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놓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김나훔·안성경 — 오어즈

도시에 사는 나는 가끔씩 여유를 찾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충동은 놀랄 만큼 빠르게 사그라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는다. 그건 옳지도 그르지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내 선택이다. 몇 해 전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이주한 나훔 씨와 성경 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에 일었던 물결의 방향을 알고 싶었다. 두 사람이 탄 배가 어디까지 간 건지, 노를 힘차게 젓고 또 놓으면서 어떤 풍경을 둘러보며 사는지도.

서울에서 쉼 없이 노를 젓다가 이곳에 와서 
노를 놓는 순간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알게 됐어요.
남들 가는 방향을 따라 속도를 내기만 하던 과거를 돌아보게 됐죠. 

하나의 여정으로 기억될 시절

오는 길에는 하늘이 흐렸는데 집에 도착하니 맑게 개었네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나훔 저희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에요. 비 오는 것도 운치 있지만 날씨 좋은 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뻐서 꼭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성경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안성경이에요. 강릉에서 남편과 함께 오어즈라는 갤러리 겸 숍을 운영하면서 제품을 만들고, 외주 브랜딩 디자인도 하고 있어요. 

나훔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창작가로 살고 있는 김나훔입니다. 오어즈에서는 포스터나 엽서 등으로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어요. 

 

지난 3월에 모네가 태어났으니 이제 자기소개에 한 아이의 엄마, 아빠라는 설명도 덧붙이셔야겠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나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어요. 사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좀 힘들었는데, 강아지 보뜨까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이겨내고 있어요. 평일에는 스태프분들이 매장을 맡아주시고 주말에는 저 혼자 매장에 나가요. 일상의 대부분을 육아가 차지하니 작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지만, 육아도 제 작업에 뿌리가 될 만한 거대한 경험이라는 걸 느끼면서 마음껏 즐기는 중이에요. 요즘 정말 황홀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성경 저도 지금은 육아가 최우선이에요. 모네를 낳은 지 두 달쯤 되었는데, 이제 간간이 미팅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슬슬 다시 일을 시작해 보려고요. 

 

강릉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나훔 저는 2019년, 아내는 2020년에 내려왔어요. 결혼 전 작은 아파트를 구해 혼자 살았고, 아내가 1년 정도 서울과 강릉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혼하고 이곳에 정착했어요. 

성경 기차 타고 오셔서 아시겠지만 서울에서 강릉까지 생각보다 금방 오갈 수 있거든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모네 태어나기 전에는 정말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나훔 씨의 번아웃이 촉매가 되어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고요. 

나훔 학창 시절을 속초에서 보냈고,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10년 정도 직장 생활과 그림 그리는 일을 병행했어요. 비전공자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꼭 성공해야 한다는 야망을 품고 투쟁하듯 살았죠. 직장은 작업을 이어가기 위한 생계 수단이자 투자라고 생각하며 일했는데, 본업이라고 여긴 작가로서의 삶이 너무 불안정했어요. 어느 순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스스로 묻게 됐고 질문의 방향이 그동안의 삶을 부정하는 쪽으로 흘러가서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던 것 같아요. 그냥 다 멈추고 싶었고, 얼마간은 그림에도 손을 못 대겠더라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어느 날 무작정 베를린으로 떠났어요. 

 

네? 갑자기 베를린이요? 

나훔 네(웃음.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 우울이 정말 깊었어요. 이러고 있어 봤자 나아질 게 없으니, 멀리 떠나서 기술을 배우든 뭘 하든 막연히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한 거예요.

성경 그때의 나훔 씨는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어요. 우울증을 앓는 기간에 저희 관계가 위험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나훔 씨가 그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랐기 때문에 뭘 하든 응원하고 지지해 줬어요. 베를린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동안 저도 이곳저곳 다녀보면서 여행의 힘을 경험했거든요. 나훔 씨도 어디든 다녀오면 훨씬 나아질 거라고 확신했어요. 근데 그게 1년이 될 줄은 몰랐죠(웃음). 처음에는 3개월만 있다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나훔 아, 그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요….

