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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슈퍼
차부슈퍼는 기차역도 없고 정기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의 작은 터미널이다. 그곳에는 머무는 것이 없다. 사람도 버스도 잠시 멈추었다가 떠났고 다만 시간만이 오래 앉아있었다.
한 시간에 딱 한 대
어렸을 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울었다. 말썽부리고 다니다 혼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버스를 놓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향집은 구멍가게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 있다(지금까지도 없다). 지천이 논과 밭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일은 버스를 타고 40분 걸리는 ‘시내’에 가는 것이었다. 시내, 중앙에 있던 아파트 지하상가는 돌고 돌아도 지치지 않는 커다란 문방구였다. 한참을 구경하다 용돈으로 펜이나 색지를 하나 사고 햄버거 가게에서 단품 햄버거를 먹고 오는 게 나들이 코스였다.
시내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쯤 있었다. 하지만 시간표는 이상하게 모두 제각각이라 아랫말 할머니에게서 얻은 시간표와 옆집 아저씨가 알려준 것이 달랐다. 버스 정류장에 붙은 종이 시간표는 매번 누가 떼가거나 비바람에 찢어져 있었다. 시간을 알려고 애써봐야 소용이 없어서 언제나 감으로 버스를 타러 갔다. 걸어서 이십 분쯤 걸리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면 벌써 옆 동네서 버스가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놓칠 걸 알면서도 뛰다가 야속하게 지나치는 버스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구시렁대며 걸어가 벽돌로 지은 버스 정류장에 앉으면 적어도 사십 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놀 줄 모르는 시골 애에게 그 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반대편으로 보이는 동네를 바라보며 욕을 해대도 분이 안 풀렸다. 나는 고등학생이나 되어서도 종종 버스 정류장에서 눈물을 훔쳤다.
동네와 가까운
터미널
차부슈퍼는 마을의 간이 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잡다한 것을 파는 동네 슈퍼에서 표도 판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식 터미널처럼 버스가 서는 곳도 없고, 잠깐 슈퍼 앞에 멈췄다 사람을 태우고 간다. 기차도 없고, 터미널도 없는 마을의 간이역인 셈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울던 내가 차부슈퍼를 드나든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문구류에 집착하던 취미는 음악으로 옮겨갔다. 그 후 나들이의 범위는 ‘시내’에서 ‘서울’로 넓어졌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라면 간혹 춘천이나 경기도에 가기도 했다.
차부슈퍼는 버스 정류장과는 달랐다. 우선 큼직큼직하게 붙은 시간표가 있었다. 서울 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건 아니었지만, 더는 시간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늘 차부에 있는 주인 덕에,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이나 밤에는 버스가 5분씩 일찍 오기도 하니 적어도 10분 전엔 와야 한다는 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시내버스 요금보다 훨씬 비싼 돈을 내고 표를 받아 들면 어떤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주인 부부가 틀어놓은 작고 뚱뚱한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고, 배가 고프면 소시지나 구운 달걀을 사 먹었다. 추운 날에 멀뚱멀뚱 서 있으면 아주머니가 난로 앞으로 앉으라며 조용히 의자를 끌어다 줬다. 여러모로 집 앞 버스정류장보다는 나은 환경이었다. 버스를 놓쳐도 다른 사람 눈이 있어 우는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학에 가고 서울에 살게 되었을 때도 나는 시내의 터미널로 가는 표를 끊지 않았다. 직행이 아닌 경유하는 버스를 타면 집과 가까운 동네 차부에서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리기 십 분 전 집에 전화를 하면 아빠가 차부로 데리러 나왔고, 차를 타고 아무 말 없이 집에 가는 짧은 시간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 버스에는 명절에도 사람이 가득했던 적이 별로 없는데, 나는 왜 차부슈퍼가 영원히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을 때 차부가 있던 자리에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다. 친구들은 이제 호프에 가지 않았다. 편의점 앞에 앉아 술만 사서 싸게 마실 수 있다며 좋아했지만 나에겐 그곳이 영 불편했다.
