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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휘
이민휘
빌린 입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울부짖으며 청중을 불편하게 만들던 밴드가 있었다. ‘이상하다’라는 말 외에는 딱히 설명하기 힘든 무대. 그때 그 이상했던 소녀 중 하나가 이번엔 한결 수상한 목소리로 빌려온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다.
빌린 입 Borrowed Tongue
00:04:23
그대 말할 수 없는 것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고개 돌리면서
그대 말할 수 없는 것만 말하지
입 나만 여닫을 수 있다는 듯
해소되지 않는 침묵과 발 밑의 숫자들
여기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는데
해소되지 않는 침묵과 발 밑의 숫자들
여기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는데
그대 들을 수 없는 것
듣는 사람들로부터는 고개 돌리면서
그대 침묵 속에 들었다 생각하지
귀 나만 열어둘 수 있다는 듯
해소되지 않는 침묵과 발 밑의 숫자들
여기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는데
해소되지 않는 침묵과 발 밑의 숫자들
여기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는데
아 이제
내가 말할게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다고
2016년 11월에 발매된 [빌린 입]은 지난 7년간 품어온 한 개인의 질문을 여덟 개의 이야기로 묶은 이민휘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이다. 타이틀곡 ‘빌린 입Borrowed Tongue’은 입과 귀의 무용함, 굳게 닫힌 침묵에 대한 고백적인 노래로, 이민휘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안개로 가득한 숲을 연상케 한다. [빌린 입]은 이듬해인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으로 선정되었
이민휘라는 이름보다는 만수라는 별명으로 더 먼저 알려졌죠. ‘무키무키만만수(무키와 만수가 함께 만든 2인조 밴드)’ 이후 [빌린 입]을 내놓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해요.
밴드 활동을 마무리한 시점과 학부가 끝난 시점이 비슷하게 겹쳤어요. 그즈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공부를 핑계로 외국에 2년 정도 도망쳐 있었어요. 딱히 공부에 취미가 있는 편은 아니라 일정이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지금은 파리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어요. 틈틈이 미술이나 영화 등 다른 작업에 음악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사실 앨범을 듣고 이름을 검색했을 때 조금 놀랐어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이전까지의 음악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빌린 입]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어디에 속하나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빌린 입]이 포크로 구분되는 이유엔 제가 이 앨범에서 쓴 악기들이 대부분 어쿠스틱이고 기타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 것 같은데, 음악적인 구성을 먼저 생각하고 만든 앨범이 아니라서 주저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잖아요. 포크 음악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평가가 있어요. 외연을 넓혔다는 건 기존의 구심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장르를 소화한다는 의미 같은데, 그 평가에 동의하나요?
포크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처음부터 범위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마 위에서 말한 장르에 관한 이야기와 연관이 있을 텐데, [빌린 입]은 음악적인 구성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악기 편성이나 멜로디, 화성 등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머물러 있어요.
무키무키만만수의 장르 파괴적 시도와 이민휘의 솔로 앨범이 가진 접점이 어느 정도 가늠이 돼요. 둘 사이 공통점이 있다면요?
무키무키만만수도 그렇고, 솔로 작업도 그렇고 장르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를 파괴했다는 평을 듣게 된 것 같아요(솔직히 말해 장르는 저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에요).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자면, 무키무키만만수 때는 하기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찾았고, 개인 작업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아요.
2012년 무키무키만만수가 ‘우당탕탕’한 느낌의 똘끼(?)로 충만했다면, 2016년의 이민휘는 훨씬 정돈된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져요.
[빌린 입]은 훨씬 귀가 편한 음악인 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사실 저에게 과분해요.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누군가 주의 깊게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지거든요. 저 자신만 해도 [빌린 입]을 들을 때의 느낌이 항상 바뀌어요. 어떨 때는 참 약아빠졌다 싶기도 하고, (보통 술 마실 때) 말도 안 되게 슬플 때도 있고, 웃겨서 헛웃음이 날 때도 있고, 그래도 잘 만든 구석이 있구나 싶을 때도 있고, 무식하다 싶을 때도 있고요. 얼마 전에 친구에게도 한 이야기인데, 저는 제가 만든 음악을 거의 다시 안 듣거든요. 그런데 [빌린 입]은 가끔 들어요. 저나 다른 사람들이 가끔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든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제가 느낀 그로테스크함은 앨범 커버 사진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육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붉은 고기를 손질하는 이미지였죠.
2010년 정도에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그때 수업 과제용으로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어쩔 수 없이 말해야만 하는 것, 말해야 함에도 하지 않는 것, 말해봤자 안 하느니만 못한 것, 말이 할 수 없는 것 등의 메시지, 즉 앨범이 다루고 있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를 이 사진이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너무 투박하고 직접적인 접근이라 유치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스무 살부터 거의 7년간의 이야기를 모은 앨범이라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느껴졌어요. 어릴 때 이런 거 안 해보면 언제 다시 해보겠나, 하는 느낌으로요(웃음).
