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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 — 벨로주
음악은 어느 때보다 쉽게 닿을 수 있다. 정밀한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쉼 없이 계산해 주지만, 우리는 무엇을 진짜 내 것으로 소유했는지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화면 너머로 흘러가는 음악 사이에서도, 오래도록 음반을 삶 가까이에 두고 살아온 이가 있다. 홍대 인디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공연장 ‘벨로주’를 운영하고, 숨은 아티스트들을 세상에 소개한 네이버 영상 플랫폼 ‘온스테이지’를 기획하며, 어느새 3만 장 가까운 음반을 삶의 일부로 품어온 사람. 음악 기획자 박정용이 걸어온 길에는, 아끼는 곡을 녹음해 건네던 카세트테이프 한 장 같은 마음이 있었다.
2008년에 시작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벨로주 홍대의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벨로주를 거쳐 간 수많은 뮤지션과 팬들이 따뜻한 댓글을 남겼지요. 마지막 날, 어떤 감정이 스쳤는지 궁금해요.
사실 그때는 실감이 잘 안 났어요. 워낙 오랫동안 계획해 온 마무리였기 때문에, 주변의 안타까워하는 반응과 달리 저만 덤덤하고 드라이했죠. 그럼에도 마지막 공연 날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날 공연을 하루에 두 차례 진행했는데, 최종 공연의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였어요. 황푸하, 김사월, 여유와 설빈을 비롯해 그날 무대에 선 모든 연주자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마쳤죠. 그런데 곡이 끝나고 나서 거의 4분 동안 객석에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단순한 공연의 여운 때문이 아니었어요. 관객들 모두 알고 있었던 거죠.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순간, 벨로주라는 공간은 정말로 사라진다.’라는 사실을요.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감동적인 순간인데, 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를 잘 못 견디거든요(웃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죠. 그날이 일요일이었거든요. 결국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내일 출근하셔야죠.” 하고 말했어요. 그렇게 관객들을 등 떠밀듯 내보냈는데, 나중에 엄청 지탄을 받았습니다(웃음). 어떻게 그 순간에 출근하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냐면서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 장면은 자꾸만 생각나요.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었는지 아니까요.
평소 벨로주를 찾아주시던 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일부러 업계 관계자들은 초대하지 않았어요. 사실 관계자들을 부르면 그 분들만으로도 자리가 다 차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자리만큼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매가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된 걸 보면 정말 벨로주를 좋아해 주신 분들이 오셨을 테고, 실제로 낯익은 얼굴도 꽤 보였죠.
이전 인터뷰를 보니 “내 의지로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그 시점을 스스로 정하는 일이 왜 중요했어요?
지금까지 벨로주를 운영하며 이사를 세 번 다녔는데, 그중 두 번은 자의가 아닌 이전이었어요. 공간을 옮길 때마다 매번 휘청거릴 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운영상 큰 위기를 맞기도 했죠. 그 두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결심한 게 있습니다. ‘절대로 주변 상황에 밀려 쫓겨나듯 그만두지는 않겠다.’였어요. 상황에 떠밀리기 전에 ‘아, 이만하면 충분히 했다.’ 싶을 때 내 발로 걸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 심어진 거죠. 물론 무언가를 오래 하는 일도 굉장히 존경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해내느냐’였어요. 냉정하게 말해 최근의 벨로주는 제가 하고 싶었던 기획을 온전히 펼치지 못했어요. 다른 비즈니스로 바쁘기도 했고,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벨로주가 가장 멋졌던 시절은 8~10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 계획형 인간이다 보니 1년 전부터 차근차근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고집이 하나 있었는데, 무조건 ‘운영 20년’을 채우기 전에 끝내고 싶었어요. 친한 후배들은 이런 저를 보고 ‘쿨병’이라며 놀리기도 하지만, 결국 제 성향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예요. 다른 거창한 의미는 없었어요.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의 라이브를 기록한 온스테이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기획자로서 온스테이지를 운영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온스테이지는 굉장히 단순한 목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니까 상상이 잘 안 되실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유튜브에 음악 라이브 영상이 거의 없었거든요. 유튜브 내에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죠. 마침 벨로주를 시작하면서 뮤지션들에게 영상이 점점 중요해지는 변화를 느끼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명함 같은 라이브 영상을 만들어주자고 생각했어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도 그 의도가 실제로 구현되는 걸 확인했을 때였어요. 뮤지션들이 정말 자신의 명함처럼 온스테이지 영상을 활용하더라고요. 