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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던컨 한나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화가 던컨 한나Duncan Hannah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그린다. 그와 함께 20세기의 어느 순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속 여성, 파리 어느 골목에 세워진 시트로엥 자동차, 대서양을 건너던 커다란 원양정기선, 그리고 그가 오랜 시간 몰두해온 회화적 진실이 있었다.
최근 바쁜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림과 관련된 작업인가요?
곧 제 책 《20th Century Boy: Notebooks of the Seventies》가 나와요. 일기로 기록해두었던 1970년대의 이야기죠. 최근에 출판사 관계자들을 계속 만나느라 바빴어요. 다음 주에는 CBS 엔터테인먼트 쇼 촬영을 하기로 했어요. 일요일 아침에 하는 그런 방송이요(웃음). 좋은 일이죠. 책을 팔려면 매스컴의 관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요.
브루클린의 이곳은 작업실인가요?
작업실 겸 생활 공간이에요. 원래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에 살았죠. 맨해튼에서만 45년을 보냈네요. 작년 여름에 여자친구와 여기로 이사 왔어요. 아래층이 침실이죠. 밖엔 멋진 정원도 있고요. 브루클린이 마음에 들어요. 이사하기 전까진 와본 적 없는 동네지만요. 맨해튼이랑 가깝고, 조용하고, 훌륭한 식당도 있고.
한국에서 제임스 설터로 인해 처음 당신을 알게 됐어요. 일곱 권의 책이 번역됐고 모든 표지가 당신의 그림이죠. 책 표지를 통해 낯선 감상자를 만나게 되는 기분이 어떤가요?
멋진 일이죠. 독서를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책 표지도 사랑하니까요. 저는 거의 책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이 공간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모든 곳에 책이 있잖아요. 그리고 화가로 산다는 건 무엇보다 계속 세상과 소통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은 좋은 거죠.
책의 표지를 위해 그림을 그린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랬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어울려요.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뻤어요. 설터의 책 속에는 제가 원했던 내러티브와 로맨스, 미스터리가 모두 있어요. 저는 제 그림이 단순한 사실주의 회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갖길 원하거든요. 영혼이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지니길 바라죠.
말한 것처럼 당신의 그림은 설터의 글에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어요. 특히 사람을 붙들어놓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가 닮았죠.
1970년대에 저는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했어요. 그림을 그리기 전 글을 받았는데 대체로 영화 리뷰 같은 논픽션이었어요. 저는 잡지에서 ‘잠깐, 이게 뭐지?’ 할 만 한 부분을 그림에 넣어야 했죠. 독자를 포박할 어떤 것이요. 그때는 제가 글을 선택할 수 없었고 원하는 걸 그릴 수도 없었어요. 보스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론 제게 좋은 일이었죠. 화가가 되고 나니 제가 원하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더군요. 전 알프레드 히치콕이 될 수도 있었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되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유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삽화가로 일할 때처럼 보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싶었어요. ‘어,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하도록.
설터의 글과 당신의 그림 사이에서 어떤 교집합을 발견했나요?
음… ‘욕망Desire’이죠. 그리고 유럽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설터는 아름다운 여인을, 차를, 호텔을, 도시를 좋아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설터를 좋아해요. 그가 제 그림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하지만 앞서 제가 말한 이유로 책 표지의 인연을 맺게 된 건 아니에요. 모두 그의 책을 번역한 박상미 씨가 해낸 거죠. 언젠가 설터를 만났을 때 책 표지가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 둘은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단지 우리 사이에 박상미 씨가 있었던 거죠.
‘펭귄북스’ 표지를 그린 작품이 80~90개나 돼요. 어떤 아름다움에 매료된건가요?
전 펭귄북스를 수집해요. 영국에 자주 가는데, 갈 때마다 매번 엄청나게 사들이죠. 그래서 제 컬렉션이 생겼어요. 이 컬렉션은 계속 자라나고, 자라나는 중이에요. 코네티컷에 집이 있는데, 그 집 화장실에는 펭귄북스만 꽂힌선반이 있어요. 초록, 파랑, 노랑, 자홍, 다홍…. 그걸 보면서 생각했죠. ‘난 이 책들이 너무 좋다. 이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다 팝 아트를 떠올린 거예요! 당신이 만약 앤디 워홀처럼 수프 캔을 그릴 수 있다면, 책도 그릴 수 있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화가인 로널드 키타이처럼요. ‘키타이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웃음) 그래서 펭귄북스를 그리기 시작했고 열 점을 완성한 후 영국에서 선보였어요.
