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을 이기는 마음으로

한로로 — 뮤지션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어느 날 우리 앞에 불현듯 등장한 뮤지션 한로로는 초봄의 미약한 햇살이라도 기다리던 가냘픈 청춘들 마음에 ‘입춘’을 보냈다. 그는 알지 못해 괴롭고 불안해서 흔들리는 존재들의 어느 날을 부르기 위해 말의 모서리를 연신 매만졌다. 우리가 맞잡은 손 위에 자신의 것도 포개며 내뱉는 가사가 솔직하지만 따갑지 않은 이유다. 뙤약볕이 쪼아대는 여름 한복판이 무슨 문제랴. 한로로와 그의 노래를 기다리는 이들은 넓은 들판에 모여 같은 가사를 힘껏 읊다가, 마침내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사랑을 증명한다. 볕을 이기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한로로를 듣는다.

A.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90

새로 생긴 과일 가게의 분주한 모습이나 횡단보도를
일제히 건너는 모습을 목격해요.
그럴 때 세상이 진짜 굴러가고 있다는 것,
그 안에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걸 한 번 더 실감해요. 

나의 문장은 당신의 마음이 되어

이번 호 주제는 ‘나들이’예요. 나들이 온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연희동에 자리한 카페로 초대했어요. 어떤가요? 

처음 와본 곳인데 마음에 들어요. 목제 가구나 늘어선 화분들, 넓은 창 너머로 초록이 우거진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눈이 편안할 정도로 나무들이 많은 녹색 풍경을요. 오늘 여름 장마처럼 비가 쏟아져서 걱정했는데 이 공간에서 보니까 그것마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 그땐 저기 앉을래요. 

 

오늘은 따뜻한 차를 드시네요? 커피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앞서 다른 일정에서 이미 한 잔 마시고 왔거든요. 너무 좋아하지만 조금씩 덜 마시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서 따뜻한 사쿠란보 홍차를 골랐어요. 따뜻한 게 몸에 들어가면 기분 좋으니까…. 그런데 잠깐 사진 찍어도 될까요? 비 오는 날의 나무가 우거진 풍경이 정말 예뻐요. (휴대폰을 꺼낸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자연이 되려 크게 와닿을 때가 있죠. 더 늦기 전에 소개를 부탁해야겠어요. 

네. 저는 청춘들을 위해 노래하고, 위로와 사랑을 공유하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라고 합니다. 스스로 소개할 때마다 조금 부끄러운데, 인터뷰니까 좀더 설명을 덧붙여봤어요. 

 

(웃음) 이어서 최근의 일상도 들려주세요. 봄의 끝자락인데 무얼 하면서 지냈어요? 

올해 초 열린 단독 콘서트를 마무리 짓고 난 후에는 여름에 나올 EP 앨범을 꾸준히 준비했어요. 여러 페스티벌이나 공연, 방송에서 노래도 하고요. 쉴 때는 주로 집 근처 동네에서만 머무는데, 혼자 아니면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카페 찾아서 시간을 보내곤 해요. 제 일상은 보통 이렇게 흘러가요. 

 

8년 만에 내한한 ‘콜드플레이Coldplay’ 콘서트에서 오프닝 무대를 꾸몄는데, 그 소회가 궁금해요. 

쉬던 날, 전화로 그 소식을 처음 듣고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나요. 무대에 서게 된 계기는, 음악 관계자분들이 제 단독 콘서트를 직접 보신 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콜드플레이 측에서 오프닝 무대에 초대할 뮤지션 리스트업 중 만장일치로 저를 골랐다고 들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사랑받는 아티스트의 내한 콘서트에 서는 일이 처음에는 큰 기회이자 부담으로 느껴졌어요. 그 커다란 고양종합운동장에 언제 또 서보겠어요(웃음).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나를 택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노력했죠. 오프닝 무대는 본 공연 전에 관객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거잖아요. 잘 해내자는 부담감에 짓눌리기보다 그 역할을 어떻게 해내면 좋을지 집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따금 근황을 들려주는 블로그에 얼마 전, 새로운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던데요. “수정의 수정의 수정의 수정을 거쳐” 소설을 완성했다고요. 어떻게 쓰게 됐어요? 

