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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 프리랜서 에디터
고치는 일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박찬용은 정답 없는 세계 안에서 완성도와 현실성, 효율과 비효율, 욕망과 타협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다. 한 페이지의 지면 위에서도, 자신이 꾸리는 집에서도, 고치고 또 고치며.
혹시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게 편하세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가장 듣기 좋아하고 편한 건 에디터이긴 해요. 아무래도 오래 에디터로 일했고, 그 일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직업이기도 해서요.
마침 이번 호 주제가 ‘집’이라서 꼭 모시고 싶었어요. 나와 우리를 닮은 집이라는 주제로 여러 집의 모습들을 담아보려 해요. 그간 살아왔던 곳들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처음 살았던 집은 부모님이 서울에 와서 자리를 잡으신 구로구(현재 금천구) 시흥동의 다세대 주택이에요.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던 게 기억나네요. 큰 집은 아니었지만, 가족끼리 복닥거리며 재미있게 살던 시절이었어요.중학교 때는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영등포구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사실 그 동네 기억은 많지 않아요. 중학교 때 이사하고,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으로 다니면서 동네 친구가 없었거든요. 대학은 신촌역 근처로 다녔고, 그 권역이 저한테는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에요. 대학 졸업 후에는 잡지사에 다니며 주로 강남권에서 일했는데,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죠. 그러다 2017년쯤 독립하면서 첫 월셋집을 얻었어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외곽의 오래된 단독주택의 2층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4년 정도 지내며 여러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리고 결국 가진 것들을 다 털어 지금 집을 구매하게 되는데요. 집수리를 하려고 2021년부터 철거를 시작했지만, 공사 때문에 2023년까지는 입주할 수가 없었어요. 그사이 호텔 두 곳과 원룸 두 곳을 옮겨 다니며 지냈죠. 마침내 2024년 초, 현재 집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수리가 끝났고, 그때부터 계속 여기서 지내고 있어요.
처음 독립해 구한 단독주택 2층 집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첫 집 연대기》죠. 독립한 이후로 집을 구하고 고치며 사는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런데 이 책을 “내 경험의 할리우드 영화 같은 버전”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살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는데, 그 책에서는 좋고 따뜻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거든요.
그렇게 했던 이유는요?
우선은 에세이를 즐겨 보시는 독자층이 그런 것을 원한다고 생각해서였고, 현실적으로는 책 출간 당시에 그 집에 세입자로 살고 있어서 그 책의 큰 에피소드를 차지하는 집주인 할머니에 대한 제 감정을 여과 없이 적기에는 조심스러웠어요. 따뜻한 원고를 쓰는 게 제 성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가 사서 고생한 일에 불평하거나 징징거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에디터님의 성향은 어떤 편이에요?
저는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편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하다거나 차갑다고 규정하기보다는, 다루는 소재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지나치게 따뜻한 톤으로 소개하다 보면 그 대상이 가진 입체성이 사라진다고 느껴서, 그런 방식은 덜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소재가 가진 입체성은 어떤 것일까요?
말하자면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 어라운드라는 멋진 회사가 있잖아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잡지를 만들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기도 하죠. 그런데 동시에 어라운드는 다른 기업의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통해 수익을 내는 회사이기도 해요. 저는 그 둘 중 하나만 떼어내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합니다.’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충분하지 않고,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 돈을 버는 회사입니다.’라고만 설명하는 것도 그 회사의 전부는 아니라고 느껴지거든요. 이렇게 한 대상 안에 공존하는 여러 측면이 있다면 그 측면을 고루고루 전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단독주택 2층 집에서 보낸 시간을 “저성장 시대의 취향 추구 실험”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어요?
말 그대로였어요. 자산과 소득이 한정된 상황에서도, 조금은 건방지게 그럴싸한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시도였죠. 그게 가능하다면 무엇은 끝까지 고수해야 하고, 무엇은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고요. 처음부터 실험을 의식하며 시작한 건 아니었고요(웃음). ‘도시 거주에 대한 실험을 하고, 이걸 책으로 써야지’ 같은 계획도 전혀 없었어요. 다만 살아가며 쌓인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이 될 만큼 모였고, 뒤늦게 돌아보니 그 과정 전체가 하나의 실험처럼 보였던 거죠.
