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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선생님, 정신
제 이름은 정신이에요.
저는 이름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합니다.
여러분도 이름이 있죠?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나요.
그리고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나요? 이름을 하나 더 짓고 싶나요?
사람은 평생 몇 번 이름 지을 일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름 짓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지을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의 이름, 빵가게의 이름, 분말 코코아의 이름, 적립식 펀드의 이름
렌터카 서비스의 이름, 골드 미스의 쇼핑몰, 심리치료사의 이름
우리 회사의 신제품, 우리 팀의 프로젝트 이름
이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Ca!! My Name
정신의 본명은 정경아, 서울예대 광고창작과를 졸업하고 TBWA KOREA의 카피라이터로, NHN의 책임 마케터로 일한 그녀는 KTF <DRAMA>,SK TELE-COM <JUNE>, 주식회사 홍진경 <더 김치>,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등의 브랜드 네이밍을 했다. 자신이 잘하는 ‘이름 짓기’의 매뉴얼을 만들어 수업을 시작한 지 2년 째 되는 해 겨울,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콜마이네임’ 수업에 관한 소식은 잔뜩 들었는데, 아직 직접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워요.
이제 곧 2014년 수업이 시작돼요. 그때 어라운드 식구들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과 조금 깊이 있는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제는 백 명 정도가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생각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큰 공간이 필요할 거예요. 일단 두세 시간의 기초 수업을 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심화 수업을 준비해 주는 거죠.
방식이나 규모를 바꾼 이유가 있나요?
원래 다섯 시간 수업이었어요. 기초, 심화과정이 합쳐져 있는 긴 수업이었죠. 물론 수업을 원해서 저를 찾아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격의 부담도 있었을 거예요. 다섯 시간 수업과 추후에 다시 저를 필요로 할 때, A/S라고 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수업료는 15만원이었고요.
수업시간을 줄일 거라고는 하지만 세 시간도 짧은 시간은 아니죠?
네, 길죠. 그런데 듣는 분들은 짧다고 말하세요. 저도 긴 수업이 힘들지 않고요. 이런 제게 ‘의외의 모습’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방에서 글을 쓰며 지낼 줄 알았는데 꽤나 적극적인 모습이니까요. 스스로 글 쓰는 일에 자신이 없어선지, 저는 의외로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는 시간이 편하더라고요. 더 설득력 있는 것도 같고.
긴 수업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저는 지루함을 잘 못 견디는 사람이에요. 중요한 자리에서 졸아 혼난 적도 있어요(웃음). 그래서 수업이 지루하지 않게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쉽게, 즐겁게, 게임처럼 배운 게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죠.
수업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
저는 카피라이터였어요. 그 뒤로는 브랜드 마케팅 일을 했고요. 이름 지을 일이 많았죠.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이름 지을 일이 있으면 저를 찾아왔어요. 당시에는 전부 제가 만들어줬는데, 자연스럽게 이 일에 매뉴얼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짜파게티를 끓이는 것만큼’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로 결심했어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모르고 있었을 뿐이에요.
혼자 하던 일을 사람들과 같이하게 됐네요. 수업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간단한 매뉴얼을 가지고 수업하면 정말 많은 이름이 만들어져요. 제가 일 년 동안 이름을 지었을 때보다 50명의 학생들이 한 번의 수업 동안 짓는 이름이 훨씬 많다는 거예요. 실제로 17년 동안 제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많은 이름이 학생들에게서 생겨났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저한테는 참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그리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톤Tone’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누군가 열 개의 이름을 만든다 해도 그 안에는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담겨요. 하지만 여러 명과 함께 생각을 주고받으면 그런 문제도 사라지죠.
