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을 따라 전해지는 마음

Aesop

계절의 기색이 무르익었다. 달이 차오르자 서로를 향한 눈 맞춤이 기꺼워지는 만남의 시간도 다가왔다.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풍성한 가을이 내어주는 환대를 안은 채로 우리 앞에 섰다. 자연스러운 흔적이 새겨진 그 환대를 정갈한 마음으로 받아 든다.

고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묵직해진 구름 아래 볕은 강렬한 기색을 감추고, 초록으로 빛나던 모든 것은 다른 색깔 옷으로 갈아입는다. 영원할 것만 같던 무더운 나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은 고이지 않고 잠잠한 기색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새로이 깨닫는다. 이맘때의 우리에게는 보다 더 선명한 안색으로 안부를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추석, 한층 무르익은 달과 곡식을 끌어안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하는 우리만의 약속이다. 

때맞춰 도착하는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우리나라 명절인 추석을 환영하는 마음을 품는다. ‘오래된 매듭의 무늬’ (2020)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2021), ‘두드림 끝에 맞이한 결실’ (2022), ‘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 (2023)까지, 우리 주변을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하나의 메시지는 정다움을 나누는 이맘때에 온기를 더하곤 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하비스트 캠페인은 시간의 흔적을 따라 틈을 보듬는 마음에 주목한다. 시간은 온 세상 모든 것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푸릇하던 열매에 시간이 닿으면 동그랗고 붉게 차오르고, 작아 보이던 생채기에 시간이 닿으면 가장자리부터 아물면서 뚜렷한 자국이 생긴다. 고이지 않는 이것의 손아귀에서 사람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물과 불, 바람과 흙을 손결 사이로 흘려가며 만물의 곁을 지나가는 시간은 앳된 것을 성숙한 것으로, 오래된 것을 더 오래된 것으로 만드니까. 하비스트 캠페인은 그 흔적들을 흠이라 여기지 않는다. 무르익어 가는 것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서로를 보듬어 준다면, 하나에서 함께가 되어 조화로움을 찾는 가을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솝의 시선은 나무로 향했다. 나무는 날이 갈수록 나이테가 겹겹이 쌓이며 틈과 생채기가 생기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덧입기보다 단단한 생의 증거로 남겨둔다. 죽어서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기에 남겨진 본연의 상처와 벌레가 지나간 자리, 옹이 같은 자국들이 의연한 아름다움으로까지 느껴진다. 이 마음을 전하고자, 올해 하비스트 캠페인은 나무를 만지고 다듬는 목공예가 김민욱 작가와 손을 잡았다. 나무의 결을 해하지 않는 조화로운 지점을 찾아 나서는 그의 작업은 자칫 결점처럼 보이는 요소들에 미감을 불어넣어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드러낸다. 잘못 자르거나 갈라지고 부서지더라도, 마음이 허용한다면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또한 재료의 터진 부분을 잇는 동이나 철 같은 금속을 더하는데, 나무의 포근함에 금속류가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듯하다고. 이솝은 캠페인을 통해 전통 소재와 기술을 계승하되 현대 감성에 어우러지는 행보를 보이는 국내 공예, 예술 작가와 협업한다. 전통적인 문화를 우리가 일상에서 친근하게 만끽할 수 있는 메시지로 전하기 위함이다. 이솝의 시선과 김민욱 작가의 손길이 만나, 예부터 이어져 온 것들이 지금 바로 이 시절을 사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한데 어우러진 그 풍성한 환대로, 이 계절에 안을 수 있는 조화로움 속으로 성큼 들어선다.

“비범함은 무수한 평범함이 쌓인 결과물이다.”

정약용

흔적의 아름다움을 건네며

이미 지난 시절 어딘가에 멈춰서 일상적인 풍경을 떠올려 본다. 소박하게 지어진 집 안팎으로 나무와 나무에서 비롯된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각종 건물과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사용했다. 우리 삶 가까이에 놓인 재료이자, 허식을 피하고 절제하는 삶과 소박함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공예품으로서의 나무에도 여전히 내재된 가치인데, 우리나라의 목공품은 못 등 물리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무 자체의 짜임새를 활용했다고. 재료의 성질을 이치에 맞게 적용하는 오랜 경험의 결과이자 숨쉬는 기물을 대하는 제작자와 사용자의 애정까지 엿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하비스트 캠페인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의 말을 빌려 여전히 빛나는 가치에 대해 전했다. “비범함은 무수한 평범함이 쌓인 결과물이다.” 시간은 우리 눈에 보이거나 쉬이 감각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또 돌아보면 켜켜이 쌓여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나무가 시간을 머금고 만든 이와 보는 이에게 가치 있게 머무르듯, 별다를 것 없이 흐르는 일상이라도 그 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특별함을 이룰 테다. 오래되어도 빛이 바래지 않는 가치를 들여다보니 둥그런 목공예품으로부터 부드럽고도 묵직한 삶의 의미가 와닿는다. 

올해의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8월 26일부터 9월 22일까지 진행되었다. 일부 이솝 스토어에서는 김민욱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두었는데, 앞서 써 내려간 수많은 문장을 뒤로한 채 보더라도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솝은 그 아름다움을 고마운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기프트 셀렉션을 선보였다. 풍성한 가을의 환대를 담뿍 담아내어,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안부를 묻고 그간의 감사와 앞으로의 믿음을 전하는 추석에 전하기 좋은 마음이 되었다. 넉넉하게 차오른 달 아래, 서로 다른 흔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던 장면을 되새겨 본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 남겼을 고운 흔적을 가늠하며.

