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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식구가 사는 세상
동화작가 이수네
여섯 식구가 사는 세상
전기백, 김나윤,
전이수, 전우태, 전유정, 전유담
열살 전이수 군은 동화작가다. 《꼬마악어 타코》, 《걸어가는 늑대들》, 《새로운 가족》 등 세 권의 동화책을 출간했는데, 모두 이수 군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새로운 가족》은 공개 입양된 동생 유정이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수는 그 책을 이야기하며 “유정이가 나를 이해하는 것보다 내가 유정이를 이해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수가 사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이수의 세상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 이수 가족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가족 소개를 해주세요. 《몽당》이라는 동화책을 쓰셨더라고요.
김나윤 엄마 김나윤입니다. 동화책… 썼죠(웃음). 요즘은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아이들하고 같이 살아가는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긴 에피소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면 다른, 제 생각과 교육철학을 자유롭게 얘기하려고요.
전기백 저는 아빠 전기백이고요. 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제주에서 살고 싶어서 먼저 발전소에 취업했고요. 보령과 인천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5년 전에 제주도로 왔어요. 아이들 다 클 때까지 계속 머무를 생각이에요.
김나윤 이수는 열 살이고, 우태는 아홉 살이죠. 둘은 홈스쿨링 중이에요. 유담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요. 유정이도 학교에 다녀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글 쓰시는 거,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김나윤 시간이 좀 빠듯하긴 한데 재밌어요. 가을쯤 출간될 것 같아요. 제가 삽화도 그리고 있어요. 보통 육아 책은 글만 있으니까, 좀 더 재밌게 하고 싶었어요.
작업실에 이수, 우태, 유정이, 유담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많아요.
김나윤 이런 공간에 대해 생각은 계속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해요. ‘토요 놀이터’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네, 지금 방금 이름을 지었어요!(웃음) 토요 놀이터! 이게 쭉 이어져서 나중에 제가 정말로 학교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좀 다른 학교겠죠. 지금 있는 대안학교를 뛰어넘는 좀 더 자유로운 학교.
대안학교도 이미 자유로운 학교 같은데요.
김나윤 대안학교에 다니기 힘들어서 이수는 나왔으니까요. 학교에 특별히 불만이 있어서는 아니고, 이수는 이수 뜻이 있어서 나왔어요. 제가 볼 때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와 완전히 다른 학교라기보다는 일반 학교의 대안으로 지어진 학교예요.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다 보니까 규칙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제약과 강요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을 이수가 못 참더라고요. 아이들이 모든 수업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수가 싫어하는 과목이 있고 그 수업에 참여하기 싫어 거부하는데, 학교에서는 참여하기를 원하는 거죠. 이수가 1학년 때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학교랑 약속하지 않았다. 나한테 미리 설명하지 않았고, 내가 꼭 그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요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랬죠. “그래, 말이 된다. 억지로 갈 필요는 없다. 생각 없이 참고 앉아있다면 그건 네 시간을 버리는 거다. 그걸 선생님한테 분명히 말씀드려라.” 몇 개월 그 문제로 싸우더라고요. 그러다 홈스쿨링을 하게 됐어요.
전기백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한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으면 획일적인 공교육과 다를 게 없죠.
김나윤 나머지 아이들은 다수고 이수는 소수니까 이수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공동체면 소수의 의견도 들어주고 귀 기울여줘야죠. 소수라서 무시당한다면 이게 무슨 공동체냐 싶은 거죠. 어느 날 이수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이제부터는 좀 많이 얻고 싶은데 학교에 가면 얻는 게 없어요. 이제 그만 다니고 싶어요. 엄마랑 아빠한테 배우고 싶어요.”
전기백 제가 교대 근무를 하니까 아이들이랑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른 시간이나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있거든요. 홈스쿨링을 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났어요. 이수는 자기가 궁금한 것 위주로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다른 걸 다 접고 그것부터 가르쳐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수가 어떤 걸 물어봐도 다 얘기해줘요. 그래서 이수는 저한테 질문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결국, 저희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던 게 홈스쿨링을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예요.
홈스쿨링 힘들지 않으세요?