앗, 빨리 넘어갈게요(웃음). 베를린에 있는 동안 좀 나아졌나요? 

나훔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다행히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안정을 찾았어요. 낯선 환경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꼈어요. 불안한 인생도 인생이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도 깨닫게 됐죠. 서울에서와 다르게 여유가 생기면서 그동안 매몰됐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등지에 몇 주씩 머무르면서 본의 아니게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했는데요. 처음 떠나왔을 땐 모아둔 돈을 탕진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일이 끊기지 않아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꼭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베를린에서 보낸 1년이 인생을 완전히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어요. ‘어디에서든 창작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만 잘 지켜낸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이 될 것 같았죠. 가장 밑바닥을 확인하고 나니 그때부터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 1년이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줬군요. 나훔씨가 베를린에 있는 동안 성경 씨는 어떻게 지냈어요? 

성경 저는 계속 직장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고,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았어요. 남자친구랑 떨어져 있으니까 시간이 많아져서 퇴근하면 외주 작업을 했는데, 어느새 월급을 한 푼도 안 써도 될 정도로 일이 늘더라고요. 지속적으로 일을 맡겨 주시는 고정 클라이언트도 생기고요. 나훔 씨를 기다렸다기보다는 제 패턴을 찾아 하루하루 보냈어요. 

 

바뀐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일상을 이어나간 성경 씨도 멋지네요. 따져보면, 나훔 씨 혼자 해외에서 1년을 보내고 돌아와 다시 강릉으로 떠난 거네요? 

나훔 맞아요.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 결국 내가 살아나야 사랑도 우정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게됐고, 스스로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해해 준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해요. 

 

강릉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나훔 강릉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연이 계기가 됐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오늘같이 맑은 날 어머니가 계신 강릉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남는 시간에 경포호를 드라이브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서울 번화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유럽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풍경이었어요. 그 순간 문득 여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면의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제가 어떤 토양에서 자라야 할지 알게 됐는데, 강릉이 그런 곳이었어요. 

 

경 씨는 1년 동안 서울과 강릉을 오가다가 이주를 결심했다고 했죠? 

성경 맞아요. 저는 그전까지 강릉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어요. 나훔 씨가 강릉의 자연을 어필할 때마다 ‘서울에도 나무 많아. 서울에도 좋은 정원 많아.’라면서 방어했어요(웃음). 저는 서울에 사는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그보다 더 자주 강릉에 머무르게 되면서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원래 결혼하면 1년 정도 외국에서 살아보자는 얘기도 했었는데, 결혼할 즈음에 코로나가 터졌고 그때 처음 서울이 갑갑하다고 느꼈어요. 강릉에 있다가 서울로 돌아가면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게 힘들더라고요. 다행히 외주 작업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고민을 덜 수 있었어요. 무턱대고 내려왔으면 아마 자리 잡을 때까지 힘들었을 거예요.

강릉에서의 생활은 두 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나요?

나훔 확실히 살아가는 속도가 달라요. 일도 일상도, 인간관계까지도 좀 더 여유로워졌어요. 물론 서울에서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연락을 자주 해야 한다든지, 모임에 꼭 참여해야 한다든지 하는 부담이 생길 때가 있었어요. 강릉에 내려온 후에는 완전한 단절이 아닌 적당한 거리가 생겼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집에서 10분만 나가도 광활한 자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아요.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는 무조건 나갔어요. 

성경 엉덩이가 들썩거려서 일을 못해요(웃음). 자연에서 노는 재미를 알아버렸거든요. 서울에서는 전시를 보거나 새로 생긴 카페에 가는 게 재미였는데, 지금은 산에서 바다에서 노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주말에는 관광객으로 붐비던 카페도 평일에는 전세 낸 것처럼 즐길 수 있고요. ‘여기 우리 정원이야. 우리 섬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나훔 가끔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엄청 큰 소리로 “이게 공짜라니!” 그러더라고요(웃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즐기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걸 서로 상기시켜 주기도 해요. 

 

제일 자주 가는 곳은 어디예요? 