전시는 어땠어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우연히 펭귄북스의 대표가 전시 오프닝에 왔거든요. 그가 오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더라고요. 그가 방금 템스강 반대편에서 다른 전시 오프닝을 보고 왔는데, 그 화가도 펭귄북스를 그렸다는 거예요! 할란드 밀러라는 화가였어요. 우리는 서로를 몰랐지만 똑같이 펭귄을 그리고 있던 거죠(웃음). 어쨌든 전 전시한 그림을 다 팔았고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각각 다른 스무 마리의 펭귄을 선보였죠. 그때쯤 사람들은 저에게 레이먼드 챈들러를 그려야 한다고 했어요. 유명하니까요. 전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그렸어요. 엄청 많이 그렸죠. 그리는 건 재미있어요. 뜨개질하는 기분이거든요. 평면적이고 평평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빛, 원근법, 색 등에 화가로서 많이 관여할 수 있는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요.
펭귄도 있지만, 당신의 대표적인 그림은 여성의 초상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저는 항상 조금씩 더 나아졌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게 즐거웠어요. 하지만 가끔은 더 나았으면 하는 생각에 낙담하기도 했죠. 박상미 씨가 서울에서 제 전시를 열었을 때 많은 그림이 팔렸어요. 대부분은 제가 반해버린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이었죠. 저는 제가 그린 영화배우나 인물들을 다 알지는 못해요. 다만 그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고 다다를 수 있는지, 화가로서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려나갔죠. 만약 당신이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반 이상 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들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으니까요.
여성을 보는 시선이 에로틱하면서도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아름다운 여성을 그리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구스타프 클림트도 그랬죠. 그는 단순히 대상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왜 그가 대상을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보여줘요. 그게 클림트의 방식이에요. 그런 그림을 볼 때 화가와 대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죠. 라파엘 전파의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반드시 좇아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죠.
그림 속 여자들을 모두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 다들 초연해 보여요.
순수하지만 동시에 대담하기도 하고요. 물론 그림에 따라 다르지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행동, 혹은 그 순간에만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저는 그림 속 여자들에게 저 자신을 대입해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인물에 대한 상상을 하지만, 그리려는 어떤 것을 정확히 하고 있는 인물을 상상하진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사진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림은 좀 더 느슨해야 해요. 감정을 그 안에 투사할 수 있도록. ‘Upper Fifth’을 보세요. 뭔가 중립적인 얼굴이죠? 그래서 저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겁을 먹었나? 사랑에 빠졌나? 아니면 화가 났나? 하지만 그 그림 속에서 진실은 약간의 미스터리 속에 남겨둘 수밖에 없죠.
마치 예술사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처럼요. 사람들은 여전히 모나리자를 궁금해하잖아요.
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잖아요. 만약 그림에서 끊임없이 서사가 읽힌다면 화가가 과도하게 알려주는 거예요. 보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더할 수 있어야 해요. 보는 사람의 기억이나 욕망을 투사하게 만드는 방아쇠를 쥐고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잖아요. 필립 거스톤이 그래요. 그의 작품 중에 연회색 배경에 중앙을 분홍색과 붉은색으로 채운 추상화가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그림은 제게 음악 같아요. 드뷔시처럼,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들처럼 아름답죠.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싶어져요. 그림이 저를 툭툭 건드리죠. 저는 화가가 실제로 의도한 바를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그가 뭘 의도했든 간에, 방아쇠를 제대로 당긴 거예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모두 감동적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 추상화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어요. 이건 그저 어떤 그림, 그 자체인 거예요. 내러티브 없이도 감정으로 차 있거나 누군가를 감정으로 차오르게 하죠.
화가로서 그릴 수밖에 없게 되는 장면이 있나요?
음, 전 사랑에 빠지는 걸 좋아했어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짧은 순간이요! 몇 번이나 사랑에 빠졌는지는 모르지만(웃음). 그건… 마약 같은 거예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의 기억을 붙잡고 그리게 되죠.
