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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 워커비
워커비는 지역의 양봉 농가와 꿀벌 보호에 앞장서는 꿀 브랜드다. 사라져서는 안 될 꿀벌, 함께 일하는 동료, 그리고 워커비가 뿌리내린 이 도시까지. 꿀 한 방울을 품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벌처럼 정은정 대표는 지키고 싶은 존재들을 위해 오늘도 마땅히 할 일을 해내고 있다. 기꺼운 선택과 사려가 쌓여 한 방울의 달콤함으로 전해질 순간을 위해.
공간이 참 멋있어요. 이곳 ‘워커비 전주’를 얼마 전 리모델링하셨다고요.
원래 제품 소개하는 쇼룸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요. 손님 입장에서는 “워커비 제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를 공간 입구 벽 쪽에 배치하고, 브랜드를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 영상도 상영하고 있어요. 꿀 생산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축소 버전으로 마련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이에요.
인터뷰 마치면 저도 소개 영상을 처음부터 봐야겠어요(웃음). 이제 말씀을 나눠 볼까요? 워커비를 운영하기 전 이야기부터 듣고 싶어요. 돌잔치 연출 업체를 창업해 이어오다가 세계여행을 떠나셨다면서요.
맞아요. 10년 동안 돌잔치 연출 일을 하면서 주말마다 다른 사람들의 중요한 날을 축하하느라 정작 제 가족의 특별한 날에는 함께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나를 위한 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1년 정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죠. 그때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엄마랑 여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들에게 제안했어요. 아들은 집 없이 비행기를 타고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처음에는 두려워하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평소 즐기던 부루마불 게임을 활용했어요. 게임판에서 아들이 가고 싶은 나라를 선택하고 지구본에서는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도록 규칙을 정해 여행 계획을 짰죠.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는 뉴욕에서 보내고, 남태평양과 뉴질랜드도 꼭 가보고, 마지막은 태국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식으로 게임을 하며 상상해보도록요. 또 게임을 하면서 아들이 자주 사던 땅이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본 익숙한 도시들도 포함했고요. 흥미와 관심사가 그대로 여행 동선에 반영되었어요. 그렇게 게임판을 따라가듯 여행지를 정해서 1년 남짓 여행을 다녀왔어요.
관심사에서 출발하다 보니 여행이 더 특별했겠어요. 총 몇 개국을 다녀왔어요?
13개국, 19개 도시를 다녀왔어요. 아이랑 함께 이동해야 하니 부담이 있어서 짧게 여러 곳을 도는 대신 한 지역에 길게 머무는 방식을 택했어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머물면서요.
둘은 서로에게 어떤 여행 메이트였는지 궁금해요.
저 혼자였다면 아마 그 여행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제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준다는 마음으로 데리고 나갔는데, 막상 나가 보니 정반대였어요. 두려운 상황에서도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지가 됐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 생각했던 아이에게서 제가 보호받는 순간도 많았죠. 아이가 사춘기를 앞둔 예민한 시기였지만 서로 힘이 되어준 시간이었어요. 물론 많이 싸웠지만 그만큼 대화도 많이 했어요. 둘뿐이니 결국 대화로 풀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1년이면 꽤 긴 여정이었을 텐데요. 여행 이후 새롭게 자리 잡은 생각이 있었나요?
일에 쏟던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에서, 나를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해 선택한 여행이었어요. 사실 떠날 때만 해도 ‘그냥 충전만 돼도 충분하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막상 돌아올 때는 달랐어요.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마음,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어떤 답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어떤 답이었어요?