보통 수업 진행은 어떤 식인가요?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이름을 왜 지어야 하는지부터 알려줘요. 그리고 ‘왜 당신이 지어야 하는가?’ 그 얘기도 하죠. 그 다음에 방법을 알려드려요. 그런데 여기에서 수업이 끝나면 다들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겨요. 그래서 제가 만들었던 것, 앞서 수업을 한 학생들이 만든 이름들을 보여주죠.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살 것들, 그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이름 만들기 게임’을 알려줘요. 많은 일들이 그렇겠지만, 이름 만들기도 처음이 가장 어려워요. 매뉴얼이 익숙해지기도 하고 만들어놓은 이름을 가지고 늘려가는 방법도 있으니, 나중에는 더 쉽게 느껴지죠. 홍진경 씨 김치 사업에 ‘더 김치’라는 이름은 제가 만들어줬지만 ‘더 만두’는 본인이 직접 만든 이름이에요.
주로 어떤 곳에서 수업하셨나요?
전 지역을 다녔어요. 여러 학교와 기업, 심지어는 저희 집에서도 수업을 했고요(웃음). 한 번은 교수님 추천으로 수지 쪽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을 만나기 전엔 ‘과연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예술인들을 만나 작품 제목이나 필명을 짓는 방법에 관해 강의한 적도 있어요. 모두 제게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어딜 가나 좋은 반응을 보였나요?
네, 이름 짓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쓰인다는 걸 알게 되면 다들 기뻐하세요.
사람들을 만날 때나 혹은 물건을 고를 때도 장점을 잘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 정신 씨의 그런 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혹시 수업이 잘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땐 없었나요? 열심히 했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참 중요한 지점 같아요. 사실 제가 부탁을 받아 이름을 만들어줄 때는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수업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목적이거든요. 어설프더라도 자신이 직접 이름을 만들죠. 그게 참 중요해요. 남에게 부탁해서 받은 이름에는 ‘이모’ 정도가 되지만, 자신이 고민해서 만든 이름에는 ‘엄마’가 되는 거예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게 돼요. 불만도 적고요.
꼼꼼하게 준비하고 실수도 적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떠세요?
실수가 많아요. 그런데 순발력이 있는 편이에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흔히 말하는 ‘팔랑귀’거든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듣다가 점점 제 의견은 없어지고…. 자기 실수도 너무 빨리 인정해 버려서 동료들을 많이 웃게 해줬어요. 그러니까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이라기보다, 그때그때 빠르게, 유연하게 넘어가는 편인 거죠.
그런 성격을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나요?
아니요. 정말 본능적이에요(웃음).
2013년 수업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작년이 수업 2년째 해였어요. 질문에 우선 대답하자면,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의 역할은 자신을 발전시킨다기보다 남을 나아지게 하는 거잖아요. 아직 제가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진 못하지만, 그래도 성향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남을 돕는 일이요. 물론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아직도 ‘선생’이라는 말은 부담스러워요. 먼저 살아간다는 뜻을 가졌잖아요.
한 해 바쁘셨잖아요. 쉬고 있는 12월은 어떤가요?
뒤돌아 보니 작년엔 참 많은 일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동안은 푹 쉬었어요. 그리고 집을 좀 보러 다녔어요.
집이요?
네, 제가 토지매매에 관심이 좀 있거든요(웃음). 사실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예전에 이태원 주민일기를 통해 동네를 소개했잖아요. 이웃 각자의 성장도 나름 있었고 이태원도 좀 더 알려졌지만, 전세, 월세를 살던 그 친구들은 결국 보광동으로 이사갔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토지매매 공부를 열심히 해, 결국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했어요.
어떤 건물일지 궁금하네요. 혹시 정신 씨 혼자서 진행한 일인가요?
네, 제가 예전에 나름 대기업을 6년이나 다녔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사치를 안 해요. 모아 놓은 돈을 잘 써서 마련했어요. 경리단길을 따라 남산 쪽으로 가면 ‘소월길’이 나와요. 남산 우체국 쪽으로 빠지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길이 있는데 건물은 거기에 있어요.
어떤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세요?
40평 정도의 복층 건물이라 꽤 넓은 편이에요. 앞으로 그곳에서 새로운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콜마이네임 수업은 물론,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전시도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길의 다른 몇몇 건물들도 제 주변에 여건이 되는 친구들이 사고 있어요. 각각의 건물이 하는 역할은 다르겠지만, 하나의 ‘마을’이 만들어질지도 몰라요. 나중에 여름이 되면 옥상에서 캠핑하자는 식의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전망이 정말 좋거든요.