그림 속 여자들은 옷을 벗고 있거나 일부를 들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개인적이고 은밀한 순간인데, 화가로서 그림 속의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 그 순간에 들어가는 방식이 궁금해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어떤 종류의 기대감과 아름다움을 지닌 강렬한 순간과 저를 분리해서 작업해요. 마치 제 그림 속 인물들이 옷을 벗고 있는 것처럼. 제가 사랑하거나 사랑하게 될 어떤 여성을 만나는 그 순간은 너무 강렬하고 멋지죠. 사실 제가 꾸는 꿈도 대부분 그런 종류예요. 전 한 번도 꿈속에서 섹스를 한 적이 없어요. 항상 그 전 단계죠. 그런 거 있잖아요. 보트 하우스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황혼에 안개가 자욱하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모든 게 매우 에로틱하죠. 그리고 제 꿈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웃음).
당신 그림 속 배는 항해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항구에 정박해 묶여있지도 않죠. 그저 물 위에 평화롭게 떠 있는 듯해요. ‘배’는 어떤 의미를 지닌 대상인가요?
제가 열네 살일 때, 어머니와 최후의 원양정기선 중 하나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어요. 그 배는 옛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환상적이었어요. 제 아버지는 해군이었고 몇 년을 바다에서 보냈죠. 저도 한때는 선원이 되고 싶었어요. 1990년 즈음엔가… 저는 그림을 더 크게 그리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어요. 성공한 화가들은 그림을 크게 그리고, 아시다시피 큰 그림이 더 비싸게 팔리니까요. 딜러가 말했죠. “크게 그려, 크게(Paint big).” 저는 알겠다고 했지만, 사실 큰 그림을 그릴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친밀하거나 사소한 아이디어는 갖고 있었지만 거대하거나 영웅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진 않았죠.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뭐가 클까 생각하다 배를 떠올렸어요. 그게 배를 그리게 된 이유예요. 건축적이기도 하고, 어떤 종류든 여행에 관한 아이디어는 낭만적이니까요.
차도 항상 주차되어 있거나 어딘가 멈춰 있죠.
전 움직임을 그리지는 않아요. 그건 다른 화가들의 일 같아요. 정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고요. 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흥미로운 대상이죠. 저에겐 인격을 지닌 존재처럼 느껴지거든요. 차를 도시의 풍경 속에 두면 누군가의 초상화 같기도 하고요. 모두 다 다르죠. 특히 시트로엥은요.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그런 차죠. 보고 있으면 범죄 영화 속에 있는 것 같고, 배우가 뛰어들 것 같고…. (웃음) 적당한 장소에 있는 적당한 차라면, 바로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갱스터 영화를 떠올릴 수 있어요. 떠올린 영화를 해체하면서 볼 수도 있고요. 장 뤽 고다르가 ‘영화란 총을 들고 있는 여자애’와 같다고 비유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는 농담조로 얘기했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영화 속에 나오는 무엇을 사랑할까요? 여자나 차, 또는 도시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들을 하나씩 분해하고 재조합하면서 사람들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심지어 차 안에 사람이 없어도 저는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려요. 살인, 사랑, 복수, 추격….
실제로 어떤 감정을 지닌 채 작업하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작업을 하는 데 신경 쓸 뿐이죠. 하지만 제 그림을 전시할 때는 지난 1~2년 동안 작업한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무척 감동적이죠. 마치 제 내면을 보는 기분이 들거든요. 인생에서 굉장히 가치 있는 경험이죠. 그림 속 순간은 삶의 마법과 신비, 경이를 담고 있고, 저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어떤 그림은 특정한 순간을 가끔씩 소유할 수 있거든요. 에드워드 호퍼처럼요. 슬픔, 외로움, 아름다움, 침묵, 낯섦. 미국을 그린 수많은 화가가 있지만 호퍼 같은 사람은 없었어요. 호퍼는 그저 호퍼예요. 그가 다른 모든 화가들보다 뛰어나다는 게 아니에요. 어떤 화가들은 호퍼보다 뛰어났지만 그의 영혼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며 열광하는 거죠.
저도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해요. 휘트니 뮤지엄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봤는데, 생각보다 크고 거칠고 강렬했어요.
맞아요. 그는 어떤 면에서 히치콕 같아요. 그가 어떤 단어를 던지면 우리는 즉시 그 의미를 알 수 있어요.
화가로서 질문이 많던 시기도 있었나요?