당시 부모님이 은퇴하시고 조부모님이 계신 경남 산청으로 귀향하셨어요. 조부모님은 산청에서 양봉업을 하셨는데요. 이전에는 1년에 몇 번 내려가는 정도라 관심이 깊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거주지를 옮기시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해외에서 본 시골과 산청을 비교해 보니 많이 달랐어요. 외국은 그 지역의 대표 작물이 소도시 전체의 문화와 생활을 움직이는 중심처럼 느껴졌거든요. 축제, 즐길 거리, 관광, 기념품까지 모든 것이 작물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농부들에 대한 존중도 높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로컬 중심 문화가 최근에서야 활발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죠. 부모님이 계신 지역도 벌꿀로 유명하지만, 생각해 보면 제가 실제로 양봉 산업이나 꿀과 관련한 문화·관광적 체험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 차이는 왜 생겨났을까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통이 중심을 잡고 있더라고요. 미국·캐나다·호주·유럽처럼 넓은 대륙에서는 생산자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난 작물을 가까운 곳에서 소비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웠어요. 그걸 ‘로컬 퍼스트’라고 하는데,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우선 소비하고, 남은 것은 외부로 유통되는 방식이었죠. 유통 마진도 최소화돼 좋은 식재료와 건강한 생산품이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높은 퀄리티로 소비되는 구조였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이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유통 마진이 1차, 2차, 3차까지 붙어요.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비싸게 사고, 생산지에서는 싸게 팔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거예요. 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이 부분을 샅샅이 파헤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부모님 댁에서 3개월 정도 지내면서 양봉 농가 현장을 조사했어요. 양봉업자를 따라다니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인터뷰도 하고요.
인터뷰를 통해 어떤 정보를 알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생산 단계에서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어요?”, “판매할 때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혹시 안 팔리면 어떻게 하세요?” 같은 질문이었죠. 또 실제로 꿀을 어디에 판매하고 계시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평균 수확량은 어느 정도인지, 흉년이나 풍년일 때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언제부터 양봉을 시작하셨는지, 대를 이어서 하고 계신 건지, 현재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이런 실질적인 질문을 정말 많이 했어요. 너무 꼬치꼬치 물어봐서 농가 분들이 귀찮아하시기도 했죠.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성함을 말씀드리며 인터뷰를 부탁드린 적도 있고요(웃음).
예상했던 양봉 농가의 힘든 점과 실제 문제가 일치하던가요?
처음에는 꿀 소비가 감소하고 있으니 판로가 가장 큰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꿀 품질을 의심하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죠. 다른 농사를 짓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양봉업자들은 워낙 할 일이 많고 바쁘다 보니 추가로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거든요. 블로그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같은 채널로 혹은 알음알음 판매는 하지만, 소비자들이 “올해 꿀이 작년과 다른 것 같다.”고 말하거나 겨울이 되면 하얗게 결정화되는 꿀 특유의 현상을 보고 설탕이 섞인 건 아닌지 의심하면 이런 문의를 처리할 힘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CS 응대나 판매를 돕는 기획과 마케팅 능력도 부족하고요. 그래서 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뉴얼이나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양봉협회에서 제공하는 포장 상자에는 모든 설명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의심을 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정보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면, 꿀 품질이 의심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어요?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매 과정이나 포장, 제품 자체가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브랜딩을 제대로 하고, 제품을 검증 가능한 구조로 만들면 품질에 대한 의심을 덜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무엇보다 꿀 한 방울을 모으는 데 꿀벌과 농부가 얼마나 큰 노력을 들이는지 조부모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책정되는 꿀의 가격과 가치는 너무 낮다는 생각도 들었고, 품질을 의심받는 상황을 해결하고 싶더라고요.
그 결심이 자연스럽게 워커비라는 브랜드 창업으로 이어졌네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어떻게 접근하셨어요?
