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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함께하는 순간’에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의 18번째 생일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인생의 큰일을 앞둔 사람처럼 분주하고 불안해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기분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혼자 터미널에 가, 강릉으로 가는 표 한 장을 샀다. 봉지 과자 몇 개를 가방에 쑤셔 넣고, 대합실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소리가 나지 않는 뉴스를 보며 느끼던 설렘과 불안함은 여행이 익숙해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이후로도 짧게 혹은 길게 종종 혼자서 어딘가를 다녀오곤 했다. 어딘가의 이방인이 되어 낯선 공기를 마신다는 게 꽤 멋있는 일인 것 같았고, 그 횟수와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그 발걸음에서 어색함은 줄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은 어떨지 궁금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 때, 지도를 보며 길을 찾을 때, 보고 싶던 무언가를 볼 때, 하루를 마치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잠이 들 때,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가 옆에서 그것들을 같이 한다면. 나는 A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화가 오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여행 약속을 잡았다.
각자의 일을 마치고서야 출발한 우리는 새벽 2시경까지 강원도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출발 길에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감정의 농도와 길 위에 자욱하게 낀 안개는 밤의 중간으로 향해 갈수록 짙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쌓아둔 막연하던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나 눈으로, 귀로, 피부로, 공기로 느껴지던 밤이었다. A는 내 옆에 앉아 과자를 오물거리고 있었고, 나와 A의 냄새는 차 냄새와 적당히 섞여 코앞을 떠다녔다. 몇 시간 전까지 생각 속에서만 있던 장면들 속에 우리가 있었다. 밤의 한가운데쯤 와서야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낯선 곳에서의 얕은 잠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여행 셋째 날, 익숙하지 않은 서체로 쓰인 읍내 식당의 간판부터, 항구에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는 바닷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방금 산 똑딱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문득,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난 본래 주변에 무딘 사람이다. 딱히 예민한 감상 장치가 내 몸에만 달려있지 않은지, 여행을 다니며 좋다는 걸 봐도 와 닿는 건 딱히 크지 않았다. 그런데 A가 어린애같이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며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감정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평소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객체들이 뜻밖의 감상 대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A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 중간의 자잘한 사건들(분실과 회수, 헤맴과 도착 같은)을 겪는 동안, 평소보다 내가 느끼던 감정의 파고는 몇 눈금 높아졌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내가 여행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눈뜨기만을 기다리던 시간이다. 비현실적인 여행지에서의 밤은 아침이 되어서야 퉁퉁 부은 눈꺼풀과 군데군데 붙어있는 눈곱들로 우리를 다시 현실로 데려온다. 새로운 시간과 낡은 시간이 하나로 뒤섞이는 동안 향수 냄새, 담배 냄새, 외부 세계와 관련된 공기는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온전한 체취만이 남는다. 다른 모든 소리는 잠들어있고, 옆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만이 방 안을 둥둥 떠다닌다. 흐릿한 시야, 냄새, 소리. 이 미세하게 남은 밤의 흔적들은 창문 틈 사이로 쏟아지는 볕과 함께 방 안에 머문다. 그러면 정말이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고파지기 전까지는.
다음 날 우리는 대관령의 중간 즈음에 있는 평창의 진부면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오두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지상에서 분리된 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가장 그럴 듯한 구조이고, 그곳만큼은 어떤 비밀스러운 것들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상상은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며 더 구체화되었다. 운 좋게도 ‘에어비엔비’에서 오두막집을 발견했고, 우리는 그 삐걱거리고 나무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대기 탓인지, 우리는 땀을 잔뜩 흘리며 그 나무 위의 집에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았을 때 공기 속에 가득 찬 듯 들려오던 매미 소리는 우리의 귀와 머리를 하얗게 표백시켜버릴 정도였다. 마치 여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낸 정경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한밤중에 도착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쉬운 일은 마음 놓고 취하는 것뿐이었다. 먹다 남은 위스키와, 근처 마트에서 산 싸구려 와인, 호스트가 건네준 막걸리, 미지근한 캔맥주에 우리는 오는 내내 붙들고 있던 긴장의 끈을 풀었다. 잔뜩 취한 우리는 맨발로 산을 뛰어다녔고, 척추까지 아릿해지는 물에 들어가고, 아끼는 노래들을 아낌없이 부르고 들었고,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매미 소리에 취한 건지 알코올 기운이 도는 건지, 어찌됐든 몽롱한 정신으로 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시간을 떠내려 보냈다. 그러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잠에 미끄러져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나무 냄새와 지독한 숙취 덕에 해가 머리 바로 위에 걸릴 때까지 빈둥거릴 수 있었다. 역시나 배가 고파지기 전까지. 산 건너편에서 비구름이 몰려온다기에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사실 어느 곳을 가느냐는 우리에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서로에게 온전히 몰두해, 뒤 풍경은 그 사람의 배경이 될 뿐이었다. 그것이 여행의 본질에서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번 여행만큼은 외부 세계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지도상의 좌표에는 그저 움직이는 점 두 개만이 존재했다. 여행의 방법은 사람의 머릿수만큼 다양하다고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서로를 여행했고, 상대방에게 머물렀다. 츠지 히토나리도 말했다. “사람이 머물 곳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고.
오대산 트리하우스
Tree House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어서 네비게이션으로 찾아가는 게 힘드니 호스트의 친절한 설명을 받아야 한다. 밤에 반딧불이로 가득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글 사진 황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