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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유년기의 어떤 단상은 훌쩍 크고 난 뒤에도 또렷하게 남는다. 고성이 오가던 밤이 내게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이었다면, 정반대 지점에 아늑한 기억도 자리 잡고 있다. 풍경의 언저리를 묘사해보자면 이렇다. 방 안 가득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깬 아침. 자개장롱과 윤나는 노란 장판에도 햇살이 내려앉은 게 보였다. 부엌에서는 분주한 소동이 들려왔다. 굳이 보지 않아도 누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매일 꼭두새벽 같이 일어나는 여자. 귤을 ‘길’이라고 우습게 발음하는 여자. 가끔 따갑게 등짝을 때려도 그마저 따뜻한 사람. 언제나 가족들의 아침을 책임지던 외할머니가 거기에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먹어도 먹어도 자꾸 배가 고픈 나이였고, 할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은 고소하고 달고 부드러워서 먹고 나면 언제나 배가 볼록해졌다. 소고기 뭇국, 갈비찜, 장조림, 가자미구이, 계란물 입힌 동그란 햄까지 엄마가 바빠서 해주지 못하는 음식들을 할머니 집에서는 먹을 수 있었다. 영양소만 섭취한 것이 아니라 그 집의 생기와 할머니의 온기까지 골고루 먹었다. 산발이 된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주고 만화영화를 마음껏 보게 해주는 사람. 흥하고 코를 풀어주는 것까지 할머니가 해주는 것은 모두 좋았다. 나를 강아지라 부르는 것까지도. 할머니 집에서는 밤마다 큰소리가 날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었고 이 밤이 얼른 지나가길 빌며 이불속에 숨지 않아도 되었다. 방학 통째로 할머니와 보내는 동안 나는 무한한 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포근한 그 집에 유독 으스스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정각마다 괘종시계에서 튀어나오는 플라스틱 새였다. 낮에는 쪼끄만 새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모두가 잠들고 나면 새가 내 귀에 앉아 고막을 다 쪼아댈 것만 같았다. 자정에는 무려 열두 번이나 요란하게 우는 저 새가 혹시나 열세 번 또는 열네 번을 울지는 않을까 속으로 수를 세다 눈을 질끈 감기를 여러 번. 그런 밤마다 할머니를 흔들었다.
잠에서 깬 할머니는 내 옆에 누워서 배를 문지르거나 머리를 쓸어내리며 속으로 열 밤을 세라고 했다. 열 밤을 세도 잠이 안 오면 백 밤을 세라고 했다. 그럼 백 밤을 세기도 전에 나는 크고 따뜻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까무룩 잠들 수 있었다. 캄캄하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아침에는 어김없이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또 나를 지켜주었구나! 푸짐한 식탁, 모든 사물을 투과하는 햇살, 그리고 할머니의 꼬불거리는 파마머리와 잔꽃 무늬 바지는 내 유년에 그리 많지 않은 충만한 기억 중 하나다.
그 시절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던 할머니는 이제 종일 누워만 있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럿의 어르신이 모여있는 병실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할머니한테는 늘 고소한 향만 났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요 근래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한다. 의사는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이를 드러내고 말갛게 웃는 모습은 그대로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저 투명한 영혼.
“학교 끝나고 왔니 지영이. 우리 강아지.”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조금씩 어려진다.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가, 대학생이었다가, 오늘은 고등학교 1학년쯤이려나. 무해한 표정 앞에서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가 옆에 서 있는 그 애를 기억해내며 오늘 여기 온 목적을 되새겼다.
“할머니 나 거의 서른 살이잖아. 이제 회사 다녀요. 그리고 할머니.”
나 결혼해, 라는 말에 지나치게 놀라 하던 할머니의 동그란 눈과 입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에게는 고등학생 손녀딸이 갑자기 결혼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상황일 테니 찬찬히 현재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내 나이와 직업과 곧 결혼한다는 사실을. 시곗바늘을 빠르게 감고 나서야 할머니는 시야를 넓혀 찬찬히 그 애를 본다.
“어이고, 우리 손주 사위. 눈이 선하네. 눈이 선해. 착하네.”
혹여나 할머니가 그 애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하면 어떡하지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목소리에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 다정함 때문에 이내 슬퍼졌다. 내가 이 온기를 먹고 자랐지. 할머니가 보탠 사랑 때문에 그래도 삶의 순간마다 최선을 선택할 수 있었지. 그러다가도 오늘 그 애와 분명하게 인사를 나눈 할머니가 내일이면 그 애의 흔적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또 다른 슬픔이 몰려왔다. 내 마음에 어떤 파장이 이는지 하나도 모르는 할머니는 내게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위하고 시부모 위하면서 사는 게 최고 잘 사는 거야. 하마 조금 속상해도 자식들 위하면서 참고 살면 되는 거야.
지난번 병원에 왔을 때 할머니는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능자는 꽃다운 열일곱. 어느 곳에도 종속되기 아까운 나이에 능자는 처음 보는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다 그렇게 결혼하던 시기였다. 능자 역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서도 트럭을 타고 고향을 떠나면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와 친구들과 살던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가는 내내 눈물이 마를 새 없이 볼을 타고 내렸다. 점점 소리를 내며 흐느끼는 능자에게 새신랑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 역시 아직 소년이어서 여자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능자를 위해 트럭 운전사가 잠시 들판에 차를 세웠다. 남자는 담배를 한 대 태웠고, 능자는 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황금으로 물든 논을 보며 능자는 어느새 신랑을 위하고 시부모를 위하며 지고지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슬며시 했더랬다.
“지영이 시집가서 잘 살라고 할머니가 기도 많이 해. 아멘, 나무 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렇게 기도해.”
자식의 자식을 위해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하는 할머니를 본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그녀 덕에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다. 부디 오래 살아서 내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줘. 결혼을 배울게. 남편을 대하는 순전한 마음도 배울게. 할머니에게서 받은 무한한 사랑을 나도 나누며 살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