제가 23살이었을 때,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났어요. 대학을 그만두려고 했던 때였죠. 호크니는 제게 속임수를 사용하지 말고, 성실하게 작업하고, 자신에게 정직하라고 했어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한다면, 너는 그 그림 속에 있게 될 거라고. 아주 멋진 조언이었죠.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뭔가 인공적으로 스타일을 만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시절의 제가 딱 그렇게 하고 있었거든요. 호크니는 제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안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독보적이길 원하니까. 또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주길 원하니까. 하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어요. 쿨해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정말 쿨해질 거라고요. 저는 그게 제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멋있으려고 하진 않지만 그들은 정말 멋있죠. 성실하게 작업하고, 진실하니까요.
오래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신만의 철학도 생겼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책을 오디오 북으로 내기 위해서 5일간 녹음을 했어요. 녹음실에서 배우와 작업하는 전문가들과 일해야 했죠. 제가 물었어요. “저는 배우가 아니고 화가인데, 제 목소리를 어떻게 내는 게 좋을까요? 목소리 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내라고 말하더군요. 연기할수록 더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나올 뿐이니 원래 목소리로 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작업해야 해요. 만약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좋은 재료가 될 거예요. 만약 집중력이 있다면 그게 재료가 되겠죠. 아, 그림을 사랑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요. 제 작품들은 대부분 사랑에 관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의 작업은 분노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전 분노로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제가 일하는 방식이 아닐 뿐이지요. 저는 무언가를 사랑해야 일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것 같아요. 그 세계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나요?
네. 하지만 저는 제가 만들어낸 그 세계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어요. 그걸 원했고요. 그래서 풍경, 도시, 바다, 누드 등 많은 걸 그릴 수 있었고, 여전히 그릴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죠. 저는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려요. 절대 마스터할 수 없는 걸 원했죠. 그리고 저는 결코 할 수 없을 거예요.
절대로 회화를 마스터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림을 그린 지 거의 40년인데도요?
절대요. 저는 작업실로 갈 때 절대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지 않아요. 의심과 불확실함, 기대감을 동시에 품고 가요. 때로는 의심, 좌절감도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화가들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부는 그렇죠. 제가 전에 신문에서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기자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당신은 당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냐고요. 저는 아니라고 했어요. 저 자신은 좋아하는 화가 리스트의 상위에 있지 않다고, 한 500등 정도 되려나. 그러자 기자가 “슬프네요. 어떻게 그러죠?” 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회화는 오랜 시간 유능한 사람들이 함께 해온 풍부한 전통이에요. 사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늘 기쁘지만은 않아요. 항상 ‘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데….’ 하고 생각하죠. (벽에 걸려있는 다른 작가의 그림을 가리키면서) 저는 저 그림들을 즐길 수 있어요. 제가 그리지 않았으니까요. 더 잘 그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고민은 하지 않죠. 저 그림은 그저 그 자체예요. 저건 다른 작가의 작품일 뿐이죠. 그래서 좋아해요. 제 그림에 아쉬움을 느끼는 감정은, 영화에 출연하고 그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 배우와 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책과 영화, 미술사, 문화사 등에서 받아요. 만약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작품이 제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계속 상기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참고가 될 만한 사진을 찾아보기도 해요.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책과 영화, 미술사, 문화사 등에서 받아요. 만약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작품이 제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계속 상기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참고가 될 만한 사진을 찾아보기도 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화까지 섭렵해서 보는 영화광이라고 들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 있는지,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는지 궁금해요.
정말 많아요. 알프레드 히치콕,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순응자>는 훌륭한 영화죠. 아, 프랑수아 트뤼포도 좋아하고요. 저는 1960년대의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를 대부분 70년대에 봤어요. 그때 저는 구상 화가가 되고 싶었고 제 친구들 대부분은 추상 화가가 되고 싶어 했어요. 구상 화가에게는 주제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 당시에 트뤼포의 영화에서 주제를 가져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의 영화는 대부분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고 괜찮은 주제였지만, 많은 화가가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림을 그릴 때 특정한 시간적 배경을 설정하나요?
저는 20세기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영화제작자나 소설가처럼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소설가가 1929년에 대해 쓰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화가가 1929년에 대해 그리면 갑자기 사람들이 이건 복고풍이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하곤 해요. 그 단어들이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불충분하거나 약하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든요. 19세기의 외젠 들라크루아는 그가 살던 시대보다 100년 전의 시대를 그리길 좋아했어요. 라파엘 전파는 아서왕의 신화를 그리길 좋아했죠. 저도 지금의 시대를 그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을 그리기 좋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실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어땠나요?