노래 ‘빌린 입’의 가사를 보면 입과 귀, 침묵 같은, 타인과의 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에 대해 말하는 듯 보여요.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말해줄 수 있나요?
예전부터 제 관심은 언어와 음악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에 그 둘은 계속해서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에서 아주 많이 닮아 있거든요. (또 서로를 닮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빌린 입’이라는 비겁한 제목도 그런 고민에 닿아있어요. 가사에 나오는 상징들은 꼭 타인과의 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체적인 대상에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섞여있는 것은 맞아요. 얼마 전에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빌린 입] 앨범에서 처음 쓴 곡부터 가장 최근에 쓴 곡의 순서로(앨범의 곡 순서는 아닙니다), 말하는 상대가 타인에서 저로 변하고 있더라고요. (앨범에서 가장 먼저 쓴 곡은 ‘빌린 입’이고, 가장 나중에 쓴 곡은 ‘부은 발’이에요.)
당시에 어떤 감정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예전에는 누구랑 막 싸우고 싶었어요. 화가 나서 욕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서 나쁜 이야기를 막 쓰고, 사람들과 길에서 고래고래 싸우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렇게 투쟁하는 관계가 건강하고, 진실하고,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조금은 포기를 받아들이고, 문제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가사에 다 드러나요.
어떤 노래는 조금 더 선명한 가사를 가진 반면 [빌린 입]은 하나의 그림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같은 노래를 들어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를 것 같다는 의미로요.
제가 자꾸 도망쳐서 그럴 거예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저는 가사 쓰는 게 너무 두렵고 힘들어요. 그래서 자꾸 에둘러 가고, 고유명사도 못 쓰고요. 저에게 구체성을 가지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다 드러나게 이야기하기 너무 부끄럽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만이 하려는 이야기에 다가가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또 그런데도 누가 들어는 줬으면 싶고, 그런 생각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겨우겨우 어느 ‘타협이 되는 곳’을 찾아서 가사를 쓰기 때문에 음악을 들어보신 분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저로서는 다행이에요.
위의 질문에 이어서 물어볼게요. 노래를 만들 때 시작점이 궁금해요. 처음 음악이 어떻게 ‘발생’하나요?
개인 작업은 제 안에서 생기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식으로, 또 그 이야기를 음악이라는 미디엄을 통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게 되어서, 음악 먼저 쓰게 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사의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저는 어떤 서사를 우선 만들어야 음악을 쓸 수 있거든요. 요새는 밖에서 무언가를 찾는 시간보다 제 머릿속의 생각을 좇는 데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요. 취향도 변하지 않고 그냥 계속 머물러 있어서, 읽던 작가의 작품만 계속 읽고, 좋아하던 감독의 영화만 계속 보고요. 예전엔 누군가의 작업에 크게 영향을 받고 충격도 받고 그랬는데, 이제는 뭘 봐도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고 그걸 좇는 게 더 재미있어요. 한동안은 다른 사람의 새로운 작업을 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제 머릿속의 소리만 듣기에도 벅차고 바쁜데, 다른 사람의 새 작업을 보면 머릿속이 공사판이 된 것처럼 시끄러워졌으니까요. 그런데 또 아주 최근에는 사람이나 작업이나 외부의 자극이 없이는 제 안에서 촉발될 수 없는 질문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엇보다 이 먼 데까지 오기도 했고요) 이제는 바깥바람도 쐬고 사람들 만나고 몸을 좀 움직여 보려고요.
다음 작업이 어떻게 나올지 굉장히 궁금해요.
[빌린 입]을 낸 지 딱 1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다른 사람 작업에 음악 만들어준 적은 있어도 제 개인 작업은 정말 하나도 한 게 없어요. 아직 다음 이야기를 제 안에서 못 찾은 것 같은데, 곧 무언가 찾아오지 않을까. 요새 약간 그런 기분이기도 하고요.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그 와중에 계속 다른 작업들에 음악으로 참여는 하게 될 것 같고, 개인 작업은 질문이 생길 때까지는 제가 가사를 쓰지 않고 (무언가를) 받아쓰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언젠가 무언가 나오면 이런 걸 얘기했던 거구나, 알게 되실 거예요.
다음 노래에서 던질 질문은 정했나요?
계속해서 언어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은 확실한데, 구체적인 질문은 제 안에서 아직 찾고 있어요. 빨리 찾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민휘의 가사에 대해, 단어가 가진 함의에 대해, 그녀의 음악을 감싼 독하고 희미한 공기에 대해 조금은 집요한 대화를 나눴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하나의 단순한 표정을 짓게 된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좁아지고 입술을 단단히 다물게 되는 것. 어떤 복받치는 감정을 참기 위해 애쓰는 얼굴이 된다. 그걸 슬픔이라고 에둘러 말할 수도 있고, 절망과 우울이라고 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 안에는 왠지 모를 나른함도 함께 떠밀려온다.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손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