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비결

행복하고 싶어요

물속에서 악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어쩜 저렇게 멍청한 모양이 있는지…. 반쯤 물에 잠겨 세모난 눈을 뜨고 있는 물 밖 모습과는 다르게 물속 악어는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손과 발은 아등바등하며 어디론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는지 종종 떠올려보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물속 악어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 밖으로는 결연한 표정을 하고 둥둥 떠다니는 멍청이. 누군가는 멍청했던 시절에 저지른 일들을 창피해하며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내심 자랑스러워하며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돈을 뺐고 오토바이를 훔쳤다는 식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이다. 내가 그 정도로 멍청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멍청하게 굴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내가 멍청한지 모르고 있었다. 인제 와서야 ‘그때는 정말 큰일 날 뻔했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얼마나 멍청이였느냐 하면, 나는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몰랐다. 의사나 판사, 군인, 축구 선수, 연예인처럼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열될 법한 직업을 제외하고 나면 어떤 직업이 남는지 몰랐다. 이를테면 회계사나 목수, 엔지니어, 연구원 같은…. 이렇게 적다 보니 여전히 몇 가지 직업밖에 떠오르지 않아 당혹스럽지만, 아무튼 지금보다도 훨씬 더 멍청했던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몰랐고, 내 눈에 보이는 세상 밖의 세상은 뭘로 차 있는지 몰랐다. 생활기록부에 적는 아버지 직업은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난 의사나 판사가 아니라면 모든 친구들이 회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삼성전자나 무슨 무역 회사의 직원이라는 것도 없이 그저 회사원.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창피하게도 이토록 무지했던 기억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이야기가 아닌 무려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아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멍청했다. 재수를 마치고 같은 학원 학생들끼리 자기소개를 할 때 난 졸업하고 회사원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술자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장래 희망을 말하는 오글거리는 술자리였다. 누구는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안정적인 직업인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들 뚝심 있는 계획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쟤들은 정말 똑똑하구나 생각했고, 그렇다면 나는 뭐가 되고 싶다고 말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내 순서가 다가올 때까지 결국 신박한 직업을 떠올리지 못하고 회사원이 될 거라고 말했다.

점수에 맞춰 건축학과에 지원해 입시 결과를 앞둔 상황에서도 나는 건축이 뭐 하는 건지 몰랐다. 지금처럼 유튜브를 자주 보는 세상이었으면 찾아보기나 했을까? 어느 날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건축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런 일을 하려면 무슨 과를 가야 하나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건물 지붕이 마치 방패연처럼 완만한 곡선으로 디자인된 걸 보고 자동차 디자인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아마도 자동차공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저런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나는 이미 건축학과에 지원한 후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너무 멍청한 얘기만 하면 골치 아프니까 나름 기민했던 모습도 이야기해 보겠다. 난 대학교에 다니면서 노래도 만들었고 그림도 그렸고 책도 만들었다. 에헴. 그러니까 그것들은 모두 커서 뭐가 될 수 있한두 개 할 줄 알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해본 것이다. 음악을 만드는 건 대충 찍어 먹는 수준으로 맛만 봤지만,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만큼은 꾸준히 했다. 다행인 것은 재능이 출중하지 않았던 탓에 래퍼가 되지 못했던 것이고, 생각보다 멍청했던 탓에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건축가가 되었다고 하면 이 직업에 너무 큰 실례가 아닐까 싶어 부연하자면, 나의 노력과 실력을 애써 축소해 가며 운이 좋았다고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건축적 재능과 함께 나의 멍청함 또한 큰 재능이었다고 강조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없이 가벼워서 하찮은 인정욕구에 너무나도 쉽게 휘둘리는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왔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쇼미더머니〉에 나가 금 목걸이 받으려 줄 서지 않았다는 뜻이며, 더 좋은 기회를 만나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가지 일을 계속해 온 결과로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수단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지속하는 축복은 나에게는 그런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 것들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무척 요란스럽게 들릴 수 있으나, 그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하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깊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추우면 이불을 덮고 불을 피우고 그럼에도 추위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너무나 더우면 떠나는 수밖에, 그 외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좀 미련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이거나 혹은 좀 감각이 둔한 사람일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없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영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한자리를 지켜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시선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재능일 수 있다. 

최근 몇 년에 걸쳐 나의 직업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이했다. 나는 투자 실패의 귀재이며, 경제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 위기가 무엇 때문에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인지 전쟁 때문인지, 경기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건축가들이 위기에 풍덩 빠져 버렸다. 우리 이럴 땐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 떨지만 결국은 할 줄 아는 게 없는걸. 엊그제는 회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우리도 굿즈를 만들어 팔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그게 맞는 이야기일까…? 

멍청한 재능은 몸을 한없이 무겁게 만드는 재능, 어떤 추진력도 발생시키지 못하는 아둔한 재능이다. 악어의 손과 발 같은 재능이다. 나처럼 진중하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차라리 물갈퀴가 없는 것이 재능이다. 조금 더 똑똑했더라면, 조금만 더 세상일에 밝았더라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맛보다가 이 일 저 일 어렵지 않게 맴돌았을 것이다. 조그마한 기회라도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미꾸라지처럼 요란하게 당장 눈에 띄는 일을 좇았을 것이다. 부지런했지만 다행히 멍청했던 탓에 나는 무겁게 가라앉아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물에 떠 있는 악어처럼 멍청하게….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멍청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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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