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마니아

평론가 부부의 사생활

나도 모르게, 마니아

평론가 부부의 사생활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따로 없다. 우리는 그 좋아함의 상태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애써 동어반복이란 형식을 구하기도 한다. ‘좋으니까 좋지’, 혹은 ‘좋아서 좋아하지’와 같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이 왜 좋은지. 그리고 굳이 이유를 묻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 맹목적으로 더 열광적으로 오직 좋아-하기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

두 개의
경기장

축구를 좋아한다. K리그의 오래된 팬이기도 하다. 내가 따로 응원하는 팀이 있어서 서포터즈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잠시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은 여기에 길게 적지 않기로 한다). 축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나 계기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떠올려보자면 어릴 때부터 아빠가 즐겨 보시던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를 함께 보면서 자연히 ‘경기’의 매력을 몸소 느껴왔던 것 같다. 또한 중학교 시절의 친구는 야구팬이었는데(친구가 좋아하는 선수의 집에 같이 찾아간 적이 있다. 보고 싶은 선수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친구는 그 선수의 어머니께 델몬트 오렌지 주스까지 한 잔 얻어 마시고 나오는 길에 ‘시어머님, 다시 뵙는 날까지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친구의 열정에 동요된 점이 나에게 없지 않다. 텔레비전 중계를 해주지 않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 가까운 도시로 기차를 타고 가거나, 선수단 버스 앞에서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 좋아하는 선수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오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일탈이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는 것을. 

더 이상 그런 일들이 일탈도 일상도 아니게 된 나이가 되어서도 응원하는 팀의 홈경기를 챙기고, 좋아하는 선수와 악수 한 번 하는 일이 혼자만의 경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봄 다음에 여름이 오듯, 12월이 지나면 다음 해의 1월이 오듯 내 삶에도 어떤 시간의 경계나 구획을 만드는 규칙이 있었다. 경기장에 자주 드나들던 때와 그렇지 못하게 된 때로, 내 삶은 하나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아쉽게도 십여 년 전을 마지막으로 직관은 내게 아주 드문 행사가 되었다. 경기장에 가서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외치고, 북소리에 맞춰 응원가를 합창하고, 괴성을 지르며 내 안의 흥과 분을 모두 분출하듯 몸을 흔들던 시절은 어느덧 ‘과거’가 되어버렸다. 제자리에서 뛸 때마다 플라스틱 의자에 부딪혀서 경기가 끝나고 나면 종아리에 매를 맞은 듯이 빨갛고 파란 줄이 쭉쭉 그어져 있는 걸 보고도 그저 즐거웠던 때는 벌써 십여 년 전이 되어버렸다.

지난 십 년 동안 경기장에 가지 못한 나는 또 다른 경기장에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종목의 경기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경기를 지켜보거나 그것에 직접 뛰어들어보기도 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파악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매번 실패와 낙담만을 얻게 된 경기장. 실점과 득점이 공평하게 한 점으로 매겨지지 않는, 간혹 거듭 실점하게 되면 득점의 기회조차 박탈당하기도 하는 경기장. 누구에게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공평하게 불리지만 저마다의 그라운드가 있고, 그곳마다 선수와 규칙이 있기 마련인 경기장. 어떤 이들은 그 경기장과 이 경기장에 공평하게 한 발씩을 딛고 서서도 균형감 있게 자신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두 개의 경기장에 공평하게 힘을 쓰지 못하고, 한쪽에서 발을 떼면 쉽게 다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앞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나 계기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여기까지 쓰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축구를 ‘정말로’ 좋아한다고 말하게 된 것은 직관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통과하고 나서였다. 축구라는 경기 자체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경기장에 가서 그날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곳에 모인 모두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했다. 축구를 통해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좋아한다’는 말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일상 한 부분, 나에게 있어서는 거의 절반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축구를 보고 즐기고,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고,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되감아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집과 일터, 간혹 낯선 장소를 오가며 보내는 시간들의 누적, 그것이 일상이라면 내가 본 그들에게는 축구가 곧 그것이었다. 뜨겁게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직관하기) 위해서는 차갑게 존재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일하기)도 해야 하는 일상의 아이러니를 견디는 자만이 ‘좋아한다’는 말을 목청 높여 외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축구로부터 배웠다.

