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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위플래쉬, 인사이드 르 윈
SOMETIMES
WE NEED SOMEONE TO
TELL US “GOOD JOB.”
<위플래쉬>, <인사이드 르윈>
그만하면 잘했어요
사람들이 <위플래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역시 노력은 위대해. 하지만 어쩌면 그만하면 잘했다는 말이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 <인사이드 르윈>의 무명 포크가수 르윈 데이비스의 인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스티븐 킹은 재능이란 엄청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르지 못하는 무딘 칼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내 생각도 그와 같다.
우리는 가끔 어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라고 불평을 터뜨린다. 아,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그 감독이나 작가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진실은, 아마 우리는 절대로 그 사람들처럼 영화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수고를 감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완벽한 결과물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은 영화감독 봉준호가 <괴물>을 찍으면서 했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고생을 시키다니 나는 분명 지옥에 갈 것’이라는 괴로움의 웅덩이에 수백 번은 빠지고 나서야 지나가는 것이다. 또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나 그의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정신병자처럼 환청에까지 시달리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는 건 쉽지만 그걸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노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뭔가를 해낸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자신이 가진 재능을 결국 꺼내보지도 못한 채 살다가 죽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그것도 운명의 장난이나 시대적 한계가 아니라, 단지 게으름과 의지박약이라는 한심한 이유 때문에. 그래서 세상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재능의 100%를 발휘하라!’며 등을 떠민다. ‘이것만 따라 하면 당신도…!’ 류의 성공에 이르는 많은 공식들은 그저 노력만 한다면 우리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재능을 모조리 끌어내서 쓸 수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최고의 재즈 드럼 연주자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찬 열여덟 살 청년 앤드류는 음악학교 최고의 교사인 플렛처의 밴드에 보조 드러머로 뽑힌다. 그런데 이 플렛처라는 인간은 지독한 선생의 표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의 수업은 한마디로 살벌 그 자체다.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식으로 학생들을 거세게 압박하면서 자신의 템포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플렛처의 교수법이다. 게다가 그는 비열하기까지 하다. 상대를 추켜세우다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짓이겨버리는 것이 그의 특기다. 자신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제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제자 또한 만만치 않다. 반드시 최고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는 메인 드러머의 자리를 따내기 위해 말 그대로 피땀을 흘리며 연습한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고하는 이유도 그녀가 자신의 성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도무지 열정이라고는 없는 그녀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운의 연속으로 연주를 망친 앤드류는 플렛처의 밴드에서 쫓겨나 드럼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얼마 후 우연히 재즈 바에서 마주친 플렛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를 바랐다.”,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은 ‘그만하면 잘했다’는 말이야.”
사실 나는 일찌감치 성공 같은 건 포기한 사람이지만, 내게 영 재능이 없지는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최소한 대한민국 남쪽 끄트머리의 시골 도시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탈 정도는 됐다. 그리고 이십 평생을 갑갑한 모범생으로 살다가 이제 한 번 재능을 펼쳐보자는 마음에 서울에 있는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나 정도의 재능이야 시장 바닥에 널렸고 이걸 제대로 갈고닦으려면 비상한 머리와 기이할 정도의 집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는데, 동시에 내게는 그런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걸 결정적으로 깨닫게 해준 것이 그 남자였다. 20대 중반에 잠깐 만난 그 남자는 콤플렉스만큼이나 집념도 대단했다. 정상적인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상종을 말아야 할 콤플렉스 덩어리에 쓰레기 같은 놈인데,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인 내 눈에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천재로 보였다(과거에 사귄 남자들을 회상할 때 언제나 문체가 과격해지는 걸 보면 내가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나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놀기라도 하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자버리는 인간이었지만,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자신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일—을 굳이 하는 인간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 저렇게 독한 놈이 성공하는 거구나. 그러니까 나는 성공을 못 하겠구나. 그러나 동시에 이런 것도 깨달았다. 그는 정말 불행한 남자였다. 내면 깊숙이 뿌리박힌 결핍과 트라우마와 콤플렉스 따위를 호소하면서 이 여자 저 여자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럼에도 그가 정말로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성공뿐이었다. 그는 우리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에게 진실한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사람들은 그를 떠올릴 때마다 미간부터 찌푸렸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성공한 사람들, 특히 예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성격에 모가 났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뭔가를 대단히 열심히 한다는 것,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 고흐처럼 평생 단 한 장도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해서 그린다거나, 도스토옙스키처럼 우울증과 발작에 시달리면서 글을 쓴다거나 하는 일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수준이다. 사실은 침대에 누워서 리모컨을 드는 게 훨씬 쉽고 기분 좋으며 건강에 보탬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그만하면 잘했어’의 순간은 웬만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이 쉽게 찾아왔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고통스러웠던 덕분에,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가 고립되면서 더더욱 고통스러워지는 바람에, 우리는 그들이 신의 눈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그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일지도 모른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위플래쉬>가 들춰내는 야심의 다른 면을 그린 이야기다. 무명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는 한겨울에 코트 한 벌 없이 기타 하나와 우여곡절 끝에 맡게 된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오늘 밤 자신을 재워줄 소파를 찾아 거리를 떠도는 처지다. 성공의 순간은 언제나 그가 손을 뻗어보기도 전에 달아나버린다. 자꾸만 도망치는 고양이처럼. 성공에 필요한 것이 재능과 노력과 운이라면 그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남자다. 어쩌면 그 자신이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파에서 신세를 지다 눈이 맞아 함께 사고를 친 전력이 있는 동료 여가수 준은 그에게 임신을 했는데 네 아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기분이 더럽고 너는 살 가치도 없는 루저이니 당장 아이를 지울 돈을 마련해 오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사람들은 그가 부르는 어둡고 궁상맞은 노래보다는 준의 애인인 짐이 부르는 가벼운 사랑 노래를 더 좋아한다. 그는 거의 마지막이다시피 한 기회에 자신의 운을 건다. 유명한 프로듀서버드 그로스맨을 만나기 위해 시카고로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겨우 도착한 시카고에서 하루 종일 벌벌 떨며 버드를 기다려 겨우 오디션을 볼 기회를 잡은 르윈이 부른 노래는, 끝내주는 노래로 이 프로듀서를 녹다운시켜주기를 바랐던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 것도 아니고 충족시킨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다.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곡 선택에 ‘미스’가 있었다고나 할까. 창법이 ‘올드’하다고나 할까. ‘한방’이 없다고나 할까. 자신만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고 할까. 본인이 잘할 수 있는 노래와 잘하고 싶은 노래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나 할까. 그냥 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한없이 처진다고나 할까.