김나윤 힘들기도 해요. 제 개인 시간이 줄었거든요. 그런데 이수랑 우태가 학교에서 돌아오며 울상을 짓거나 아침에 학교 가기 싫어하면, 그 마음 쓰는 게, 제 개인 시간 뺏기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았어요.
이수는 뭘 배울 때 제일 좋아해요?
전기백 이수는 미술보다 과학을 좋아해요. 미술은 부전공인 셈이에요. 보통 아이들이 부모한테 장난감 사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어요. 빨대, 드릴, 글루건 심, 은박지, 얇은 철판, 철사 등을 구해달라고 해서 그걸로 희한한 걸 만들어요. 이수가 만들기 시작하면 옆에서 우태도 함께 만들고요. 보통 실패도 많이 하지만, 가끔 정말 신기한 걸 만들어올 때가 있어요. 아이언 맨 마스크도 유튜브 보면서 따라 만들기도 하구요.
오, 봤어요. 작업실에서.
전기백 완성했는데, 얼굴에 안 들어가요(아하하하). 왜냐하면 도면이 너무 커서. 출력을 조금 줄여서 했더니 안 들어가더라고요.
이수 말고 다른 아이들도 그림을 잘 그려요.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김나윤 글쎄요. 제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늘 보고, 다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제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엔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려요. 아, 곧 이수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이번엔 동화책 아니고 아트북이요. 이수가 그린 그림 옆에 이수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적었어요. 이수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엄마, 나 쓸 거 있어.”라고 말하며 바로 글을 쓸 때가 있거든요. 대개 그 글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요. 그러다 보니까 이수 그림은 메시지랑 같이 보면 참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 작업을 하게 됐어요. 좋은 책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 꿈이 작가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작가는 나중에 되어야지,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해.’ 했었는데, 이수를 보면서 ‘그때 하면 되는 거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어른이 되어야 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김나윤 제 생각에 이수는 아직 작가가 아니거든요. 전에 <영재발굴단> 통해서 김용택 시인을 만났을 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삶의 굴곡을 통해 갈등을 겪으며 단련되고 내적인 공부를 많이 한 사람만이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수는 너무 적게 살았고 그런 갈등이 아직 많지 않다.” 물론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갈등이 많죠. 동생이 많아서 집안에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도 있고, 아픈 동생도 오고. 하지만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에 ‘아, 맞아. 이수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고 살아가며 본인이 스스로 터득하고 공부할 게 많은데 지금 벌써 작가라는 말은 가당치 않아.’라고 생각했어요. 이수에게 늘 얘기해요. 사람들이 작가라고 불러줄 때 네가 겸손해야 한다고요.이수가 출연한 <영재발굴단>을 다시 봤는데, “자연이 놀이터예요.”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히더라고요.
전기백 지난겨울에 눈 많이 왔잖아요. 마당에 눈썰매장 만들어서 놀았어요.
김나윤 맞아요. 완전 신났어요.
여기 마당에 눈썰매를 탈 만한 언덕이 있어요?
전기백 언덕을 만들었어요. 산을 쌓았죠. 비 오면 마당이 뻘밭이 되는 바람에 잔디 심으려고 모래를 사다가 뿌렸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모래 장난을 좋아하잖아요. 모래를 모아서 막 쌓는 거예요. 그렇게 모래 언덕을 만들며 놀다가 눈이 오니까 약간 볼록해서 언덕 모양이 된 거죠. 그 위에 계속 눈을 쌓아서 눈썰매장을 만들었어요.
김나윤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 눈을 계속 퍼서 산을 쌓아야 하니까(웃음).
토요일마다 작업실에 아이들이 오면, 뭐 하고 놀지 고민하시겠어요.
김나윤 저는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을 해요. 아이들이 수업을 만들어내는 거죠. 저희는 그걸 도와주는 사람이고, 최대한 협조할 거고요.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그 내용을 가지고 토론도 하고, 한자를 좀 가르치기도 해요.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는 습관이 들어서 한자를 그냥 외워요. 근데 외우는 건 공부가 아니거든요. 왜 그 한자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얘기하다 보면 아이들이 한자를 재미있어 해요. 이해를 하면 잘 잊지 않아요. 먼저 와서 “또 한자 가르쳐주세요.” 하기도 해요.
