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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안경>
내겐 너무 이상적인 현실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좋아한다. 또,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 <안경>도 좋아한다. 두 영화 사이에는 별 연관관계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보니 두 영화가 내게 다르면서도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만하고 철없는 생각이겠지만, 요즘은 알 것도 같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말이다. A는 저러다 나이만 먹겠구나. B는 돈은 못 벌겠구나. C는 힘겹게 살겠구나. D는 평생 편하게 살겠구나. 난 이러다 쪽박 차겠구나. 그 흔한 ‘팔자’ 얘기다.
고전문학평론가 고미숙은 《나의 운명사용설명서》에서 나쁜 팔자란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꼬인 스텝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이 스텝이 어떻게 꼬였는지를 알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운명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십 대에는 내 스텝이 꼬였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삼십 대 후반이 되니 이 팔자란 게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다. 성인이 된 후부터 십여 년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어떤 식으로 감당했는지를 쭉 살펴보면 앞으로 밟을 스텝도 대충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A도, B도, C도, D도, 나도 나쁜 팔자의 덫에라도 걸린 듯 비슷한 짓을 반복하고 있다. A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동시에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서 여전히 여대생 같기만 하다. B는 야심만만하고 열정적이지만, 돈 개념이 없고 지나치게 기분파다. C는 유순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성격이라 고등학교 때 야자 땡땡이도 안 치던 애였는데, 여전히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고 하던 일만 계속하려고 한다. D의 인생은 늘 편해 보이지만, 언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을 할 뿐 굳이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나? 나는 매번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일을 저질렀다가 갑자기 본래의 비관주의로 돌아와 울고, 징징대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작은 것을 탐하느라 큰 것을 놓치고,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결국 ‘이 정도면 됐지 뭐’라고 자위하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이런 내가 팔자, 그리고 운명을 바꾸려면 대책 없는 이상주의부터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예 순서를 바꿔야 하는 걸까? 저지르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저지른 후에는 이상적으로 말이다.
그런 나인지라 처음 오기가미 나오코의 <카모메 식당>과 <안경>을 보고는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지 모른다. 손님이 오지 않아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서 턱을 괴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키 작은 일본 여자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팔자 편한 사람들이 팔자 좋은 섬에서 팔자 늘어지게 사색이나 하는 모습에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안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정말 근사하다. 아예 감독조차 대놓고 이 영화가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 프로젝트’라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섬으로 휴가를 온 타에코. 여관 ‘하마다’의 주인이면서도 매일 놀러 다니고 사색이나 하는 유지. 봄만 되면 나타나 바닷가에서 물물교환으로 팥빙수를 나눠주는 사쿠라. 남의 여관에서 빈둥대느라 지각을 밥 먹듯 하는 학교 선생님 하루나. 사쿠라를 찾아 이 섬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마치 예전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요모기. 이들은 소박한 재료로 정성 들여 요리한 따뜻한 아침을 먹고, 해변에서 메르시 체조라는 괴상한 체조를 하고, 팥빙수를 먹으며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요즘 노르웨이에서는 7~8시간이 넘게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모습이나 뜨개질하는 모습,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슬로우 TV’라는 것이 인기라던데, <안경>을 보는 기분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점점 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의심스러워진다. 내 팔자를 사납게 만드는 것도 어쩌면 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 아닐까. 나는 언제나 이 기분에 휩쓸려 일을 저지르고 또 거기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사실은 뭐든 잘될 리가 없다. 운명이 우리를 향해 순풍만을 불어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을 간절히 원한다. <안경>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다.
기분이 울적하고 사는 게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때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산뜻한 새 물건을 사들이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인스타그램에 초 단위로 업로드되는 새로 산 흰 셔츠처럼 주름 없이 빳빳하고 바삭거리는 남의 인생을 흉내 내어 보는 것도 그렇게 하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 최소한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도 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은 일종의 마취제 같은 것이 아닐까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다들 알고 있듯 가난한 탄광촌 소년이 춤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 못해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나는 이 영화의 포인트가 도입부에 밝혀지는 배경이 된 해 ‘1984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1984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빌리가 볼품없는 차림에 토슈즈를 신고 발레를 연습하고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춤을 추는 배경에는 언제나 전투태세를 갖춘 전경들과 그에 맞서 “파업!”이라는 단어를 목이 터지라 외치는 광부들이 있다. 1984년은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대처 총리의 집권 시기였다. 단호한 경제개혁정책을 펴던 그녀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탄광의 문을 닫게 했고, 이에 탄광노조는 전국적으로 파업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대처는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광부들의 파업 시위는 나라를 좀먹는 병”이라고 비난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겨울에 뗄 장작이 없어 엄마의 유품인 피아노를 부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소년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가슴 아프게도 그 아버지가 함께 시위했던 동료들을 배신하고 탄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야 한다. 일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아들을 런던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막내아들만큼은 자기처럼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로열발레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던 날, 무뚝뚝한 아버지는 흥분해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언덕길을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 파업 중인 동료들이 모인 체육관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외친다. “빌리가 합격했어!” 하지만 동료들은 더 큰 뉴스에 낙심한 상태다. 노조가 백기를 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다시 갱도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들의 성공은 아버지의 실패와 한 세트다.
