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거처를 거닐며

테미오래

8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마을. 같은 직업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거쳐간 집. ‘테미오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작은 마을에서, 나는 어떤 시절의 흔적을 엿본다.

낯선 이를 부르는 마을

1932년부터 2012년까지, 충청남도 도지사로 임명되거나 선출된 공무원들은 모두 같은 집을 거쳤다. 정원의 노송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이층집은 국가에서 제공된 공식 거주지였기에, 도지사와 그의 식구들이 이곳에 살림을 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위 공무원들의 거처 역시 몇 걸음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다. 그렇게 빨간 벽돌집이 모인 충남도지사 관사촌은 일제강점기부터 관료 가족의 이주와 생활을 지켜보았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용된 마을은, 도청 소재지가 대전에서 인근 도시로 바뀌면서부터 거주지로서의 기능을 마쳤다. 국가와 대전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간이자 근현대 건축 미학이 깃든 이곳을, 대전시는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관사촌의 문을 시민들에게도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 설계도와 여러 사료를 토대로, 1932년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이곳은 이제 ‘테미오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불린다. ‘테미’는 관사촌이 자리한 ‘테미고개’라는 지명에서 왔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둥그렇게 테를 둘러쌓은 산성을 뜻하는 ‘테뫼’에서 출발한 말이라고. ‘오래’는 동네의 몇 집이 이웃이 되어 사는 구역이라는 의미다. 시민의 제안으로 탄생한 명칭이 붙은 이곳은 이제, 아름다운 여행지가 되어 대전의 근현대를 거닐기 원하는 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장을 스치듯 지나, 수도산의 낮은 산등성이가 보일 때쯤 테미오래에 도착했다. 정성껏 닦인 길 위로 관사 아홉 채가 부채꼴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고, ‘도지사공관’이 마을을 너그러이 조망한다. 최고위 관료가 머물던 공간답게 웅장한 규모와 둔중한 기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도지사공관부터 발을 들였다.
내부에서는 특정 문화권의 것이라 정의하기 어려운 묘한 주거 양식이 펼쳐진다. 한국식 온돌방부터 일본식 다다미방과 차노마(간단히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는 공간), 서양식 응접실까지. 모두 처음부터 시공이 계획된 공간이었단다. 일제강점기라는 건축 시점의 복잡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곳은 다양한 문화의 특징을 두루 품고 있다. 특히 눈길이 닿는 공간은 정원이 보이는 복도방이다. 해가 가득 쏟아지는 이곳은 일반적인 일식 복도보다 폭이 넓어 서양식 ‘선룸Sunroom’을 연상시킨다. 다양한 문화가 목소리를 내는 집 곳곳을 살피다 보면, 조선과 현대의 허리춤에 와 있는 신비한 기분이 든다.
흥미로운 점은 2012년까지 이곳에 살던 도지사 가족들의 흔적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장의 취향을 드러내던 일본식 장식 공간 ‘도코노마’는, 한국인 도지사들이 거주하며 실용적인 붙박이장으로 변형되었다. 활용도가 낮던 벽난로는 가벽으로 막혔으며, 주방엔 현대식 기물이 설치됐다. “이건 좀 불편한데.”라며 공간을 가족의 생활에 맞게 활용하고 고쳤을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퍽 정겨운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대전시는 시공 계획서를 토대로 1932년 원형을 복구하면서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해설과 전시를 통해 세심히 전한다.
집을 살피는 동안 이곳에 머물렀을 이들의 일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공무 외 시간에 집을 찾은 손님과 응접실에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지사. 손님용 주 계단이 아닌 보조 계단을 올라, 다다미방에 찻상을 준비하는 하인. 공부를 하며 도지사를 보필하던 서생의 하루까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뜻밖에도 집이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재현된 일상이 깃든 터

도지사공관 이외 집들은 1호 관사부터 10호 관사까지 번호로 불린다. 국장 또는 과장급 공무원이 사용했기에 도지사공관보다 규모가 작지만 소박한 멋이 있다. 수리 중이거나 운영센터로 쓰이는 곳을 제외하면 저마다 특색 있는 전시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그중 1950-80년대 관사의 생활상을 톺아볼 수 있는 5호 관사 기획전 〈한 채의 집, 한 도시의 시간〉을 찾았다.
도지사공관과 마찬가지로 서양식 응접실이 방문자를 가장 먼저 맞이했다. 이어지는 다다미방, 서재, 안방, 부엌, 자녀방은 오래된 소품과 사진으로 가득해 마치 과거를 그대로 옮겨둔 듯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여상희 작가와 협업하여 탄생한 것으로, 작가는 근대 도시 대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을 수집해 전시로 선보여온 예술가다. 서재는 가장, 안방은 아내, 자녀방은 아이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1988년 발표된 송창식의 노래 ‘우리는’이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서재에 서서 공간을 둘러보았다. 일과를 마친 가장이 돌아오면 가족은 그를 반겨주었을 것이고, 아이들은 저녁때가 다가오는 줄도 잊은 채 이웃 관사 또래들과 골목을 누볐을 것이다. 남편의 직장을 매개로 가까워진 이웃들은 때때로 안부를 나누었을 테다. 일제의 통치 아래 조성되었으나 이제는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곳. 지나온 시간을 보듬는 대전만의 방식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시대의 오래된 물성

과거를 상상하게 하는 5호 관사의 골동품.

12회 전국소년체전 참가 기념 재떨이 

여상희 작가의 수집품 중 하나. 지금은 보기 드문 형태의 재떨이지만, 단체 관람으로 5호 관사를 찾았던 퇴직 공무원들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다. 막내 시절 직접 재떨이를 닦으며 뒷정리하곤 했다는 생생한 증언도 더해졌다고 한다. 현재는 사라진 전라북도의 행정구역인 ‘이리’의 이름도 보인다.

가족사진 

1950년 관사촌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당시 관료였던 김용진 씨와 그의 가족이 담긴 한 장면으로, 이곳이 누군가에겐 터전이자 삶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옛날 쌀통

원하는 숫자를 선택하면 정량의 쌀이 나오는 통. 다시 봐도 창의적인 발명품이다. 어린 시절 쌀 쏟아지는 소리가 좋아 여러 번 버튼을 눌러보곤 했다. 엄마에게 들켜 배시시 웃던 기억이 물건 위로 겹친다.

KBS TV 여성백과 

안방에 놓인 여성 잡지다. 당시 신인 배우였던 최화정의 패션 화보부터, 기혼 여성의 기쁨과 슬픔을 다룬 에세이, 집을 아름답게 꾸민 화가의 인터뷰까지 넘겨볼수록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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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