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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로 향하기 전, 어라운드 에디터들은 편집장에게 물었다. “저희 하루는 자유 여행해도 될까요?” 승낙을 받은 에디터 진아와 의진은 그간 방문해보고 싶던 전주의 장소들을 모아,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만의 하루를 보냈다. 작은 여행 안내서가 된 우리의 여행 기록을 이곳에 풀어둔다.
Theme. 나홀로 전주를 여행하는 법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시간 제한 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눈에 담고, 고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으니까. 동행자 없이 떠난 전주에서는 오롯한 혼자만의 쉼을 위한 여행을 주제 삼아 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PM 1:00
하와이안레시피
점심 시간을 지날 무렵 전주역에 도착해, 곧장 전주한옥마을로 향했다. 달콤한 향이 번지는 한옥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와 아래서 카레가 끓는 중이다. 이색적인 풍경의 ‘하와이안레시피’는 카레 전문점으로 시그니처 메뉴 ‘해로카레’를 비롯한 고정 메뉴와 더불어 2주마다 새로운 카레를 만든다. 방문 당일은 상큼한 ‘레몬 치킨 카레’가 준비되었는데 지금까지 ‘태국식 그린 커리’, 복숭아가 들어간 ‘키마 타코라이스’ 등을 선보였다고. 여행지 유명 음식은 푸짐하게 차려두고 일행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1인 여행객이라면 나만을 위해 준비된 따듯한 한 그릇도 알맞을 것이다.
PM 3:00
한벽터널 & 전주천
이제 전주를 찬찬히 거닐어볼 차례. 전주천을 곁에 두고 걷기 좋다는 한벽터널로 향했다. 한벽터널은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2022)의 촬영지로,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전주-남원간 철도를 건설하며 지어졌다. 여전히 터널로 쓰이는 곳이라, 지나가는 차를 하나 둘 떠나보내고 짧은 터널 안을 통과했다. 이윽고 펼쳐지는 건 전주천의 그림 같은 풍경. 유려한 버드나무와 물가를 둥둥 떠다니는 오리들, 천을 앞에 두고 늘어선 작은 마을이 퍽 평화롭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 주인공 치히로가 우연히 당도한 터널을 지나자 신들의 세계를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 지도. 아무 말없이 천을 따라 걸으며 잊지 못할 장면을 한참 눈에 담았다.
PM 5:00
금지옥엽 무명씨네
‘금지옥엽’은 전국에서 영화 문화 확산에 힘쓰는 단체, 일명 ‘커뮤니티 시네마’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기 위해 시작한 영화 콘텐츠 스토어다. 판매 중인 영화 굿즈, 엽서, 각본집, 영화 OST LP 등이 공간을 가득 채우니,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꼭 들러볼 만한 장소. 내가 찾은 전주의 ‘금지옥엽 무명씨네’는 전주·전북지역 커뮤니티 시네마 ‘무명씨네 협동조합’이 운영한다. 이름 금지옥엽은 동명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내 자식을 애지중지 아낀다는 사자성어 의미처럼 이곳이 소장 가치 높은 물건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붙여졌단다. 금지옥엽은 전주와 부산, 딱 두 곳만 운영 중이니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이나 여행으로 전주를 찾았을 때 방문하기 좋을 것이다.
PM 7:00
오알엘 하우스
하루의 끝은 고요하고 편안하길 바랐다. 그래서 선택한 독채 숙소 ‘오알엘 하우스’. 주변의 주택들과 달리 밝은 하늘색 지붕을 얹은 집은 오알엘 하우스가 여기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장의 취향이 공간 곳곳에 가득하다. 집을 둘러싼 은색 담장과 벤치가 놓인 테라스, 까만 마루와 붉은 타일 욕실, 빈티지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구까지. 1970년대 구옥을 매만져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호스트의 노력이 비친다. 이름 오알엘 하우스는 Obesess Recall Lingering의 약자로, 기억에 오래 남는 집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겼다. 오랫동안 기억할 전주에서의 하루를 되뇌이며 잠에 들었다.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1길 46
“이곳의 볶은 김치와 깻잎이 들어있는 김밥, 바지락이 들어있는 푸짐한 라면 그리고 수제비는 절대 질리지 않더라고요. 사랑이 담겼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 봐요.”
― 무지개샐러드 가족 제타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곤지산4길 12
“어릴 때부터 높은 언덕을 올라 다니던 곳이었는데 몇 년 전 리모델링을 아주 근사하게 했어요. 그때 그 오래된 도서관은 사라졌지만, 더 멋진 도서관이 탄생해서 이곳을 즐겨 찾아요.”
― 무지개샐러드 가족 가람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87
“한옥마을 부근 전주천을 쭉 따라가면 나오는 이곳은 러닝하며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어요. 주차장도 있으니 차를 대고 간단히 피크닉 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 포도시커피 김정인
A. 전북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1가 산318
“숲, 약수터, 고대 산성 흔적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산이에요.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산 뒤편엔 아중호수까지 자리하죠. 우리 양조장에서는 기린봉에서 ’10K 트레일 런’ 행사를 진행하기도 해요.”
―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좌니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68-3 명인관
“번화한 한옥마을 큰길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도서관이에요. 총 세 채로 이루어져 있고 공간마다 책 큐레이션이 달라 읽는 재미가 있어요. 귀여운 옆집 고양이 ‘호두’가 마루에서 쉬고 있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답니다.”