워커비에서 쓰는 꿀은 모두 축산물품질평가원이나 양봉 농협에서 품질 인증을 받은 등급제 꿀만 사용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농가에서는 이 등급제를 받는 게 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288킬로그램짜리 드럼 한 통 단위로 꿀을 검사받아야 하거든요. 드럼 단위로 꿀을 모으면 밀봉해 아무도 열지 못하게 하고, 평가원에서 드럼을 개봉해 샘플을 채취한 뒤 다시 밀봉을 해요. 마치 비밀 편지에 왁스를 찍어 봉인하는 것처럼 안전장치를 하는 거예요.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면 그 드럼에 번호를 붙여 인증서를 발급해 줘요. 저희는 그 인증서를 확인한 뒤 꿀을 매입하죠.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 농가는 비용이 부담돼요. 그래서 일부 농가는 그냥 알음알음 판매하는 걸 선택하는 거죠. 워커비 입장에서는 품질을 인증받는 과정을 꼭 거쳐야 했기에, 저희는 농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인증 비용을 고려해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고, 결제는 현금으로 즉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협의점을 찾은 거고요.
품질을 공인받으면서도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구조로 만드셨군요. 그럼에도 농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1년 내내 애써 얻은 귀한 수확을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맡기기 어렵죠. “내가 널 뭘 믿고? 이 황금 같은 꿀이 얼마나 소중한데?”라는 마음이 당연히 있었고 다들 자기 꿀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계셨어요. 그런데 정작 파트너가 될 농가 한 곳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밖에 나가 제품을 팔 용기가 어떻게 생기겠어요. 그래서 이 과정은 피할 수 없는, 마땅히 넘어야 할 단계였죠.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농가가 혼자 움직이지 않고 ‘작목반’이라는 단위로 연결돼 있다는 거예요. 마을이나 지역 단위로 꿀을 모으고, 이물질을 걸러 드럼통에 담는 공동 시설을 운영하죠. 비상 연락망처럼 서로 긴밀히 이어져 있어요. 예컨대 산청만 해도 작목반이 186개 있거든요. 그러니 핵심은 한 집을 설득하는 거였어요. 특히 작목반 회장님 같은 분을 먼저 설득해 좋은 선례를 보여드리면 다른 농가로의 확산은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요. 회장님을 여러 번 찾아 뵙고 식사도 하며 신뢰를 쌓다 보니 “저 농가에 한번 가보라.”는 소개가 이어졌고, 그곳에서 받은 꿀로 워커비 제품을 만들어 보여드리자 “우리 꿀도 맡겨볼 수 있을까?”라는 요청이 연달아 들어오며 협력이 연쇄적으로 점점 넓어졌어요.
전략적인 접근이네요(웃음). 이어서 워커비 제품 이야기를 해봐요. 대표 제품인 블렌딩 허니는 벌꿀에 바닐라, 모히토, 레몬 등 천연 재료를 더한 제품이죠.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꿀을 잘 안 먹더라고요. 저는 양봉업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 설탕 대신 꿀을 쓰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꿀보다 설탕을 사용한다는 걸 커서야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요즘은 당류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제로 슈가’ 시대이기도 해서 꿀을 소비하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 카페 메뉴를 살펴보니 여전히 음료에 단 맛이 나는 시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시럽을 꿀로 대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요가 높은 메뉴부터 하나씩 개발하기 시작했고, 마침 코로나 시기에 홈카페 열풍과 맞물려 집에서도 즐길 만한 제품을 제안할 기회가 생겼죠. 그중 바닐라 허니는 바닐라 시럽을 대체하기에 딱 알맞아 큰 인기를 얻었고, 블렌딩 허니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품군 개발뿐만 아니라 활용성 측면에서도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어요. 휴대하기 좋은 스틱형 미니 팩이나 다양한 맛 체험이 가능한 샘플러 세트 같은 제품처럼요.
처음에는 1인 가구에 맞춰 콤팩트하게 355그램 보틀 타입으로 출시했어요. 소비하기 편리하도록 용량을 줄인 거죠. 그런데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일부 고객은 “정관장에서 나오는 스틱형 꿀은 없나요?”라고 묻기도 했고요. 그래서 나온 게 스틱형 미니 팩이에요. 미니 팩 덕분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맛 추천 관련 CS가 많았어요. 중년층에는 어떤 꿀이 좋을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맛을 추천하는지 질문이 끊이지 않았죠. 그러다 휴가 다녀온 동료가 가져온 ‘미니 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여덟 가지 맛을 한 상자에 담아 샘플러 형태로 제공하면 소비자가 여러 맛을 경험할 수 있고, 선물할 때도 취향을 크게 타지 않게 되잖아요. 이렇게 맛 추천 CS를 해결하게 되었죠. 저희 제품은 모두 특정 문제에서 출발했어요. ‘문제가 무엇인가, 어떻게 해결할까?’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제 제품으로 이어진 거예요.