특히 홍대에서 열리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인 ‘잔다리 페스타’에는 해외 공연 기획자와 페스티벌 관계자들이 많이 오는데, 그분들이 “한국 인디 밴드는 온스테이지 영상이 있는 팀과 없는 팀으로 나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처음 의도했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획자는 결국 자신이 의도한 일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벨로주 홍대는 문을 닫았지만, 이곳 ‘벨로주 망원’은 공연장이 아닌 다른 성격으로 운영하실 계획이라고요.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으세요?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레코드를 통해 음악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기도 해요. 가끔은 음악보다 음반 자체를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레코드라는 매체에 애정이 커요. 레코드는 제가 음악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인 거죠. 공연장을 오래 운영했으니,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레코드를 중심으로 공간을 꾸리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거든요. 벨로주 망원은 말 그대로 ‘레코드 스페이스’예요. 중고 LP와 CD를 판매하기도 하고,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청음회 프로그램도 종종 열 생각입니다. 주말에만 문을 열 예정이고요. 제 작업실을 겸한, 소소하고 편안한 아지트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조금 전에 음악보다 음반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시작도 선명하게 기억하세요?
선명하게 기억나요. 흔히들 그렇듯 그 음반 자체가 제 인생을 바꾼 명반까지는 아니지만요(웃음). 처음 산 건 컬처 클럽의 [Color by Numbers]였어요. 보이 조지가 있던 팀이고, 그 유명한 〈Karma Chameleon〉이 수록된 앨범이죠. 당시에는 듀란 듀란, 마이클 잭슨과 함께 정말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는데 아마 제가 중학생 때였을 겁니다. 그 시절엔 라디오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레코드숍으로 달려가 음반을 사곤 했죠. 저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사람과 직접 음반을 사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요. 음반을 사는 순간, 어떤 강 하나를 건너는 느낌이 있거든요. ‘좋아하는 음악을 내 돈으로 사서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한다.’는 기쁨을 알게 되는 거죠. 저 역시 그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점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첫 음반도 제게 나름의 큰 의미가 있네요.
좋아하는 음악을 내 돈으로 사서 곁에 두는 순간, 듣는 방식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만의 생각이자 논리이기도 한데요. 요즘 바이닐 가격도 많이 올라서 한 장에 4~5만 원씩 하니까 다들 비경제적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레코드를 사는 행위는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경제적인 소비예요. 다른 예술을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은 원본을 살 수도 없고 복사본조차 수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죠.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소유 자체가 불가능한 장르도 있고, 영화도 블루레이를 소유할 순 있지만 매번 꺼내 보기는 어려워요. 명확한 한계가 있어요. 반면 음악은 창작자가 몇 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 낸 결과물을 단돈 몇만 원에 완벽히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잖아요. 평생 반복해서 들을 수 있으니 이보다 경제적인 예술은 없다고 봐요. 요즘 바이닐을 그저 ‘굿즈’로만 소비한다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지만, 저는 재킷 그 자체로도 훌륭한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 퀄리티의 프린트 작품을 사려고 해도 10만 원은 들 텐데, 3~4만 원에 사서 방에 꽂아두기만 해도 미학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소비죠. 저에게 레코드는 경제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가장 훌륭한 매체예요. 물론 제가 레코드병病에 걸린 사람이라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웃음), 이 가치를 경험하고 나면 누구나 저처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음악을 들으시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취향에 잘 맞고 애정을 느끼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저는 정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들어요. 헤비메탈이나 일렉트로닉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요즘 팝 아티스트의 신보에도 감탄하곤 하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장르를 꼽으라면 역시 재즈예요. 특히 1950년대에 발매된 재즈도 많이 듣고요. 흔히들 ‘재즈의 대중화’를 말하지만, 사실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 맞아요. 시간과 관심을 들여 조금씩 알아갈수록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열리는 음악이죠. 그래서 오래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음악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들으세요? 하루를 채우는 음악들이 궁금해요.
