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집 밖에 있으나 사적인 공간이다.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가면 다른 이들의 정원을 훔쳐보기 위해 담장을 기웃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을 마주치면 “당신의 정원이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말한다. 서울의 담장은 꽤 높다. 가끔 힘겹게 고개를 걸친 진돗개나 능소화, 장미 같은 꽃을 만나기도 하지만, 역시 높다. 서울에서 더 넓은 울타리와 낮은 담을 찾아,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궁과 미술관, 학교, 아파트 등 낮은 경계를 넘어 들어간 그곳에 정원이 있었다.
궁의 정원
한 시간 반이나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일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몇 번이나 창덕궁을 오갔는데도 후원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못과 누각과 정자, 저 산이 어떻게 정원의 안에서 엮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참 하다 “모이세요.”라는 외침에 쪼그린 다리를 일으켜 세운다. 이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이고 저건 더 오래된 나무이고, 그 사이에서 풀처럼 방향 없이 자란 개망초에 반가워한다. 여전히 경계는 잘 모르겠지만, 안과 밖이 온통 아름다운 건 이제 안다. 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를 보면 지금이 꼭 과거 같다. 중화전 너머로 유에프오 같은 시청 건물이 보이면 그제야 이게 서울인가 한다.
박물관의 정원
100년도 더 전에 만든 먹감나무 장과 오동나무 책함에 물욕을 시험받고 밖으로 나오면 담장 너머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선조들은 정원을 가꾸기보다 담장 너머 보이는 자연을 ‘차경借景’하여 정원으로 삼았다는데, 이게 21세기 한국식 정원일까? 한국가구박물관은 한옥 10여 채를 옮겨와 지은 한옥 건물로, 18~19세기 우리 목가구 2천5백여 점으로 채워져 있다.
신의 정원
왕릉을 좋아한다.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바람 소리가 더욱 진하게 들린다. 오래전 읽은 책에선 조선왕릉을 ‘신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면 왕릉에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에는 영원한 안식이, 어떤 쓸쓸함과 평온함이 있을 테다.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고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이다. 수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석상들을 보면 왠지 웃음이 나온다. 도심은 벗어났으나 이곳을 찾는 길이 멀진 않다.
학교의 정원
교문을 지나며 괜히 어깨가 움츠러드는 건, 아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학생처럼 보이지 않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방과후 학교는 조용하다. 멀리 운동장에서 공 튀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아이들이 떠나면 책 읽는 소녀나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어릴 적 괴담이 무색하게 경복고등학교에는 왠지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여인과 ‘소망’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긴 다소곳한 동상이 있다. 학교의 식물은 저마다 그리 예쁘지 않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어쩐지 기억에 남는 것은 중앙고등학교의 무화과나무와 개잎갈나무뿐이다.
아파트의 정원
어디까지나 취향의 차이겠지만, 오래된 모든 아파트는 저마다의 모양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아파트에서는 살아보지 못한 성장 환경과 낯가림이 심해 손때 묻은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 탓이다. 송파대로를 사이에 둔 잠실주공5단지와 장미아파트도 그렇다. 작은 숲을 방불케 하는 우거진 나무, 놀이터, 벤치. 1970년 후반에 지어진 이곳에서 누군가는 10대와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았을 것이다. 그들이 보낸 시간이 이 정원에 고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