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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그날 우리가 받았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내 생일은 크리스마스 전전날, 12월 23일이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내 생일에는 케이크 종류가 다양해 예쁜 케이크를 고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조금 달랐다. 한 살 터울 오빠의 생일이 12월 26일, 엄마의 음력 생일까지 12월 말에 모두 겹치는 해에는 세 명 생일을 한날에 몰아 축하하곤 했다. 그럴 때면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 케이크 대신, 엄마의 취향인 생크림부터 고구마까지 여섯 가지 맛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파리바게트 ‘마이넘버원’ 케이크를 샀다. 서른, 서른 하나, 쉰 다섯. 세 사람의 나이를 모두 더한 초들은 하나의 케이크 위에 작은 산맥처럼 솟아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동시에 초를 ‘후’ 불면서 가성비 좋은 기념일을 치렀다.
며칠 전, 회사 팀원의 생일이 있어 전 직원이 모여 작은 파티를 했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생일을 하나씩 이야기하다가, 내 생일이 12월 23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실장님이 물었다. “진아 씨, 그럼 어릴 때 생일 선물 따로, 크리스마스 선물 따로 받았어?”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잠깐만.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던가…? 연말이 되면 가족들 생일은 빠짐없이 챙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어릴 적 나는 꽤나 천방지축한 소녀였다. 나의 든든한 놀이 상대는 오빠였는데, 주로 하는 건 전쟁 놀이였다. 30센티미터, 15센티미터 플라스틱 자를 테이프로 감아 총으로 만든 뒤 집 안을 함께 뛰어다니곤 했다. 놀이가 격해지는 날에는 테이블 위를 밟고 올라가 고난도 총격 기술을 선보이다가 발을 너무 세게 디뎌 테이블 유리를 깨 먹은 적도 있다.
집에는 컴퓨터가 한 대뿐이라 오빠랑 누가 더 게임을 오래 했느냐를 두고 매일같이 아옹다옹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쓴 기억은 없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례를 두고 다투고,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가며 곧잘 놀았다. 갖고 싶은 물건도, 사고 싶은 장난감도 딱히 없던 아이. 그러니 일 년에 한 번, 생일에 받는 선물이면 충분했고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노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피붙이와 신나게 뛰어다니고, 숱하게 싸우고, 마음껏 울었다.
생각해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오빠와 티격태격하며 울던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유치원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뜨자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가 무심히 말했다. “장롱에 뭔가 있는 것 같더라.” 비몽사몽 침대 옆 장롱 문을 열어보니, 옷걸이에 걸려 늘어진 겨울 코트들 아래로 커다란 레고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게 바로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인가…?’ 잠시 고민하며 엄마를 바라봤다. 거짓말에 영 소질이 없던 엄마는, 작은 아이가 보내는 의심의 눈빛에 차마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는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갔다.’는 말 없이 그저 ‘장롱에 뭔가 있다.’고만 말한 엄마의 말씀이 어쩐지 아리송했지만, 레고 상자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 중요했던 나는 머릿속으로 잠시 스친 물음표는 곧 잊어버리고, 자고 있던 오빠를 흔들어 깨워 함께 레고를 쌓으며 놀았다.
산타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은 그날이 전부였던 나는 이제야 궁금해진다. 그래서 산타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4세기 소아시아(현재 터키 지역)의 한 도시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스 주교라는 실제 인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몰래 나누어 주곤 했는데, 특히 가난한 집 굴뚝에 금 주머니를 떨어뜨려 딸들의 혼수를 마련해 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 조용한 선행이 훗날 ‘밤에 몰래 선물을 두고 간다.’는 지금의 산타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니콜라오스의 이야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네덜란드에서는 ‘신트클라스’라는 네덜란드식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주교 모자와 지팡이를 든 모습,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 등 여러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산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네덜란드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이름이 자연스럽게 ‘산타클로스’로 변했고, 1823년 발표된 〈성 니콜라오스가 온 밤〉이라는 시에서는 처음으로 굴뚝, 썰매, 순록, 흰 수염, 통통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며 현대 산타의 기본 설정이 갖춰졌다. 19세기 후반에는 삽화가 토머스 내스트가 둥글고 인자한 얼굴, 털 달린 옷차림을 그리며 산타의 이미지가 점점 자리를 잡았다.
그간 제각각이던 산타의 옷 색과 체형, 성격 등은 1931년 코카콜라가 삽화가 해든 선드블롬에게 그림을 의뢰하면서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선드블롬이 그린 따뜻하고 인자한 산타 이미지는 이후 수십 년간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반복되며 널리 퍼졌고,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옷과 흰 수염의 산타가 완성되었다. 결국 산타는 한 사람의 전설에서 시작해 여러 지역의 이야기와 문학, 그림 그리고 현대 상업 문화가 겹쳐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어른들이 이렇게 오랜 역사 동안 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속여온 셈이니 이 정도면 거의 국제 공조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다시 팀원의 생일을 축하하던 회사 테이블로 돌아와,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장님 아들은 지난 크리스마스, 스마트폰으로 타임랩스 촬영을 해 산타가 오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중간에 배터리가 꺼져 다행히도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산타의 존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듣고 있자니, 확실히 요즘은 아이를 속이기 더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
나는 당시 내 또래 여자아이들이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달린 사람 인형을 가지고 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초등학교 짝꿍과 친해진 지 몇 달이 지나, 그 친구 집에 놀러 가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 레고를 쌓거나 집 안 도구들을 활용해 싸움 놀이를 하던 나는, 인형들이 가지런히 놓인 선반을 보았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요즘에는 원하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이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지 금세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사실과 허구를 빠르게 구분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아이의 상상 세계를 지켜주고 싶은 어른의 마음도 한층 더 조마조마해질 수밖에 없다.
문득 그 크리스마스, 주방에서 태연히 말을 건네던 엄마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산타처럼 ‘밤에 몰래 선물을 두고 가야’ 했던 엄마는 레고 상자를 어디선가 사 와, 하루 혹은 며칠 동안 몰래 숨겨두었다가 잠든 우리를 살피며 조심스레 장롱 안에 넣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천진하게 레고 상자만 뜯고 열심히 놀면 되는 아이였지만, 돌이켜보면 어른들은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세계를 지켜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빠에게 출근할 때 입으시라며 색종이로 접은 종이 옷을 건넬 때도, 스케치북에 그린 상상 속 캐릭터가 밤만 되면 내 방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도, 아이의 상상이 아직 유효한 세계라면 구태여 깨뜨리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거짓말을 길게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언젠가 깨닫게 될 사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환상을 잠시라도 지켜주고자 했던 다정함. 드러나지 않아 몰랐지만, 우리는 그런 어른들의 묵인하는 다정함 덕분에 자기만의 세계를 오래 지키며 컸던 것 같다.
그 침묵 안에 담긴 마음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매해 연말, 엄마가 좋아하는 마이넘버원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사실 나는 투썸플레이스 스초생 케이크를 더 좋아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표현하지 않고도, 아니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보듬는 법을 배운다. 그나저나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나도 아이들의 상상 세계를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은데, 이 글… 산타를 믿는 어린이가 보고 있진 않겠지?
에디터 황진아
일러스트 안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