그 과정을 거치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다만 그 가능성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평균적인 바람이나 욕심에서 조금 벗어날 때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면 청약을 받지 않는다거나, 모두가 선호하는 지역을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의 결정들이요. 사회가 정해둔 표준에 최대한 근접하려 하기보다, 그 바깥에서 선택을 하면 오히려 다른 가능성들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에디터님이 원한 삶은 무엇이었어요?
한국의 20-30대, 40대가 흔히 떠올리는 삶의 경로가 있잖아요. 어떤 대학을 나와 어떤 직업을 갖고, 몇 살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어느 동네에 사는지까지 정해진 듯한 한국형 ‘모범 답안’ 같은 삶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 경로에 의문이 있었어요. 싫다기보다는, 왜 꼭 그렇게 살아야 할까 싶었던 거죠. 내가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그 예산 안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에 살면서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로 삶을 꾸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중학생 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딴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더 열심히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당시의 저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어요. 많이 벌지도 많이 쓰지도 않지만 그 안에서 규모 있게 디테일을 잘 꾸리는 삶.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그 생각이 지금의 이 작고 열악한 집으로 구현된 거죠. 오시는 길에 보셨겠지만 엘리베이터도 없고, 역세권도 아니고요. 속아서 산 게 아닌 이상 그런 조건을 모르고 선택했을 리는 없잖아요. 저는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인 거죠.
흔히 말하는 모범 답안과는 한 발 비켜서 선택해 보니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들도 있던가요?
돌이켜 보면, 제가 이 집에 오기 전 독립을 고민하던 시점에는 제 또래의 같은 업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로를 따랐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가능하면 지원을 받거나 전세자금 대출을 활용해 직장과 가까운 오피스텔에 들어가거나 청약을 염두에 두며 결혼을 준비하는 식의 삶의 매뉴얼 같은 게 있었죠. 저 역시 그 흐름을 따랐을 수도 있고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삶은 꽤 달라졌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는 방식이 맞고,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모범 답안 같은 삶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사실 이렇게 살기 전에는 저도 ‘왜 저렇게 살아야 하지? 재미없어 보이는데.’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 나름대로의 자원과 시간, 노력과 고민을 쏟아 지금의 삶을 선택해 살아보니, 모범 답안으로 불리는 삶이 가진 효율성과 그 효율성이 만들어내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오히려 긍정하게 되더라고요.
월셋집에서 살다가 이 집을 만나고, 매매까지 이어졌어요. 이 집이 1971년에 지어진 집이라고요.
맞아요. 당시가 지금에 비하면 집값이 전반적으로 훨씬 저렴했어요. 그 무렵 제가 살던 월셋집에서 수리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주인과 비용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었죠. 그 일을 겪으면서 ‘내 집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조금은 더 편안하고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막연하지만 마음 한편에 그런 생각이 쌓여가던 때였죠. 그러던 차에, 동네에 ‘이 가격에 나와도 되나?’ 싶을 만큼 저렴한 집이 하나 나왔어요. 직접 와봤더니 실제로 존재하는 집이었고, 당시 제가 모아둔 돈과 은행 대출만으로 구매가 가능한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도 컸어요. 위치가 좋았고, 지대가 높아 전망이 트여 있어요. 층고가 높은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오래된 집이고 단지가 작아서 재개발 가능성이 낮겠다고 판단한 점도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저는 오래오래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이 집 또한 직접 수리를 하셨잖아요. “도면을 드린 디자이너가 없었다는 점”과 “의뢰인이 곧 본인이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아주셨어요. 이 조건들이 이 집의 성격을 어떻게 만들었다고 보세요?
디자이너의 부재가 이 집의 성격을 거의 결정했다고 생각해요. 보통 디자이너가 있으면 도면을 그리면서 공간에 대한 예측과 상담을 함께 해주잖아요. 예를 들면 아주 기본적인 전기 위치 같은 것들이요. (뒤에 있는 벽을 가리키며) 이 벽도 지금은 빈 벽인데, 공사 당시에는 전기를 전부 새로 놓을 수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 시점의 저는, 전기를 어디서 어디로 빼야 할지를 미리 상상하지 못했어요. (주방 쪽에 있는 콘센트를 가리키며) 그래서 저렇게 보시면 콘센트가 두 개가 있는데, 위에 있는 콘센트는 이사 온 뒤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집수리 사장님이 보통 이쯤에는 냉장고가 들어갈 거라고 배려 차원에서 만들어주신 거죠. 그런데 저는 그 위치에 냉장고를 두지 않거든요. 이런 식으로 디자이너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들이 좀 있죠.