좋아-하기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면 내 일상의 한 부분을 그 속에 뚝 떼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적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에는 모순적인 데가 있다. 사실 나는 무엇이든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주저 없는 사람이다. 군것질을 좋아하고, 특히 감자로 만든 과자와 지렁이 모양 젤리를 좋아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라떼를 좋아하고, 단골 카페에서 낯선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남편이 만들어주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길을 탐방하기를 좋아한다. 손톱은 짧게 깎고, 머리카락은 하나로 올려 묶기를 좋아한다. 손편지를 쓰거나 받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 가고 싶은 곳의 숙소를 인터넷 홈페이지로 미리 가보는 일을 좋아한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찍은 사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만 꼽으라면 적어도 요즘은 바쁜 일과 중에 간혹 멍하게 보내게 되는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의식적으로 마련한 휴식 시간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던 일에서 멀어져 딴 데 정신을 팔게 되는 그 짧은 순간, 그로부터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와 ‘아, 내가 잠깐 한눈을 팔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자각의 순간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게 된 것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그 시간을 통과해서야 얻게 되는 몽롱한 상념들일 수도 있다. 혹은 팍팍한 현실의 약속과 규율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서 구름 위에 둥둥 뜬 기분을 만끽하는(줄도 모르고 만끽하는) 나의 허당끼를 이제야 인정하고 좀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매사 완벽하게 긴장하지 못하고, 어딘가 한군데는 반드시 어설프게 풀어져 있어서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혼잣말을 입에 달고 사는 태도를 스스로 미워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빈틈 있는 내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딘가 헐거운 정신, 혹은 그 무엇도 오래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어쩌면 삶에 대한 용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어느 무엇에 자신을 걸고 끝까지 그것을 믿고 그것과 함께 가려는 태도, 제대로 좋아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에는 어떤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일은 용기의 문제이며, 이때 용기는 흔히 말하는 이상理想과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완벽한 상을 믿는 마음에서 생겨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틈을 보이지 않는 것, 실수하지 않는 것, 완벽한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 점점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매번 새롭게 말하기 위해서, 두 개의 경기장에 발 하나씩을 딛고 기우뚱대며 균형을 잡아볼 것이다. 넘어지면 어때, 나는 넘어지는 것도 좋아한다, 꼭 이런 마음을 먹어가면서.

그의 이야기

마니아는 운명이다

인간이 진정 합리적인 이유는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 내지 표현과 관련해서 마땅한 이유를 찾기 힘들 때 우리는 종종 ‘나도 모르게’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나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고,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하고, 나도 모르게 어딘가로 향하고…. 어쩌면 열광 역시도 그런 게 아닐까. 그것은 합리적인 이유를 따지다 보면 왠지 맥이 빠지는 강력한 정념을 동반한 행위다. 그 행위 안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초과해 나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마니아란 일종의 운명이다. 마치 운명처럼 내 삶에 찾아온 열정적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가 휘감아 만들어낸 내 삶의 뜨거운 한복판. 단순하게 말하자면 좋아 죽는 것! 생물학적인 죽음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죽음이 열광의 한복판에 자리한다. 일종의 무아無我,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너무 좋은 순간에 이르면 내가 잠시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평상시의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이상한 기운이 불쑥 머리를 내민 기분 같은 것! 무언가에 열광적인 마니아가 되는 경험은 누군가의 삶에 찾아온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삶 속에서 또 다른 삶을 경험하는 축복이니 말이다. 

나도 그 선물을 최근에 받았다. 최근 1년 반 사이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우선 체중이 10킬로그램 넘게 빠졌다.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릴 때 정류장에서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독특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또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이것을 하려 애쓴다. 가끔 이것을 빠뜨리면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것을 만나려고 기다려온 사람처럼 난 이것에 홀딱 빠져버렸다. 혹 ‘스텝’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스텝? 걸음? 혹시 춤?! 그렇다. 스텝을 밟는다 할 때 그 스텝이다. 정식 명칭은 스텝박스. 우리 스포츠센터에서 프로그램에 붙인 이름은…. 웃지 말기! 다이어트 스텝!! 

결혼 후 내 몸은 초고속으로 불어났다. 결혼과 시기를 맞추어서 시작된 비평활동도 거기에 한 몫했다. 글을 쓸 때마다 생활 리듬이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콩자(아내)와 함께 음식으로 풀었다. 야식이 생활화된 콩자는 살이 찌지 않았지만 나는 달랐다. 왠지 콩자가 쪄야 할 살까지 내가 대신 찌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더 이상 체중이 불어나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러 운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스포츠센터는 세 달 치를 끊어놓고 두 달을 채우지 못했다. 뭔가 획기적인 도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에어로빅을 할 생각이었다. 우주비행사들이 시작한 운동이라는 에어로빅. 남성 회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에어로빅, 그것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역동성이 좋아 보여서였다. 춤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음악에 몸을 싣는 건 늘 동경해왔다. 