벌꿀 외에도 프로폴리스 같은 양봉 산물을 활용한 제품도 출시했죠. 젊은 층에는 다소 낯선 제품일 텐데 실제 반응은 어땠나요?
프로폴리스 캔디를 출시하기 전에, 소비자 반응을 먼저 살폈어요. 여러 타입 중 고민되는 두 가지를 1층 매장에 블라인드 테스트 형태로 열어두고 스티커로 투표를 받았죠. 한 달 정도 진행했는데 의견이 한쪽으로 딱 몰리더라고요. 저희는 함량이 높은 A 타입을 출시하고 싶었지만 소비자들은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프로폴리스 함량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더 먹기 좋고, 부드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B 타입을 선호하시더라고요. 결국 B 타입을 선택했어요. 대부분 기획자가 예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와 피드백을 통해 실제로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죠.
소비자 경험을 늘 가까이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다수의 긍정적인 반응을 참고할 때도 있겠지만, 반대로 한두 명의 부정적인 의견을 반영해 개선한 사례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있죠. 저희는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제품 라벨을 잘 떼어지는 리무버블 스티커로 사용했어요. 분리배출이 용이하도록 한 거죠. 그런데 저희 제품이 곡선형이라 평소에도 스티커가 너무 잘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강력 접착 라벨로 바꿔 재구매가 많은 고객들에게 테스트를 해봤어요. 제품을 보내고, 변경된 패키지를 경험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죠. 대부분은 “이제 잘 떨어지지 않아서 좋다.”는 반응이었는데, 딱 한 분이 크게 싫다고 하셨어요. “이미 잘 떨어져 재활용도 잘되게 만들었는데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바꿀 필요가 있냐. 너무 워커비스럽지 않다.”는 피드백이었죠. 열 명 중 한 명의 의견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 팀은 그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신앙이 있어서 비유해 표현하자면, 성경에서 목자가 양 떼 중에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나머지를 두고 그 한 마리를 돌보러 가는 내용이 있거든요.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내주는 한 명의 고객이 저희에게는 길 잃은 양과 같은 거예요. 다수의 고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어려워요. 그런데 한 명의 불만족을 해결하면, 되레 그분이 충성 고객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저희 팀은 그런 개인의 뾰족한 경험을 소중히 여겨요. 그 경험이 제품에 적용되면 밖에서도 뾰족한 감각을 가진 한두 명의 공감을 진하게 불러일으키더라고요.
그렇다면 고객 만족을 위해 내린 선택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충돌한 적은 없었나요?