70년대에는 20~30년대에 관심이 많았어요. 30년대에 관한 훌륭한 영화가 나오던 시기였고 아르데코의 부흥기였죠. 저는 진전을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요. 진전이 꼭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는 당신의 그림을 보면서 종종 과거의 어떤 시기에 멈춰버린 채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같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 느낌을 좋아했죠.
사실 젊은 사람들이 과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해서 걱정스럽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고전 흑백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현재에 관심 갖는 건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연속체예요. 지금 누군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는 그 전에 누군가를 보고 있었고, 또 그는 그 전에 누군가를 보고 있었고… 그런 식으로 계속 뒤를 따라갈 수 있죠. 그래서 저는 거꾸로 따라가 시작을 보는 걸 좋아해요.
영화는 수많은 이미지의 연속이고, 회화는 한 장면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예술일 텐데, 영화와 회화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음, 모든 것이요. <핀치 콘티니의 정원>이라는 70년대 이탈리아 영화가 있어요. 작은 도시의 저택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핀치 콘티니 가문의 사람들은 유대인 박해가 거세지자 자신들이 누리던 모든 걸 빼앗겨버려요. 끔찍하죠. 너무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픈 영화예요. 때때로 그림도 그렇죠. 빛나면서 동시에 미쳤거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찍은 웨스 앤더슨 같은 사람이 그렇죠. 그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감독이 영화 속에 500개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 그건 어떤 면에서 500점의 그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호텔, 백작, 벨보이, 전차선로…. 그래서 가끔 생각해요. ‘회화가 오직 한 가지의 권리만 가질 수 있을까? 영화는 500개를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회화는 느린 매체니까요.
개별적인 그림도 그렇지만, 모든 작품이 하나의 맥락 안에 놓인 듯해요. 비행기, 배, 차, 여자들을 모아 놓고 보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 것 같기도 하고요. 본인 그림의 맥락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제 그림은 제가 가보지 못한 곳,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담고 있어요. 일종의 판타지죠. 하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그 판타지와 가까워지는 순간이 와요. 현실에선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게 되는 거예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거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키스하는 것처럼. 최근 전시에서는 제가 그리는 여러 대상을 모두 함께 보여줬어요. 영어학교 아이들과 이탈리아 배우의 누드, 재규어 컨버터블, 런던과 파리…. 그것들을 한 번에 모아두면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누군가가 그 세계에 익숙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그 방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거죠.
당신이 추구하는 미학과 접점이 있는 영화가 있다면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열다섯 번은 본 것 같네요. 베르톨루치의 <순응자> 는 열두 번 정도 봤고요. <영 앤 이노센트>는 히치콕의 영화인데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죠. 많은 사람이 히치콕을 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제가 40대 초반일 때, 이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히치콕이 할리우드로 가기 전의 영화지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여주인공인 노바 필빔을 그리게 됐어요. 한 번, 두 번 그리기 시작하다 거의 열다섯 번 정도를 그렸지요.
그것도 인연이네요. 혹시 노바 필빔과 연락이 닿진 않았나요?
런던에서 전시를 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이 ‘뉴욕의 어린 로큰롤 화가가 어떻게 잊혀진 90세의 무비 스타를 그리게 됐나’ 하는 큰 기사를 냈어요. 오랫동안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 했거든요. 게다가 아주 짧게 활동했고 제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은퇴했으니까요. 노바 필빔은 히치콕이 감독한 두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러던 중 2차 대전이 발발해 영국의 영화 산업은 막을 내렸지요. 그녀는 그렇게 잊히고, 아마 결혼을 한 것 같았어요. 기사가 꽤 크게 나서였는지, 어떤 사람을 통해 그녀가 저의 작업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도 직접 만나려 하지 않는다고 했죠. 그래서 그녀에게 작품이 담긴 카탈로그와 편지를 보냈어요.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요. 그때 약 10여 점의 그림을 판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도 그림 속의 그녀가 노바 필빔인지 몰랐을 겁니다. 만약 제가 마릴린 먼로를 그렸다면 모두가 그녀인 걸 알았겠지요. 그렇지만 노바 필빔은 제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존재하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여자요. 하지만 그녀는 실존하는 인물이었어요.
혹시 영화도 책처럼 DVD로 소장하나요?