스포티파이를 꽤 일찍부터 썼고, 지금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어요.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는 어차피 실물 레코드나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동할 때는 항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요. 그렇게 매일 출근길 1시간 동안은 오직 새로운 음악만 찾아 듣는 게 저만의 오랜 루틴이 되었죠. 그 시간만큼은 평소에 늘 듣던 익숙한 음악은 절대 듣지 않아요. 그러다 사무실에 도착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제가 듣고 싶었던 실물 레코드들을 꺼내어 음악을 감상하고요.
하루가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네요. 일부러 만든 습관은 아니었던 거죠?
처음부터 의도하고 계획했던 건 아닌데,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몸에 배면서 어느덧 수십 년째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되었어요. 특히 십년이 넘게 쓰고 있는 스포티파이가 매주 월요일마다 제 청취 패턴을 분석해서 새로운 음악 30곡을 제안해 주는 ‘디스커버리 위클리 Discovery Weekly’ 기능을 지금도 좋아해요. 처음 이 기능을 접했을 때의 짜릿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한창때는 ‘어떻게 이런 곡을 나한테 추천해 주지?’ 싶을 정도로 놀라웠거든요. 요즘도 여전히 월요일 출근길에는 항상 그 리스트를 기다립니다. 동시에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사나 싶은 중고 CD도 여전히 꾸준히 사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여러 매체를 가리지 않는 이유는 매체마다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한때 ‘CD가 영구적이고 최고다.’ 하던 시절이 있었고, 최근 LP 열풍이 불면서는 ‘아날로그가 진짜 음악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이분법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80년대 CD 전성기에 나온 음반은 CD로 들을 때 가장 좋고, LP 시대에 나온 음반은 LP로 들을 때 그 맛과 소리가 온전히 살아요. 스트리밍 역시 스트리밍만의 편리함과 장점이 있죠. 저는 각 매체의 매력을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누리는 편에 가까워요. 레코드병 환자 치고는 너무 낭만 없는 이야기였나요···.
(웃음) 결국 음악도 태어난 집이 있는 셈이네요. LP 시대의 음악은 LP에서, CD 시대의 음악은 CD에서 가장 자기다운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잖아요.
LP 전성기 시절에 나온 음악은 LP로 듣는 게 훨씬 훌륭해요. 당시에는 LP를 기준으로 마스터링이 이루어졌고, 아티스트와 엔지니어가 직접 소리를 확인하며 최종 결과를 완성한 거거든요. 그런 소리를 나중에 리마스터링해서 CD로 바꾸는 순간, 음질이 반드시 나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티스트가 처음 선택했던 소리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1980~90년대 CD 시절에 발매된 음악들은 처음부터 디지털 녹음을 염두에 두고 CD라는 매체에 최적화되어 제작된 것들이에요. 그런데 요즘 바이닐 열풍이 불다 보니, 당시 디지털로 완성된 음반을 LP로 다시 만들기도 하잖아요. 매체의 특성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LP로 옮겨 담기만 하면 소리는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죠. 결국 그 시대의 음악은 그 시대의 매체로 만나는 것이 베스트예요. 창작자가 처음 의도했던 사운드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거니까요.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이제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죠. 오랫동안 이를 경험해 오신 입장에서 볼 때, 알고리즘이 가진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알고리즘은 장점이 많은 만큼 한계도 명확해요. 의외로 알고리즘에는 ‘예외성’이 적습니다. 내가 듣는 패턴에 맞춰서 음악을 제안하기 때문에 당장의 적합도는 높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계속 보여주게 되죠. 발견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는 셈이에요. 예를 들어 레코드숍에서 그저 재킷만 보고 음반을 샀을 때 만나는 뜻밖의 발견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오프라인 경험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알고리즘과 레코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서로를 채워주는 보완재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스포티파이의 추천도 받지만, 전 세계 음반 셀러들이 모인 플랫폼 ‘디스콕스Discogs’에서 다른 나라 셀러들의 라이브러리를 뒤적이며 또 다른 추천을 받거든요. 이 두 가지가 주는 발견의 즐거움은 완전히 달라요.
