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piece Story

내게는 너무 따뜻한 공간, 도서관

내게는 너무 따뜻한 공간, 도서관

스웨덴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디즈니 만화 시리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미녀와 야수>다. 어릴 적부터 여러 만화를 봤지만, 늘 의아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백설 공주’도 왜 여자들은 모두 왕자가 다가와 키스해주거나 깨워줄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그 생각을 바꾼 것이 <미녀와 야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디즈니에서 처음 만든 게 아니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전래동화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756년 책으로 나온 프랑스 작가 보몽 부인의 소설 《La Belle et la Bête》다. <미녀와 야수>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가 아닌, 반대로 마법에 빠진 왕자를 구해내는 여자의 이야기다. 마법에 걸린 야수와 잘생겼지만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사냥꾼 ‘개스톤’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1992년 디즈니가 만든 <미녀와 야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야수의 서재다. 온통 책으로 가득 쌓인 야수의 서재는 웬만한 공공도서관을 연상시킨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여주인공 ‘벨’은 책으로 가득 찬 야수의 서재에 들어가면서 야수의 지적인 매력을 알게 된다. 우리 중 누군가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책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친해지고, 그 책에서 함께 삶의 지혜를 나누며 인연이 되는 일…. 책 읽는 행위는 개인적인 행동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책으로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고, 책이 있는 장소에는 영혼들이 만나고 있다고 믿으며,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에 가면 심장이 뛴다.

나를 이루는 책은 무엇인가?

주세페 아르침볼도, The Librarian, 1566, Oil on canvas, Skokloster Castle, Håbo Municipality, Sweden, 97x71cm

내가 꿈꾸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그려놓은 듯한 이 그림의 제목은 ‘사서’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는 사실적이고 이상화된 미를 구현해내던 시기인 16세기의 밀라노 출신 화가다. 그의 그림에서는 사실적인 것들이 하나둘 모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당시 비엔나와 프라하의 신성로마제국 궁정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다른 궁정 화가들과 달리 계절이나 사물을 조합해 구성한 알레고리적 두상으로 당대에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까지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이런 ‘조합 두상(composite heads, teste composte)’ 시리즈다. 

나는 아르침볼도의 다른 초상화 시리즈보다 이 그림이 좋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문구처럼 좋은 책은 우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는 차곡차곡 성실히 건설되어 ‘나’라는 사람의 전체를 형성한다. 독일의 출판업자이자 화가이던 게오르그 안드레아스 라이머Georg Reimer가 그린 그림 속에도 사서가 등장한다. 천장까지 책으로 뒤덮여 있는 서재 속에서 한 남자가 안경 너머로 골몰히 지식을 탐구하고 있다. 오늘 밤 그가 항해하는 지식의 바다가 너무 넓어서 그림 속 남자의 시간은 한없이 멈춰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워렌 버핏의 말처럼, 내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근간을 이루는 책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그림이다.

게오르그 안드레아스 라이머, Enlightenment era librarian in a library, National Museum in Warsaw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어디일까? 흥미롭게도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기원전 9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정복의 꿈을 이룬 아슈르바니팔 왕은 아시리아 제국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도시 니네베Nineveh에 커다란 궁전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서관을 짓는 일이었고, 아슈르바니팔 왕은 나라 안의 모든 책을 궁전으로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조상으로부터 들은 아시리아의 역사를 점토판에 새기게 했고, 점성가들에게는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기록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의사들에게는 의학에 관한 지식을, 역사학자들에게는 이전 왕들을 비롯한 아슈르바니팔 왕 자신의 업적을 기록하게 했다. 그 외에도 온갖 분야의 이야기를 점토판에 새기게 한 뒤 도서관에 보관하도록 했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이렇게 탄생한다.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이기에 승리하려는 자 또는 승리한 자가 자신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쓰인다. 그런 인류의 욕망이 늘 좋았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욕망이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을 만들고 후대 인류의 지혜를 위해 보존된다면, 나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화와 예술이 전승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라고 믿는다.

해리엇 베커, Thorvald Boeck’s Library, 1902, Oil on canvas, 94.5 x 89 cm

노르웨이의 화가인 해리엇 베커Harriet Backer는 당시 여성 화가의 활약이 저조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선구적인 화가다. 피아니스트이던 언니와 함께 베를린과 이탈리아, 뮌헨과 파리 등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공부했고, 다시 노르웨이로 귀국해 화실을 냈다. 노르웨이에서 지내면서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빛의 탐구에 매료되어 실내 풍경을 많이 남긴 그녀의 그림은 여성 아티스트만이 잡아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리엇 베커가 그린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법률가이자 공무원, 책 수집가이던 토발드 보에크Thorvald Olaf Boeck의 서재를 그린 것이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당시 2천 권의 책 수집을 시작으로 개인 도서관을 만들었고, 훗날 3만 권이 넘는 책을 보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2년에 해리엇 베커가 그린 그의 도서관 풍경은 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과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 샹들리에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화가는 책을 사랑하는 수집가의 집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한 듯하다. 누가 내 방 서재의 모습도 이렇게 그려준다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도서관처럼 느껴질 것이다.

도서관과 서재의 가장 큰 차이는 개인적인 곳인가, 공공적인 곳인가 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크기나 형식의 차이일 뿐 세상 모든 이들의 서재는 다 자기 자신에게는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함께 보는 책이 있는 곳, 가족이 함께 보는 책이 있는 곳, 나 혼자 보는 책이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책이 있는 곳에선 지혜의 향기가 난다. 오늘은 각자의 서재를 둘러보며 나만의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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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