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드는 마음

프롬

프롬

달의 뒤편으로 와요

2016년 9월, 프롬은 많은 이들을 달의 뒤편으로 초대했다. 숱한 가늠과 깊은 상상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렇게 달로 향하는 티켓을 예매했다. 누군가는 길고 긴 기차를 탔고, 또 누군가는 철제로 만든 우주선을 탔다. 먼 우주로 떠나는 즐거운 휴가가 시작되었다.

달의 뒤편으로 와요
00:04:38

달의 뒤편으로 와요 그댈 숨겨 줄게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둘이서 눈을 감게요
조금 슬퍼지고 비틀대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
달의 숲으로 와 빛을 가져요
보석 같은 두 눈에 눈물이 멈출 거야

가만히 잠든 그대의 머리칼을 넘겨줄게요
아무런 대답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너무 멋질 거야

달의 뒤편으로 와요 그댈 숨겨 줄게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둘이서 눈을 감게요
조금 슬퍼지고 비틀대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
달의 숲으로 와 빛을 가져요
보석 같은 두 눈에 눈물이 멈출 거야

여기서 보는 우리의 푸른 별은
참 아름다워요
바람에 그저 우연히 원하는 걸
찾게 될지도 몰라

달의 뒤편으로 와요 그댈 숨겨 줄게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둘이서 눈을 감게요
조금 슬퍼지고 비틀대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
달의 숲으로 와 빛을 가져요
보석 같은 두 눈에 눈물이 멈출 거야

조금 슬퍼지고 비틀대어도 아무도 모르는 곳
달의 숲으로 와 빛을 가져요
보석 같은 두 눈에 눈물이 멈출 거야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달의 뒤편으로 와요

2016년 9월에 발매된 EP [Erica] 두 번째 이야기인 ‘달의 뒤편으로 와요’는 프롬만의 정체성이 한껏 강조된 독보적인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멜로디와 다정한 가사가 어울려 사람들의 차가운 등을 만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노을 진 저녁,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하릴없이 바라보면서 듣기 좋은 곡이다. 무기력한 어느 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받은 작고 예쁜 초대장 같다.

봄이 오고 있죠?
오늘 느꼈어요. ‘진짜 결국 봄이 왔구나.’ 하고요. 겨우내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봄이 온 것 같아요. 겨우내 앨범 작업만 했거든요. 제가 봄이랑 가을을 잘 타요. 계절이 바뀌는 그 순간을 즐기는 편이어서요. 이번처럼 바쁘면 사실 즐길 새도 없이 갑자기 봄이 와 있어서, 얼떨떨해요. 오늘 미세먼지도 없고, 좋아요.

근래에 새 앨범 [Milan Blue]가 발매되었어요.
저는 변덕이 심하고 인내심이 없는 편이에요. 그래서 지루하지 않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하면서 지내왔어요. 1집 이후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하고 들을 수 있도록 대중성을 신경 쓰면서 작업했는데, 반면 이번 앨범은 그 전에 비해 조금 어렵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으로 전체 제작을 해봤거든요. 제가 시도하고 싶던 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지금까지 앨범 중에서 가장 프롬다운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뮤지션들이 가장 자기답다고 하는 앨범은 대부분 1집이에요. 제가 1집 이후로 이것저것 시도했었는데, 이번 앨범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나요. 그 동안의 많은 경험을 비롯해서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마감 있는 삶을 살고 있는데, 마감 날짜를 지나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오는 거잖아요. 지금밖에 없다는 압박을 받곤 해요. 앨범을 만들 때 이런 기분이 든 적이 있나요?
뮤지션에게 다 같은 숙제일 거예요. 저는 기한을 두는 편인데요, 작업을 하면서 제가 마감이 필요한 유형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데드라인이 있고 나 자신을 채찍질해야 그 시간 안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더라고요. 다행인 건 그나마 책임감이 있어서 그 사이에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완성을 하려고 노력해요. 마음에 안 들면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제한을 둬야겠더라고요. 곡은 평소에 쓰지만 장식하고 편곡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원래부터 꿈이 가수였어요? 어릴 적 프롬이 궁금해요.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가수가 꿈이었어요. 가수라고 해서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창작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생각하는 걸 직접 만들어서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게 기본적인 모토였거든요.

자기표현에 익숙했던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습성이 있던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면서요. 이런 걸 전부 조금씩 좋아했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연극부를 만들어서 발표도 하고, 음악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도 하고요. 만화를 그려서 보여준 적도 있어요. 그땐 그게 하나의 놀이였고 유희였던 거죠.