저희 제품은 선물용으로 많이 판매되다 보니, 좀더 손이 가고 섬세한 작업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고객의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걸 아니까요. 워커비에는 다양한 형태와 조합의 선물 세트가 있는 만큼 포장 과정에서 물류 팀의 손길이 한 번, 두 번 더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보틀과 미니 팩이 함께 들어가는 기본 선물 세트만 해도 맛 조합에 따라 경우의 수가 수십 가지나 돼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물류 팀이 이를 소화하려면 굉장히 힘들죠. 명절이나 연말처럼 바쁜 시즌에는 모든 지점 동료가 물류 팀에 붙어 지원할 정도예요. 그동안은 이런 고된 작업을 ‘고객 만족을 위한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는데요. 최근 이사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동료들이 한 번 더 힘들게 일해야 고객이 행복해지는 구조가 정말 맞는 걸까?” 쉽게 말해, 동료의 고생이 고객 행복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최선일까, 개선하는 것이 환경적·조직적 측면에서도 더 옳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었어요. 이 질문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내년부터 선물 세트 패키지와 기획을, 동료 부담을 줄이면서도 고객 만족은 유지할 수 있는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려 해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그렇네요.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는 이들은 워커비를 만드는 동료들이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혹시 영화 〈소림축구〉(2002) 보셨어요? 그 영화에 만두를 만드는 소녀가 등장하는데, 그녀의 감정 상태가 만두 맛에 그대로 반영돼요. 소녀가 행복할 때 빚은 만두는 사람들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지만,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만들면 맛이 없어져요. 식품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 장면에 크게 공감했어요. 저희 동료들은 워커비 제품에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새로운 동료가 와서 “이렇게 분위기 좋은 팀은 처음 봐요.”라고 할 정도로 합과 시너지도 좋고요.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제품도 맛있게 완성되고, 브랜드의 에너지도 제품을 통해 전달된다는 확신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사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어요. 이 원칙은 제품 제작 과정뿐 아니라 포장과 유통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요. 결국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더라고요.
아까 한 고객의 피드백 중에 “워커비스럽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동료들과 대표님이 지향하는 ‘워커비스러움’은 무엇인지 궁금해져요.
워커비가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해요. 저희는 빠르게 변하는 식품 트렌드에 편승하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그 흐름을 일부러 외면하고, 촌스러운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왜냐하면 꿀이 원래 촌스러운 아이템이거든요. 세련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어지거나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천 년 전에도 있었고,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있었듯이 앞으로도 어디선가 꿋꿋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존재가 꿀이라고 생각해요. 워커비는 세련되거나 힙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묵묵히 있고 싶어요. 예를 들어 일본 여행 가면, 오래되고 촌스러운 매장 있잖아요. 유명하지는 않아도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매장이요. 저희도 ‘전주에서 꿀 파는 집’ 정도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지역 후보가 있었을 텐데 그중에서 전주로 거점을 잡은 이유가 있나요?
사실 처음에는 서울을 가장 먼저 고려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야 주목도도 높아지고, 판매나 인지도 측면에서도 유리할 테니까요. 실제로 서울 외곽이나 제주도 같은 다른 지역도 검토했죠. 하지만 결국 전주로 결정했어요. 저희 제품이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에서 많이 소비되긴 하지만 지역 브랜드라고 말하면서 다른 곳에서 돈을 벌고 투자하는 건 맞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마치 성공한 자녀가 고향을 외면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재밌는 건, 많은 분이 여전히 워커비를 서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미팅 요청을 하면서 서울에서 보자고 하시거나 제품이 서울 물류 창고에서 출고되는 줄 알고 퀵 배송이 가능한지 묻기도 하죠. 그런데 “저희 전주에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의 발칙함, 그 촌스러움이 좋았어요. 게다가 팀 동료들이 대부분 지역 청년이라, 이곳에 자리 잡는 것은 그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될 수 있고요. 장기적으로, 저희가 기반으로 둔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색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표님이 전주에서 느낀 전주만의 뚜렷한 색은 무엇이에요?
제가 전주에 온 지 이제 4년 차인데요. 도시에는 ‘관광하기 좋은 도시’와 ‘살고 싶은 도시’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전주는 걷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에요. 전주는 북촌 같은 한옥마을을 품고 있어 관광 요소도 갖추고 있지만 완전히 관광 상권이 아니어서 그 안에서 여유 있게 적응하며 살 수 있어요. 서울에서는 특유의 분주함과 빠름을 외면하기 어려웠는데 전주는 달라요. 대표적인 한국적 관광 도시이면서도 청년들이 와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느낄 수 있는 평온함과 여유가 있어요.
특별히 청년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요?