그럼요. 저는 아직도 DVD를 사요. 다시 말하자면, 영화를 모으고 있죠. 지금은 사람들이 영화를 잘 안 모으죠?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저한테 그걸 왜 사냐고 묻겠지만…. 글쎄요. 저는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웃음).
‘The Loom of Youth’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년 시절’도 당신 그림의 주제죠. 고향인 미니애폴리스에서 보낸 유년은 어땠나요?
좋았어요. 그림과 같은 순간들도 있었죠. 저는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반딧불이를 잡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배를 타기도 했어요. 좋은 그림이 있는 멋진 박물관도 있었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과 셜록 홈즈를 읽었죠. 전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뉴욕이나 서울 같은 도시에서 자라는 것과 매우 다를 겁니다. 미니애폴리스엔 호수와 나무와 자연이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 여행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런던이나 파리는 당신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로든 중요한 도시가 있나요?
저는 일곱 살 때 뉴욕에 처음 갔어요. 그때 느꼈죠. 나중에 꼭 여기에서 살아야겠다고. 열 살 때는 파리에 갔어요. 그때 파리는 경이롭고 영감을 주는 도시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열네 살 땐 런던에 갔었네요. 그러고 나선 파리와 런던을 자주 오갔습니다. 언제나 영감을 주는 곳이죠. 어떤 도시들은 완전히 ‘소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 소진한 후에는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되거든요. 하지만 런던과 파리는 소진할 수 없을 만큼 계속 무언가를 공급하는 도시예요. 런던은 특히 그래요. 어느 동네를 돌아다녀도 각기 다른 어떠한 인상을 받게 돼요. 비유하자면 다른 시대의 영국을 책으로 보거나 음악으로 듣거나 영화로 보는 것 같죠.
매번 경험이 달라지는 거군요.
네. 미니애폴리스를 예로 들자면, 저는 그곳을 이미 다 경험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파리나 런던을 전부 경험했다고 말하긴 힘들죠.
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의식이 있나요?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면서 밀린 메일 답장을 써요. 오전 11시까지는 일을 하지 않죠. 만약 날이 좋으면 오후 8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중간에 점심을 먹어요. 여름에는 시골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지요. 그곳에는 방해하는 게 없어서 그림 그리는데 좋아요. 오전 10시쯤 그리기 시작해 오후 4시에 멈췄다가 수영하러 호수에 가요. 다시 돌아와 저녁을 먹고 10시쯤까지 그림을 그리죠. 어떨 때는 9시 30분에 해가 지기도 하니까요. 어두워지면 영화를 보기 시작해요. 대개 하루에 영화 한 편은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일상이 좋아요. 이런 반복이요.
화가로서의 일상을 즐기는 것 같네요.
화가로 살면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저 자신에 몰두하게 될 때 정말 행복해요.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이요. 한 10분쯤 흘렀나 하고 시간을 확인하면, 이미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던가…. 그래서 10분만 더 하자, 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또다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그런 순간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못 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활은 저를 젊게 만드는 것 같아요. 명상 같달까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제가 하는 일은 단지 길을 찾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서 내리는 작은 결정들, 예를 들어 이 요소가 그림 속에서 어떻게 배치될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그러다 보면 ‘나는 단지 그리고 있을 뿐이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물론 몰입하다 보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저는 실수도 좋아해요. 결정과 실수가 반복되면서 그림이 펼쳐지고, 그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멋진 일이에요. 대개 사람들은 일을 즐기진 않잖아요? 보통 긴장하죠. 멍청한 이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저는 그런 멍청이들을 만나진 않으니까요(웃음).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모든 화려함과 그 이면까지 즐기던 당신의 젊은 시절과는 다른 모습이네요.
저는 위험천만한 유년기를 보냈죠. 마약과 술과 같은 무모한 것들로요. 30대 초반에 그 모든 걸 끊었고 정말, 정말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어요. 내면의 균형을 찾았죠. 그림이 저를 균형잡게 해줬어요. 보통 화가를 떠올릴 때 고뇌와 고통 속에서 몸서리치는 걸 자주 보는데, 실은 반대죠. 실제론 미치는 것으로부터 지켜줍니다(웃음).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만약 책이 성공한다면 또 다른 계획이 생기겠지요(웃음). 참, 저는 늘 일기를 써요. (책장의 폴더를 가리키며) 이건 10년 치 분량이에요. 이번 책이 잘 된다면 다른 10년 치의 일기를 책으로 낼 수도 있겠지요. 만약 출판 관계자들이 “80년대를 책으로 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온다면 “네, 저기 있어요.” 하고 답할 수 있겠네요(웃음). 지금은 그저 올여름에 수영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영화를 보는 생활을 기대하고 있어요.