모든 음악을 다 음반으로 소장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건 꼭 내 곁에 두고 싶다.’ 싶은 기준이 있어요?
사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이상으로 음반이라는 매체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모든 음반을 소유하고 싶어요(웃음). 음반을 디깅하고 소유하는 행위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레코드 수집에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묘한 세계가 있어요. 음악을 둘러싼 여러 요소가 총화되어 마침내 내 손에 실물로 쥐어지는 순간의 희열이 있죠. 음반을 깊게 들여다보면 ‘이건 1960년대 초판이라 소리가 다르고, 저건 재발매반이라 이 부분이 다르다.’ 같은 수많은 히스토리와 데이터를 알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이 빈티지별로 미세한 맛과 향의 차이를 감별하며 즐거워하는 것과 비슷해요. 말하고 나서도 너무 환자 같네요(웃음).
CD 2만 장, LP 1만 장을 합쳐 무려 3만 장에 가까운 음반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지금까지 수집한 앨범 가운데 유독 기분 좋게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딱 생각난 기억이 하나 있는데요. 조니 미첼의 [Blue]라는 역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인 앨범이 있어요. 그전까지는 줄곧 CD로만 듣다가, 한 10년 전쯤 바이닐이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이건 꼭 오리지널 초반으로 사야겠다.’ 마음먹고 일본 도쿄로 향했어요. 도쿄에는 중고 레코드 매장 체인인 ‘디스크 유니온Disk Union’이 곳곳에 있어요. 전 세계 모든 레코드가 다 있는 곳이죠. 먼저 시모키타자와점에 들렀는데 그 판이 1만 엔이었어요. 한화로 약 10만 원 정도예요. ‘이거 좀 비싼데.’ 하고 고민하다가 시부야점에 가봤더니 똑같은 앨범이 1만 1천 엔인 거예요. 마지막에 신주쿠점에 가보니 거기는 1만 2천 엔이더라고요. 매장을 옮길 때마다 자꾸 1천 엔씩 비싸지는 거죠(웃음). ‘차라리 처음에 살 걸.’ 후회하다가, 결국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기 전 숙소에서 시모키타자와점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가서 그 1만 엔짜리 앨범을 샀어요.
택시를 타고 갔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겠는데요(웃음).
당시 택시비가 한 3,500엔 정도 나왔으니 이성적으로 보면 실패한, 합리성이 완전히 떨어진 소비였죠(웃음). 결국 시부야나 신주쿠 매장보다 훨씬 비싸게 산 셈이니까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그 명반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샀다는 승리감과 기쁨이 먼저였어요. 이 판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저렴하게 얻은 그 유쾌한 기억 덕분인지, 지금도 이 음반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음반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재밌는 상상이 들어요. 만약 내일 아침 눈을 떴는데, 전 세계 모든 스트리밍 사이트의 서버가 통째로 다운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저는 전혀 당황하지 않죠. 저 역시 스트리밍을 아주 좋아하고 자주 듣는 사람이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이순신 장군처럼 신에게는 아직 3만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하고 외치면 되니까요(웃음). 오히려 음악을 듣다 보면 내 방 라이브러리에서 실물 음반을 꺼내 드는 게 훨씬 직관적이고 빠를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방금 말씀드렸던 조니 미첼의 음반을 듣다가 문득 ‘다음 곡은 가수 닐 영으로 넘어가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 검색보다 빠르게 몸이 기억하는 위치에서 바로 음반을 찾아내는 거죠. 내 일상을 채우는 음악들이 물리적인 라이브러리로 존재한다는 건 정말 기분 좋고 든든한 일이에요. 아, 이 기분을 아셔야 하는데···.
(웃음) 과거의 한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선물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간 걸어오신 길을 돌아보면 어떤 일을 해온 것 같나요?
그러게요. 딱 그 일을 해온 것 같아요. 이런저런 공연과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온스테이지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을 쓰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추천하고 또 지금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까지 전부요. 어릴 적 좋아하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하려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서 선물하던 마음이 첫 시작이었겠지만, 결국 제 삶을 채운 일들은 다 그 연장선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음악 테이프를 녹음하는 바로 그 일이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