나훔 테라로사 본점 정원이요. 워낙 유명하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데 평일 아침에 가면 그렇게 한적할 수가 없어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여서 날씨가 좋다 싶으면 아침 8시에 아내를 깨워요. “지금 가야 돼! 하늘이 파래!” 하면서요. 넓은 정원에 커피 한 잔 놓고 앉아 있으면 너무 좋아서 잠이 다 깨요. 바람이 선선한 날, 하늘이 파란 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어요. 

 

저를 초대해 주신 집도 뼈대만 남기고 전부 리모델링하셨죠. 본격적으로 집 짓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완벽한 정착을 위한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성경 이 집을 최종 정착지라고 생각하고 지은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 들어보셔서 알겠지만 저희 둘 다 미래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즉흥적이고 유동적이죠. 비용 부담이 낮아서 더 수월했던 면도 있지만, 집 지을 때도 크게 고민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강릉에 살아봤으니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나훔 결과적으로 잘되기는 했지만 오어즈도 집도 직감적으로 움직인 거거든요. 사실 잘 안될 수도 있는 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집 지을 때도 단정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지금 이 시절도 우리가 통과하는 하나의 여정인 것 같아요. 

 

즉흥적인 성향이 서로 잘 맞나 봐요. 

성경 맞아요. 그래서 좀 위험한 부분도 있는데 그나마 제가 나은 것 같아요. 나훔 씨가 저지르면 제가 수습하는 패턴이랄까요.

나훔 오어즈 매장 계약할 때도 딱 한 군데 보고 결정했거든요. 처음에는 제 그림을 보관할 창고로 사용할 계획이어서 조건이 까다롭지 않기도 했고, 가격과 위치와 전망 모든 게 마음에 들었어요. 다행인 건, 즉흥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직관적인 감도 같이 있다는 거예요. 저희는 하나하나 분석하면 오히려 답을 못 내고 어떤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이나 기운을 보고 선택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호되게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는데요(웃음). 그래도 같이 벌이는 일이니까 뭐 같이 감당하면 되지 않을까요?

흔들려도 여전히 흘러가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주제를 ‘오어즈’로 옮겨볼까요? “노 젓는 사람에게 젓는 것을 멈추고 노를 수평으로 유지하라는 구령”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고요. 

성경 이름을 정하기까지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하나 지어서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짓고를 반복했죠. 지금 말하기엔 부끄러운 후보들이 참 많아요. 조잡스럽고 거창하고(웃음)…. 그러다가 오어즈라는 이름이 ‘짠!’ 하고 떠올랐고, 이거다 싶어서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기분 좋게 결정했어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찾아보니 두 분에게 배가 굉장히 큰 의미인 것 같더라고요. 인생의 중요한 기점마다 빠지지 않고 배가 등장했어요.

나훔 맞아요. 청첩장에도 한배를 타고 노 젓는 저희 모습을 그려 넣었고, 이 집의 설계와 인테리어를 맡은 ‘콩과하’라는 친구들이 ‘보트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어요. 집이 가로로 길쭉하거든요. 오어즈의 이름도 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네요.

성경 그게 다 김반장의 ‘Boat Journey’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것들이에요. 우리 인생이 배와 같다는 내용의 곡인데 첫 소절이 이렇게 시작해요. “왜 나는 구분 지어 살아왔나 일상과 여행.”

왜 나는 구분 지어 살아왔나 일상과 여행
스쳐 지나갈 수 있던 사람이 내 옆에
내 곁에 있을 때
(…)
우리가 함께하는 이 배는 아직은 너무 작아서
흔들리거나 부딪힐 때도 많지만 여전히
흘러 흘러 간다네
(…)
너와 나의 Boat Journey 삶의 결을 따라서
함께하는 이 여행 더 멀리 더 깊이

ᅳ김반장, ‘Boat Journey’

나훔 제가 베를린에서 방황할 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르잖아요. 그 안에서 조금 당황하더라도 배가 뒤집히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말이 너무 큰 힘이 되고 영감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 맥락을 가져오고 있고요. 오어즈 뜻도 비슷한 맥락이죠. 서울에서 쉼 없이 노를 젓다가 이곳에 와서 노를 놓는 순간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알게 됐어요. 남들 가는 방향을 따라 속도를 내기만 하던 과거를 돌아보게 됐죠. 잊고 있었는데 말하다 보니 정말 최고의 이름이네요, 오어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성경 씨도 같은 생각이겠죠? 

