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기다렸던 사소한 하루

대학 캠퍼스의 봄

그토록 기다렸던
사소한 하루

‘이맘때쯤 홍대는 어떨까?’ 나는 대학 캠퍼스의 봄이 보고 싶었다. 스무 살 무렵의 봄은 대부분 그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출근 버스나 사무실 창가로 봄이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가하고 풋풋했던 시절의 봄이 그리웠을 것이다. 가장 평범하게, 가장 사소하게 기억되는 아득한 봄!

나른하다. 요즘 나는 길을 걷다가도 자주 코를 벌름거리고 기지개를 켠다. 이렇게 봄을 좋아했었던가. 거의 모든 게 내 눈에는 밝게 보인다. 그러나 사실 별다른 사건은 없다. 없던 여유가 생긴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거나 키가 자란 것도 아니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 햇볕 쬘 시간이 많아졌을 뿐이다. 누군가 계절이 공평하다는 얘길 했었는데, 정말 그렇다.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그 사실이 또 한 번 나를 나른하게 한다. 참 고마운 계절.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밖으로 마음껏 나갈 수 있어 좋다. 겨울엔 무턱대고 나서지 못하던 곳까지 이제는 가벼운 차림으로도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마음껏 걸어볼까’ 생각을 한다. 섬진강을 따라 걸어 보는 건 어떨까, 매년 찾아가도 질리지 않는 강원도를 찾아갈까, 여러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하루를 비워 찾아간 곳은 집 앞이었다. 홍익대학교 캠퍼스. 

모교도 아니고 특별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체대에 입학하기 위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홍대에 입학하길 꿈꿔 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구령대가 참 그럴싸하네.’ 커다란 정문 너머로 학교 안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이나 하다가 지나치곤 했다.

그런 장소에 가자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던 몇 장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햇빛을 받은 하얀 교정, 눈부신 시멘트 길을 걸어 다니는 학생들. 온도에 맞춰 고른 가벼운 옷을 입고 모여서 자꾸만 웃는 모습들. 졸고 있는 모습들과 잠들지 않을 것 같은 표정들. 왠지 대학 캠퍼스에 가면 그런 모습을 실컷 구경하며 보이지 않던 봄의 모양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나의 대학 생활도 자꾸 떠올랐다. 대학친구들에 믿음이 없어 늘 어울리는 둥 마는 둥, 스쳐 보내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교정의 봄은 내게 뚜렷한 기쁨이었다. 꽃이 핀다거나 수강신청을 빨리해야 한다거나,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나는 그저 학교를 구경하는 게 좋았다. 이곳저곳 걸으며, 가끔은 바깥에서 교내로 이어지는 노선을 가진 버스에 앉아, 또 어느 날에는 높은 건물에 올라가거나 카페에 하염없이 앉아, 학교와 학생들과 그 외의 모든 분위기를 실컷 구경했다. 구경하기엔 봄이 유독 좋았다. 새 학기에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들과 분주함이 있었다. 그리고 학기 초에만 볼 수 있는, 오뉴월이 되면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부적응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바깥처럼, 학교에도 역시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시기도 역시 봄이었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고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감자튀김을 사서 홍익대학교의 커다란 정문을 향해 걸었다. 평일 오전의 동교동 거리는 평소와 참 다른 모습이었다. 햇볕을 쬐며 잠든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을 느낀 나는 걸음이 가벼워졌다.

빵집을 지나고, 헌책을 파는 작은 서점에 들르고, 이제 막 문을 연 식당의 분주함도 구경했다. 카페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훔쳐 보기도 했다. ‘홍대 거리에는 춤추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있구나.’ 다양한 사람들의 사소한 모습에 문득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홍대 캠퍼스는 거리와 별다른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언덕을 올라갔고 길이 이어지는 대로 걸으며 하얀 건물들을 구경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학교는 15분이면 대충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좁은 공간 때문인지, 건물은 대부분 높았다. 나는 예전처럼 높은 건물에 올라가 학교 전경을 내려다보기도 했는데, 재학생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지만….

길을 무작정 걷다 보니, 바깥으로 바로 이어지는 짧은 등산로도 만날 수 있었다. 약수터도 있고 정자나 벤치도 곳곳에 있었다. 나무 그늘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가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정문 쪽으로 향했다.

바깥에서만 바라보던 넓은 운동장이 이곳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물고 싶던 장소였다. 산에서 내려갈 때는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오래된 건물들 때문이었는지, 마치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머리 위 창가들에 빨래들이 걸려 있었다면 정말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큰 나무들과 넓은 운동장, 박력 있는 구령대가 보이는 스탠드에 앉아 나는 맥주를 마셨다. 가방에 넣어놓아서 미지근하게 변해있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전이 끝나가고 있었고, 나의 작은 여행도 차분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아마추어 야구부가 캐치볼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더니 나중에는 의외로 아주 좋았다. ‘깡깡’ 야구공이 알루미늄 배트에 맞는 소리와 실수로 놓친 공이 굴러가는 모습과 뛰는 발아래로 흩어지는 흙먼지들, 모든 게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멍하니 앉은 내 곁으로 나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무한히 지나갔다. 그 시간은 내가 선택했다고 하기엔 너무도 단정하고 매끄러웠기 때문에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평소답지 않게 시간 앞에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학교를 빠져나왔을 때도 여전히 같은 계절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사소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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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ㆍ포토그래퍼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