지금 아이들은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김나윤 벽에 페인트칠하라고 시켰어요. 저는 여기 오는 아이들한테 노동도 가르치거든요. 노동의 가치도 알려주고요. 예전에 이런 말 있잖아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웃음).’ 그리고 ‘토요 놀이터’는 무료지만, 기부함이 있어요. “적은 돈이나마 기부를 해주시면 제 주위 불우한 이웃들한테 나눠주고 싶다.”라고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기부는 받고 있어요.
아이들을 받는 기준이 있어요?
김나윤 어느 부모님께서 작년 10월부터 찾아와서 아이들을 여기로 보내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셨어요. 뭘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인성만 좋아져도 만족한다고요. 얼마나 간절하면 그러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토요 놀이터’를 시작하면서 그 아이들부터 오라고 했죠.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두 명, 그리고 5학년부터 1학년까지 다 나이가 달라요. 어찌 보면 통합 반이죠. 이렇게 되면 아이들끼리 서로 멘토가 될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부모들이 아이들 걱정이 많아요. 그런데 부모가 걱정하는 부분을 아이는 걱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부모의 고민과 아이의 고민이 다른 거죠. 오늘도 한 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거든요. 부모님들이 자신이 걱정하는 부분보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게 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그 이야기를 집에서 못 하는 거예요. 어찌 보면 제가 부모 대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거죠.
지금 다 몇 명 정도 돼요?
김나윤 열두 명이요. 아이들이 첫 수업 후 집에 가서 학교 안 가고 그냥 여기 오면 안 되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해요(웃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어요. 저도 여유가 있고 능력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아직까지 그게 안 돼요.
언젠가 하고 싶다고 하셨죠.
김나윤 네, 저는 정말 그래요. 작은 자연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저는 그런 배움을 받지 못하고 자랐거든요.
아, 그 점이 궁금했어요.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이 아무래도 부모가 되었을 때 영향을 줄 것 같거든요. 이수 부모님은 좀 다른 교육을 받으셨을까 생각했어요.
김나윤 제가 배운 교육은 경쟁이었죠. 억압, 강제, 그런 것들이었는데, 제가 반항이 무척 심했어요.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계속 리스트로 적었어요. 만약에 제가 우리 아이들처럼 자유로운 교육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자라난 아이였다면 지금 좀 더 수월했을 거 같아요. 몸에 밴 습관에 따라 그대로 키우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러지 못한 제가 엄마가 되어 양육을 하게 되니까 부딪히는 게 많더라고요. 하지만 스스로 극복해야죠. 참고 인내하는 게 힘들지만 아이들한테 티 내지 않으려고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갈고 닦았어요. 엄마 나이가 열 살인 셈이에요. 저한테 엄마 하기 어떠냐 물어보면, 힘들죠, 힘들어요. 힘든데, 아이들은 그걸 모르죠. 저는 제가 받은 방식의 교육은 제 때에서 끝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엄마 될 인격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점점 아이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어지면서, 낳더라도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키우게 될 것 같아서 아이를 못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자신을 끝없이 다스리며 교육할 자신이 없어요.
김나윤 어찌 보면 각오를 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부딪혀본 거죠. 저랑 싸우고 있는 과정이에요. 제일 힘든 게 유정이죠. 다른 아이에겐 한 번 이야기하면 되는데, 유정이한텐 백 번 이야기해야 인지가 되거든요. 그래서 말을 아주 많이 해야 해요. 삼년 전에 처음 유정이를 만났을 때는 ‘안녕’, ‘엄마’ 두 마디밖에 못 했는데, 지금은 문장으로 말하고, 할 줄 아는 말도 많고, 알아듣는 말도 많아서 조금 나아졌죠. 유정이를 데리고 올 때도 사람들은 저에게 얼마나 신중하게 깊이 생각했느냐 묻는데, 사실 그러지 않았거든요. 너무 쉽게 데려왔어요. ‘내가 저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아무도 저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구나.’라는 이유 하나밖에 없었어요.