제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서울 잠실에서 지냈어요. 처음에는 송파구청 앞 오피스텔에서 워커비를 시작했는데 당시 서울은 IT나 플랫폼 같은 키워드가 주목받던 시기였죠. 식품 분야는 그 흐름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느낌이었어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류에 맞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기 어렵더라고요. 반면 전북은 식품 특화 지역이라 저희 같은 시도가 오히려 관심을 받을 수 있었어요. 새로운 걸 시도하면 한 번쯤은 쳐다봐 주고 목소리를 낼 기회도 열리더라고요. 서울에서 실패했을 때는 제 탓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우리 팀이 온전치 못해서, 제품이 부족해서라고요. 그런데 전주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시도했을 땐 반응이 달랐어요. 단지 환경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 사실을 전주에서 검증할 수 있었던 거예요. 청년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내 실패를 전적으로 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원인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거네요.
맞아요.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시장, 어떤 환경에서 만나느냐.’였던 거예요. 청년들 다 열심히 사는데도 힘들잖아요. 분명히 자신에게 맞는 판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좀 여유를 줄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워커비의 캐릭터 ‘커비’도 자기 자리를 열심히 찾으며 일하는 젊은이를 비유한 캐릭터죠?
‘커비’는 원래 일벌Workerbee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단어예요. 한국식으로 성을 떼고 ‘커비’라고 부르고 있죠. 사실 커비 캐릭터는 워커비를 함께 창업한 저와 동료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그때 저희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까 청년에 포함되는 시절이었죠(웃음). 벌통 안에는 여러 종류의 벌이 있어요. 일벌도 있고, 수문장처럼 지키는 벌도 있고, 여왕벌과 그 시중을 드는 벌도 있죠. 그중 커비는 ‘외출해서 꿀을 따 오는 일벌’ 역할이에요. 저희 팀이 딱 그 일벌 같다고 생각한 거죠. 사회에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이면서도 열심히 분주하게 일하고 동시에 즐길 줄 아는 유쾌함이 있는 친구예요.
만약 커비가 살아서 이곳에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커비의 일과를 그려본다면요(웃음)?
아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거예요. 가벼운 운동을 하고, 7시쯤까지는 양봉장을 돌며 일을 하겠죠. 그 뒤엔 서양식 아침을 즐겨요. 수란을 곁들인 호밀빵에 땅콩잼과 꿀을 살짝 올리고요. 해가 뜨거울 때는 일 못 하거든요. 그때는 동료들 불러서 티타임을 가져요. 쉬엄쉬엄 얘기하며 여유롭게 낮 시간을 보내다가 해 질 녘쯤 다시 양봉장으로 가서 벌들을 돌보며 분주히 일을 할 거예요. 밤에는 집으로 와 재즈 음악을 틀고 노래를 들으며 샴페인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 정말 귀엽고 편안한 일상이에요. 그럼 워커비가 실제로 그런 꿀벌을 보호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세요.
꿀벌을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실제로 꿀벌을 지킬 수 있는 핵심 주체는 양봉 농가뿐이더라고요. 수분을 돕는 양봉벌도 결국 농가가 관리하는데, 농가는 꿀이 많이 팔리면 벌집을 늘리고 안 팔리면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래서 농가가 꿀 판매에 대한 걱정 없이 개체 수를 늘리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어 저희는 농가와 약속한 물량을 무조건 선구매하고, 현금도 먼저 지급해요. 이렇게 해야 농가가 안정적으로 꿀벌을 돌볼 수 있고 개체 수를 유지하고 늘리는 게 가능해지거든요. 그다음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캠페인이나 강연 등을 통해 꿀 소비와 꿀벌 보호를 알리는 일이에요. “설탕 대신 꿀을 드세요.”처럼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홍보 활동도 굉장히 중요하죠. 워커비는 대한민국 농가와 꿀벌을 지키는 일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요. 지역에서 난 꿀이 지역에서 소비되고, 그 농가가 잘되도록 돕는 것. 워커비는 그 생태계 안에서 플러스가 되는 역할을 하는 게 목표예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