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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대구법
여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대구. 그럴 수도 있지. 거기에 나와 관련된 무언가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한번 가보려고 마음먹었더니, 마치 오랜 마음의 창고였다는 듯이 이 사람도 대구에 있고 저 사람도 대구에 있었다.
서울을 벗어날 일이 생기고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면, 나는 늘 기차를 타고 싶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일이 내 생활에는 좀처럼 없는 사건인데, 기차에서는 간단해진다.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어딘가로 통째로 옮겨지고, 그것이 마치 모난 데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처럼 해석되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개성도 좋지만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게 가끔은 좋은 꿈처럼 여겨지는 것도 어쩌지 못할 일이다. 일정하게 들리는 기차 바퀴 쪽의 백색소음과 수시로 바뀌는 창밖 풍경이 그런 잠깐의 평화를 돕는다.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가는 동안 비어 있던 십 년에 관해 생각했다. 고향인 의정부에서 학창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와 서로 다투고선 못 만난 지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식에 의하면 한두 해 전부터 그 친구는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연고가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 대구에는 생전 가본 적이 없었다. 대구에 관한 글을 써야 하고 대구에는 절교한 친구가 산다. ‘명분이 생겼다.’ 나는 망망대해에서 어딘가 점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단순히 기뻤다. 돛을 올렸다. 한데 그렇게 기차에 오르긴 했어도 막상 생각해 보면 내 전화를 받을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미리 귀띔하고 약속을 받아내는 실수는 하기 싫었다. 못 만나면 못 만났지 이 산뜻한 기분을 망치지 않으리. 별다른 계획 없이 곧장 기차에 올랐다. 무궁화호를 타고 천천히 대구에 다가갔다. 따뜻한 커피와 책. 기차에서 네 시간을 휴가지 소파처럼 사용하면서.
대구에 도착하고 나서 친구 하나가 더 왔다. 나처럼 K를 못 본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또 한 명의 고향 친구. 지금은 평택에서 지내며, 일곱 살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K와 나의 고교 동창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용케 시간을 내서 대구까지 왔다. K는 걱정대로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30분 간격으로 두 번이나 했는데 신호음만 울리고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마음 편안하네. 꼭 만날 필요도 없지.’ 그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걸 미뤄보면, 대구로 향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 전화에 반응이 없던 K는 뒤늦게 도착한 다른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 답했다. 우리가 벌써 동대구역에 있다고 했더니 금세 나와 주었다. 화가 난 듯한 표정, K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말했다.
“왜 자꾸 연락하냐.”
그저 얼굴 보러 온 거라고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빠른 대답을 하고 나서는 속으로 K의 질문을 곱씹었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왜 왔을까. 안 보고도 잘 살았는데 말이야.
“잘 지냈냐. 나는 가끔 생각나더라.”
머릿속과 입 밖의 세계가 서로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들 셋이서 그것도 십 년 만에 만나 술집에 앉아 있었더니 소주가 정말 잘 들어갔다. 5차, 6차. 우리는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3차쯤이었나 예전에 다툰 이야기를 잠시 나누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4차에서는 또 예전 고향에서처럼 낄낄거리며 웃었다. 대구든 부산이든 제주도든 그렇게 셋이서 취해서 떠들고 있으면 어디든 의정부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그래 이제 꺼져. 썩 꺼져. 아침 7시에 헤어지며 K가 우리에게 말했다. 친구의 여전한 말투. 미리 잡아놓은 호텔에 도착하니 7시 반이었다. 남들이 조식을 먹고 있을 때 체크인을 하고, 미리 추가금을 지불해 놓은 뒤 오후 1시까지 잠을 잤다. 잠들기 전에 어렴풋이 3차 때 언성을 높인 게 생각났다. 아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조금 후회가 되었다.
K 말고 대구에서 만나볼 사람은 친구 H의 아버지였다. 대구가 고향인 친구 H와 친해지고 나서 여러 번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가 말끝마다 했던 말이 아빠가 자기 친구들을 만나면 좋아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대학에서 식물생리학을 가르치다가 얼마 전에 정년 퇴임하고서 사무실을 하나 얻어 책을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며 지내는 사람. 대구까지 왔으니 H와 함께 그의 아빠를 보고 돌아가기로 하고, 내친김에 K도 다시 불러냈다.
사무실은 오래되고 낮은 아파트 2층에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친구 세 분과 있었는데, 이미 몇 시간째 수다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환자들 사연을 듣다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만 하면 수술하지 말라고 토닥여 돌려보내는 가난한 성형외과 의사 그리고 전국 최고령 꽃꽂이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인 직업 불명의 친구분까지. 의사 친구 두 명과는 K와 나처럼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토요일 오후의 사무실에 노란 해가 들어서 형광등 불빛과 섞이고 담배 연기에 반응하는 공기청정기가 열심히 돌고 있었다.
그래 너는? 음, 그래 그럼 너는? 간단한 소개 시간이 지나고 내가 물었다. “아저씨는 싸워서 안 보게 된 친구도 있어요?” 안방에서는 H의 아버지를 뺀 세 명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질문에 K가 어이없다는 듯 조소를 띄웠던 것 같기도 하고. “속 쓰려서 안 보는 친구는 있었는데, 미워서 안 본 친구는 없지.” 아저씨가 말했다. “아빠가 돈 빌려줬다가 못 받은 아저씨가 있어. 제일 친했던 아저씨.” H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이제 다 갚았다. 그런데 H야, 그 아 죽었다. 장례 다 끝나고 동생이 연락 왔더라.” 갑자기 분위기가 아래로 무거워졌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말년에 고생이 많았을 거다.” 짧은 말들로 대화가 마무리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 집에서 나와 역까지 태워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거절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대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아까 아빠 울려고 하더라. 기분 이상했어.” H가 말했다. K와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윤옥연 할머니 떡볶이를 먹고 그 맛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동대구역까지 걸었다. 30분쯤 걸었을까. 아직은 더위가 한창이어서 셋 다 땀을 많이 흘렸다. 걷는 내내 K는 나를 놀려댔다. 주제랄 것도 없이 계속하는 바람에 몇 마디는 아예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10여 년 전과 다른 게 있었다면, 내가 그의 조롱에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 ‘진짜 잘 놀리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듣고 있던 H는 또 의정부에 온 것 같다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무궁화호 말고 KTX를 탔다. 이제는 당장 타는 기차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예매하고 종이 티켓도 필요가 없다. “순방향으로 해. 검은색 좌석들. 하얀색은 역방향으로 앉는 좌석이야.” 몸이 무뎌서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사실 상관없지만,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K가 우리를 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대구에서는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든 하나는 할 것 같았는데 술에 맘껏 취하고 놀림만 받고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잘 지내라. 내가 말했다. 꺼져 썩 꺼져. K가 그렇게 말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헤어진 우리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따로 연락이 없다. 순방향으로 앉아 이제는 대구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저러나 기차에 탄 이들은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네. 앉아 있기만 해도 순순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듯한 편안함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정에서는 K만 아무것도 타지 않았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