첫 집인 2층 월셋집에서도 직접 내부를 고치며 사셨고, 지금 집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때는 집수리의 기초 중의 기초만 한 셈이었어요. 배관이나 전기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고, 벽지나 화장실 공사처럼 비교적 단순한 작업 위주였죠. 반면 지금 집은 공사 단위가 훨씬 커졌어요. 철거를 한 번 새로 했고, 공동주택 리노베이션에서 가장 큰 단위의 작업이라는 창문 교체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민해야 할 일도 많아졌고, 제가 직접 관여해야 하는 부분도 늘어났죠.
그 과정을 지나오며 ‘내가 원하는 주거 공간은 이런 곳’이라는 나름의 정의가 생기기도 했을까요?
2020년대 버전의 저를 기준으로 말하자면요. 일단 집에 책이 많은 편이라,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원했어요. 책등이 바래지 않고 오랫동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요. 그래서 이 집이 북향이라는 점이 오히려 구매를 망설이지 않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어요. 이 집을 보면 큰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향이에요. 작은방 북향, 화장실 서향, 큰방은 남향. 거실을 비롯한 나머지 공간들은 거의 다 북향이죠. 북향이면 직사광선이 강하지 않아서 가구나 책이 덜 바래잖아요. 그리고 집을 고쳤을 때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기본 구조, 그러니까 원판이 튼튼한 집이 제가 원하던 주거 공간이었어요. 이 집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저는 이곳을 선택한 거죠.
살아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불편함이나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있긴 있었어요. 다만 해결된 것도 있고, 제가 익숙해진 것도 있는데요. 해결된 건 단수 문제예요. 이 집이 오래된 집이라 수도가 한 세대씩 독립돼 있지 않고, 한 라인으로 들어오거든요. 이사 올 때부터 아래층에서 물을 쓰면 위층에서 물이 안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특히 연휴처럼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 땐, 아래층에서 씻고 위층에서 빨래를 돌리면 제 쪽에서 물이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제가 늘 물을 틀어놓는 편은 아니라 괜찮았지만, 씻고 바로 외출해야 할 때는 조금 곤란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수도 라인이 워낙 오래돼서 물이 많이 새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지난 늦가을에 건물 전체 수도 라인을 한 번에 새로 공사했어요. 그 이후로는 물이 거짓말처럼 콸콸 나와서, 지금은 그 부분에서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 외 예상 밖의 불편함은 별로 없어요. 주차가 애매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 택시가 잘 안 잡힐 때가 있다는 점 정도가 있지만, 이건 예상 밖의 불편은 아니었어요. 그런 동네는 서울에 워낙 많기도 하고요. 아침에 지갑을 두고 나와서 다시 20분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적은 있죠. 하지만 그것도 몰랐던 조건은 아니었고, 누가 속인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자신에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해 보여요. 에디터님은 자신의 기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저에게는 중요한 일인데요. 동시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해요.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니까 오래,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요소가 없다고 삶이 건조해지거나 재미없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극한의 상황 속에서는 인간의 취향이나 개별적인 개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에 점점 더 공감하게 돼요. 이렇게 살지 않아도 사람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고, 반대로 아주 잘 꾸며진 삶을 살아도 개성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요즘 사회를 보면 ‘액세서리처럼 소비되는 개성’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와인도 알아야 하고, 커피도 알아야 하고, 디자인 가구나 옷, 신발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물론 자기가 원하는 걸 추구하는 건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것들이 또 하나의 스펙처럼 요구되는 순간에는, 저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더라고요.
에디터님은 스스로의 기호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하다 했는데, 자신의 기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 방식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인생을 꽤 허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구나 삶의 시간과 자원이 유한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잘 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기술을 쌓고 돈을 벌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던, 꽤 나태한 청소년이자 청년이었어요. 늘 예산은 한정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빚을 내서 비싼 걸 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예산 안에서 나는 무엇을 취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게 됐고요. 그 과정에서 유행하지 않거나, 이미 유행이 지난 물건들 가운데서도 제 눈에는 괜찮고, 나름의 의미가 느껴지는 것들을 찾게 됐죠. 그렇게 선택한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지금의 제 기호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집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일은 에디터님에게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해요.