그런데 듣고 보니, 결국 12월에도 일을 하셨네요.
네 맞아요(웃음).
콜마이네임은 앞으로 어떤 수업이 될까요? 아주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인가요?
네, 이름을 만드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름이 자라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제 수업을 들은 사람이 하는 가게가 아까 말했던 공간을 채우는 것도 상상해요. 기분 좋은 일이죠. 앞으로도 저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려고 해요. 이름을 만드는 일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를 찾아주는 일 자체가 무척 고맙고요. 그런데 가끔은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이름이 없거나,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해 숨은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농부’는 제가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숭고한 직업인데, 아직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농산물에 이름을 붙여준다면 판매와 직결되니 추상적인 작업이 될 확률도 낮죠. 실제로 만나 이름을 지어주고 돈 대신 농산물을 잔뜩 받은 적 있어요. 그걸 본 홍진경 씨는 “자네, 배 골을 일은 없겠네.” 장난치며 말한 적 있어요(웃음). 그분들에게 직접 돈을 받는 대신 관련 기관에서 지원을 받거나 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 또 한 군데 있어요. 바로 소년원이에요.
책 『정신과 영수증』
그 이후의 이야기들
정신과 영수증은 2004년에 출간된 일기형식의 책으로, 자신이 산 물건의 영수증과 그에 관련된 짧은 글을 모은 것이다. 정신이 글을 쓰고 그녀의 친구 사이이다가 사진과 그림을 더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에도 책 이야기가 있었지만, 내가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소년원에 찾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책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시 제 주소가 적혀 있어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편지해 달라고, 함께 밥도 먹고 음악도 듣자는 얘기를 했죠. 그때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답장을 하지 못한 편지가 한 통 있었어요. 바로 소년원에 있던 사람의 편지였죠. 한 글자씩 눌러 쓴 진심 가득한 편지였는데, 소년원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고 망설이다가 끝내 답장을 못한 거예요. 저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가 쓰여 있었거든요. 그때 답장을 하지 못 한 게 지금까지도 후회로 남아요.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이승철 씨가 출연한 소년원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소년원뿐만 아니라 감옥에도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 혹은 그저 갈 곳이 없어 머무르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수업을 해주면 어떨까, 하고요.
책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저는 이번에 한 번 더 읽어봤는데 여전히 좋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쓴 책들은 후회로 남기도 하던데, 정신 씨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제 이십 대를 돌아보면 객관적으로 참 귀여운 것 같아요(웃음). 스물 다섯에 극성스럽게 이 책을 내겠다고 달려들었어요. 쓰는 게 어려워야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많이 써서 그걸 덜어내는 게 더 큰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때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해졌겠죠.
가끔 들춰보기도 하나요?
아니요. 전혀요.
전혀요?
네, 사실 안 봐도 다 기억이 나요(웃음).
정신 씨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어요. ‘정신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요. 물론 SNS와 콜마이네임 수업, 종종 기고하시는 글로도 만날 수 있지만, 그걸 보지 못한 사람들마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얼마 전, 12년 만에 만난 지인이 저한테 그랬어요. 참 잘 자랐다고. 그래서 저는 잘 자라기 너무 힘들었다고 대답하며 장난을 쳤죠(웃음). 책이 나온 당시에는 사실 저희처럼 이른 나이에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드물었어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oo광고를 따냈다’며 뉴스데스크에 나올 정도였죠. 인턴 사원이라는 개념도 뚜렷하게 없었고요. 생각해 보면 참 위험한 시기를 지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기를 잘 지나올 수 있게 도와준 건 바로 친구들이에요.
사이이다와 나난 씨 얘긴가요?