올여름에 나오는 게 세 번째 EP 앨범인데요. 청춘의 아픔이나 사회적 문제의식처럼 지금까지 말해왔던 것들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줘야 할 시점 같았어요.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을 얻게 되면서 무얼 하면 그 관심을 더 확잡아놓을 수 있을지,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거듭했죠. 전공이 국문학이기도 하고, 저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가 직접 쓰는 가사나 글이라는 결론에 닿아서 그걸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앨범이 공개되기 한 달 전쯤에 먼저 제 첫 소설이 출간될 텐데, 책의 배경 음악처럼 앨범을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들으면 책 속 장면이 떠오르도록 준비했거든요.

소설 쓰는 일은 가사 작업의 호흡과는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노래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보다 더 까다로운 소설 작업을 하게 된 거에요(웃음)…. 곡을 위한 가사보다 더 큰 개념인 앨범을 위한 소설을 써야 해서 많은 시간과 집중이 필요했죠.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재미있었어요. 국문학을 배우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꿀 때가 있었는데, 아예 다른 일을 하는 지금에 와서 상상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는 시나리오를 쓰게 됐잖아요. 힘든 와중에도 처음으로 내 책을 만들어 본다는 그 행복이 묘하게 내내 머물렀어요. 

 

더불어 잘하고 못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첫 도전에 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적었죠.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오고 있어요. 해보고 싶다면 잘하거나 못하는 걸 떠나서 그냥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요. 마음먹은 걸 호기롭게 해보고, 최선을 다한 결과가 설사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도 ‘열심히 했고 재미있었잖아!’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는 걸 기대하는 건 솔직히… 욕심 같아요. 처음이라 서툰 게 당연한데 욕심이 들면 오히려 무너지기 쉽더라고요.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실망감 같은 거 있잖아요. 일부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흥미를 느끼고 개선점도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내 능력과 너무 먼 일이었다면 ‘이 길이 아니었구나, 잘 가라!’ 하며 빠르게 돌아서면 되잖아요. 

 

그렇게 써 내린 걸 만나게 될 여름을 기대할게요. 제게 여름은 뮤지션 한로로를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반가운 시기로도 느껴져요. 이미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이름을 봤어요.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나 봐요. 그래서 페스티벌도 많아지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거죠. 어떻게든 인생에서 쉴 구석을 만들기 위해, 아무리 더운 계절이어도 그 순간만큼은 열정적으로 즐기기 위해 모인 걸 알기 때문에, 관객들의 여름을 최대한 예쁘고 즐겁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제 일조로 겨울 즈음 ‘올여름 진짜 재미있었는데!’라고 돌이켜 본다면 기쁘잖아요. 사실 페스티벌에 처음 소개될 때만 해도 무척 긴장했어요. 가창력 평가받듯 노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니 좀 딱딱해 보였겠죠? 지금은 더 놀아보려고 해요. 자유롭게 방방 뛰거나 소리를 지르고, 떼창을 유도하고 물도 뿌리고… 재미와 흥미로움, 편안함까지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챙기려고요. 관객들이 재미있으려면 제가 먼저 즐거워야 한다는 걸 매해 여름 배워요.

 

그러고 보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죠? 

맞아요. 지금처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드디어 시작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 계절을 또 어떻게 보낼지 설레요. 물론 오늘처럼 초록색이 가득한 풍경이 제일이지만, 벚꽃이 거의 다 떨어지고 초록 잎이 살짝살짝 피어난 풍경은 그 다음으로 좋아요. 초록 잎이 60퍼센트, 벚꽃이 40퍼센트 정도 섞인 때 있잖아요(웃음). 봄에서 여름으로 탈피하는 것 같은 바로 그때요. 저는 여름은 그 어느 계절보다 좀 열심히 살고 싶어져요. 어떻게든 저 태양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쨍쨍한 햇빛에 지기 싫어요.

뜨거운 볕 아래서 무수한 이들과 음악을 나누는 기분은 특별할 텐데, 인상 깊은 순간이 있다면요? 

마지막 곡을 부를 때요. 보통 ‘사랑하게 될 거야’라는 곡을 부르는데 그때는 최대한 관객분들에게 가까이 가서 눈을 맞추거나 하이파이브를 해요. 서로의 웃는 얼굴, 행복한 표정이 시야에 한껏 들어오죠. 마지막 가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를 다 같이 목청껏 외치는 걸 듣는 그 순간은… 마음에 정말 깊게 남아요. 제 노래 중엔 부수거나 소리 지르거나 불안해하고 우는 감정이 담긴 게 많은데 ‘사랑하게 될 거야’를 마지막에 부르는 이유는 결국 우리 삶에 남은 것은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어서예요. 특히 듣는 이들을 마주하고 부를 수 있는 이런 기회에요. 