문득 떠오른다. 내가 빌리처럼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춤을 추던 때에, 내가 바닷가 마을의 가난한 집 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던 그 시간에 내 부모님은 어디에 계셨던가? 그들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찍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든 덕에, 그리고 자식을 끝까지 책임진 덕에 나는 당연히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어려운 책들을 읽으며 잘난 척을 할 수 있었고 못 배운 부모를 비웃을 수 있었고 그들이 했던 일들보다 조금 덜 힘든 일을 하며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이 언젠가 내가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 대신 다른 일을 해볼까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나 낙심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부모님의 거룩한 은혜에 보답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빌리가 런던으로 떠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은 굳은 얼굴로 어두운 갱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야 한다. 아마 <안경>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도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족히 수십만원어치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새우도, 비싸고 질 좋은 소고기도 다 ‘누가 준 것’이다. 그래, 살다 보면 그런 행운이 떨어질 때도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이웃,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행운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기가미 나오코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 유유자적한 인생은 매년 봄에만 오는 한시적인 것이며, 여행은 충동적이지만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유자적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갱도로 내려가야 한다. 그 누군가는 직접 우리를 후원해주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아침 식탁에 오르는 신선한 채소를 제값도 못 받고 파는 농부일 수도 있고, 거친 바다와 싸우는 어부일 수도 있고, 싼값으로 멋을 부릴 수 있도록 저임금에 우리가 입을 옷을 만드는 먼 나라 의류공장의 소녀일 수도 있고,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공항에서 여행의 기대에 부푼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청소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아주머니일 수도 있다. 《노동의 배신》을 쓴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배를 곯는 덕에 당신이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여자가 먹고살기에도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그 여자는 당신을 위해 지대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기운과 건강과 생명의 일부를 당신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지금껏 지나친 이상주의로 살아오다 결국 사나운 팔자의 소유자가 된 내가 팔자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거다. 그것은 서프보드에 올라 파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파도타기를 할 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파도가 밀려올 때 달아나거나 휩쓸리는 대신 그 파도에 몸을 실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경>에 나올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상상한다. 뭐든 잘될 것 같은 기분. 아무렴 어떠냐는 기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자는 기분.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될 것 같은 기분. 해변에 앉아 팥빙수를 먹으며 만돌린 연주를 듣는 기분. 맥주를 마시며 시를 읊는 기분. 그러면서 또 나는 <빌리 엘리어트>의 현실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갱도로 내려가 온종일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을 거라고. 어쩌면 나 역시도 누군가를 위해서 갱도에서 온종일 곡괭이를 휘둘러야 할 거라고.
우리의 인생은 <안경>에 나오는 것 같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안경>의 신선한 바람과 공기를 불어넣는 것은 가능하다. 노는 게 반드시 쇼핑몰을 돌고 맛집을 찾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화려한 요리를 따라 하기 위해 그 많은 낯선 식재료를 다 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이런저런 ‘주의’를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 내 인생은 꼭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의 인생처럼 반짝거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 많은 것을 원하지 않으면 또 많은 것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는 현실에 한없이 만족하면서 미래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 진정한 자유는 부드러워지는 것에 있다는 것,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큰 간판을 내걸면 손님이 잔뜩 올 테니 이 정도가 좋아요.”
시력 1.2 정도는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작은 간판을 건 여관 ‘하마다’의 유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혀를 차며 웃게 된다. 그런데 정말로 웃기는 일은 내가 얼마 전 문을 연 동네 카페에 그렇게 작은 간판을 달았다는 거다. 게다가 사람들이 좀 더 눈에 띄는 게 좋지 않으냐고 물을 때마다 그처럼 답한다는 점이다. 역시 팔자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스티븐 달드리 감독 | 드라마 | 영국, 프랑스 | 110분
탄광촌에 사는 빌리는 배우고 있는 권투보다는 발레에 재미를 느낀다.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과 로열발레스쿨의 입학을 준비하고 광부인 아버지는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업을 중단하고 갱도로 향한다.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었던 광부 대파업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빌리의 아름다운 성장과 그 이면을 함께 보여준다.
안경 Glasses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 코미디, 드라마| 일본 | 106분
주인공 타에코가 원하는 여행지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다. 그녀는 조건을 충족하는 남쪽의 바닷가 마을로 떠난다. 매년 봄마다 팥빙수를 팔러 오는 여자, 학교에 지각하는 선생님, 손님이 많이 올까 두려워 명함만 한 간판을 단 민박집 주인 등 현실과는 얼마쯤 떨어진 사람들이 계속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윤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