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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구도심을 거닐어 봤다면, 나의 글자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벽면에 시트지를 붙여 면도날로 휙. 젊은이들은 나를 예술가라 하더라.
내 이름은 추교은이다. 하나로 묶은 은발에 빨간 조끼를 입은 남자. 시트지 뭉치와 가방을 메고 대전 구도심을 이곳저곳 다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시트지를 왜 가지고 다니냐고? 나는 이것으로 글자를 깎아낸다. 내 표현대로라면 글자를 ‘쓴다’. 유리창이나 가게 문에 시트지를 붙이고, 면도날로 이리저리 오려 간판을 만들어준다. 휴대폰도 없고 수소문해야 만날 수 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나그네나 방랑객 같다 말한다. 가게 주인장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확인하고 끼니와 차비를 해결한 뒤, 다시 조용히 길을 나서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다. 거리의 예술가라며 멋지게 불러주는 이들도 있고. 대전부터 인근 도시까지 거리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내 글씨를 사람들은 ‘추교은체’라고 하더라. 오래전 나는 영화 간판을 그리던 극장 미술부 직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40년 전부터 이 ‘선팅 글씨’를 썼고. 밑그림도 없이 손을 움직이다 보면 딱 추교은의 것이라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완성된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획을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했다. 내게도 철학이 있다. 글자와 그림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것. 글자에 어울리는 그림을 곁들이거나, 글자가 하나의 그림처럼 보여야 한다. 그래서 딱딱한 정자체 글씨보다 부드럽게 흐르는 글씨를 선호한다. 어떤 획은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어떤 획에는 장식을 더한다.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내 글자가 있는 장소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고, 글씨를 디지털화해 타이포그래피라는 걸로 바꾸기도 하고. 내 작업은 유리창을 넘어 종이 위에도 자리를 잡았다. 대전 구도심이 개발되면서 사라지는 것들이 못내 아쉬워 마음을 쓰던 젊은 친구들의 정성 덕분이다. 조금 머쓱하지만, 가능한 한 오래 글자를 하고 싶은 나에겐 의미 있는 일이다. 추교은의 글자는 알아보기 쉽다. 대전을 여행하다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때, 내 글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넬지도 모른다.
이 글은 추교은 선생의 인터뷰 및 방송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쓴 에세이이며, 그의 실제 원고가 아님을 알립니다.
《추교은 글자 도감》ㅣ노네임프레스
“그의 글자는 밥 한 끼처럼 부담 없는 것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서적 장소로 기능할 수 있는 귀한 거리 예술이기도 하다. 여러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일일 테다.”
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노네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