 

한 사람이 열성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시작이 궁금해지기 마련이잖아요. 뮤지션을 꿈꾸게 된 계기를 들려줄래요? 

음… 중학교 시절부터 꺼낸다면 그때도 음악을 좋아했고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은연중에 있었어요, 잔잔하게. 반짝반짝 예쁜 케이팝이나 악동뮤지션 노래도 자주 들었고요. 이소라, 자우림처럼 당시 저에겐 소위 어른들의 노래라고 여겨지던 음악에도 푹 빠졌는데 한글로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라든가 정서에서 오는 분위기를 동경했죠. 고등학생 때는 집에서 좀 떨어진 기숙사 학교로 진학했는데 부모님께서 저한테 우쿨렐레를 선물로 주셨어요.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받으면 친구들이랑 치면서 풀라고요. 그런데 이제 그때부터 공부 대신 우쿨렐레를…. 

 

부모님은 분명히 공부하다가 치라고 하셨는데! 

그걸 연주하다가 스트레스 풀리면 그제야 공부 조금 하고(웃음). 문득 무엇이든 원하는 걸 이루려면 고향인 창원보다 기회가 많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뒤늦게 부랴부랴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그중에서도 국문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상경한 후에는 음악을 하기엔 좀… 늦은 것 같아서 전공 따라 취업하게 되겠지, 막연하게만 여겼죠. 그런데 그즈음 팬데믹이 시작된 거예요. 아무것도 못 하고 붙잡혀 있는 시간들, 세계가 멈춰버린 듯한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가만히 있는 게 굉장히 불안하게 느껴졌어요. 이럴 바에야 음악을 한번 해보자고 처음으로 제대로 마음먹게 되더라고요. 휴대폰 녹음밖에 할 줄 모르던 제가 혼자서 할 수는 없으니 회사를 찾다가, 현재 소속사인 ‘어센틱’ 가수였던 ‘초승’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된 거예요. 그의 노래나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인디 가수분들로 꾸려진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다짜고짜 데모를 들려드리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냈죠. 

 

데모가… 있었나요? 

없었어요(웃음). 일단 말만 던져두고 노트북에 무료 작곡 프로그램을 깔아서 두 달 동안 혼자 한 땀 한 땀 만들어 본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완전 볼품없는 데모인데 그걸 들은 회사에서는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창원에서 가방 챙겨서 서울로 미팅을 다녀온 후에 그다음 학기가 개강할 때쯤부터 연습생이 되었고요.

음악을 다루는 일 중에서도 싱어송라이터를 꿈꾼 이유가 궁금해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내가 쓴 글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수줍음 없이 툭 내어놓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좋아하는 것과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결합시켰을 때 음악이 결론이 아닐까 싶었죠. 내가 만든 곡을 내가 부르는 걸로요. 

 

부모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거실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시는 걸 봤다고요. 

그럴지도 몰라요. 그런 엄마 옆에 앉아 구경하거나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들은 익숙해져서 따라 하곤 했거든요.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나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이문세의 ‘빗속에서’ 같은 옛날 노래들인데 그때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불렀어요. 그러고 보니까 엄마만큼 아빠도 노래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아직도 떠오르는 게, 일을 마친 아빠가 컴퓨터만 놓여 있는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앉아 계셨거든요? 게임 중독자처럼 그 방에선 모니터만 하얗게 빛나는데(웃음), 들여다보면 ‘멜론’에서 버즈나 YB밴드 노래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쭉 감상하고 계셨어요. 아빠 무릎에 가만히 앉아서 같이 듣곤 했죠. 

 

본명 한지수에서 한로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연습생 시절인가요? 

맞아요. 고등학교 수학에 ‘지수와 로그’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한로그’가 별명이었어요. 하지만 활동명으로 쓰기에는 좀 수학적인 느낌이 들잖아요(웃음). 둥글둥글한 발음으로 툭 튀어나온 게 ‘한로로’였죠. 보통 아티스트들이 회사와 계약한다는 건 본연의 것을 가진 상태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적할 때 쓰는 개념인데 저는 기본기도 없었거든요. 당장 보컬 레슨부터 시작해 한지수에서 한로로로 넘어가기 위한 브랜딩에 집중하면서 빠르게 쫓아가야 했고, 지금에 이르렀죠. 물 흐르듯 말했지만 돌이켜보면 운명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믿게 돼요. 이 문을 먼저 두드린 저도, 아무것도 없는 저와 함께해 준 회사도 서로 촉이 통했던 덕분이랄까요? 이어질 운명이라면 어디로든 통하는 것 같아요.

