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드는 마음

뱃사공

뱃사공

출항사

 

스무 살 무렵의 뱃사공을 본 적이 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박자를 잘 타는 아이였는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 힙합신에서 그 특유의 취한 듯 느릿한 스타일로 무대를 장악하는 래퍼가 됐다. <쇼미더머니> 화려한 무대 밖에서 묵묵히 노를 젓는 뱃사람의 종착지는 어딜까?

출항사
00:03:18

아무도 없는 외딴섬
뱃사람 하나 배 한 척
난 뱃노래를 부를 때면
괜찮아 날 몰라준 세상도
두 발로 뛰는 마라톤에
누군 차를 끌고 멀리 내달려
구멍 난 닻과 맘을 꿰어가며
나 또한 인간인지라 아 조금 배 아퍼

가난을 노래해도 내 맘은
떼부자면 돼 두꺼운 희망을 덮고
낭만을 베고 자면 돼
겨울 되면 춥고 여름 되면 물론 뜨겁지
섭리대로 살면 대체 무엇이 부럽지
집에 오면 나를 반겨주는 코시
행복은 여기도 많어 좋은 기운을 담아
이 노래에다가 내 앨범이 나와 

근데 그 제목이 말야 뭐냐고? 출항사
그래 난 출항만 할 거 없지 우왕좌왕
이것은 붐뱁 클리어는 미안함
난 존나 힙합 하고 걍 쇠고랑 차
고집쟁이들을 위해 노를 저

난 네가 느낀다면 외롭지 않아 조금도
울려라 뱃고동 다됐지 녹음도
메마른 네 고막에다가 한 모금 줘
리짓군즈호는 수면 위 소문이 많이 났지
만족 않지 개개인 세질 때까지 갈고 닦지
뱃사공 말고 아무것도 아니 달고 왔지
확실히 다른 달라는 날 말하는 답변 맞지
얼쑤 요샌 배달 일해 맥도날드
퇴근길에 얻은 몇 소절
이것만큼 값진 것이 없어
이젠 가봐야 해 배 몰러

파도야 나를 태워 저 멀리 나를 데려가
뱃길은 막힐 리 없네 다 헐벗고 헤어 나와

잃을게 없는 놈 뱃사공 그래 이건 잃을 게 없는
모험이야 뱃길에 막을 알려 뱃길에 막을 알려

뱃사공은 2013년, 야밤그루브 [야광]으로 힙합신에 처음 모습을 보인 래퍼다. 이후 리짓군즈 크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5년 정규앨범 [출항사]를 발표했다. 타이틀 곡 ‘출항사’는 래퍼로서 뱃사공의 첫 번째 포부를 출항에 비유해 이야기하는 곡이다.

‘노래를 만드는 마음’에 힙합 뮤지션을 소개하는 건 처음이에요. 《어라운드》를 알고 있나요?
《어라운드》 몰라요. 원래 잡지를 잘 안 봐서. 아는 건 《맥심Maxim》 정도?음,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별 느낌 없었겠네요?

억지로 짜내서 만들면 감회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거짓말인 것 같고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왔어요. 죄송해요. 제가 유식한 얘긴 잘 못 해요.

아니에요. 기대했던 대로예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뱃사공이고요. 2015년에 [출항사]라는 첫 정규 앨범을 냈고, ‘리짓군즈Legit Goons’라는 크루에서도 두 장의 앨범을 냈어요. 앞에서 소개해주신 것처럼 힙합 뮤지션인데,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흑인 힙합보다는 조금 더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적인 정서가 뭔가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제 태도와 관련된 건데요. 일단 제가 흑인이 아니고 흑인의 삶을 살지 않았는데 그걸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정서적 괴리를 느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형식적으로 힘을 주는 것보다는 제가 살아온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곧 한국적인 정서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 거죠.

한국 힙합이라고 하면 1990년대, 흔히 1세대라고 말하는 홍대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 떠올라요. 그걸 이어간다는 의미인가요?
힙합 안에서도 다양한 비트가 있는데, 요즘 유행인 트랩Trap이나 멈블Mumble을 하지 않고 예전의 붐뱁Boom Bap 스타일을 이어가면 조금 더 한국적이지 않은가 스스로 착각했던 거예요. 하지만 붐뱁 역시 1세대 래퍼들이 흑인의 음악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 힙합이라는 말은 맞지 않죠. 그런 형식적인 건 이제는 제게 중요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요.