네, 맞아요. 저희는 일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아니고 어릴 적 자연스럽게 친해진 사이에요. 열흘 만에 만나면 진짜 오랜만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요. 정말 순수한 친구들이에요. 그들은 순수미술 쪽으로 계속 나아가며 원천적인 얘기, 진정성에 관한 얘기를 하기 원해요. 저는 그걸 어떻게 돈으로 만들까 생각하는 편이죠(웃음). 가장 좋은 건 그들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제가 조금만 이상한 방향으로 가면 알아채고 저를 말려요. 그러면 저는 바로 사과하죠. 존경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친구들보다 더 존경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이태원에 산 지도 이제 10년이 다 돼가시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친구들 집 자주 가고요. 어디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고 하면 한번 찾아가 봐요(웃음). ‘살롱 프라이드’라는 곳에도 자주 가요. 정말 맛있는 뱅쇼를 파는 곳이에요.
물건을 잘 고르고, 좋은 물건을 고르는 일에 즐거움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중 아끼는 물건이나 자주 사용하시는 물건이 있나요?
아이보리 비누는 늘 좋아해요. 그냥 하얀색 비누요. 비누 곽에 쓰여있는 글자들도 좋아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산 올리브유도 너무 맛있고…(웃음). 물건 얘기를 하면 친구가 준 장갑도 생각나요. 제가 운전기사님들이 쓰는 하얀 장갑을 끼고 다닐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친한 친구가 장의사 같다고 기겁을 하면서 아끼던 새 장갑을 줬어요. 그리고 아주 가볍고 수수한 디자인의 묵주도 좋아하는 물건 중 하나에요.
예전에 백 권의 책만 가지고 있고 싶다면서 나머지 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셨잖아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과연 백 권은 어떤 책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생각나는 책 몇 권만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저 사실 책 정말 안 읽어요. 홍진경 씨가 저한테 최고의 책이라며 권해준 장그르니에의 『섬』도 팔 책들 리스트에 있었어요(웃음). 그래도 아주 열심히 읽은 책이 있다면,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이요. 외국의 심리학자가 쓴 책인데 정말 최고예요. 그리고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를 보면서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명랑한 이야기인데 읽으면 기쁨의 눈물이 막 나요. 또 제가 사회과학 분야에 굉장히 취약한데요(웃음). 그래서 감동도 쉽게 받는 것 같아요. 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링크』라는 책도 정말 좋았어요.
이태원 주민일기, 정신과 영수증, 콜마이네임 다양한 작업을 하셨잖아요. 혹시 모든 작업에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기준이라든지 목표가 있나요?
겉보기에는 제가 자아가 강할 것 같고 독립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빛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그게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빈 그릇처럼 누군가를 잘 담고 있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콜마이네임도 다르지 않아요. 그렇게 남을 위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어요.
정신 씨는 나중에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는 식의 관심을 받을 것 같아요.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종종 묻곤 하잖아요. 저는 먼 미래를 통째로 얘기하는 건 아니고, 사실 어떤 하루를 떠올려요. 언제가 됐든 그 하루만 살 수 있으면 후회가 적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남산을 산책하고 돌아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구들에게 밥을 지어줘요. 집에 혼자 남으면 제 할 일을 하죠. 이름 짓는 일을 계속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강의도 나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수업도 해주고. 그리고 또 저녁이 되면 저녁을 짓고.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진입로, 아침에 일어나질 못 해요(웃음).
더 멀리 상상해 본다면, 할머니가 됐을 때는 어떨 것 같아요?
일단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남산을…(웃음). 제가 올해 초에 성당에 갔을 때 귀여우신 노신부님이 해주신 얘기가 있어요. “올 한해도 건강하게 싸우지 말고, 부비부비하면서 살아가세요.” 저는 그 얘기가 너무 좋았어요. 할머니가 됐을 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싸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신부님 말대로 부비부비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웃음).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해 얘기를 나눴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나중’에 관해 수없이 물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눈치 없이 여러 차례 기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온 많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던 부분이었다. “나중에는 어떤 이름에 관해 수업을 하게 될까요?” 그녀는 아이들 이름을 짓는 걸 상상한다고 말했다. 물건이나 브랜드 이름을 짓는 것과는 다를 거라고, 그리고 엄마가 돼보기 전엔 제대로 된 이름을 지을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