지금까지 만든 곡들 중 유난히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도 있나요?
항상 있는데, 막상 물어보면 하나를 고르기가 무척 어려워요. 최근에 자주 듣는 곡은 ‘서로의 조각’이에요. 그 전까지의 프롬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지만 제가 해보고 싶은 부분으로 절충한 곡이었어요.

어떤 인터뷰에서 아티스트와 대중성의 간극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말을 보았어요.
사실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있지는 않아요. 되는 대로, 제가 그 시기에 꽂힌 데 집중하는 편이죠. 그런데 1집 이후 평론가들이 저에 관해 좋은 글을 써주고 제 입지가 점점 넓어지면서 팬이 많이 생겼는데, 실질적인 매출이나 수익성으로 직결되지는 않더라고요. 어디선가 저의 음악이 거론되는 것에 비해, 일반인들에겐 아직 낯선 뮤지션이었던 거죠. 그땐 어려서 수익성 이야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자체가 너무 직접적으로 와 닿기도 했어요. 그렇다 보니 “나는 이런 거 상관없어.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할래.”가 전혀 안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조금씩 절충하려고 한 것 같아요. 저도 넓게 팬층을 확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요. ‘리버브Reverberation’라고 울리는 소리를 제가 좋아하는데, 그런 소리를 보컬에 입히면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낯설게 들리는 거예요. 약간 소리가 멀거든요. 일반적으로는 보컬이 앞에 나와 있어요. 바로 귀에 들어오도록요. 

많은 인디 뮤지션이 고민하는 부분일까요?
그런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대부분 본능적으로 자기의 색깔과 방향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어쿠스틱하고 말랑말랑해서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듣는 음악이 자기만의 감성인 사람이 있고요, 또 조금 매니악한 가수들을 보면 자기 타협이나 절충이 안 되는데, 그래야만 마음 편해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장르별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차이에 관한 인지가 더 탄탄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야 대중적이어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와해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대중적이라고 해서 예술적이지 않은 게 아니고, 자기 색깔이 진하다고 해서 대중적이지 않은 게 아니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그 사이의 절충을 말할 때 억지로 참고 헌신하는 개념은 아니에요. 노래를 부를 때 이런 방향으로 가면 청중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쉽게 들릴 수 있겠다, 생각하는 거죠.

프롬의 노래를 말할 때 음색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프롬도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사랑하는데 원래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아니었어요. 20대 초반까지 남들과 비교해서 평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남들에 비해 내가 뛰어난 부분은 자르고, 안 되는 부분은 감추려고 하면서요. 내가 원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했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창작자이기 때문에 나의 독보적인 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내가 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나를 향한 애착이 넓어진 것 같아요.

예술은 기준이 없다 보니 수많은 시선과 기준 사이에 자기 확신을 갖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정확해져야 더 단단해져요.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됐나요?
이게 어려운 건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를 고착해야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소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속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달도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 만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과 이야기가 자신을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빛을 발하면서요.

앨범을 내고 데뷔를 하고 드라마 OST 작업도 하고 콘서트도 했어요. 그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죠.
무척 고맙고 감사해요. 사실 뮤지션들 중에서 다음이 이어지지 않고 음악만으로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운 이들이 많이 있거든요. 다음 일을 이어나갈 수 있고,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예술가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H.O.T편’을 보는데, 진짜 팬이 이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H.O.T가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리고 지금 재결합 무대까지 꾸리게 된 건 모두 팬 덕분 같았거든요.
저도 초등학교 때 한창 열병을 앓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땐 그런 게 공기 같았어요. 신드롬이었죠. 숨만 쉬면 그들을 볼 수 있었고 어디든지 그들이 있었어요. 그런 시대였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지나왔는데, ‘캔디’를 듣는 것만으로 초등학교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내 노래가 그런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비슷한 생각도 해요.

쉴 땐 뭐하며 지내요? 빈 시간을 채우는 방법이 있나요?
혼자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라고 묻는데 저는 집순이라 정말 뒹굴뒹굴하면서 집에만 있어요. 그래도 바빠요. 약속 있으면 “아 오늘은 딱 누워있는 각인데(웃음).” 하면서 수십 번 취소할까 말까 고민해요. 친구들 만나 놀면서 평범하게 보내고, 또 시간이 되면 여행도 가려고 하고요.