래퍼로서 리얼과 정통을 논하는 시기는 지난 거네요.
그런 셈이죠. 제 자신이 리얼 힙합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가, 뱃사공 자체의 이야기를 하는 게 지금은 편안해졌어요.

자, 그럼 뱃사공의 이야기를 담은 ‘출항사’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떤 곡인가요?
‘출항사’는 정규 1집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 곡이에요. 처음에는 인트로 곡으로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전달됐다고 생각해서 타이틀로 정했어요. 다른 가사와 달리 비유를 많이 사용했어요. 외딴 섬, 노래 하나, 뱃사람과 배 한 척.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작업하는 제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노래를 만들 당시에 택배 상하차 일과 롯데리아 배달을 병행했는데, 퇴근하고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좋았거든요. 그 마음을 담은 거죠.

자신을 뱃사람에 비유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혹시 어부가 꿈이었어요?
아뇨. 저는 수영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 배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단순히 물에서 흘러가는 이미지가 좋아서 지은 거예요.

첫 앨범인 데다 제목도 ‘출항사’여서 굉장한 포부를 기대했는데,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의외로 차분한 느낌이에요. 범선이 아니라 나룻배 느낌이랄까.
평소 성격이 좀 무던한 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시 음악을 만들 때는 제 안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면 화를 내곤 했어요. 힙합을 수호하는 척 억지로 행동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뭘 수호하고 있지?’ 스스로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다 내려놓은 상태로 나온 곡이라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확실히 요즘 유행하는 빠르고 트렌디한 힙합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여요. 듣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음악보다는 맥주 한 병 들고 천천히 흔들게 만드는 음악요.
트렌드를 무시하고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저 그게 저의 방법인 것 같아요. 유행에 따라 옷을 사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옷을 계속해서 입는 것과 같은 거죠. 애초에 빠른 음악보다는 이런 비트를 선호하기도 하고요.

방송에 비치는 래퍼들은 흔히 외제 차가 몇 대인지, 얼마를 벌었는지, 블링블링 금은보화,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요. 그런데 뱃사공은 오히려 자신의 가난을 노래하고, 패스트푸드 알바 하고, 돈 없어서 신발도 팔았고, 그런 이야기들을 주로 하는 것 같아요.
이유는 하나예요. 돈이 없으니까. 허세 부리는 건 제 성격상 안 되고, 기본적으로 이 앨범 자체가 힙합을 대변하기보다는 제 자신을 말하기 위한 앨범이기 때문이에요. 하나 더 얘길 보태자면 저는 솔직히 돈이나 외제 차 이야기하는 래퍼들이 절대로 구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돈 벌면 그런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죠(웃음). 하지만 포인트는 이거예요. 돈 자랑을 하더라도 조금 참신한 방법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 ‘이번 달에 통장에 몇 억 찍었고, 다음 달엔 얼마 더 벌 거야. 다 써버리고 내일 또 벌 거야.’ 그런 표현들이 이제는 식상한 가사가 된 거죠. 제가 돈을 벌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저라면 ‘롤렉스 살 돈으로 빈티지숍 사버릴 거야.’ 아니면 ‘돈 벌어서 유기견 센터에 기부할 거야.’라는 식으로 표현할 거 같아요.

하긴 일부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힙합에서 돈 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 주제에 집중하는 음악이잖아요?
헤비메탈이 다 때려 부수고, 발라드가 주구장창 이별 노래만 하듯, 그런 허세 역시 힙합의 중요한 요소라는 거죠. 힙합에서 사랑과 이별,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돼요. 굳이 힙합이라는 장르를 하면서 다른 가면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주제는 같아도 다른 방식의 표현을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인 거죠.

돈 얘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들어가볼게요. 음악으로 한 달에 얼마를 벌어요?
음, 뱃사공 음원 수입은 한 달에 5만원 이상이 돼야 입금이 되는데, 3만원이 찍히면 그게 이월돼서, 두 달에 6만원 정도를 버는 식이죠. 가끔 리짓군즈의 공연이 잡히면 멤버마다 나눠 갖는데, 그마저도 큰 수입은 안 되고요. 그래서 알바를 하고 있어요.