요즘도 매일 일기를 쓰나요?
네. 뉴욕으로 온 후에 다양한 음악가와 화가를 많이 만났어요. 제가 정말 정말 사랑하던 사람들이요. 데이비드 보위, 앤디 워홀, 밴드 록시 뮤직…. 이 책은 미니애폴리스의 고등학교에서 출발해요. 책 속에서 저는 뉴욕을 꿈꾸는, 그 도시에 속하고 싶은 소년이죠. 자신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요. 실제로 그 아이는 원하던 것들을 만났어요.
꿈을 이룬 거네요. 말할 때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 놀라게되는 꿈이요.
저는 늘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진짜 화가요. 책이 끝나갈 무렵 저는 28살이고, 맨해튼 57가에서 첫 전시를 열어요. 전시한 모든 작품이 팔리죠. 그리고 전 화가가 되어있어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깁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동화 같은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이건 행복에 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운이 좋았어요.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일은 아니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는 키스 헤링이나 장 미쉘 바스키아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냐고요. 지금 아트 페어에 가면 뤼크 튀이만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겠죠. 요즘의 현대 미술 화가들을 닮고 싶어 하는 거지요. 하지만 발튀스를 보세요. 그 당시 화가들은 파블로 피카소처럼 되고 싶어 했어요. 발튀스는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친구였지만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왜 그러겠어요? 그는 이미 ‘발튀스’이기에 너무 바쁜데.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이다. 너는 너다. 너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제 대답을 좋아하진 않더군요(웃음).
요즘은 더욱 그런 모험을 할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제가 쓴 책의 내용처럼, 화가인 척하는 게 아니라 화가가 되는 과정이 가치 있다는 점이예요. 화가가 되어가는 순간들은 재미있을 거예요. 실수하는 것조차. 제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더 신나는 일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웃음). 우리의 삶은 정해지지 않은 여정이잖아요. 결국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죽음일 뿐이에요. 모두 알고 있죠.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삶을 만족스럽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예요. 대개의 사람들은 화가 나 있어요.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에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이요. 우리는 모두 왜 여기 있는지 알지 못하죠.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있지요, 지금.
던컨 한나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
영 앤 이노센트 | 1937 | 알프레드 히치콕
한 영화배우가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음날 해변을 산책하다 시체를 발견한 작가 로버트 티스달은 범인으로 몰려 체포된다. 재판을 받다 탈출한 뒤 진범을 찾기 위해 애쓰다 경찰서장의 딸 에리카의 도움을 받게 되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던컨 한나의 그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노바 필빔이 19세에 출연한 영화다.
네 멋대로 해라 | 1959 | 장 뤽 고다르
좀도둑 미셸은 자동차를 훔치다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경찰을 쏴 죽인 후 지명수배자가 된다. 미셸은 여자친구인 패트리샤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그녀는 내키지 않는다. 고다르는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어느 곳에서도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 당일 오전 현장에서 대사를 쓰고 간단한 리허설만 거친 뒤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은 보편적인 방식이 된 점프컷도 이 영화에서 처음 사용됐다. 장 뤽 고다르가 이뤄낸 성취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핀치 콘티니의 정원 | 1970 | 비토리오 데 시카
1930년대 말, 무솔리니 정권의 민족차별법이 공표된다. 그 시기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페라라의 핀치 콘티니 가문은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테니스를 즐기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을 향한 박해는 점점 심해지고, 동화 속 이야기 같던 그들의 일상도 빼앗기고 만다. 개인의 삶을 서서히 붕괴시키는 사회적 비극을 섬세하게 담았다.
순응자 | 1970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로마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마르첼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때문에 불안에 시달린다. 그가 바라는 건 오로지 평범한 삶. 마르첼로는 파시스트의 비밀경찰에 가담하는 대신 전도유망한 공무원이자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이라는, 원하던 삶의 타이틀을 얻는다.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이야기 구조는 물론 색채, 촬영술, 세트 디자인에서 보여주는 대범한 스타일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글 이현아
사진 이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