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홍색 할머니

노인과 소년의 관계에 대해서

나의

분홍색 할머니

노인과 소년의 관계에 대해서

습작생 시절, 내가 쓴 소설은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별한 부부, 헤어진 연인,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그가 묵는 여인숙의 주인. 노인과 소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상실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울타리를 조금씩 열어가며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집중했다. 이름과 나이, 언어는 달랐지만 그들은 침묵과 응시로 서로를 대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담배를 나눠 피우는 노인과 소년의 사이를 특히 좋아했다. 몸이 둥글게 말려 굳어가는 노인과 아직 아무것도 단단해 보지 못한 소년의 이야기. 내게도 노인이 한 명 있다. 그녀는 눈이 작고 분홍색 옷을 즐겨 입으며 손에 주름이 많다. 무릎이 아파 이제는 작은 계단 하나도 힘들다. 저녁에 잠들고 아침 일찍 눈을 떠 밭으로 마실 가는 사람.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소년과 노인의 이야기

소년은 기억 속에 두 명의 노인을 가지고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좋았다. 그는 농부이자 목수로 늘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논두렁 사이를 헤집었고 새참으로 막걸리를 즐겨 먹었으며 소년을 위해 전깃줄 위의 참새를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또 한 명의 노인은 주로 밭에서 일했다. 한 해에는 녹두와 고추를, 이듬해에는 열무와 배추를 심어 김치로 만들었다. 그녀는 국을 끓이는 솜씨가 남달랐는데, 특히 칼칼하게 끓인 시래깃국이 근사했다. 논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새참을 나르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둘은 부부였다.

소년에게 부부는 언제나 노인이었다. 말문이 트일 때 소년은 그들을 할부지와 할무이라고 불렀다. 소년의 부모는 젊은 나이에 도시에서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소년과 노인은 숙성리라는 시골 마을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소년은 노인을 도와 막걸리 심부름을 하거나 농사철 모판을 날랐다. 또래 친구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다 땅거미가 지면 멀리 할머니의 호출을 받고 집으로 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이면 노부부는 어쩐 일인지 두 개의 이불을 사용해 각각 반대쪽 벽에 붙어 잠을 청했는데, 어쩌면 가운데에 소년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때가 되어 소년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노인들이 소년의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소년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소년의 목소리는 여물고 시골집 다락방 속 장난감에 먼지가 소복해질 무렵,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급히 부모의 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어쩐 일인지 아주 멀리서 온 친척들의 신발이 댓돌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었고,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그 서늘한 표정 속에서 소년은 무언가를 직감했다. 노인은 이불 위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소년은 울며 노인의 야윈 볼과 앙상한 손을 만졌다. 노인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먼 바람 소리뿐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왜 우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속에 풍선을 삼킨 듯 그저 멀미처럼 울었다. 노인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을 하나하나, 사력을 다해 마주 본 다음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소년은 그날 생애 첫 번째 죽음을 목격한 이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익숙해지는 감각이 아니었고, 처음인 양 늘 새롭고 처절하게 아팠다. 그 뒤로 소년에게 생긴 버릇 하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세어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날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소년은 혼자서 마지막을 준비했다. 소년에게 남은 처음이자 마지막 노인, 분홍색 할머니를 찾아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할머니는 안성댁이다. 나는 할머니가 한 번도 숙성리를 벗어나 사는 걸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건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동이 트기도 전부터 일어나 자주 밖으로 걸었다.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는데 손에는 주로 잡초나 물 젖은 대야 같은 것들이 들려있었다. 늘 다리를 쉬지 않았고 손은 항상 젖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습관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는 안성시 미양면 신기리에서 3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한국전쟁 당시 큰 오빠마저 군인으로 차출되어 생을 달리했다. 새로운 어머니가 오시고 이복동생들이 생기면서 할머니는 졸지에 설움을 받는 처지가 됐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이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논을 지키기 위해 뙤약볕 밑에서 새를 쫓는 것이 일상이었고, 밭일을 하거나 소여물을 쑤기도 했다. 그저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늘 일뿐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할머니께 어릴 적 꿈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그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누구도 할머니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큰 언니의 중매로 할아버지를 만났다. 처음 본 날 사진을 찍고 바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둘 사이에 어떤 스파크가 튀었는지 할머니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첫눈에 할아버지에게 반했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둘은 부부가 되었고, 그건 둘 사이에 책임질 입이 더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일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끼줄을 꼬아 팔거나 성냥과 비누를 팔아 기름을 샀다. 그걸로 등잔을 켜 다시 일거리를 만들었다. 먹을 것이 없어 남들이 버린 우거지를 주워 국으로 끓여 먹었다. 당시 배고픈 부부에게 멀건 국은 배를 채우기에 그만이었다. 그렇게 1원씩 모은 돈이 제법 커져 부부는 20년 만에 오두막 방을 하나 샀고, 직접 흙을 올려 헛간을 만들고 우물도 팠다. 밭을 사고, 논을 샀다. 네 명의 자손들이 모두 출가하고, 그의 아이가 또 아이를 낳게 되어, 할머니는 이제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소파에 앉아 조금 편한 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장사를 하지 못한다. 밭이나 논에 나가 무언가를 키우기에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단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하나둘 눈을 감았고, 이제는 몇 안 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담긴 사진첩을 바라보다가 멀리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잡초를 뽑는다. 장롱을 열고 무언가를 뒤적거리기도 한다. 가끔 혼잣말을 하곤 하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그건 어떤 주문 같기도 하고 신께 비는 기도 같기도 하다. 무엇을 빌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노인의 기도를 아주 오래, 더 오래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한참 지난대도 여전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테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목록

