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거머쥔 장면

이런저런 이유로 당도했던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었나.

2023년 10월 30일

독일 베를린

김혜정
포토그래퍼

이 도시를 언젠가 엄마와 꼭 함께 머무르겠다던 바람을 이룬 여행날의 사진입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라디오에서는 호텔에서 시간대별로 선곡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당시에 들은 노래가 그 순간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어요. 엄마는 뜨개질을 하고, 저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쉬던 모습이 맞물리면서 하나의 또렷한 장면으로 남았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그 노래의 앨범도 찾아 구매했어요. 한편에 라디오가 담긴 이 사진도, 우연히 알게 된 그 음악도 저한텐 여행의 마지막을 따뜻한 기억으로 데우는 조각 같아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면, 머릿속이 잠시 조용해지잖아요. 늘 반복되던 리듬이 끊기고 나서야 그 틈에 놓치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잠깐 멈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떠날 만한 이유가 되어줘요.

2025년 5월 8일

한국 경주

김현건
디자이너·카페 ‘얼룩’ 운영자

4년 전, 지금의 일을 막 시작할 무렵에 다짐과 소망을 새기려 경주 불국사를 찾은 적 있어요. 그 덕분인지 행복한 일상이 이어졌는데, 다시 그 마음을 꺼내보고 싶어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반야교 다리를 건너기 전, 숲길에서 오래된 고목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같은 나무 앞에 섰어요. 그 자리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우리 삶을 꼭 닮아 있었습니다. 상처받고 단단해지며, 우거지고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서로를 존중하며 공생하는 모습이요. 바라보고만 있어도 충만함이 밀려오는 그 순간을 패브릭 포스터로 만들어 일하는 공간 한쪽에도 걸어두었어요. 짧은 여행이 누군가에겐 충만함으로, 또 누군가에겐 상실감으로 닿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결국엔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거예요.

2024년 7월

미국 뉴욕

김연영
출판사 ‘창비교육’ 마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무려 연차 10개를 털어 동생들과 2주 동안 머물기로 했을 때, 꼭 가보고 싶던 곳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였어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속 섬네일로만 마주하던 그곳, 복작복작 모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곳에 나도 속해 있고 싶었지요. 부푼 마음을 안고 도착한 7월의 그곳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시간이 일렀기 때문일까요? 혹은 햇볕이 뜨거웠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모르지만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만이 자리한 센트럴 파크에서 오롯이 존재하는 개개인들을 목격했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타인 중 하나가 되는 경험은 나를 좀더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그 시간 덕에 나는 계속해서 용기 있게,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을 거란 다짐을 되뇌었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덴마크 코펜하겐

박예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parkvin’ 운영자

나랑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 곳, 다들 하나쯤 있지 않나요? 저한텐 덴마크인데 처음 그곳으로 여행 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끌렸죠. 남들 다 가는 파리, 런던에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인생 첫 번째 유럽 여행을 경험하고 싶었으니까요. 저는 새로움을 경험하는 게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예상 밖으로 닥치는 것들을 해결해 보고, 낯선 장면 속에서 이유 모를 위로를 얻으면서, 일과 일상의 아이디어로 연결하고 싶어요. 덴마크는 건물에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에도 알록달록 다양한 컬러가 쓰이는데 검은색 옷만 입던 저를 완전히 바꿔놨어요. 지금은 옷장에 검은색이 하나도 없답니다!

2023년 12월 13일

한국 제주

문주원
《AROUND》 마케터

한 해가 저물어 가던 저 즈음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것 같아요. 마침 저렴한 제주행 티켓을 발견했고, 어디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1박 2일 동안 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주 즉흥적이었죠.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일출봉까지,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푹 빠져 사진을 찍었는데요. 특히 바위 사이에 끼어 있는 현무암을 발견했을 땐 보석을 찾아낸 기분이었어요. 혼자라서 마음속으로만 ‘우와!’ 하고 외쳤지만요. 신비로운 자연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요. 이런 장면을 만날 때 역시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 경험은 또다시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주죠. 삶이 늘 여행일 수는 없지만 이런 시간이 쌓여 점점 더 나다운 모습을 찾아간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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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글 김연영, 김현건, 김혜정, 문주원, 박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