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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사실은 바쁘지만 꿈처럼 느긋하게.
과장을 하자면, 나는 알람 없이 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늘 늦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그간 수명이 얼마간 줄었을 것이다. 회사에 10분, 20분씩 일찍 오는 사람들을 늘 우러러봤지만, 결국 또 늦어서 머리를 긁는 게 나였다. 몇 년을 같은 일로 구박을 받다 보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어도 이미지가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잘 안되는 건 잘 안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법을 회사 생활을 통해 배워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나였지만, 결국 서른 중반부터는 혼자 일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한 지 이제 6년째 접어들었다. 잠을 푹 자는 외로운 싸움이랄까.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늘 그렇듯 비슷한 크기로 내 앞에 놓여 있다. 힘든 이야기는 해서 뭐 하나. 아쉬운 점들은 잠시 넣어두고, 내가 언제나 기다리는 점심시간에 관해 적어본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오후 2시 무렵의 빈 시간. 그 두 시간은 대낮의 선명한 꿈처럼 좋다. 지금처럼 겨울이어도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시작되는 꿈.
집에 오면 다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창문을 열고 아침에 못다 한 이불 정리를 한다. 9평짜리 작은 원룸이지만 이 집에는 125센티미터의 커다란 정방형 창문이 두 개나 있다. 그걸 활짝 열면 겨울 이불도 바깥으로 내놓고 털어낼 수가 있다. 요즘 털을 기르는 중인 반려견 완두가 더 팍팍 털어내라고 뒤에서 짖는다. 사람들이 방이나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로 고생하는 것처럼, 개도 자기 털이 골치인 모양이다. 창문을 열어둔 채로 청소기도 돌리고 완두 인형들도 한곳에 모아 놓는다. 그렇게 5분이면 짧은 청소가 끝난다. 먼지만 조금 없앴는데 집이 한 뼘 넓어진 것만 같다.
이제 (다섯 발자국 옮겨) 부엌으로 가 무얼 해 먹을지 고민해 본다. 아침에 전혀 식욕이 없는 나는 늘 이맘때 첫 끼를 먹는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과 밖에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섞어보기도 하고 당장 먹어야 하는 게 없는지도 살펴본다. 나는 되도록 한 접시로 끝나는 것들을 원한다. 오래 끓여야 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건 제대로 만들어 주는 사람에게 제값을 주고 사 먹고 싶은 것이다. 직접 해보니 시간도 참 오래 걸리고 맛을 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요리를 배운 적 없는 나는 대부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간단한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한다. 간단한 레시피라고 말했지만, 정말이지 그걸 따라 하다가 내 삶이 얼마간 변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한두 끼를 만들어 먹으며, 먹는 것과 요리를 해보는 것은 아주 다른 종류의 행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헤아릴 요, 다스릴 리.’ 재료를 구하고 다듬고 조리 순서를 지켜가다 보면 어떤 작은 이치 같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관계, 새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0분 만에 끝나는 간단한 요리일지라도 말이다. 요리가 여행이나 대화 같은 행위와 비슷하다는 걸 나는 과카몰리나 후무스, 들기름 막국수, 봉골레 파스타 같은 음식을 따라 해보며 자주 떠올리곤 했다.
앞서 말한 종류의 음식을 해 먹으면 설거지까지 보통은 한 시간이면 끝난다. 이제부터는 완두를 조금 주무르다가 디저트 같은 게 있으면 먹고 책도 읽는다. 말 그대로 쉬는 것이다. 늘 뜸 들이길 좋아하는 내게는 조금씩 에너지가 차오르는 시간. 하루를 이제 시작하는 기분마저 든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던 집 안의 분주함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도 본다. 오후 3시가 지나고 4시가 되어 간다. 시간은 휙휙 흘러가지만 어쩐지 잠시 멈춰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완두에게 같이 나갈지 물어본다. 열한 살이 된 완두는 점심시간 이후에는 좀처럼 따라나서질 않는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말해도 침대에 푹 안겨 나를 힐끗 보기만 한다. ‘옆에 누울 거 아니면 나가.’ 나는 완두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잠시 멈추기 위해 열어둔 창문을 닫고 혼자 집을 나선다.
지각을 일삼던 내가 잘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야근이다. 어쩔 수 없이 하던 초과 근무가 습관이 되었을까? 해가 질 무렵이면 저절로 차분해지면서 일이 잘됐다. 이때부터 드디어 제대로 일하는 내가 된다. 큰 기계를 켜서 나무들을 자르고 톱밥을 모아서 묶고 액자 수량과 사이즈를 꼼꼼히 계산한다. 시간이 금세 가지만 목표한 일도 하나둘 지워져 있다. 한참 일하다 보면 바깥은 금세 어두워진다. 아까 낮에 집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 또 다른 의미의 꿈만 같다.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부터 내가 일하는 3층까지 저녁밥 냄새가 올라온다. 멀리서 퇴근하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시간. 늦게 시작한 내게는 아직 일이 더 남아 있다.
“나는 남들보다 두세 시간 정도 늦는 것 같아.”
예전에 친구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늦잠으로 시작해 자꾸만 조금씩 밀려나던 시간들을 하루 끝에서 가늠해 보면 내겐 늘 두 시간이 모자랐다. 쉽게 생각하면 두 시간 당기면 될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지금도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부터 혼자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시간을 꼬집거나 늘리는 기분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시간이란 게 모두에게 다르게 흐른다는 걸 이제는 정말 믿는다. 어떤 하루는 참 오래 살았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건너뛰어 버리고 말이다. 어쨌거나 나라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적당히 채우는 것과 그걸 꼼꼼하게 잘 쓰는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서는 내가 마치 휴대폰이나 자동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단순한 느낌은 외려 신비로운 기분을 돋운다.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나는 가득 찬다. 어쩌면 4시부터 8시까지 또 열심히 움직여 다음 날 점심 때의 여유를 빚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면 바쁘고 어쩔 땐 지겨운 반복. 그런데 마음만은 어째서 떨릴까. 창문을 열면 바람이 제자리를 찾아 불어오고 완두가 또 짖는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