'입춘'(2022)

얼어붙은 마음에 누가 입 맞춰줄까요
봄을 기다린다는 말
그 말의 근거가 될 수 있나요
바삐 오가던 바람 여유 생겨 말하네요
내가 기다린다는 봄 왔으니
이번엔 놓지 말라고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ᅳ한로로, ‘입춘’ 가사 중에서

4년 전의 데뷔곡 ‘입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차갑게 얼어붙은 와중에도 봄날의 개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았죠. 

연습생 때 만든 노랜데, 음악으로 물꼬를 트던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팬데믹으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할 때였어요. 하루는 생각이 많아진 밤에 산책을 나갔는데 딱딱한 회색빛 아스팔트 사이에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보자마자 ‘얘 드세다! 만만하지 않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런 존재가 되고 싶고 또 그래야만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혹독한 겨울에 서서히 피어나는 꽃도 있으니까 다가오는 봄에는 우리도 싹을 틔울 거라는 마음을 담아 ‘입춘’을 지었어요. 청춘의 나이대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20대 초반의 제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곡은 로로 씨가 생각하던 청춘은 물론이고, 다양한 연령대에서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네요. 

정말 감사해요. 30-40대 분들이나 나이가 더 지긋한 분들도 들어주시는데, 자신의 20대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의 현재에서도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제가 간과한 부분인 거죠. 그제야 청춘은 모든 나이대를 말하는 거구나, 그때만이 가장 불안한 시기인 줄 알았는데 삶이란 언제나 불안을 안고 가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제 바람보다도 멀리 퍼져서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곡이 되어간다는 게 요새는 더 행복하게 느껴져요.

바깥으로 꺼내두는 사랑

지구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집이라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이 집이 차츰 무너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요즈음 들어 커져버려 잔뜩 무서워했네요. (중략) 그 두려움 끝에 휘날리는 일말의 희망.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아가야 하니까, 잘 살아가려면 따뜻한 집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저는 또 여러분에게 사랑을 얘기해요. 우리의 하나뿐인 집을 잘 지켜내 보아요. 사랑합니다.

ᅳ앨범 [집]을 발매하며 적은 글

이후로 다수의 싱글과 앨범 [이상비행], [집], 최근 곡 ‘나침반’까지 듣다 보면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같되 대상은 확장된 것처럼 보여요. 직접 들려줄래요? 

가면 갈수록 세상이 서로 날카로워지고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쉬워지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싫거든요. 저마다의 어려움이나 아픔, 슬픔을 끌어안으려 하지 않고 배척하면서, 혼자만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에요. 혼자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이니까 혼자 위로하지 못하는 부분을 또 다른 존재들이 보듬어 주는 게, 공동체가 만들어진 이유이자 인류가 형성될 때부터 뿌리내린 생존 법칙 중 하나잖아요. 그러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 연대가 필요하고요. 제 노래들이 초반에는 나의 아픔 그리고 너의 아픔을 말했다면, 이제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지면서 그걸 해결할 방법이 결국에는 사랑이라 말해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네요.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가끔은 저도 이 세상에 혼자 남아 있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그렇다면 노래로 말해온 ‘사랑’이란 뭘까요? 

(잠시 고민한다.) 연명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요? 사랑은 삶을 이어지게 하는 필수 요소 같아요. 저는 제가 아끼는 사람들을 보고 싶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들려주고 싶어서 살아요. 연인이든 친구든, 내가 애정을 품은 존재들이 보고 싶어지면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또 다음 날도 기대하게 되잖아요. 누군가에겐 이 초록색 풍경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내년 여름엔 어떨지, 그때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싶을 수도 있고요. 삶의 장면 하나하나를 포기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게 제가 정의하는 사랑인 것 같아요. 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질문이긴 하지만요.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라.”라는 말이 좌우명이라고요. 로로 씨의 사랑은 무얼 양분 삼아 싹튼 거예요?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했어요.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고 확신할 만큼 충분히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레 체득했어요. 지금은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중, 배려 같은 감각들이 희미해져서 내가 얼마큼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그 정도로 날카로워지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 같은데요. 그들 곁에서 살짝만 도와주고 싶어요. 잊고 있는 걸, 모르는 걸 알려준다면 세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겐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일지도 몰라요. 힌트 삼아 일상에서 사랑을 감각할 때를 들려주세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 가능할 거예요. 저는 얼마 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웃으며 노는 아기들을 보는데 마음이 따사해지더라고요. 그 친구들을 위해 온전하고 따뜻한 나날들을 만들고픈 기분이 들었어요. 

