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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엔 먹어도 닳지 않는 사탕이 열 개 박혀있다
내 몸에 캔디
손가락엔 먹어도 닳지 않는 사탕이 열 개 박혀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꼬마의 입가엔 울긋불긋한 색소가 묻어있었다. 매일 밤 사탕을 물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사탕을 물고 잠들면 매번 달콤한 꿈을 꾸었다. 매일 밤 사탕이 바뀌면 꿈도 사탕에 맞게 바뀌었다. 꿈의 내용은 비밀이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방에서 풍겨오는 사탕의 향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이 오면 아이가 자고 일어난 침대에서도 달달한 향기가 진동했다.
손가락엔 먹어도 먹어도 닳지 않는 사탕이 열 개 박혀있다. 사람들은 손가락에 박힌 사탕의 역할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로 등을 긁거나 잘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를 떼어낼 때 손가락에 박힌 사탕을 이용하곤 한다. 맨살보다 조금 더 딱딱하긴 하지만 단지 딱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탕이 겨우 스티커를 떼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신체기관이었다면 손가락엔 차라리 사탕이 아닌 이빨이 붙어있었을 것이다. 손가락마다 달린 다섯 쌍의 사탕은 각기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매일 다른 꿈을 꾸게 하는 꼬마의 사탕처럼 손가락에 박힌 사탕도 맛에 따라 사람의 기분을 바꿔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엄지
엄지손가락은 아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손가락이다. 엄지손가락에 박힌 사탕에선 달콤한 맛이 난다. 엄지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물면 자동으로 눈이 감기고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엄지 사탕에는 수면제와 안정제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그곳이 침대라면 몸은 새우처럼 움츠러들고 곧 달콤한 꿈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곳이 사무실이라면 이 세상 모든 곳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된다. 누구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때, 누구도 상대하기 귀찮을 때는 엄지손가락을 척 뽑아 입에 넣고 눈을 감아버려야 한다. 그럼 세상이 단순해지고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지
둘째 손가락에선 매콤한 맛이 난다. 야한 비디오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사도 그리 많지 않던 여배우가 갑자기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둘째 손가락을 지그시 깨물어 보이는 장면이다. 그러고는 하악 하악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한다. 그럼 대부분 남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여배우를 붙잡고 어찌할 줄 모른다. 그건 매워서 그런 것이니,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둘째 손가락을 입술에서 떼어주면 된다.
중지와 약지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에선 거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룽지 맛 사탕 혹은 흑설탕 맛 사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지와 약지를 빠는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비슷하다. 고개를 최대한 들고, 눈은 최대한 내리깔고, 아래턱을 돌출시킨 모습으로 입의 감각에 필요 이상으로 열중한다. ‘아암… 이게 무슨 맛이지?’ 미안하지만 그런 자세는 멍청해 보이기 딱 좋은 모습이다. 더운 날 아무 이유도 없이 땅을 파는 표정이다. 아무런 맛도 없는 일에 계속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끼
새끼손가락에선 새콤한 맛이 난다. 소스를 조금 찍어 맛을 보거나, 작은 실수를 저질러 ‘어떡하죠?’ 하는 표정을 지으려 할 때, 사람들은 주로 새끼손가락을 앙 깨물어 보인다. 이때 입술이 작고 동그란 모양으로 변하며 얼굴은 새콤달콤한 상으로 바뀐다. 다만 너무 과하면 신 것을 먹은 사람의 얼굴로 비칠 수 있으니 새콤한 표정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간혹 어른들 사이에서 손가락 깨무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 주로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다. 그들은 손가락을 깨물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다고, 손톱 대신 안경다리를 깨물고, 손가락 대신 담배를 빨면서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깨무는 어른이 있다면 그들은 애정이 결핍된 사람, 혹은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라며 섣부른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애정결핍이 아니고 스트레스 과잉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손가락을 빨면 이상하게 보는 사회적 풍조 때문에 손가락에 박힌 사탕이 스티커나 떼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손가락을 깨물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항상 손을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며, 손가락에 박힌 사탕을 먹을 때엔 이빨을 사용하지 말고 잘 녹여 먹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야만 한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