보통 음악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해요?
앨범을 내려면 큰돈이 들 테지만, 일단 공동으로 생활하는 스튜디오가 있으니까 평소에는 차비와 밥값을 합쳐서 한 달에 20만원 정도면 생활할 수 있죠. 일주일에 한 번 건물 청소 일을 하고, 힙플 라디오 방송을 하며 들어오는 돈을 합치면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번다고 보면 돼요. 시간을 들여서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음악을 더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잠깐만, 그런데 50만원 액수를 얘기하는 게 너무 구질구질해 보일까요? 솔직한 건 상관없는데 안타까워 보이고 그런 건 싫거든요. 오죽하면 SNS로 국밥 사준다는 얘기까지 들은 적도 있어요. 아, 됐다. 그냥 써주세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나, 혹은 요즘 방송에서 유명해진 다른 래퍼들을 보면 부럽지 않아요?
제 성격상 남을 부러워하고 그런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남들이 잘나가고 돈도 많이 벌고 하는 모습들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서 평온한데, 한편 그런 성격 때문에 조금 더 타이트하게 저를 압박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자신을 압박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뱃사공과 리짓군즈 두 개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리짓군즈는 어떤 개념인가요?
뱃사공은 말 그대로 래퍼로서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고요. 리짓군즈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함께 활동하고 노는 크루예요. 저를 포함해서 블랭타임, 제이호, 재달, 비트 메이커로는 코드 쿤스트, 아이딜, 어센틱, 빅라이트, 요시. 아, 너무 많네. 사진 찍는 이동건, 영상 찍는 권오준, 카키, 음악을 하진 않지만 같이 노는 해파리와 최준환이라는 친구도 있고요. 한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나고 들어올 수 있는 자유로운 관계라고 할 수 있죠.

래퍼 넉살이 라디오 방송에서 리짓군즈를 ‘한국 유일무이의 빈티지 크루’라고 소개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넉살이 농담 삼아 말을 던진 건데, 그냥 서로 옷 입는 취향이나 행동하는 것들에 빈티지한 성향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를 빈티지스럽게 찍기도 했고요. 하지만 늘 그런 음악 안에 가둬두진 않아요.

뱃사공과 리짓군즈의 음악을 비교하자면요?
뱃사공의 음악은 조금 컨트리한 분위기와 밴드적인 느낌이 있어요.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 산울림이나 사랑과 평화 같은 밴드의 한국적 정서와 닮았다고 할까요. 그걸 힙합으로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 중이고요. 리짓군즈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는 놀이터 같아요. 색깔이 없는 게 색깔이에요. 어떤 건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어떤 건 붐뱁, 또 어떤 건 키치한 트랩 느낌도 있고요. 심각하게 곡을 만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장난치며 재미있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출항한 지 3년이 지났어요. 아직 끝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지만, 뱃사공의 배가 마지막으로 닿을 지점은 어딘가요?
미래에 대해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에요. 최종 목표를 생각하기보다는 졸리면 자고, 눈 뜨면 살아요. 일어나서 어제 하다 멈춘 걸 이어서 하고 완성되면 내놓죠. 밥 먹고 세수하듯이 음악 해요. 하지만 어제 묻은 비누를 닦는 게 아니고 매일매일 새로운 메이킹을 하니까 훨씬 재미있죠. 

매일매일 흘러가듯 항해할 뿐이다.
원래 큰 야망이나 포부를 품는 성격이 아니에요. 물론 사람들의 환호가 있으면 좋죠. 하지만 아주 큰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미 제가 만든 꿈속에 살고 있어요. 음악 하는 사람요. 남들은 제가 저녁으로 매일 편의점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먹는다고 가엾게 여기는데, 저는 단 한 번도, 0.1초도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다이어트도 돼요. 너무 불편하지도, 미친 듯 행복하지도 않은 상태. 물론 직업이니까 스트레스도 받겠지만 지금이 좋아요.

오래했으면 좋겠어요.
감 떨어지면 그만둬야죠. 그게 몇 년 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즐겁게 음악 하는 거고요.

뱃사공을 만나기 전 ‘출항사’를 백 번쯤 들었다. 지코나 도끼만큼 화려하거나 신나지 않아서 그냥 틀어만 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거리게 됐다. 너무 아래로, 또는 너무 위로 솟아오르지 않는 보통의 리듬감. 그건 아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 같아서 오래 귀를 담가도 부담이 없었다. 백 번을 들어도 괜찮은 노래라는 것. 뱃사공이 그의 속도대로 아주 오래 항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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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