 

이름도 모르는 존재들을 향한 각별한 마음인데, 어른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을까요?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나 최근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앞선 사람들의 책임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는 모두가 나이를 먹게 될 테고, 제가 나이가 들어서도 짱짱하다면(웃음)…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과정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겠죠? 그 시대가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험악하게 바뀌어 있지 않길 바라요. 지금만 봐도 아이들이기에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을 어른이 이해해 주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혼자서도 되뇌면서, 작품을 내는 어른으로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 과거에는 어려웠고 미래는 까마득하지만 그럼에도 현재를 또렷이 응시하며 나아가는 삶의 태도가 느껴져요. 

저에겐 현재가 중요해요. 물론 과거를 후회할 때도, 다가오지 않은 아주 먼 미래를 계획하며 불안하던 때도 있었는데 둘 다 기분이 아주 별로였어요(웃음). 지금 이 순간도 빠르게 과거가 되어가니까 현재를 열심히 산다면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을 테고, 또 그러다 보면 최선의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한번은 친구가 저한테 우스갯소리로 타임머신 타면 과거나 미래 중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본 적 있는데요. 과거는 바꿀 수 없다면 가봤자 추억 회상뿐일 테고, 미래에 간다면 현재를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친구한테 말했죠. “그냥 현재에 있을래, 니나 타라!” 

 

(웃음) 그런 기분과 태도가 한로로를 쓰게 만든 거네요. 

맞아요. 앞서 소설을 쓴다고 했는데 집에서는 침대가 있으니까 잘 안 써져요. 그럼 노트북 들고 무턱대고 안 가본 카페까지 걸어가곤 하거든요. 동네에 새로 생긴 과일 가게의 어르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공차’ 같은 곳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거나 횡단보도를 일제히 건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해요. 그럴 때 세상이 진짜 굴러가고 있다는 것, 그 안에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걸 한 번 더 실감해요. 설사 그게 불가피한 소속감이더라도 살아서 여기 존재하기 때문에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면 값지고 귀중하게 다가와요.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곡과 글을 쓰고 있어요. 

 

만약… 노래를 쓰거나 부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음, 제가 세상을 살펴보고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쓰고 싶어 하다 보니, 현실과는 살짝 벗어난 인간상이긴 해요(웃음). 돈을 많이 벌어야지, 좋은 집을 사야지, 이런 바람보다 한 번 사는 인생을 평온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다 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사회봉사자? 유기견 보호소 직원? 이런 사람이지 않았을까요. 결국에는 무언가를 써내는 작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요. 

 

가사를 짓는 작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곡을 발매하기 전 인스타그램에 통글을 툭 올려둘 때가 있잖아요. 그 안에서 신곡 가사가 보이기도 하고요. 

앞서 늘어둔 마음들을 풀고자 할 때 글을 도구로 삼아요. 짧은 글이나 시 형태로 적은 뒤 가사로 쓰고 싶은 표현들을 추려내고 거기에 맞는 코드나 멜로디를 붙이면서 한 곡을 지어나가는 거예요. 저는 듣는 이들이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부분, 독특한 부분을 가사로 꼽는 게 좋아요. 한 번 읽으면 무슨 말인가 싶은 구절들을 곱씹다 보면 지은이의 의미대로 와닿을 때가 있고, 반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로 나아갈 때도 있거든요.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사에 단서로 넣어두는 거죠. 

 

좀더 설명해 줄래요? 

‘금붕어’라는 곡을 예시로 들어볼까요? “파란 하늘보다 두려웠던 거품 문 바다 위에서 미끄러운 춤을 춰”라는 가사를 들으면 가장 먼저 금붕어가 왜 바다에 있는지 의아할 거예요. 왜 물이 아니라 하늘로 가려는지도 이해할 수 없고요. 하지만 곡을 듣다 보면 물 바깥으로 나가 숨을 못 쉬어서 죽을지라도, 내가 원래 꿈꾸던 건 푸른 하늘이고 그게 나의 이상이니까 누가 뭐래도 그 꿈을 좇겠다는 이야기로 들릴 거예요. 누군가는 또 다르게 해석하면서 들었을 수도 있겠죠? 뜻이 명확한 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듣는 이에 따라서 의미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곡을 부르고 싶어요. 그런 게 사람들한테 더 필요한 것 같고요.