성경 그럼요. 저는 오어즈가 가진 뜻 중에 ‘균형’이라는 키워드에 큰 의미를 둬요. 늘 일과 일을 뺀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고 싶어요. 한때는 일에 너무 치우쳐서 퇴근한 뒤에도 계속 일만 했어요. 제 일을 정말 사랑하지만,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니 어느 순간 흥미를 잃었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다행히 오어즈를 시작하면서 저만의 균형을 찾았어요. 디자인을 다시 놀이처럼 재미있게 대할 수 있게 됐고, 애정이 샘솟으니 덩달아 퀄리티도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디자이너인 성경 씨와 작가인 나훔 씨가 둘만의 브랜드를 함께 만들었다는 것도 특별한 의미일 거예요. 오어즈 안에서 일의 기쁨을 새롭게 찾았을 것 같아요. 

성경 클라이언트 잡만 했다면 일이 맡겨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겠지만, 오어즈를 통해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니까요. 사실 처음 매장을 열 때는 갤러리 겸 편집숍을 추구했어요. 나훔 씨 그림과 더불어 제가 판매하고 싶은 물건을 들여왔죠. 그런데 그런 형태를 이어가다 보니 다른 숍들과 차별점이 없더라고요. 같은 물건을 서울에서도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하면 더 싸게 살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굿즈를 디자인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서울에 있을 때 프릳츠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팬층을 두텁게 만드는 굿즈의 힘을 체감했거든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뮤지엄 굿즈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기로 하고, 오직 저희가 제작한 상품으로만 채운 지 꽤 됐어요. 그게 오어즈의 메리트고 자부심이에요. 디자이너로서의 만족도도 훨씬 커졌고요.

나훔 오어즈를 통해 개인적인 게 진짜 창의적인 것이고, 그만큼 호응도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희가 꺼내놓는 이야기들이 ‘안 궁금한 남의 얘기’가 아니라 ‘왠지 궁금한 누군가의 사적인 사연’으로 가닿나 봐요. 이 사람들은 단순히 유행하는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이런 즐거움을 찾았다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저희가 뭘 좋아하는지 들여다보는 일이 늘어났어요. 성경 저희 둘 다 즐거움을 공유하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와인 팔 때는 상품마다 설명을 적기도 했어요. ‘이 와인은 강릉 어느 바다에서 지는 해를 보면서 마셔 보세요.’ 하고요.

그러고 보니 오어즈 유튜브 채널에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시잖아요. 

나훔 사실 유튜브는 보시는 분들이 뭘 좋아할지 고민하면서 야심 차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영상도 직접 만드는 거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생각과 생활, 감상을 옮겨놓으니 어느 순간 우리 색을 띠더라고요. 이제는 구독자를 늘리거나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카이빙에 의미를 둬요. 

성경 오어즈를 강릉의 소품숍이라고만 알고 소개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오어즈가 단순히 가게 이름이 아니라 저희 팀명처럼 비쳤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만의 이야기를 쌓으면서 깊이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야기를 아카이빙하기에 유튜브가 아주 좋은 도구인 것 같아요. 브랜딩 측면에서도 좋고요. 

 

나훔 씨의 유튜브 내레이션 중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무채색 인생을 살았을 거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관계가 좋다고들 하잖아요. 부부로서, 한 팀으로서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나훔 내레이션에 대해 먼저 이야기드리자면, 저는 무채색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제 우울을 누를 수 있었던 건 따뜻한 봄이 아니라 차가운 겨울이었거든요. 어두운 삶도 분명 삶이니까요. 그런데도 그 이야기를 했던 건, 좀 쑥스럽긴 하지만 실제로 성경 씨가 저의 안팎을 밝혀줬기 때문이에요. 단적인 예로 저는 잘 모르는 감도 높은 장소들에 데려가 줬고, 밝은색 옷을 권해줬어요. “이렇게 입는 게 귀여운 거야.”라는 말과 함께요. 저는 칙칙한 색을 좋아했고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성경 씨가 저 자신에 대한 편견을 깨줬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도요. 매사 진중하던 저에게 즐거울 땐 춤도 출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에요. 

