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이로소이다

반려인간 관찰기

나는
동물이로소이다

반려인간 관찰기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실제로 ‘그가 되어보는 것’이다. 눈높이를 맞추는 일.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일. 사소한 습관들을 따라 해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주인공은 고양이다. 그는 인간을 관찰한다. 묘사하고 생각하고 풍자한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고양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스스로 반려동물이 되어 보기로 한다. 아주 잠깐이나마 그들의 눈을 빌려서 말이다.

반려인간 김건태 관찰기
글쓴이 쪼꼬

나는 강아지다. 이름은 아직 없다. 아니다. 이름이 있기는 한데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건 아니다. 인간이란 것들은 나를 쪼꼬나 초코로 부른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둘 다 썩 마음에 드는 발음은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인간은 에디터라는, 세상에서 가장 시답잖은 일을 하는 종족이다. 잡지雜誌 라는 빳빳하고 납작한, 먹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가져와서 킁킁 코를 갖다 대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려가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일이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넘기는 편이다.그보다 나의 관심사는 바로 간식이다. 가끔 이 인간이라는 자가 주머니에서 먼지 뭉치와 함께 간식을 꺼내어 던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이미 그걸 다 먹어 치우고 입맛만 다시고 있는 것이다. 사료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짭짤한 풍미가 일품이요, 쫄깃하고 딱딱한 식감이 잇몸을 긁기에도 제격이다. 

나는 11년의 세월을 이 인간이라는 종족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기다리라는 말에 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간식을 주기 전(그는 항상 멀리 던진다), 목줄을 채우며(바깥은 언제나 새롭지), 맛없는 사료를 부으며 생색낼 때도(우웩), 그는 항상 “기다려!”라고 소리친다. 물론 나는 처음에 그의 말을 귓등으로만 들었다. 하지만 기다림 후에는 무언가 보상이 따른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의외로 인간은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내가 자세를 낮추고 눈치를 보면 그제야 웃는다. 그게 연기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지만 역시나 기다림은 외롭다. 나는 그 감정을 최근에서야 알았다(말을 아는 것과 의미를 아는 것은 다른 법이니까). 하루의 대부분을 현관 쪽만 바라보며 기다렸던 나를 두고, 무심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인간의 뒷모습. 불 꺼진 거실. 빈 물그릇 같은 것들.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기다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인간이라는 작자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보기 시작한다. 나는 버릇처럼 그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꼬리를 흔들기도 하는데,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더니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내게 목줄을 채워준다. 나는 영문을 몰라 거실 바닥에 오줌을 지리기도 했지만, 그건 고의가 아니다. 

나는 반쯤 미쳐서 아파트 단지를, 잔디 위를, 놀이터를 마음껏 뛰어다녔다. 입과 코에서 마구 침이 나와도, 나무 밑 등을 파고 여기저기 흩어진 냄새의 조각들을 주우러 다녀도, 인간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목줄을 거칠게 잡아끌지도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는 더 이상 뛰어다닐 힘도 남아있지 않을 무렵, 그는 날 안아서 품에 넣어준다. 묘한 기분이다.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간식도 두어 개 먹었다. 폭신한 쿠션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 온도도 좋고, 기분도 나쁘지 않네. 인간도 때로는 괜찮을 때가 있군.점차 편안해진다. 꼬리도 흔들 기운이 없다. 눈과 코 주변에서 원을 그리듯 따듯한 기운이 감돈다. 바닥에 있는 것인지 하늘에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다만 나른할 뿐이다. 아니 나른하다는 느낌조차 없다. 세월을 지워버리고, 천지를 갈가리 녹여 신비의 평온함을 입고 있다. 나는 잠든다. 잠들어 평온함을 얻는다. 기쁘고 기쁜지고.

반려인간 정혜미 관찰기
글쓴이 또래

나는 강아지다. 이름은 또래고 나이는 10살이다. 나는 4명의 인간과 함께 산다. 지금 내 나이를 사람 나이로 따지면 4명 모두 나보다 어린데, 그들은 나를 애 취급한다. 뭐, 엄마와 아빠는 그러려니 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까. 문제는 두 딸이다. 한참 어린 것들이 항상 나를 대할 때 자기들이 언니인 척한다. 그럴 때면 ‘내가 할머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그래도 날 많이 사랑하는 걸 아니까 참는다. 공주 대접도 해주고.

혜미는 나를 ‘이쁜이’라고 부른다. 아, 혜미는 큰딸이다. 항상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온다. 새벽에 몰래 들어올 때도 많다. 내가 혼자 깨어있다가 반겨주면 그 새벽에 좋다고 내 사진을 찍어대며 ‘오구오구놀이’를 해준다. 오구오구놀이는 내 얼굴부터 목, 몸통까지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해주는 놀이다. 혜미가 가족 중에서 제일 시원하게 만져준다. 내가 이거 받자고 기다린 줄 아나. 참, 나. 그래도 기분은 좋구나. 그런데 얘는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 온몸에 다른 생명체의 냄새를 묻혀온다. 개인지 고양인지 사람인지. 아니 어떻게 나를 두고 그럴 수 있느냐? 난 삐질 수밖에 없다. 내가 시큰둥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이상하게도 혜미는 아주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를 본다. 귀여워죽겠다는 눈치다. 하여튼 이상한 여자라니까.

