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스, 스위스에서 장보기

세 나라의 장터

‘이곳부터는 프랑스입니다.’ 라인 강 산책로 가장자리의 작은 표지판이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닿았음을 알린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 작은 표지판이다. 괜히 표지판 너머로 발 하나를 슬쩍 내민 뒤 방금 프랑스를 다녀왔다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스위스의 바젤Basel은 프랑스, 독일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국경 도시이다. 물론 도로가 지나다니는 곳에는 국경 검문소가 있지만 이런 보행로나 숲길에서는 표지판 하나로만 그 경계를 구분할 정도다. 바젤에서는 세 나라를 넘어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세 나라에서 시장을 보는 것도 가능할 정도이니 말이다. 실제로 다양한 종류의 치즈는 스위스에서, 저렴한 공산품은 독일에서, 신선한 해산물은 프랑스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이곳에서 몇 해를 살며 얻은 요령이다. 덕분에 내 지갑에는 항상 유로와 스위스 프랑이 뒤섞여 있다. 화창한 토요일이면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닮은 세 나라의 장터를 구경하러 종종 나선다.

독일,
뢰라흐에서 장보기

바젤 시내 중심에서 차로 십오 분가량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운 독일의 뢰라흐Lörrach 신광장Neuer Marktplatz에는 매주 화, 목, 토요일에 장터가 들어선다. 근교의 농장에서 농부들이 직접 채소와 과일, 꽃, 치즈 등을 가지고 와 좌판을 벌이는 것이다. 밤나무로 둘러싸인 길쭉한 네모 모양의 신광장에 들어서자 봄 햇살을 받아 진한 색을 발하는 알록달록한 천막이 줄지어 서 있다. 이른 아침이건만 천막 사이로 난 길마다 인파로 가득 찬다. 이상하게도 장터의 북적거림만큼은 불쾌하지가 않다. 그 부산함이 오히려 흥겹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농장마다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는 팻말을 하나씩 내걸고 손님을 맞는데 오월의 장터에서는 역시나 딸기와 아스파라거스가 가장 인기다. 우리도 제철을 맞아 빨갛게 익은 딸기 몇 바구니를 샀다. 잘 익은 딸기의 달콤한 냄새에 참지 못하고 분수대의 물에 살짝 헹궈 바로 한입 베어 문다.

이맘때가 아니면 쉽게 먹지 못하는 아스파라거스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같은 가격을 내도 물가가 높은 스위스에서 사는 것보다 한 움큼 더 많은 양이 따라온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삶아서 주요리에 곁들이거나 부드럽게 수프로 만들고 녹색 아스파라거스는 구워서 샐러드와 함께 먹을 생각에 들뜬다. 남편에게 주말의 메뉴를 설명하고 “이건 스위스에서 잘 팔지 않거든.” 하며 쪽파 한 단까지 사고 나니 괜히 주부 10단쯤 된 것 같아 뿌듯하다.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덧 반대쪽 입구에 도착했다. 오른편에서 바질, 민트, 토마토 등의 모종을 판매하고 있다. 씨앗부터 심어 기르는 것보다 분명 훨씬 다루기 쉬운 모종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마저도 나는 매해 실패한다. 그래도 어김없이 베란다 텃밭을 꿈꾸며 화분 몇 개도 집어 들었다.

프랑스,
생 루이에서 장보기

내륙 국가인 스위스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생선 요리가 그리울 때면 프랑스를 찾곤 한다. 자동차로 십여 분 나갔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금세 생선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생 루이St. Louis 장터에도 어김없이 생선 트럭이 두 대나 왔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구분하는 법도 잘 모르지만 눈치껏 사람들로 가장 북적이는 좌판대 앞에 가서 줄을 섰다. 분명 바젤에서 십 분 정도 운전해 왔을 뿐인데 순식간에 채소 이름이 모두 바뀌었다. 불어를 하지 못하는 데다가 자주 들리는 곳이 아니다 보니 물건을 사는 것이 어리숙하기만 하다.

그래도 일부러 스위스나 독일에서 잘 보지 못하는 낯선 채소를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가리키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기분 탓인지 프랑스에서 사는 빵은 항상 더 맛있는 것만 같아 매번 잊지 않고 빵을 파는 곳에도 들른다. 독일 뢰라흐와 스위스의 바젤 시장보다 규모가 큰 만큼 별의별 것을 다 판다. 과일과 채소, 음식을 파는 좌판대뿐 아니라 옷가지나 생필품을 파는 곳도 있다.

스위스,
바젤에서 장보기

주말이면 바젤 시의 크고 작은 광장 곳곳에서 다양한 장터가 열리지만 즐겨 찾는 곳은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광장, 마크트플라츠Marktplaltz이다. 5백 년이 넘은 붉은 사암 건물의 바젤 시청을 비롯하여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인 이 광장은 바젤의 구시가인 그로스 바젤Gross Basel의 여러 골목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항상 행인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나는 바젤의 봄이 시작하는 것을 이 광장에서 가장 먼저 느끼곤 한다. 

봄이 되면 따뜻한 빛이 그늘 한 점 없이 광장을 가득 메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광객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로 바젤에서 가장 시끌벅적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광장은 농부들이 직접 가져온 각종 과일과 채소 차지가 된다.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물건의 종류가 꽤 알차다. 버섯만을 파는 상인,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곳, 색만큼이나 다양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 가게, 나무 오븐으로 구웠다는 고소한 빵을 파는 트럭과 꽃을 파는 곳까지 있으니 말이다.

광장 한쪽에서는 소시지를 구워 파는 작은 트럭이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고 또 한 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춘 커피 트럭도 있다. 오랜만에 치즈 가게에 들르니 여러 가지 치즈를 잘라 시식해보라며 건네주신다. 우리나라의 김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치즈 맛보기는 언제나 신이 나는 일이다. 사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시장처럼 에누리의 재미나 채소 한 줌씩 더 넣어주는 시장 아주머니의 넉넉한 푸근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광장에서 채소 몇 가지를 사 가는 나에게 파슬리가 필요하냐며 채소 가게 주인이 물었다. 덤으로 얹어주는 줄만 알고 냉큼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파슬리 한 단도 어김없이 계산서에 올라갔다. 괜히 머쓱하여 별말 없이 모두 내고 나왔던 기억이다. 치즈 한 덩이를 골라 사 들고 나오는데 따스한 오늘도 광장 주변의 야외 카페가 사람들로 들어찼다. 사람들 사이로 트램이 경적을 울리며 바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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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