성경 저는 말의 힘을 믿거든요. 그래서 웬만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려고 해요. 

나훔 저의 회의적이고 비뚤어진 면을 성경 씨가 평평하게 만들어줬어요. 

성경 반대로 저한테 뾰족함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때는 나훔 씨가 나서줘요. 아, 또 좋은 영향이 있네요. 나훔 씨가 찍은 사진을 올리는 계정이 따로 있는데, 소개 글에 “저지르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적혀 있어요. 덕분에 모험적으로 시도하며 다이내믹하게 살게 됐어요. 강릉 이주도, 오어즈 매장도 나훔 씨가 저질러서 따라온 거니까요. 만약 저 혼자 가게를 차리려고 했다면 완성도 높인다고 오픈까지 한참 걸렸을 거예요. 유튜브도 마찬가지고요. 

나훔 저는 작업이든 공간이든 무언가를 선보일 때면 늘 ‘지금이 최상’이라는 생각을 해요. 완벽을 추구하는 누군가는 “이건 좀 별론데, 이걸 왜 지금 사람들한테 보여주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하면서 고쳐나가는 스타일이에요. 완벽이라는 잣대를 대면 모든 작업물이 미달이기 때문에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이 최상’ 이라고 생각하면서 꺼내놓는 거예요. 

성경 맞아요. 꺼내는 걸 참 잘해요. 

나훔 살아온 방식이 다르지만 오히려 다른 점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고 이끌어줘요. 

 

이번 호 주제가 ‘나들이’예요. 나들이의 사전적 의미는 “집을 떠나 가까운 곳에 잠시 다녀오는 일.”인데요. 나들이와 여행 중 무엇을 선호하나요? 

성경 예전이라면 당연히 여행을 골랐을 텐데, 아기가 생기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나들이도 좋은 선택 같아요. 대신 그냥 나들이는 아니고 경험과 추억을 곁들인 나들이요. 실제로 제가 동네 마실을 나가서도 과거에 다녔던 여행지와 비슷한 점을 잘 찾아내거든요. “여기 돗자리만 펼치면 파리 같아.”라고 하면 정말 파리에 온 것 같아요. 

나훔 강릉에서는 나들이가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육아 때문에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새삼스럽게 나들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가끔 어머니가 두 시간 정도 아이를 봐주시고 바람 쐬고 올 때가 있는데 그게 엄청난 환기가 돼요. 

 

두 분은 여행자이기도, 여행자를 맞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겪어 보았으니 방문객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조금은 다를 것 같아요. 

나훔 여행자들의 눈을 보는 일이 즐거워요. 많은 분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설렘을 발견해요. 저도 여행자일 때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저희가 하는 일의 가치와 보람이 새롭게 느껴져요. 매장에 들어오신 분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보면서 가끔씩 그래요. “여기가 그렇게 좋은가?” (웃음) 여행 중에는 별거 아닌 일에도 들뜨잖아요. 그걸 너무 잘 아니까 계속 여행자 시선에서 생각하게 돼요. 기분 좋게 말 걸기 좋은 타이밍을 보고, 조금 더 친절하게 행동하려고 하죠. 특히 혼자 오신 분을 보면 저 혼자 여행하던 생각이 나서 더 설명해 주고 싶고, 더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싶어져요. 

성경 해외여행 경험을 돌아보면, 저는 동네 작은 숍들, 그곳의 스태프들과 나눈 대화로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강릉을 사랑하는 만큼 여기 오신 분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 스몰토크를 하게 돼요.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인연이 된 손님들도 많아요. 

나훔 강릉에서 사는 건 어떠냐고 묻는 분들도 꽤 있는데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사는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삶 중 하나로 보이고 있다는 게 뿌듯해요. 