그런데 스포츠센터에 견학을 다녀온 아내가 에어로빅 홀 옆에서 전혀 다른 흥미로운 운동을 보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스텝을 직접 보고 온 것이다. 사람들이 박스를 놓고 격렬하게 움직이며 보기 좋은 군무를 펼치더라고 설명을 하며 한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특별한 일이었다. 평소에 콩자씨는 무언가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편이 아닌데, 스텝은 달랐다. 아내 역시 그때 무언가에 홀려서 온 것이었을까?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첫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앞 사람의 발을 따라 밟았을 뿐이다. 사람들의 발놀림은 현란했고(맘보, 백맘보, 차차, 니업, 드래그 등등) 내 발은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그리고 수업 끝에 결국 주저앉았다. 너무 힘들어서. 반팔 티셔츠가 완전히 젖어서 거짓말 안 보태고, 옷을 짜니 땀이 주르르 물처럼 흘렀다. 내 몸에서 그렇게 많은 땀이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체중계 위에 올라가니 정확히 1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이 운동으로 두 달만에 12킬로그램 정도를 감량했다. 아이 서너 명이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당시에 나는 일종의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운동을 꾸준히 하자 활력이 조금씩 생겨났다. 예전에 유명한 몸짱 아줌마가 한 인터뷰에서 운동은 양치질 같은 거라고, 하루에 한번 이상은 꾸준히 할 필요를 말한 걸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 양치질은 뇌를 말끔하게 청소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하루를 보내며 머리에 쌓인 노폐물이 땀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기분 좋게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지저분했던 창문이 맑게 청소된 것처럼 말이다.

스텝박스라고 했지만 이 운동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그 스텝박스랑은 좀 다르다. 유튜브 영상 같은 걸 찾아보면 스텝박스 운동 영상이 꽤 나오는 편이다(한동안 나는 이 스텝박스 영상 검색에 빠져 살았다). 이 영상들은 보통 스텝박스라는 사물을 앞에 두고 음악에 맞춰 오르락내리락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우리 반의 스텝은 훨씬 역동적이고 복잡하면서 각이 살아있다. 스텝이라기보다 춤이고 안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말하자면 우리 반의 안무는 박스를 밟거나 넘으면서 그 위에서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음악이 돌면 홀에는 마치 날랜 새떼들의 군무 같은 게 펼쳐진다. 글을 쓰는 지금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궁금하신 분은 메일을 주시면 영상을 보내드리겠다!). 더군다나 매일매일 새로운 안무를 배운다. 날마다 새로운 안무는 우리반 선생님의 창조물이다. 나의 전화번호부에는 ‘스텝의 신神’이라고 저장된 번호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우리 스텝반을 이끄는 선생님의 것이다. 사실 이 분에게야말로 스텝이 운명이다. 들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출산 후 취미로 시작한 운동을 본인이 재창조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시다고 한다. 

스텝박스를 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단체 운동의 묘미다. 한참을 뛰다 힘들 때쯤 누군가 박자에 맞춰 흥을 돋우는 소리를 외치면 그 소리에 떠밀려 내 몸이 나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는 것이다. 또 대열을 짓고 안무를 하다 누군가 안무를 놓치거나 틀리면 나도 모르게 내 안무에도 영향을 받는다. 신기하게도 스텝은 혼자 뛰는 게 아니라 여럿이 미세한 끈으로 이어진 상태로 뛰는 것만 같다. 서로가 호흡을 맞추어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일의 묘미가 있는 셈이다. 다양한 분들을 하루에 한 번씩 만나보는 경험도 이채로웠다. 이를테면 학교에 다시 들어간 기분이랄까. 스텝 초기에는 같이 춤을 추는 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추측해보는 일도 즐거웠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자 마치 새 학교에 전학을 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매일 만나서 한 시간씩 같이 즐기는 경험을 하는 게 흔한 관계는 분명 아니다. 

몸을 쓰니까 땀구멍만 열리는 게 아니라 감각이 열리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운동 후에 샤워실에서 찬물을 맞고 있으면 너무 좋아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텝을 한 시간 밟고 돌아오는 길에는 세상에 색깔 있는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고, 걸으며 맞는 바람도 더 예민하게 느꼈다. 숨어 있던 숨구멍들이 열리면서 외부세계가 내 몸에 전달하는 감각적 정보들에 민감해진 것이다. 생활에 리듬도 생겼다. 스텝이 없었다면 분명 비대해진 몸으로 계속 한숨이나 쉬었을 거라 생각하면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하루는 볕 좋은 경의선 역사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혼자 전날의 스텝을 반복해서 밟아보던 중이었다. 스텝을 잠시 멈추었을 때 역사 바닥에 드리운 나의 긴 그림자가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림자는 목소리가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응!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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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