는 평양냉면을 좋아해

(자문자답)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를 기억해? 술을 잔뜩 먹고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어. 내게 필요한 건 오직 냉면뿐이었지. 근처 아무 냉면집에나 들어가 물냉면을 시켰는데, 그게 아마 ‘봉피양’이었을 거야. 맛이 아주 밍밍해서 처음에는 내 코가 막힌 줄 알았어. 그러다 옆에 앉은 회사원을 봤는데 나랑 표정이 비슷한 거야. ‘아, 이게 평양냉면이구나.’ 그때 알았지. 밍밍한 맛이라. 그게 무슨 매력이야? 흔히들 ‘슴슴하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냉면을 한 그릇 다 비우고 집에 왔을 때 더 강하게 생각나는 맛이야. 여운이랄까. 한번 길들여지면 다시는 다대기가 들어간 냉면을 먹을 수 없게 돼. 냉면은 식초랑 겨자가 기본 아니야? 예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평양냉면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 생각도 없이 식초와 겨자를 넣더라고. 그건 평양냉면을 두 번 죽이는 일이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없다면 차라리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해. 얼마나 자주 먹어? 글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먹지 않을까 싶어. 평양냉면 파는 곳이 많이 없어서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데, 식사시간이 되면 무조건 근처 평양냉면집부터 검색하고 봐.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어? 늘 맛있지. 특히 술 먹은 다음 날은 무조건이야. 다른 걸 먹으면 몸이 아파. 냉면이 나오면 일단 양손으로 놋그릇을 받쳐 들고 국물을 쭉 들이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육향 가득한 국물이 식도를 거쳐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적시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아, 침 고인다.

04 

어라운드 매거진에서 ‘재료의 산책’을 연재하는
요나는 붓카케 우동을 좋아해

붓카케 우동에 대해 묘사해주세요. 우선 갓 삶은 우동 면발의 물기를 잘 빼낸 다음, 그 위에 평소보다 조금 진한 정도의 쯔유와 고명을 올려서 먹어요. 고명은 튀김 부스러기나 온천 달걀노른자, 각종 튀김이나 쪽파 같은 것이 일반적이에요.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우동 면은 떡에 비견될 정도죠. 촉촉하게 젖은 면이 호로록 소리와 함께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은 정말이지 짜릿해요. 면을 먹는 도중에 잠시 쉬어간다는 느낌으로 바삭한 튀김을 쯔유나 달걀노른자에 살짝 적셔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꿀꺽…. 사실 붓카케 우동은 양이 적어서 먹고 나면 항상 여운이 남아요. 그런 치사한 매력도 있죠.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좋아하게 된 메뉴라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우동의 본고장인 일본 카가와현香川県에 있을 때 먹었던 우동들이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그때가 처음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동네 우동이 그렇게 맛있어요? 언젠가는 그 지역으로 ‘우동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어요. 당일치기로 우동을 먹으러 다녀오는 거예요. 다섯 명 친구가 모여 좁은 차에 끼여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일곱 군데 정도를 다니며 우동을 먹는 거예요. 그렇게 다니다 보면 우동에 물리기도 하지만 우동에 관한 입맛의 기준이 확실히 높아졌다고 느껴요. 진짜를 먹어버린 거죠. 만약 다시는 붓카케 우동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 왜 그런 슬픈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첫사랑을 닮은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이 첫사랑이 될 수는 없죠. 빙빙 돌다가 결국 멍하니 그리워하겠죠.

05 

이태원 ‘그랑블루’와 ‘니키타’의 헤드 셰프

강석현은 따야린을 좋아해

따야린이 뭔가요?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예요. 다른 면도 많은데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파스타 면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이에요. 원초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죠? 가장 기본이 된다는 뜻이에요. 뭔가 생소한데 맛이나 식감이 어떤가요? 이탈리아 듀럼 밀과 달걀노른자만 사용해서 만들어요. 듀럼 밀 특유의 풋내와 달걀의 진하고 부드러운 향이 잘 어우러지는 거죠. 따로 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탄성이 적어 뚝뚝 끊어지는 식감이 좋아요. 면 표면의 전분기가 입술에 묻어나는 느낌도 매력적이에요. 전분이 입술에 묻어나는 느낌이요? 맞아요. 그때부터 따야린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먹었던 때를 기억하나요? 《파스타의 기하학》이라는 책을 보고 런던에 간 적이 있었어요. ‘보까 디 루포Bocca di Lupo’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는데, 그때 처음 맛을 봤죠. 어땠어요?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요즘엔 어떤가요? 자주 먹어요? 하루에 한 그릇 이상은 꼬박꼬박 먹어요.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본인이 하는 니키타를 소개하고 싶다고요. 객관적으로 점수를 줄 수 있나요? 10점. 하하하. 돌아서면 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생면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요.