르윈이 부른 노래의 가사는 제인 왕비의 이야기다. 임신한 왕비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진통만 며칠을 한다. 괴로워하다 못해 헨리 왕에게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내달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는다. 이 뜨악한 노랫말 속에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즉 르윈의 내면이 있다. 르윈은 그런 사람이다. 아니, 수많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 사람들은 세상이 말하는 실패자, 그러니까 루저들이다. 그들 모두가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버드가 말했듯이 르윈에게도 재능이 전혀 없지는 않다. 노력도 안 한 게 아니다. 그런데 별로 운이 없었다. 듀엣으로 좀 잘 나가보려나 했더니 파트너가 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살해 버렸다. 솔로로 서자니 어쩐지 매력이 부족하다. 그건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그의 운명은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포크의 시대라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갈, 세월이 흐르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저 그런 무명가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르윈은 그런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안에 숨어 있는 재능을 꺼낼 수가 없다. 저절로 나올 생각도 않는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면 누구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르윈은 ‘애크런’이라는 이정표를 지나친다. 그곳은 르윈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사라진 옛 여자친구의 고향이다. 저 멀리 불 켜진 집들이 보인다. 그곳은 눈보라 치는 어둡고 황량한 고속도로보다 따뜻해 보인다. 어쩌면 저 집에서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도 여자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자동차 수리를 하거나 전자제품 외판원으로 착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인생도 어쩌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가 살 수도 있었을 인생은 지나가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야 한다.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1960년대의 미국, 포크의 시대에 밥 딜런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그림자에 가린 얼마나 많은 르윈 데이비스들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포크송에 인생을 바치고 그것에 걸려 넘어졌을까.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나이 들었을까. 성공하지 못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르윈이 아버지에게 불러주는 노래의 가사처럼, 청어 떼를 잡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바다와 싸워야 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잔잔해도, 돌풍이 불어도, 땀에 젖어도, 추워도, 나이 들어 늙어가도, 결국 죽을 때가 되어서도 우리는 청어 떼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청어 떼를 만날 수 있건 없건 말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재능과 노력, 운과 성공의 상관관계 말이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가질 수 있을까? 성공은 내 인생의 목표일까? 그만하면 잘했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나 무책임한 위로일까? 성공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위플래쉬>의 앤드류가 언제나 동경하던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 일명 ‘버드’는 그의 엉망인 연주를 듣다 못한 드러머가 던진 심벌즈에 맞을 뻔한 사건을 겪은 후 수치심을 못 이겨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화기를 끈 채 잠수를 타는 대신,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래서 버드는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성공 뒤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약물에 찌들어 살다 이른 나이에 죽었다.
정말 위험한 것은 그런 것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데는 엄청난 쾌감이 있다. 하지만 쾌감은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나 조금 더 강한 쾌감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그것에 중독된다. 쾌감과 자극으로 가득 찬 특별한 인생과 밋밋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인생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내 경우를 돌이켜보자면 결국 예상대로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그나마 없는 재능을 참기름 짜듯 짜내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은 그렇게 짜내는 과정에도 어떤 희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로 인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을 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되었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등산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이나, 달리기와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매일 만원 전철에 오르는 것이나, 보고서의 마감 기한을 맞추는 것도 같은 선 위의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분명 플렛처처럼 사회적인 아버지도 필요하다. 그는 우리가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가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이끌고 채찍질할 것이다. 그러나 또 우리에게는 생물학적 아버지도 필요하다. 그는 앤드류의 아버지처럼 아들이 열정과 욕망에 사로잡혀 산화해 버리는 대신, 특별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다 조용히 사라지는 보통 사람의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는 우리가 행복하기만을 바랄 것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건, 실패했건 성공했건 우리를 안아주고 다독여 줄 것이다. 그는 우리가 패배했을 때 돌아갈 곳이다. 그만하면 잘했다고 속삭여줄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두 명의 아버지가 필요하다.
위플래쉬 Whiplash
다미엔 차젤레 감독 | 드라마 | 미국 | 106분
최고의 드러머를 갈망하는 학생 앤드류는 폭군 선생으로 불리는 플렛처 교수의 밴드에 들어간다. 그가 연주하는 곡 ‘위플래시’의 원뜻은 채찍질로, 선생의 독한 교육방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폭언과 학대, 좌절과 성취 속에서 앤드류의 연주는 계속되고, 영화가 뿜어내는 광기 앞에서 우리는 그저 숨죽이게 된다.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감독 | 드라마 | 미국, 프랑스 | 105분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포크가수 르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가 가진 거라곤 낡은 기타와 어쩌다 맡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다. 절망의 굴레를 걷던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명 프로듀서가 주최하는 오디션에 참여하기 위해 시카고로 향하고 영화는 일주일의 여정을 따라간다.
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윤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