성경 저는 평소에 살가운 편이 아니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간단한 인사말도 으레 하는 말이라 생각해서 입 밖으로 낸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가게에 있다 보면 손님들이 먼저 그런 말을 해주실 때가 있어요. 그럼 저도 자연스럽게 “좋은 여행 되세요.” 하는데, 그러면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아져요. 요즘은 더 다정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나훔 저희 두 사람 역시 공간을 구성하는 콘텐츠 중 하나기 때문에 주말에는 꼭 나가 있으려고 해요. 오시는 분들과 호흡하는 게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고민이든 기쁨이든, 요즘 자신을 채우고 있는 게 있다면요?

성경 요즘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기쁨으로 가득해요. 저는 산후조리원에 안 들어가고 바로 집으로 왔는데, 그 2주 동안에도 아이는 정말 많이 자라더라고요. 솜털도 속눈썹도 없었는데 하루하루 달라졌어요.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커요.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니 일적으로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고민도 따라오지만, 기쁨이 걱정을 압도해요.

나훔 저는 처음 강릉 왔을 땐 ‘나 하나 건사하자.’는 생각이었고, 어떻게 보면 혼자만의 즐거움을 따르면서 살았는데, 아내와 결혼하고 공간을 운영하면서 좀 더 대의적인 일들을 고민하게 돼요. 추상적일 수 있지만, 앞으로 모네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동안은 저희가 사는 방식을 다양한 삶의 모양을 이루는 하나의 결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큰 흐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지역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활동한다든지, 오어즈를 좀 더 큰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든지, 나아가서 우리만 생존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즐거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해요. 막상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좀 작아지긴 하지만요. 그런 고민들이 작가로서 역량을 키워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해요.

 

모네가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거네요. 

나훔 네.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삶을 알아서 잘 개척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어른들이 먼저 토대를 다져 놓는다면 더 수월하게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세상에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나 큰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재미있고 소중한 가치들이 많잖아요. 어른으로서, 또 창작가로서 어떻게 하면 그런 목소리를 더 효과적으로 낼 수 있을지 최근 들어 많이 고민해요.

 

20년쯤 뒤에 이 시절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나훔 긴 여행 같은 시절로 남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 하루하루 나들이 했던 장면들이 모여서 거대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쯤에는 그다음 여행을 생각하면서 또 다른 설렘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을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희 모습이 너무 낯설어요. 각자 정체성이 또렷한 두 사람이 오어즈라는 공간에서 합쳐진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나중에 모네가 다 컸을 땐 완전히 다른 챕터가 돼 있을 거예요. 모네는 지금의 모네가 아니고, 저희도 지금의 서툰 엄마 아빠가 아닐 테니까요. 또 새로운 꿈을 꾸지 않을까요?

성경 요즘 산책하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자주 꺼내요. 나중에 분명 힘든 일이 생기겠지만 지금 이 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산다면 그게 힘이 돼서 뭐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막연히 그런 확신이 들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강릉의 자연

1. 숲속집과 메타세콰이아 숲길

쭉 뻗은 메타세콰이아 숲길에 반해서 우연히 들어간 곳이에요. 그런데 바로 앞에 ‘숲속집’이라는 순대국밥집이 있네요? 심지어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에요. 식사 전후에 숲길을 거닐면서 자연을 느끼기에도 좋고 멋진 사진도 건질 수 있어요. 저희 만삭 사진도 여기서 찍었답니다.

2. 송정해변과 강문해변 사이의 소나무숲과 바다

강릉 하면 송정해변이 유명하잖아요. 조금만 더 걸어서 강문해변까지 가 보세요. 두 해변 사이에 나 있는 소나무숲이 정말 멋지거든요. 저희도 바닷길을 따라 펼쳐진 그 길을 자주 걸어요.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없고요.

3. 경포생태저류지

보뜨를 키우고나서부터는 늘 반려동물 동반이 허용되는 곳을 찾아요. 탁 트인 들판에 마음까지 시원해져서 보뜨와 함께 뛰어놀고는 했는데, 요즘 공사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옆쪽에 길이 있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어요. 나중에 모네랑도 같이 가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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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