06 

숙성리에서 밭농사 짓는
할머니는 맛조개 칼국수를 좋아해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할머니보고 자기소개가 뭐여? 아니 할머니, 면 좋아하시잖아요. 옛날에 맨날 드시던 거 그거 뭐예요? 칼국수 좋아하지. 조갯살 들어간 거. 그게 바지락이 아니라 길쭉하게 생겨서 조금 특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뭐여? 맛조개였나? 응, 맛조개여. 참 맛있는데 요즘에는 귀해서 잘 없어. 그게 귀한 거였어요? 요즘에는 파는 데도 잘 없고, 사려면 안중이나 아산만까지 나가야지. 그럼 요즘에는 자주 못 드시겠네요? 삼촌이나 작은 엄마가 데려가야 먹지. 태평아파트 쪽으로 가야 먹어. 어제는 다정이랑 다 같이 샤브샤브 먹고 왔어. 샤브샤브 맛있었어요? 그냥 주니까 먹는 거지. 뭘 자꾸 맛있느냐고 물어? 근데 이게 뭐 하는겨?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머니 그럼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뭘? 맛조개 들어간 칼국수요. 응, 원래는 밀가루를 일절 못 먹다가 작은고모 생기면서부터 먹게 됐지. 원래는 배가 아팠는데 이제는 잘 먹어. 얼마나 자주 드셨어요? 배고프면 먹는 거지. 뭘 얼마나 자주 먹어. 아, 그럼 할머니는 덕후가 아니네요…. 그게 무신 말이여. 근데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다니는겨? 

*‘맛조개’는 가리맛조개과의 패류로 길쭉한 모양이 특징이다. 그 이름만큼 맛있다.

면덕후 6인이 어렵게 정한
단 하나의 맛집

조용석이 말하는
맛자랑의 콩국수

예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에 있던 콩국수 가게예요. 칼국수도 팔지만 단연 콩국수가 최고죠. 국물이 진해서 콩 본연의 고소한 맛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아요.

A. 서울시 강남구 도곡로87길 7 맛자랑빌딩
T. 02 563 9646
O. 월~토 09:00~21:00, 일요일 휴무

안선근이 말하는
멘야산다이메 본점의 돈코츠라멘

취사병 출신의 감으로 봤을 때 멘야산다이메의 본점이 가장 맛있어요. 기본적인 돈코츠라멘과 구수한 미소라멘, 칼칼한 카라구치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어요.

A. 서울시 마포구 홍익로5안길 24
T. 02 332 4129
O. 월~일 11:50~24:00, 연중무휴

김건태가 선택한
유진식당의 평양냉면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사이에 위치한 유진식당은
지갑 가벼운 술꾼들의 천국이에요. 유명한 냉면 전문점들에 비해서 낡고 늙은 분위기지만, 맛과 배는 결코 허름하지 않아요.

A. 서울시 종로구 종로17길 40
T. 02 764 2835
O. 화~일 10:30~22:00, 월요일 휴무

요나가 선택한
치쿠세이의 붓카케 우동

‘우주 최고’라는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줄을 서는 건 기본이고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숨을 쉬는 것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데, 이곳이 그래요.

A. 2-23 Kameokachō, Takamatsu-shi, Kagawa-ken
T. +81 87 862 1095
O. 화~일 11:00~14:30, 월요일 휴무(변경 있음)

강석현이 선택한
스핀들푸드마켓 내 니키타의 따야린

그날그날 반죽과 숙성을 하는 생면 파스타와 장시간 끓여내는 소스가 일품이에요. 제가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맛이 있어요. 이탈리아 본연의 맛이죠.

A.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 66
T. 02 6324 2122
O. 화~일 11:30~22:00, 월요일 휴무

 

할머니가 선택한
안중시장 어딘가의 맛조개 칼국수

겨울에 날이 꼬추같이 추운 날 그냥 배고프면 먹는 거지 뭐. 시장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돌아다니다 보면 칼국수 할머니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고.

A.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안중시장 어딘가
T. 번호 없음
O. 미정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김건태

일러스트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