어젯밤 걱정을 너무 마셨더니
하룻밤 사이 몸살이 났나 봐요
일으킨 내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나 봐요
(…) 작은 방 속에 누워있는 나는
대체 얼마나 작은 건가요
게워내고 싶은 속마음은
쉴 틈 없이 울렁이고 요동쳐요

ᅳ‘거울’ 가사 중에서

해석에 열려 있다고 해서 그 가사들이 뭉툭하게 들리진 않아요. 오히려 솔직하고 예리한 편이 아닐까 싶고요. 

저는 음악 할 때가 제일 솔직해요. 일상에서는 마음 밑바닥까지 꺼내두지 못하거든요(웃음). ‘거울’처럼 나를 미워하는 잘못된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사색하며 쓴 곡이라면 솔직하게 털어두고, 내가 이 곡을 쓴 심정을 추후에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듣는 이도 유독 이 노래를 들었던 시기가 있다면,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한 번 더 어루만질 수 있는 솔직함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좋고요. 사실 구구절절한 감정들이 글로만 남는다면 어둠뿐인 방 안에서 혼잣말하는 것 같은데, 노래로 불러진다면 빛이 있는 곳으로 좀더 꺼내진 기분이 들어요. 저는 노래를 부를 때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유튜브 콘텐츠 ‘한로로의 백문백답’ 중 답변 하나가 떠오르는데, 목표를 묻는 질문에 “80세 정도까지 꾸준히 앨범 내기”라 답했죠? 

목소리를 잃지만 않는다면… 아니다, 사실 목소리 이외에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장르는 많으니까요. 피아노를 칠 수도 있을 테고. 다양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사람과 세상을 표현하고 또 위로할 거예요.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럼 일 외에 일상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너무 사소한 걸까 싶은데, 제가 면허는 있는데 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고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작은 차를(웃음)…. 

 

중요한 목표죠(웃음)! 그걸 타고 어딘가로 나들이나 여행을 갈 수도 있고요. 

자연이 있는 한적한 곳들을 드라이브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싶어요. 제가 ‘집순이’라 어두운 방 안에만 주로 머물렀는데, 한동안 앨범 작업 때문에 반강제로 외출이 잦았어요. 마음속으로만 예뻐하던 세상 풍경을 얼떨결에 세밀하게 관찰할 기회가 생긴 거죠. 그러면서 제가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고 곳곳을 살피는 걸 생각보다 좋아한다는 걸 새로이 알게 됐어요.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고 한편으로는 조심스럽지만… 사람은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안에 머문다면 아마도 그게 자신의 집이나 방일 텐데, 가장 편안하면서 반대로 가장 불안한 공간이기도 하거든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가끔씩은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려요. 세상은 여전히 굴러가고 있고, 그 안의 나도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고 생동력을 되찾을 수 있는 게 외출이에요. 앞으로도 마실 나가듯이, 산책하듯이 세상 구경하고 싶어요. 

 

언젠가 훌쩍 떠나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큰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날 만한 곳을 물으시는 거죠? 음, 가까운 나라부터 둘러볼래요. 해외는 촬영을 제외하고 여행으로 가본 적이 없어서 우선 일본부터 가보면 어떨까요? 도전이라고 하기에 애매할 정도로 다들 많이 가는 곳이지만, 첫 여행으로 좋을 것 같아요. 오늘 들고 온 잔스포츠 백팩을 채울 정도만의 짐으로 다녀오는 거죠. 아, 에어팟은 꼭 챙겨야 해요. 

 

좋은데요? 그 길에 어떤 노래들을 들을까요? 

그날의 행선지마다 다를 테지만… 제 노래 중에서는 잔잔하게 듣기 좋은 ‘생존법’이요. 웨이브투어스의 ‘사랑으로’ 그리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테마곡 ‘Glide’도 고를래요.

우리는 그날, 대화를 나누며 짙은 먹색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를 대여섯 번은 들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나는 건네야 할 질문보다 “이거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먼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비 오는 날만의 묘미가 있겠죠.”라든가, 천둥소리에 놀라다가도 이내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리던 그를 보니 두려운 기색이 씻겨 내려간다. 어둠을 충분히 응시했다면 저편으로 밀어둔 채 일어서는 그의 노래가 그랬듯, 한로로 역시 무거운 마음을 툴툴 털고 나아간다. 내가 건넨 우산을 받아 든 채 카메라 앞에서 걷는 그를 따라 걸어본다. 사뿐사뿐 또는 비틀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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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Hae Ran 장소 협조 롯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