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래 소년

친구 많은 K씨의 일상

오래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러 전주에 갔다. 전주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가능한 한 오래 친구와 랠리를 이어가는 일이었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 권태야.” 문자 메시지를 받은 건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번호를 저장했더니 카톡 새 친구 프로필에 수염이 잔뜩 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낯선 얼굴이었다. 내 이름은 권태가 아니고, 심지어 생일은 반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무시할까 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하루는 퇴근 후에 친구들과 곰장어에 소주를 마시는데 ‘누구냐 넌?’이라고 저장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권태냐?”, “···누구신가요?”, “어? 권태 씨 핸드폰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그는 조금 말이 없더니 자신을 ‘새똥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별명을 듣자마자 단번에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 짝꿍이었던 새똥이, 왜소하고 말이 없던 새똥이, 수업을 빼먹고 종종 어디론가 사라지던 새똥이.

새똥이를 만나러 전주에 가게 된 건 그때부터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새똥이는 첫 통화 이후 잊을 만하면 메시지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이상한 아재 개그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마당에서 키우는 똥강아지 사진이나 직접 쪘다는 옥수수 사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맛있는 걸 사줄 테니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를 대다가 나중에는 조금 귀찮은 마음에 밀린 숙제를 해결하듯, 출장 중에 한번 들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반나절의 약속을 잡고 새똥이를 만나러 기차에 올랐다. ‘신종 사기일까? 혹은 납치해서 내장을 팔아치우려는 수작일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내가 알던 새똥이는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새똥이는 늘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신경도 좋지 않은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건 이상하리만큼 새똥을 자주 맞는다는 점이었다. 머리며 교복이며 늘 하얀 페인트 같은 새똥이 묻어 있어서, 선생님마저 “또새똥 왔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전주역에 나타난 새똥이는 내가 알던 새똥이가 아니었다. 두 배로 불어난 몸집에 덥수룩한 수염, “여어~!”라는 넉살 좋은 인사말까지. 그는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어색해하는 나와 달리 새똥이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날 대했다. “배고프지? 너 온다고 벤츠 빌려놨다.” 그는 주차장으로 앞장서서 걸었는데, 그곳에는 군데군데 녹이 슨 1톤 트럭이 주차돼 있었다. 벤츠는 어딨냐는 내 물음에 새똥이는 “조크여 조크!” 하고 와하하 웃어댔다.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우리는 ‘전일갑오’라는 가맥집에 갔다. “여기가 전주 최고의 맛집이여.” 전주에 올 때마다 들른 곳이라 새롭진 않았지만 새똥이의 표정이 뿌듯해 보여서 모르는 척해줬다. 나른한 평일 오후, 가맥집은 한가로웠다. 새똥이는 익숙한 듯 병맥주와 황태포를 주문했다. “엄니, 노릇하게 쫌 꾸버주쇼잉!” 주인 할머니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 앉아 황태포를 구웠다. “이 집이 얼마 뒤면 문을 닫는다는구먼.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디야.” 20여 년 만에 만난 새똥이의 말투는 너무 촌스러웠다. 어설프게 배운 사투리로 콩트를 하는 삼류 개그맨 같았다. 그나저나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불쑥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너가 이어받으면 어때?” 내 실없는 농담에 새똥이는 손사래를 쳤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다고.

새똥이는 대학을 졸업한 후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작은 공장에서 일손을 돕는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조금 망설였다. “뭐, 이것저것 만들어.” 그러면서 새똥이는 처음엔 아버지가 만드는 것이 배드민턴 라켓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날벌레를 잡는 전기 모기 채 였다고 했다. 새똥이는 아버지가 고작 모기 채를 만든다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그 무렵 새똥이의 아버지가 건강검진에서 간이 안 좋다는 결과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소주 2병을 비워야 잠이 드는 아버지는 병원에 들를 때마다 “선생님, 이제 소주를 마셔도 됩니까?” 하고 물었고, 참다못한 의사는 “소주는 평생 끊으셔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 뒤로 새똥이의 아버지는 소주 대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똥이와 아버지가 함께 술을 마시게 된 곳이 이곳, 가맥집이었다. “대학교 때는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지금은 세 잔은 마셔야 겨우 빨개져. 단련된 거지.” 새똥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맥주잔을 채웠다. 거품만 넘쳐 흐르는 기막힌 비율. “맥주 이렇게 따르는 사람은 구속시켜야 돼!” 새똥이는 거품이 넘치는 내 잔에 서둘러 입을 가져다 댔다. “아버지한테 배운 거야.” 친구의 가족은 건드릴 수 없었으므로 더 이상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낮술이 들어가자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수업 시간에 함께 피씨방에 갔다가 걸렸던 이야기, 새똥이라는 별명에 관한 이야기, 짝사랑했던 친구에 관한 이야기, 내가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해 보여서 질투가 났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문득 왜 이제야 연락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배드민턴이나 한번 치고 싶어서.”, “갑자기 웬 배드민턴?” 그러자 새똥이는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무렵 새똥이와 나는 함께 배드민턴 동아리를 했는데, 그 시절이 아직 생생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동아리 평가 때 내 스매싱을 받지 못해 C를 받게 됐다며,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가만히 랠리만 했어도 둘 다 A였을 텐데, 너가 너무 세게 쳤어.” 아, 그랬던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무렵 올림픽을 보며 승부욕이 불탔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 지난 일이라며 새똥이는 내 잔에 맥주를 한 잔 더 따랐고, 이번엔 거품이 하나도 없이 맥주만 가득 채웠다. “이거 다 먹고 배드민턴이나 한번 치러 가자!” 새똥이는 트럭 짐칸에서 미리 준비해 온 배드민턴채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기린공원’이라는 곳까지 30분을 내리 걸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 새똥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성큼성큼 걸었다. 공터에 다다르자 새똥이가 조금 머뭇거렸다. “분명 여기에 네트가 있었거든?” 그는 미안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네트 없는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전주까지 와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가도 막상 몸을 움직이니 땀이 나며 기분이 좋아졌다. 사회인 배드민턴 동호회까지 들었다던 새똥이의 실력은 여전했다. 뒤뚱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둥글게 넘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친구의 모습이 가여워 이번만큼은 져주려 했는데 그러기엔 또 자존심이 상했다. 몇 번의 랠리 끝에 마무리는 스매싱. 결국 또 내가 이겨버렸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들고 나무 그늘에 앉았다. 새똥이는 낙담한 얼굴이었다. 사실 동호회에서도 소질이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많이 늘었다며 친구를 다독였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새똥이가 말했다. “이만하면 됐어.” 그는 나한테 스매싱 한 번 날리는 게 꿈이었다고, 복수에 성공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흔들었는데 차가운 땀방울이 사방으로 번졌다. “더럽게 뭣 하는 짓이지?” 친구랑 나는 서로를 발로 밀며 투덕거렸다. 그때 내 머리 위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어? 새똥이다!” 새똥이가 내 머리를 가리켰다. 손바닥으로 닦아내자 하얗고 묽은 액체가 묻어나며 구린 냄새가 났다. “과연 새똥이의 친구답구먼!” 하며 새똥이는 와하하 웃어댔다. 나는 문득 이 친구가 학창 시절에 왜 그렇게 새똥에 자주 맞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무니까, 나무 아래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랬던 거였다. 수업을 빠지고 홀로 나무 아래 앉아 자기만의 수업을 이어가던 소년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한 판 더 하자.”, “됐다니까 뭘 또 해.” 나는 새똥이의 손에 라켓을 쥐어주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스매싱 없이 가능한 한 오래 랠리를 이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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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