― 하와이안레시피 이현아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전주국제영화제가 운영하는 전북의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다양한 독립 예술영화들을 상영해요. 전주에서 영화적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상업영화와 다른 분위기와 특별함을 지닌 독립 예술영화 한편 감상해 보세요.”
― 무명씨네 협동조합 이하늘
Theme. 오랜 세월이 깃든 여행지
시간은 도시의 골목과 건물, 풍경 속에 차곡차곡 흔적을 남긴다. 손때 묻어 반들거리는 문고리에도,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진 계단에도 세월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여행 중에 이런 흔적들을 우연히 마주하면, 마치 그곳의 오래된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AM 9:30
홍지서림
홍지서림의 오픈 시간은 10시였지만 예상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문을 열 때까지 거리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서점 안은 환하고 손님도 드나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직원은 “조금 일찍 출근하는 날엔 서점도 일찍 문을 연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홍지서림은 창업주 천병로 씨가 1963년 작은 판자 방에서 시작한 서점이다. 시민들의 오랜 사랑을 받으며 전주를 대표하는 서점이 되었지만 1999년 IMF 사태를 겪으며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학창 시절을 전주에서 보내며 홍지서림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양귀자 소설가가 서점을 인수했고, 덕분에 오늘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지서림의 서가는 문학과 정치, 역사에서부터 의학, 농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2층에 농업 전문 출판사 ‘향문사’의 도서가 빼곡했던 서가가 기억에 남는데, 전북에서 향문사 책을 취급하는 곳은 홍지서림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손님이 편안하게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시민들의 사랑 속에 자라온 이 서점은 전주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AM 11:00
금성당과 금성문고
홍지서림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겨 내려오다 보면 좁은 골목에 우뚝 선 시계탑을 마주하게 된다. 금성당과 금성문고는 1938년 지어진 전주 최초의 시계방인 금성당을 기념하며 재탄생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현재 금성당은 카페로 운영되며 바로 옆 금성문고는 시계방 주인장이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지었던 양옥집을 책방으로 꾸민 공간이다. 금성문고의 2층으로 오르니 마당의 오래된 감나무와 석류나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과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지었던 집을 새롭게 단장한 공간인 만큼 ‘사랑’을 주제로 한 책들이 섬세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 난 곳곳에 남겨진 방문객들의 메모를 읽고, 다양한 사랑의 모양을 짐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천천히 곱씹고 싶다면 머무르기 좋은 장소다.
PM 2:00
동래분식
여행지에서는 늘 전통 시장을 찾아 음식을 맛보는 편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남부시장의 대표 음식으로는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이 꼽히지만 유서 깊은 맛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하나의 메뉴가 바로 팥칼국수다. 시중에서 먹던 달콤한 팥죽의 맛을 떠올렸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먹을수록 팥 국물이 고소하고 부드러워 한 그릇을 부담 없이 비울 수 있었다.
가게 이름은 ‘겨울 동冬’과 ‘올 래來’를 써서 동래분식이라 지었다고 한다. 일 년 중 팥을 가장 많이 먹는 날인 동짓날처럼 매일 많은 이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라고. 팥칼국수 외 메뉴 역시 푸짐하고 맛이 좋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부답스럽지 않다. 일반 칼국수와 손수제비도 이곳의 인기 있는 대표 메뉴. 조촐하지만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싶다면 동래분식을 방문해 보자.
PM 5:00
똘랑코티지
남부시장에서 출발해 남천교를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의 골목길에 보라색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잔자갈과 평석이 깔린 마당과 그 옆으로는 작은 정원이 보였다. 똘랑코티지는 1970년에 지어진 외할아버지의 한옥 가옥을 손녀가 리모델링한 숙소로 곳곳에서 옛것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가구와 소품, 골동품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어 숙소 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똘랑’은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마침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한 뒤 복도에 앉아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정원의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쉼터 같은 공간. 독채로 이용하는 숙소이니 아늑하고 편안한 시간을 오롯이 누리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곤지산3길 2 1층
“전주의 블루보틀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분위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커피 맛이 정말 훌륭합니다. 라테와 플랫화이트를 추천해요.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주변 공원을 걸어도 좋아요.”
― 레디터 이방글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124- 19 1층
“개인적으로는 이곳의 다쿠아즈는 유명 호텔에서 판매하는 다쿠아즈보다 맛있어요. 특히 필링이 섬세하고 고급스럽답니다. 이 집 디저트는 무엇을 선택하셔도 후회 없을 거예요.”
― 작가 오힘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3
“손님이 오면 항상 모시고 가는 집이에요. 오삼불고기백반을 즐겨 먹습니다. 백반에 포함된 부추전도 정말 맛있어요. 함께 나오는 밑반찬도 깔끔하고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해요.”
― 워커비 정은정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124-1
“속이 답답할 때 자주 찾아요. 겹벚꽃이나 철쭉이 피는 계절도 아름답지만, 언제 와도 멋있는 공원이에요. 우거진 나무 아래서 차 한잔 마시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죠.”
― 수공예가 이경희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5길 24-2
“혼자 혹은 소수로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에요.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해요. 커피 맛은 두말할 필요 없고, 매장에 흐르는 음악도 차분해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져요.”
― 레디터 고우리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32-4
“전주교육대학교 앞에 자리한 면 요리 식당이에요. 동네에서는 이미 소문난 맛집으로 팥칼국수도 맛있지만 특히 김치 칼국수가 별미랍니다.”
― 화가 임현정
에디터 차의진,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