할머니를 오래 기억하고자 몇 개의 목록을 적어보았다.

이름 이경순, 전주 이씨, 음력 1938년 12월 15일(양력 1939년 2월 3일)출생, 물병자리, 안성시 미양면 신기리 출신, 평택시 오성면 숙성리 거주, 3남 4녀 중 셋째, 혈액형 O형, 키 165센티미터, 의무교육 받지 못함, 슬하에 2남 2녀를 둠, 현재 직업 할머니, 가장 오래 했던 일은 장사와 농사, 좋아하는 음식은 순댓국, 잘하는 음식은 된장 지짐(국이 갈수록 짜짐), 가장 친한 친구는 찬종 엄마와 화숙 엄마(다른 친구분들은 돌아가심), 오전 4시 기상→7시 아침식사→노인정→오후 5시 저녁 식사→7시 취침,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노인정, 주로 민화투를 치거나 구경함.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6시 내 고향’과 ‘인간극장’, ‘WWE 프로레슬링’도 종종 시청, 가장 잘 부르는 노래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남~모올래~서어러운~세월은~가아고~”, 주량 맥주 2병, 좋아하는 안주는 김치, 술버릇은 욕과 눈물, 옷 사는 곳은 평택시장, 분홍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으나 사실 회색 옷을 더 좋아함, 비상금을 훔쳐둔 장소는 장롱 두 번째 서랍, 일회용 커피 분말과 우유 맛 캐러멜을 함께 숨겨 놓음, 자주 가는 미용실은 ‘강이 미용실’, 손자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장가가라.”, 생활신조 “보증은 절대로 서지 말아라.”, 칠순 잔치 때 가족들에게 하신 말 “많이 벌기 위해 애쓰지 말고 아껴라.”, 전화를 끊을 때 늘 마지막으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로맨티시스트

언젠가 코끼리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코끼리가 나오지 않는 코끼리 이야기였는데, 그 안에서 어떤 한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코끼리가 어디에서 죽는지 알고 있니?” 그는 스스로 답했다. “코끼리는 늪에서 죽어. 나이가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질 때, 씹기 좋은 풀을 찾아서 조금씩 늪으로 들어가는 거지. 천천히 사라지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는 코끼리가 죽어 사라지는 걸 볼 수가 없어. 그의 냄새도, 두꺼운 피부도, 길고 커다란 코조차도 말이야. 언제 사라진지 몰라서. 그래서 아주 오래 기억하고 있는 거야.” 사랑한다면 적어도 그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그가 어떤 목소리를 가졌었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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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