오늘은 혜미가 조금 일찍 왔다.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드디어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멍멍! 혜미한테 한참 오구오구놀이를 받다가 아침에 엄마가 외출하면서 주고 간 간식이 생각나 간식을 먹으러 뛰어갔다. 아침에 준 걸 여태 안 먹고 있었더니, 혜미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마냥 흥분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나는 그냥 먹기 싫었을 뿐이다.

날 혼자 두고 나가면서 미안한 마음에 간식을 주는 건 알겠는데, 혼자 남으면 입맛이 없다. 혜미의 무릎에 앉아 간식을 음미하고 있는데 혜미가 ‘또래와 산책이나 다녀올까’라며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산책! 내가 신나서 짖으며 발광하니, 나보고 말귀 다 알아듣는다며 천생 여우란다. 난 3살 때부터 당신네들 말 다 알아들었다고! 아무튼 난 산책을 가야지만 응가를 할 수 있으니 어여 데리고 나가거라. 원래는 엄마가 산책을 가장 잘 시켜준다. 혜미는 2등이지만 엄청 추운 날에도 내가 나가고 싶다고 짖으면(물론 짜증 낼 때도 있지만) 곧 옷을 입혀주고 날 데리고 나간다. 

산책을 다녀와서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소파에서 뛰어다니다가 그만 귤이 담긴 유리 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악! 혜미 표정이 변한다. 무섭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언니가 하지 말라고 했지!” 난 무서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혜미가 혼낼 때가 제일 무섭다. 다른 가족들은 몇 번 꾸중하고 마는데, 혜미는 진짜 살벌하게 화를 낸다. 그러게 누가 소파에 그릇을 두랬나…. 그래도 내가 잘못했으니까…. 혜미가 유리그릇 사태를 뒤처리하는 동안 난 꼬리를 내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엎드려있었다. 잠시 후, 혜미가 불쌍한 표정 지으면서 연기하지 말란다. 연기라니. 연기라니! 반성의 모습이구먼. 내 비장의 무기인 아련한 눈빛을 내쏘긴 했지만. 그래도 이 표정 하나로 혜미 마음속 독기를 풀었다. 멍멍! 오늘도 혜미 침대에서 자야겠다. 내가 자기 옆에서 자면 이 여자도 행복해한다는 걸 나는 안다. 어여 전기장판 틀어놓거라. 할머니 춥다.

반려인간 이현아 관찰기
글쓴이 말테

나는 고양이다. 여자가 나를 부르는 이름은 ‘말테’다. 고양이치고 퍽 특이한 이름인 셈이다. 여자가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은 따로 있는데 내게는 ‘누나’라고 불리길 원하는 것 같다. 가끔 여자의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 내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 여자는 그럴 때마다 자랑스럽게 내 이름을 말한다. 사람들은 “말테? 이름 특이하네?” 하고 넘기거나 “혹시 《말테의 수기》의 그 말테?”라며 알아보는 이로 나뉜다. 여자는 어쩐지 전자를 좋아하나 본데 그럴 때면 책장에서 나는 읽어본 적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은 종이 뭉치를 꺼내 한참을 설명한다. 그 설명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어쩌다 집을 잃어서 길에서 며칠을 오다가다 했다. 발바닥이 까져서 다리를 절었는데 내게 종종 먹이를 주던 여자가 그날 바로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발에 난 상처가 굳어 병원에서 다리를 절지 않자 여자는 속았다는 표정을 했다. 어쨌든 나는 그 여자네 집에서 며칠을 지냈고 지금의 함께 사는 여자가 나를 데리러 춘천에 왔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이사했다. 춘천 길고양이들에게 주워듣기로는 모름지기 수컷 고양이라면 서울에서 한 번 살아봐야 한다던데. 나는 운이 퍽 좋은 셈이다.

여자와는 서울에서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아마 여자는 매번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인가 보다. 여자는 보통 아침에 집에 나선다. 머리는 안 감아도(사실 털을 왜 맨날 빠는지 난 모르지만) 내 물과 밥은 꼭 주고 창문도 열어준다. 여자는 내가 바깥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걸 안다. 눈치는 퍽 있는 셈이다. 사실 난 새도 싫고 다른 고양이들도 질색이지만 이 집에서 보는 일몰은 꽤 분위기가 있다. 그때 고양이 치즈나 캣닢주를 즐기면 좋을 텐데 그런 걸 준비해주는 센스까지는 없다. 

여자는 보통 내가 긴 낮잠을 두 번 자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가끔 더 늦을 때도 있지만 나도 낮잠을 길게 세 번 자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이해한다. 여자는 아침에 찐빵처럼 붓는데, 저녁이 되면 얼굴에 붓기가 다 빠져서 핼쑥한 얼굴로 돌아온다. 나는 그 모습이 퍽 웃기기도 불쌍하기도 해서 집에 돌아오면 나름대로 굉장히 잘해준다. 여자는 다리를 쭉 펴고 그사이에 나를 앉게 한 다음 기껏 단장한 털을 엉망진창으로 헝클면서 “아이구내새끼누나보고싶었져여오늘창밖에비둘기마니봤져여.”라며 해괴망측한 말을 난무한다. 사실 엄청나게 귀찮지만 난 한 십 분은 가만있어 준다. 나도 여자가 퍽 반가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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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이현아 정혜미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