최근에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나요?
작년 4월부터 9월까지 계속 해외에 나가 있었어요. 거의 여행의 신이 저에게 깃든 것처럼요. 역마살이 정말 제대로 든 거죠. 도쿄에 뮤직 비디오 촬영하러 갔다가, 쿠바에 가게 되고요.

쿠바요? 저도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독특한 색채가 있는 곳이죠. 인터넷도 안 되니까 모든 게 아날로그적이기도 하고요. 사람들도 무척 즐거워 보여요. 그렇게 쿠바에 있다가 영국으로 넘어갔어요.

쿠바에서 영국이라니, 조금 뜬금없네요.
모두 일 때문에 간 거였어요. 영국은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 피터팬 컴플렉스가 가게 됐는데, 제가 피처링한 곡이 있어서 저도 함께 간 거예요. 그 뒤로 아이슬란드에서 밀라노를 갔다가 대만도 가고요. 중요한 건 모두 일정이 있어서였어요. 제 돈 주고 간 게 아니고요(웃음).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건데, 그 환경이 영감을 주기도 하나요?
직접 경험한다고 해서 그게 바로 가사나 멜로디가 되지는 않아요. 그런 게 쌓여있다가 꺼내질 때가 있기는 하죠. 이번 싱글 앨범 제목이 ‘Milan Blue’잖아요. 그날 밀라노의 하늘 색깔에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날의 색깔을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베를린 블루’, ‘미드나잇 블루’라는 색도 있는데 ‘밀란 블루’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부르기로 한 거죠. 밀라노에서 본 파란색을 베를린 블루라고 지으면 좀 이질적이잖아요(웃음).

저는 락 페스티벌(이하 락페)을 무척 좋아해요. 락페 특유의 느낌이 있잖아요. 이렇게 공통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디서 갑자기 모여들었을까, 싶거든요. 왠지 모두 귀여워요.
락페의 에너지가 무척 좋아요. 특히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흥이 무척 좋아요. 이렇게 잘 노는 사람들이 맨날 야근하고 직장에 매여있는 게 안타까워 보이기도 해요. 내한 공연만 봐도 다 함께 어울려 떼창을 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도 미리 잘 알아보고 오잖아요. 그 기호나 열정이 어느 나라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아요. 늘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고삐가 풀릴 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영국에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도 갔다고 하셨죠.
글라스톤베리 분위기는 우리하고 조금 달라요. 조금 더 열린 느낌이랄까요?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쉬러 오는 거니까 도심과 가까워야 하고, 기업이 함께 준비하는 페스티벌이니까 체계적이고, 어떤 부분이 맘에 들지 않으면 컴플레인도 제기할 수 있어요. 근데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경우, 일단 그곳에 가는 것부터가 비행기를 타고 먼 시골에 가야 하니까, 아예 마음먹고 쉬러 오는 거예요. 화장실도 푸세식이죠. 정말 다 떨어져 있어요. 음… 그 밑에 오물들이요. 그런데 그냥 맨발로 들어가요. 그런 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거죠. 그리고 모두 텐트를 가지고 와요. 이 사람들은 영혼의 뼈 마디마디까지 놓아버리는 느낌이에요. 즐기는 경계가 다른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게 아주 오랫동안 그들에게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간 본연의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인간 자체로 음악을 즐기는 거잖아요.
맞아요, 정말 원시적인 때로 돌아가는 거예요. 거의 태어난 직후의 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메인 스테이지에 라디오 헤드가 와도 꽉 껴서 밀치는 일이 없어요. 모두 춤추고 놀기 바쁘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앞으로 나갈 수도 있어요. 약 20만 명 정도가 모여든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면 도시 아니에요?
하나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 부근이 모두 가축 목장이어서 여기저기 오물 냄새가 나기도 해요. 그런데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놀아요. 흙이 돼서 노는 것만 같았어요.

한국 사회는 소장 문화가 깊지 않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등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데 인색하기도 하고요.
이런 글을 본 적도 있어요. 카페에서 음악을 틀면 저작권료를 징수하는데, 한 달에 2만원 정도를 내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댓글에 이미 플레이 이용권 비용을 내고 있는데 그것도 내야 하냐는 말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사실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백 원, 이백 원 정도거든요. 반면에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굿즈 같은 걸 꾸준히 원해요.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음반 시장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해요. 저도 정확히 몰랐는데, 스트리밍 한 번 하면 가수한테 0.02원이 돌아온대요.

