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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바다’에 있다
바다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바다에서 태어난 것도, 자란 것도 아닌데, 바다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늘 내 안 어딘가에 한 움큼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바다를 찾아야 한다. 혼자든, 누군가와 함께든. 그때를 놓치면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와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된다. 바다를 보러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졌다. 바다가 보고 싶다 못해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게 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에서 가장 가기 쉽고 가까운 바다가 어디냐고 물었다.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나는 그중에서 생말로SaintMalo가 마음에 들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약 3시간 반. 가는 동안 기차 밖으로는 햇빛이 쨍한 날씨, 잔뜩 흐린 날씨, 비가 내리는 날씨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피식 웃음이 났다. 좋았다가 힘들었다가 슬펐다가 재미있었다가. 꼭 파리에서 보낸 나의 1년 같았다.
생말로 역에 내리자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있는 얕은 짠 내를 맡을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짠 내를 맡으며 생말로의 구시가지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을 따라 성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바다가, 너무나도 푸르게 찬란한 빛을 내며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바다를 보다가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본격 바다 감상’을 위해 일단 성곽에서 내려와 구시가지 중심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인지 따뜻한 햇볕에 몸을 맡기고 잠깐 눈을 붙이는 사람,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걷다가 때때로 멈추며 그들의 모습을 두 눈에, 또 카메라에 담았다. 따뜻한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인기가 많다는 아이스크림 집이 보였다. 해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서 하나 사기로 했다. 바이킹처럼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주문을 받았다. 한참이나 고민하다 신중을 기해 두 가지 맛을 골랐다. 그러자 커다란 콘 안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아 주었다. 나는 순간 웃음이 났다. 두 스쿱짜리 젤라토는 그의 얼굴보다도 커 보였고, 그런 아이스크림을 옆에 두고 보자니 그가 귀여워 보였다. 파리에 처음 도착한 날 했던 각오, 낯선 도시에 적응하느라 힘들던 나날들, 사람 사이에서의 외로움, 혼자 있을 때의 행복, 파리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던 날들, 우리 집 창문으로 매일 보던 하늘… 여러 생각을 하다가 아무 생각도 안 하다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한참이나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허기가 져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인터넷에서 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바빠서였겠지만 혼자 온 동양인 여자애에게 직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한참 걷다 구시가지에 발을 들여놓을 때 본 빵집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맛있어 보이는 빵들 사이로, 좀 전의 레스토랑과는 대조적으로 밝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는 직원들이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빵 하나도 정성스럽게 포장해주는 그들을 보니 불쾌하고 민망했던 기분이 모두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는 길, 마트에 들러 이곳의 특산품이라는 시드르Cidre를 두 병 샀다. 하나는 해변에서 마시고, 하나는 기념품으로 가지고 갈 요량으로.
전과는 다른 곳에 새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 샌드위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딱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가 탐이 났는지 갈매기가 옆눈으로 쳐다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 빵을 향해 날아들었다.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손짓으로 내쫓았는데, 갈매기는 급선회를 해 저만치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때 내 뒤에서 놀고 있던 두 꼬마 아이가 갈매기를 향해 돌진하며 모래를 뿌리고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물론, 갈매기가 그 두 아이보다 더 날렵했으므로 갈매기가 입은 피해는 없었지만 작고 어린 꼬마 아이들이 나를 위해 갈매기를 물리쳐주는 모습이 용사 같아서 웃음이 났다. 물론 샌드위치는 허겁지겁 서둘러 먹어야 했지만.
“Merci, Merci beaucoup(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는 수줍게 그 두 꼬마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아까의 그 용맹함은 어디 갔는지 두 꼬마 아이는 수줍게 웃어 보이며 엄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절대 잊지 못할 작은 해프닝이 끝난 후에도 나는 그곳에 앉아 계속 바다를 바라봤다.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에 오르자 거짓말같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기차에 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 마냥. 완벽한 하루의 끝, 마침표처럼. 그리울 것을 파도에 실어 바다로 떠나 보낸다. 언젠가 다시 바다를 찾으면, 밀려오는 파도에 그 그리운 것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래서 그리움을 만나러 그리울 바다를 때때로 찾는지도 모른다.
베이커리 메종 엑토르
Bakery Maison Hector
바닷가 근처에서 여유롭게 갓 구운 빵을 즐길 수 있는 곳. 친절하고 상냥한 직원들이 있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글 사진 박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