김민욱 목공예가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해 마지않는 한 사람이자 목공예가다. 그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각각의 나무가 품고 있는 고유함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해운대 달맞이 언덕 중간에 자리한 작업실 ‘키미누 스튜디오’에서 하비스트 캠페인을 함께한 김민욱 작가를 만났다.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공예의 길로 향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세상의 틈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저에게 새롭고 놀라운 발견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한때 이민을 준비했기에 이후 생활을 위한 여러 가지 기능과 기술을 알아보다가 그중 하나인 목공을 배우게 됐죠. 처음에는 나무를 생계 수단으로 여기면서도 재료가 본디 가지고 있는 물성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심재와 변재의 경계, 옹이로 구별되는 곳, 벌레가 만들어준 패턴, 수종에 따른 저마다의 성질과 색에 점점 더 매료되어 지금 작업까지 이어졌습니다. 

 

작업에는 어떤 과정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인연이 닿는 나무를 만나서 자르고 속을 비워내며 다듬는 것이 전부예요. 나무는 불안정한 소재입니다. 계절이나 베인 시기에 따라 수분 정도가 달라지는 등 가변성이 커요. 나무의 살을 다 깎아야 속에 숨어 있는 진면모가 선명히 드러나고요. 그래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재료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하죠. 형태를 고민하는 아이디어 스케치도 미리 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 중간에 형태가 바뀔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신중하기만 하면 속도가 나지 않으니 손으로 나무를 깎으면서 앞서 실패했던 부분을 상기하며 진행합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기꺼이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게 인상 깊네요. 작업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다면요? 

손으로 작업하면서 가장 좋은 때를 알고, 가장 적절한 두께를 느낄 수 있을 때 오는 기쁨이 좋습니다. 늘 성공에 가까운 작업에 도달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과정마다 만나는 나무들의 모습도 의미 있고요. 제 일은 계속 비우는 것인데, 다 비우고 나면 몸과 마음에서 무언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어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긍정적 에너지가 있나 봅니다. 

 

올해 하비스트 캠페인을 함께했어요. 협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응했나요? 

평소에 부산 달맞이 언덕에 있는 이솝 스토어를 오가며 보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드시더라고요. 부산의 바다가 연상되는 오묘한 푸른색 기와 벽이 기억에 남아요. 여러 사람과 작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스토어가 문 열 때부터 그 정성을 지켜봐 왔기 때문인지 이솝의 제안에 어떠한 고민 없이 응했습니다. 함께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캠페인의 메시지 중 하나가 “시간의 흔적을 따라”라는 문구였죠. 시간이 흐르며 남긴 흔적을 흠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유를 들려주세요. 

모든 생물에게는 흠이 있잖아요. 알 수 없는 어딘가에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제 관점에서는 나무가 소재일 때 드러나는 결함들은 특이하면서 특별한 구석이라고 생각해요. 왠지 실패로 여겨지는 부분들을 볼 때마다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요. 도리어 제가 부족함이 많은 존재라 그런가 싶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흔적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적이라고 느껴요. 이유를 완벽히 설명하긴 어려워도 마음이 끌리는 건 불완전한 걸 그대로 드러내는 쪽입니다.

이솝과 협업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나요? 

가장 긴 시간을 가지고 진행된 프로젝트예요. 한 해의 절반은 하비스트 캠페인에 집중했거든요. 단 1분의 영상과 몇 장의 이미지를 위해 십수 명의 사람들이 3일간 작업실에 모여 있었는데, 그때 느낀 엄청난 집중력과 진정성이 협업하는 내내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동일한 형태의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 보는 건 작업량과 집중력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어요.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작업의 방향성이 있을 텐데요. 

언제 어디서든지 구현할 수 있는 일정한 물성을 만드는 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업의 주인공이 작업자가 아니라 나무이길 바라기 때문에 그 시간과 공간, 그 만남에서만 비롯되는 작업을 좋아해요. 그러려면 수많은 나무를 만나야 하고 공간도 지금보다 더 넓은 곳이 필요하겠네요. 소음이 발생할 테니, 멀리서 이웃의 불빛이 보일 정도로 떨어진 숲속 작업장에 산처럼 나무를 쌓아두고 작업하고 싶어요. 너무 외딴곳은 무서우니까요(웃음). 

 

그럼요(웃음). 하비스트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작가님께 추석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이전에는 때마다 시간을 내어 모이는 게 봉사나 효도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서, 추석은 가족을 모이게 하고 함께하지 못한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있다고 느껴요. 1년 중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긴 때가 바로 추석인데, 이때 편안함을 느끼는 건 저를 위하고 생각해 주는 가족 덕분입니다. 고마움이 커요. 

 

마지막으로 이번 협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려주세요. 

우리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면 좋겠어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마음이니까요. 나아가 눈으로 보이는 것이든, 마음에 있는 것이든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지내시길 바라요. 그러면 이 계절만큼이나 풍요로운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 ‘시간의 흔적을 따라’
O. 2024년 8월 26일—9월 22일
H. Aes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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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윤동길 진행 정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