그 정도면 할푼리 아니에요? 2푼….
진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유통사와 제작자가 대부분 가져가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달에 이미 7~8천원을 내고 있는데 내가 왜 또 돈을 내야 하냐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돈이 창작자한테 안 돌아오는 게 문제인 거잖아요. 창작자가 힘들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 음원 사업은 벨소리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벨소리를 판매하다가 음원화된 거죠. 3대 통신사가 벨소리 시장을 독과점했고, 이 흐름을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거예요. 이런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만 있는데 정작 그들은 이 체계를 바꿀 이유가 없죠. 큰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까요. 법적인 제제가 없으면 바뀌진 않을 거예요. 

프롬의 앨범에서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달의 뒤편으로 부르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이름을 얘기해야 하나요(웃음)? 사실 그 노래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다들 늘 힘들어하니까요. 제가 예술을 늦게 시작한 편이고 학교도 그 분야로 나오지 않아서 주변에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예술 하는 사람들이 우울을 직접 대면할지언정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이라면,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은 거기에 억눌리면 무척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벗어나는 게 어려우니까요.

예전에 아일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프롬의 ‘너와 나의’만 내내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너와 나의’를 들으면 아일랜드가 떠올라요. 프롬에게도 어떤 공간이 떠오르는 노래가 있나요?
제가 스물여덟 살 때 처음 유럽에 갔어요. 스위스와 파리를 갔죠. 그때 파이스트Feist의 ‘Mushaboom’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 노래를 들으면 파리 중심에 있던 날의 기분이 떠올라요. 작년에는 제가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뮤Mew’, ‘시규어 로스Sigur Ros’ 노래를 엄청 들으면서 다녔거든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First Step’도요. 이 노래들을 들으면 빙하를 보면서 한창 달려가던, 그 스산한 기괴함을 마주하는 것 같아요.

몽환적인 노래 분위기 때문에, “우주가 음악이 된다면 이런 노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티스트는 결국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프롬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부유하고 있고요. 그 관찰 방식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그런 게 콤플렉스인 적도 있었어요. 제가 워낙 연민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항상 그늘에 있는 게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해가 나오면 해가 비추는 꽃을 보기 마련인데 저는 꼭 그늘에 있는 풀을 보는 거죠. 사서 힘들어하는 스타일 있잖아요. 외로움은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거라지만, 존재의 외로움은 늘 고민해온 것 같아요.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인 것 같기도 했고요. 동물에 관한 시선도 그래요. 많은 분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 아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완전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항상 힘들었어요. 제가 외향적이고 밝고 웃긴 사람이더라도 내면적으로 우울을 알고 있고, 앓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에 절절히 마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다면 이제는 조금 거리를 두고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해요. 모든 걸 들춰볼 생각은 하지 않는 거죠. 비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을 통제하면서 행동하는 게 필요하니까요.

프롬의 노래로 제 마음이 보호받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교감을 한 거잖아요. 감상을 하는 사람은 그런 걸 느끼는데, 보내는 사람도 느낄까 궁금해요.
생각보다 팬분들이 직접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고 표현도 잘 해주세요. 저는 어떤 누군가의 작업이 좋다고 해서 선뜻 손을 내미는 편은 아닌데 직접 생각을 표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직접 공연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죠.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제 노래로 어떤 시간을 버텼다는 말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이야말로 어떤 미사여구 없이도 가장 좋은 말 같아요. 제가 그들을 직접 받쳐준 건 아니지만, 제 노래가 기여를 했다는 게 무척 뿌듯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 이런 시리즈 질문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첫 번째 답변자이기도 한데요, “이 세상엔 000이 너무나 많아!”라는 말의 빈칸을 채워주세요.
세상엔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이 너무 많다! 누군가의 걱정과 사회적 잣대에 기준을 둔 염려 때문에 가끔은 자신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려고 해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누려야 할 것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 널려있으니 소소한 일들로 영혼을 성장시키며 하루하루 열심히 최대한 쾌락하며 살아보려고요.

한때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밤을 가득 채운 적이 있었다. 입시 학원에서 콩나물 시루처럼 시든 아이들에게 억지로 힘을 빌려주며 영어를 가르쳤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간이었고, 이렇게 지나간 오늘의 개수가 얼마나 되었을까 까마득했다. 그즈음 프롬을 만났고, 그녀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들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노래에 대해 얼마나 멋지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선택한 문장도 단어도 아니다. 다만, 유일하게 단언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토록 어두웠던 시기를 탄탄히 보호해준 것은 그녀의 노래였다는 것이다. 만일 삐거덕거리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기꺼이 프롬의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의 뒤편으로 향해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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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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