집에 데려 오고 나서부터 저희의 시련이 시작된 거죠. 제가 알지 못하는 유정이의 폭발 적인 감성이 나오는 거예요. 고아원에서 억압되어있던 감정이 우리 집에 오면서부터 봇물 터지듯 나오니까, 여기가 쑥대밭이었어요. 유정이가 밥 먹다가 컵이나 접시를 일부러 깨요. 파편이 바닥에 다 떨어져 있는데, 유담이가 그걸 모르고 밟아 유리가 발바닥에 박혀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어요. 그리고 유정이가 휘두른 나무망치가 우태 머리를 쳐서 뇌 CT를 찍은 일도 있고, 지나가는 차에 우태를 밀어서 교통사고가 날 뻔도 했어요. 저한테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후회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는 없잖아요. 이미 결과가 이렇게 된 거니까 빨리 해결점을 찾으려고 했고요.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일을 통해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였어요. 그렇게 믿어버리면 그게 긍정 에너지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이겨내면서 유정이를 키웠어요. 삼 년 동안.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지금까지 왔는데, 제가 덤벼들지 않았다면 아직 미성숙한 엄마로 남아있을 수도 있었겠죠.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의 마음도 제가 다 헤아리지 못했을 거고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사실은,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는 일일 거예요.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저는 놓친 걸 수도 있죠.
김나윤 모르겠어요. 간접 경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간접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요. 예전엔 장애인 부모를 보며 ‘아 정말 힘들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로 끝냈다면, 지금은 그런 말조차 못 해요. ‘맞아, 지금 나보다 더 어려울 거 같아.’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내가 겪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쉽게 뱉는 일에 조심스러워졌어요. 그리고 최대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육지를 그리워하진 않아요?
김나윤 전혀 그리워하지 않아요(웃음). 오히려 “왜 진작 제주도에 안 오고 그 힘든 데서 살았냐.”고 말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원래 겪어보지 않으면 거기가 좋은 줄 알고 평생 살 수도 있어. 새로운 곳을 겪어봐야 비교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만 있지 말고 나중에 외국에도 나가 봐. 그럼 더 좋은 데가 또 발견돼.” 언젠가 이곳 생활을 잠깐 멈추고, 가족 다 같이 세계 일주하는 게 제 꿈이에요. 여행하면서 이수나 저나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자기 방식대로 각자 기록을 남겨서 그걸 책으로 엮을 수도 있고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막내 유담이가 중학교 1학년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제주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놀기 좋은 곳을 소개해주세요.
김나윤 이수 아빠는 한라도서관을 좋아해요. 도서관 바로 뒤가 숲이고 계곡도 있어요. 제주도 와서 가장 많이 다닌 곳 같아요. 저는 절물휴양림을 좋아하고요. 저희 아이들이 공동 육아를 했는데요. 공동 육아의 첫 번째 활동이 나들이거든요. 매일 나들이를 가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나들이에 익숙하고 또 좋아해요. 특히 유담이는 아주 어린 나이인데도 집 나가는 걸 좋아해요. 지금도 혼자 친구 집에 가서 놀고 있잖아요. 제 곁을 빨리 떠날 것 같아요.
전기백 어제 이수가 저한테 “아빠 5월이 되면 따뜻해? 덥진 않지?” 물어서 “응.” 그랬더니 5월 되면 한라산에 올라가고 싶대요. 이수는 등산 속도도 저보다 빨라요. 여름에는 민물 용천수가 나오는 삼화포구에서 많이 놀아요. 원래 그렇게 유명한 곳이 아닌데, 요즘은 사람들이 몰려서 많은 편이에요. 삼양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다가, 오는 길에 삼화포구 들러서 놀면 따로 안 씻어도 되거든요. 사실 일부러 어느 바닷가를 찾아간다기보다 집에서 가까운 바다를 가는 거죠. 아, 그리고 함덕해수욕장도 좋아해요.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유정이와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꾸벅꾸벅 조는 유정이를 무릎에 앉히고 햇볕이 쏟아지는 벤치에 앉아있는데 먼저 밥을 먹은 이수가 직접 만든 활과 화살을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한 친구가 “저기 나무에 대고 쏠까?” 했더니 이수가 말했다. “안 돼. 나무 아프잖아.” 그러자 아이들은 군말 없이 커다란 깡통을 가져다가 바닥에 놓고 그곳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이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을 보며 마치 모든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