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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형, 전주 비빔밥하고 서울 비빔밥하고 뭐가 달라요?” 전주 시내의 음식점 간판들을 보며 내가 묻자 운전대를 잡은 채로 형은 대답했다. “응, 그릇만 다르지.”
이제는 형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영원히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 몇 해 전부터 전주에 산다. 내가 20여 년 전쯤에 알게 된 여행 작가. 라호르, 훈자, 레, 판차세, 트링코말리 같은 아시아의 작은 마을 이름들을 내게 처음 발음하게 해준 사람. 군대에 있던 나에게 그 당시 애인은, 자신의 편지와 함께 월간지에 연재되던 형의 여행기를 오려서 보내주곤 했다. 그 두툼한 봉투가 도착한 날이면 모두가 꺼리던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의 불침번 당번을 찾아가 근무표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소중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편지 왔나 보네?” 선임이든 후임이든 근무표를 바꾸자고 하면 다들 반가워했다. 새벽 근무가 있는 날에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를 가진 내게 그 시간은 소중했다. 모두가 나를 위해 고요히 있어주는 시간. 낮부터 품속에 넣어둔 편지봉투 안에는 말 그대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이 빼곡했다. 차렷 자세로 그것들을 확인하던 순간들은 얼마나 올올했나. 자유의 의미를 모르던 나였기에, 그 완전한 기쁨이란 나 혼자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방이 막힌 새벽의 막사 안에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과 내가 가본 적 없는 장소의 풍경 속으로, 나는 군복 차림을 하고 마음껏 돌아다녔다. “라호르, 훈자, 레에-, 판차세.”
10여 년이 지나 나는 형을 사석에서 만났다. 형의 여행기가 실리던 그 월간지에 적은 지면이나마 할애받아 글을 써보게 되었는데, 당시 편집장이던 선배가 술자리에 형을 불러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짓궂게 놀려대는 바람에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 해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종종 마주쳤지만, 그런 인사는 역시 할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러서 “응, 진우 알지. 잘 지냈니?” 그런 인사를 여러 번 받는 동안 이따금 나도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많은 독자들이 그렇듯,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괜히 귀찮게 굴기 싫다. 고맙다는 말이 내 할 말의 전부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1년에 한두 번씩은 만날 수 있던 형은 언젠가부터 2년, 3년이 지나도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세어보니 형이 새로운 글을 쓰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고, 새 글은커녕 이미 발행한 책들도 절판 처리를 꼼꼼히 해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태국에서 몇 년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전주에 자리를 잡았어.” 누군가 말해 주었다. 전주가 형의 고향이라고. 어머니가 거기에 혼자 살고 계셨다고.
“나 기회가 있을 때 네팔 한번 가보고 싶어요. 셋이서.” H에게 내가 말했다. 내가 말한 세 명이란, 여행 작가 형과 H 그리고 나였다. 형과 H는 사실 오래된 인연으로, 둘은 젊은 시절에 매일 만나서 어디든 쏘다니던 사이였다. 나와 H와의 관계는 5년 전이었던가 6년 전이었던가. 삶의 관계는 한 번도 일대일로 존재한 적 없이 늘 들풀처럼 엉켜 있는 것 같다. 결과만 떼어놓고 말하자면, 나는 그때 제일 좋아하는 두 명의 형들이랑 네팔 여행을 가고 싶다고 고백하던 참이었다. H는 나보다 일곱 살이 많고 형은 H보다 여덟 살이 많았기에, ‘기회가 있을 때’라고 운을 띄우면서. “내가 비행기표 살게요.” 셋 중에 제일 어린 내가 말해서 그랬는지 H가 웃었다. “그래 진우야. 네가 형한테 한번 말해봐.” 몇 개월이 지나 H와 함께 전주에 가던 날, 내 가방에는 봉투가 네 개 들어 있었다. 각각의 봉투에는 내가 붙여 놓은 네팔 여행 사진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가 열 장씩 들어 있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네팔행 항공권이 오십만 원이었다.) 세 개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는 전주에 살고 있는 형의 애인을 위한 봉투였다. 물론 셋이서만 가리라 생각했지만, 혹시 분위기가 안 좋으면 다같이 가자고 말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아직 오지 말아봐! 밖에서 밥을 좀 먹고 있어. 금방 전화할게!” 전주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다급한 목소리로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주에 닿자마자 술을 진탕 마시고 싶었는데, 어디에서 나왔는지 형 집에 개미들이 들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형은 개미를 다 없애기 전까지 우리를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네 알겠어요, 형.” 졸지에 전주까지 와서 H와 둘이서 낮술을 먹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형을 만날 수 있었다. “나 술 잘 안마셔.” 형의 말 한마디에 H와 나는 정신을 좀 차렸다. 테이블에 앉아 개미 이야기를 좀 듣다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형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몇백 년이 된 큰 나무를 지나, 성북동 꼭대기 마을 같았던 좁은 길들을 지나 한옥마을까지 한가로이 걸었다.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그 산책에서 형은 H를 통해 그간의 서울 소식을 모두 업데이트하는 듯했다. “파이는 잘 지내니? 그래, 파이 같은 애가 어딨겠어. 도로시는 요즘 어디에 있니. 세탁소는 결혼했고? 이혼했다구?” 긴긴 산책 동안 나는 거의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 염라대왕 앞에서 삶을 갈무리해 보는 거북이들 같던 두 사람. 수많은 이야기 중에 나는 형이 했던 어떤 대답을 메모해 두었다. “형은 사건 같은 거 안 기다려요?” H가 물었을 때 형이 말했다. “응. 이제 안 기다리는 척해도 안 온다는 걸 알아.”