점방, 여인숙, 복덕방, 신문 보급소
차부가 있는 동네에서는 문화슈퍼나 보천슈퍼 등 다른 상호를 써도 차부라고 하면 모두 알지만 팻말에는 보통 ‘공동정류소’로 표기된다. 차부슈퍼가 생겨난 건 기차가 처음 들어서고 난 뒤의 일이다. 예전처럼 차가 없고 버스나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차부는 외지에 갈 수 있는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시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돌파구였다. 간이역도 비슷한 역할을 했지만 간이역은 공적인 영역에서, 차부는 사적인 영역에서 일을 맡았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차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규모 있는 길거리에있는 차부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동네 어귀에 위치한 차부다. 길거리 차부는 눈에 띄기 쉽고, 반드시 거쳐 갈 만한 곳에 들어섰다. 면사무소나, 이발소, 우체국이 있는 목이 좋은 곳이다. 어귀 차부는 마을 진입로가 아니라 마을과 상관없이 지나치는 신작로에 대부분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규모가 커지거나 주변에 상가가 들어오지도 않은 채 대부분 정류장 역할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길거리에 들어섰던 차부슈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육상교통이 곳곳을 이어주면서 차부집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새로운 소매형태인 슈퍼마켓과 농협의 연쇄점 사업도 차부슈퍼의 위기에 한 몫했다고 한다. 급격한 교통의 변화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필요로 생겨난 차부는 변화로 인해 생겨난 만큼 또 변화해 취약해서 점점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 때 차부슈퍼는 여러 역할을 했다. 막차로 들어온 운전사가 잘 곳이 없으면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기도 했고, 외지의 여행자에게 방을 내주는 여인숙이 되기도 했다. 또한 복덕방이나, 신문 보급소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내 추억 속에서는 그리운 공간이지만 사실 그때는 열일 다하던 세력가이자 만물상점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차부슈퍼가 미울 수 없는 건 동시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외지에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했으며, 일하고 돌아오는 마을 사람에게 늦도록 켜진 차부의 불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외로움도 당신의 몫이라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차부슈퍼가 많지 않다.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없어진 슈퍼가 많았고, 편의점으로 바뀐 곳도 수두룩했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가 차가 오면 버스 기사에게 직접 돈을 내고 타면 되는 곳도 있었다. 충북 음성의 생극 터미널은 아직 차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인 할아버지는 차편이 점점 줄어서 직접 써놓은 시간표를 자꾸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 한 대에 토요일, 일요일 빼놓고는 10명도 안 타. 한 번 봐봐. 어떤 때는 여기서 인천 가는 직통버스에 사람 하나, 둘 타고 갈 때도 있어. 다행히 여기는 충주에서 중부 고속도로 타는 길목에 있어서 조금 되는 편이지. 면 단위 차부에 이것만 못한 데도 많을 거야.” 이곳도 예전엔 규모가 꽤 컸다. 차부를 둘러싸고 여러 상가들이 함께 있었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식당들은 주로 비어있거나 열었다 닫았다 한다고 했다.
예전의 차부를 회상하던 할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미군에게 껌이나 빵, 초콜릿을 얻어먹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미군들 보면서 우린 밥도 못 먹는 데 빵을 먹고 사네, 그런 생각을 했었어. 지금은 우리도 빵 사먹을 수 있잖아. 그런 시대가 왔는데도 참 힘들어.” 그리고 요즘은 차부에 물건을 납품하지 않으려고 해서 빵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은 어떤 곳을 비껴만 가서, 여기엔 아직도 먼 것이 많다.
“내 고향은 장호원이고 부인은 무극이야. 부인이 시댁엔 가까이 안 살려고 해서 생극에 온 거야. 여기가 딱 중간이거든. 한 13년 됐어. 평소엔 정말 지루해. 내가 여기서 뭐 하나 싶을 때도 있고. 어떨 땐 꼭 외톨이 같아. 낙이 없어. 한 달에 한 번 목요일에 친구들 낮에 만나서 점심 먹는 거, 그게 유일한 낙이야. 왜 저녁에 안 만나느냐고? 그거야 저녁에 만나면 자리가 길어지니까. 요즘은 다들 건강 생각해서 무리 안 하려고 해.”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떠나는 이에게 손 흔들어주고 돌아오면 그를 맞아줘야 한다. 외로움도 당신의 몫으로 여기고 이곳을 지켜온 할아버지가 나는 왠지 고마웠는데, 차마 앞에서 그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손님이 없으니까 그래도 책 볼 시간은 있더라고. 돈은 못 벌어도. 13년 동안 장부도 빠짐없이 적었어. 판매한 것부터 어디서 사고가 나고, 늦게 오고 이런 것까지. 내 나름대로 좀 적어본 거지. 적어봐야 뭐 아무 소용도 없지만.”
목적지에 돌아서 가는 법
보통 경유지가 많은 곳으로 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써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가끔 직행버스 대신 작은 마을을 경유하는 버스를 타보면 어떨까. 우연히 이런 차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2~3년 사이에 10년 동안 변할 게 변하잖아. 뺏는 사람도, 뺏기는 사람도 당연하게 생각해.” 당연하게 사라지는 것은 조금 서글퍼서 나는 이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진다.
동서울 > 제천(용포) (첫차 06:40, 막차 19:40)
아미리-태평리-이황리-장호원-감곡-용포-목계-엄정-산척-백운-제천(용포)
동서울 > 수안보 (첫차 6:55, 막차 19:15)
일죽-생극-용원-주덕-건국대-건국대(대)-수안보
참고 도서《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집》 · 노익상 · 청어람 미디어
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