저는 원래 제 이야기를 드러내는 걸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에디터로서 질문하는 쪽이 편하고, 카메라가 있다면 렌즈 뒤에 있고 싶은 사람이죠. 그런데 집에 대한 책을 내면서, 제 생활을 공개하는 데 일종의 내성이 생기더라고요. 여전히 내키지는 않지만, 이미 한 번 세상에 나왔으니까요. 제가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 공사가 계속 미뤄졌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쓰게 됐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떻게든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의 어느 집》이라는 책을 내게 된 거예요. 아주 현실적인 선택이었어요.
보통 책을 여러 권 냈다고 하면, 자기표현에 익숙하고 그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자기표현이 목적이 아닐 때, 하나의 글이나 콘텐츠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논픽션의 경우라면, 저는 그 안에 담긴 정보의 밀도와 주제의 명확함을 가장 중요하게 봐요. 이를테면 ‘빵’을 주제로 책을 쓴다고 하면, 좋은 빵이 무엇인가에 대해 얼마나 깊이 질문하고, 그 질문을 통해 나름의 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정의를 뒷받침하는 재료가 충분한지도 봐요. 사례나 코멘트, 문헌 자료 등이 논지를 잘 지지하는지, 결국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하고, 그 논지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탄탄한지요. 저는 그런 지점에서 원고라는 하나의 ‘상품’이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완성도를 추구하려고 하고요.
그렇다면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닌 글, 이를테면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경우에는요?
제 책 중에서 정보 전달이 주된 목적이 아닌 경우라면,《첫 집 연대기》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그런 책 역시 결국은 출판사와의 계약 안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독자’를 상상하는 일은 저한테는 굉장히 막연해요.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여전히 그렇고요. 반면에 출판사와의 관계는 굉장히 명확해요. 편집자나 출판사 대표가 이 책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디까지를 합격선으로 보는지가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원하는 것, 혹은 그들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직업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정신적 요소 중 하나로 ‘재미’를 말씀하셨어요. 에디터님은 일하면서 언제 재미를 느껴요?
저는 현장에 나가 취재할 때,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재미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글 쓰는 일은 그렇게 재미있진 않아요. 지루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불안하기도 하고요. 지금 쓰는 글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정답도 없는 것 같고요.
현장 취재가 특별히 좋은 이유는 무엇이에요?
현장은 늘 상상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에요. 에디터님도 지금처럼 이렇게 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저는 굉장히 좋아요. 저는 제 일을 ‘생활 정보를 편집하고 생산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정보가 만들어지는 가장 앞단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늘 영광스러워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정제되거나, 가공되거나, 때로는 왜곡된 정보를 접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정보가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을 볼 수 있어요. 그건 굉장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일에서 갖는 비전도 있어요?
좋은 생활 정보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비전이요. 여행 콘텐츠를 예로 들어볼게요. 여행에 관한 콘텐츠는 형태가 무엇이든 누군가는 그걸 보고 실제로 따라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 추천한 코스를 그대로 따라갔는데, 막상 가보니 별로라면요. 예를 들어 ‘베트남의 어디에 가서 이 코스를 따라가면 좋다’고 해서 갔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요. 저는 그런 상황이 너무 겁나요. 왜냐하면 여행이라는 게,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은 몇 달 동안 200만 원을 모아서 겨우 한 번 떠나는 여행일 수도 있어요. 그만큼 큰 결정을 하게 만드는 정보인데, 제가 대충 다녀오고 기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 때문에 누군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건 제 성향상 내키지 않는 일이에요. 그래서 생활 정보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들 때는 최대한 충실한 정보를 담고 싶어요.
에디터님이 그동안 직접 인터뷰하고 쓰신 글들을 쭉 봤어요. 인터뷰 말미에 자주 던졌던 질문 중 하나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였더라고요. 반대로 묻고 싶어요. 에디터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에디터 실무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이 일을 하는 사람들 바깥까지 기억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좋은 동료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죠. 예를 들면 “저 친구 잡지 재밌게 만들었지.”, “그래도 일은 나름 재미있게 하려고 했지.”, “완전히 맹탕은 아니었지.” 이 정도만 돼도 저는 충분히 감사할 것 같아요.

“그런 현실의 서늘함을 느끼던 삶의 어느 시점에 나는 이 집을 만났다. 내 삶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의 삶이 여러 이유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집 하나라도 하고 싶던 대로 실제로 구현해 보고 싶었다. 소소하나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 번쯤은 실행해 보고 싶었다.”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