돌아보면 그날 전주에서는 술에 취하지 못했고, 이제 세상에 할 말을 다 했다는 형의 묘한 고백만 듣고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형이 데려간 식당에서 밥을 한 끼 얻어먹고 H와 나는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국도를 벗어나 시야가 트일 때쯤 H가 물었다. “진우야 왜 네팔 얘기는 안 했어?” 나는 무슨 대답을 하긴 했는데, 아무 대답도 못 한 것과 같이, 내용이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H는 다 알아듣는 듯했다.
전주에 또다시 찾아간 건 그 뒤 1년이 더 지나서였다. H가 그사이 책을 한 권 썼는데, 전주의 한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진우야 형 보러 같이 다녀올래?” H의 말에 나는 곧장 수락한 후 몇몇 일정을 기쁘게 바꿨다. 형을 보러 가는 일에는 늘 긴장과 설렘이 함께다. 영원히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사람.
H는 가게를 만들고 장사를 하는 법에 관해 책을 썼다. 그 작은 시작부터, 움직이고 유지하고 확장해 나가는 부분까지, 그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을 읽기 쉬운 문장들로 정리했다. 장사도 결국 누군가를 제대로 만나야만 하는 일. H의 책에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서운하게 돌려보내지 않는 방법들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예비 자영업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친구, 또 미래의 고객에게도 선물해 줄 만한 책이 되었다. 내가 서점 주인이라면 자기계발서와 시집 사이에 H의 책을 두리라, 혼자 생각했다.
“형 제 책 읽어 봤어요?” H가 묻자 형은 놀리듯 대답했다. “그래 좋더라. 다 말이 되더라고.” 그 이후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 다 알고 있다는 듯 H는 고개를 저었다. H의 강연이 끝날 무렵, 사람들이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자 H는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형을 지목하며 질문이 있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 다음엔 뭐가 있나요?” 형이 물었다.
H의 강연 직전에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에 관해 대화했다. 형이 말하길 이야기란 ‘말이 되는 것.’ 우리 각자가 본능적으로, 혹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꾸며 만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실 삶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설명은커녕 의식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이 다음엔 뭐가 있나요?” 강연 말미에 나온 형의 질문은 그래서 참 대답하기 까다로운 것이었다. “이런 꾸며낸 것 말고요, 당신의 진짜 삶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나요?” 대충 그런 질문이 아니었을까. 강연을 마무리해야 하는 H는 형의 질문에 회사 운영의 새로운 계획들을 말하며 차분하게 잘 넘어갔었다. “진우야 이 형 예전에 강연할 때 한 번에 오백만 원도 받고 그랬어.” 점심을 먹고 나와 앉아 있을 때 H가 말했다. “형, 그때 주로 하던 강연 내용이 뭐였더라?” 웃기만 하고 대답 안 하던 형이 결국 말해 주었다. “나를 줄이면 환한 바깥.”
“맞아 그거였지.” H는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게 반가운 듯 바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강연이 뒤집어지기 일쑤였어. 강연 담당자들이 맨 뒤에서 그만 멈춰달라고 두 팔로 엑스자를 그렸다니까.” 자기 얘기가 아닌 것처럼 형도 웃으며 듣고 있었다. “한번은 암 환자들 앉혀놓고 강연을 하는데, 뭐라고 했는지 알아? 투병하다가 완치됐다고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굴지 말라고 했다니까.” 나는 순간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키득키득 웃었다. “너무 덥다. 얼른 차에 타.” 형이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래서요 형. 그들에게 그다음에 뭐라고 했어요? 나는 그렇게 물어보리라 메모해 뒀지만, 그날 저녁 막걸리를 마시며 형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질문하는 걸 까먹어 버렸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며칠 지나보니 형의 대답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떤 대화가 오갈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젓던 H처럼 나도 이제는 형이 무슨 말을 할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나를 줄이면 환한 바깥.” 언제나 한 가지 이야기에만은 정중히 반응하는 방식으로 형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멀리 있을 때나 고향에 있을 때나 말이다. “응, 그릇만 다르지.” 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도 전에 형이 미리 대답해 주었던 것처럼.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