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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백
현진
개 아니면 럭키스타,
그냥 어슬렁거리는
동네 주민과 나눈
쓸데없이 진지한 이야기들
1997년, 홍대 인디씬에서 ‘어어부 프로젝트’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게 음악인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낯설다’라는 평가는 어어부 프로젝트만의 고유한 수식처럼 따라붙는다. 그 중심에 노래하는(울부짖는) 백현진이 있으며, 그는 작업실 안에서 하루 종일 추상화를 그린다.
그런가 하면 영화 속에 불쑥 나타나 여배우의 허벅지를 만지기도 하고, 쟁쟁한 배우들을 모아놓고 영화인지 동영상인지 모를 것을 연출하기도 한다. 아무 이름도 체계도 없이 그저 거기 있는 사람. 연남동 사는 백현진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인터뷰를 멈추다
1997년에 어어부 프로젝트(이하 어어부) 1집 ‘손익분기점’이 나왔을 당시 반응들이 꽤나 ‘이상했다’고 들었어요.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홍대 앞 인디씬 문화가 메이저 언론사들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늘 거론되던 팀들 중 하나가 어어부 프로젝트였죠. 당시 홍대의 록 음악은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처럼 펑크록을 하는 친구들과 언니네 이발관이나 델리스파이스 같은 모던록을 하는 밴드로 나뉘곤 했어요. 그런데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은 이 난감한 음악을 둘 중 어떤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어야 할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그저 이상한 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통 어떤 분류에 딱 들어맞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곤 하잖아요. 테트리스로 치면 잘 맞지 않는 조각이 나온 거죠.
그럼 어어부 음악은 사람들의 ‘불안’을 기반으로 하는 건가요?
한 단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낯섦’이죠. ‘낯설다’라는 동사.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나서 이번에 새 앨범이 나왔는데 여전히 낯설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낯설게 보이다가 끝날 수도 있으려나, 그런 생각도 잠깐 해봤어요.
그렇게 보이는 걸 즐기나요?
청년이었을 때는 가능하면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우리 음악을 듣는 대상들에게 당혹감을 느끼게 하거나, 난생처음 경험하는 신호 같은 걸 만들자, 하는 생각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단계 역시 지나버렸죠. 멘델Mendel이 잡종 교배를 할 때 이걸 이렇게 섞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려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그저 스스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죠.
계속해서 낯선 걸 보여주려면 어떤 동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이나 영화 같은 것들도 주변 아이들과는 다른 걸 찾아야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내가 무언가를 생산할 때도 다른 걸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거죠. 그 ‘다름’을 즐기는 것이 동력이라면 동력일 텐데, 물론 지금은 ‘다르게 사는 사람이 다른 작업을 한다.’라고 명료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훨씬 더 혼란스러운 문제였어요. 그저 다른 걸 만드는 게 옳은 거구나 하는 신호가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하나의 문장이 당시에는 몸으로만 느끼는 막연함이었겠네요?
제게 언어는 굉장히 뒤늦게 따라와요. 그리고 그 언어라는 게 대부분은 대상들에게 뭔가를 보이기 위해 왜곡되기도 하고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커다란 무엇이 있다고 부풀리거나, 빠른 피드백을 받기 위해 자신의 것을 감산해서 표현하는 경우 말이에요. 정말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예술가들도 언어 안에서 그런 감산과 가산을 반복해요. 문제는 자기가 말한 문장이 다시 자기 안으로 들어올 때, 스스로 결정한 규정과 정의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하나의 문장을 말하기까지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르겠어요.
평소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인가요?
저는 언어로 가능한 것만 말해요.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은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런데 현대미술의 경우는 종종 그림을 언어로 뽑아내라고 강요받기도 해요. 작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전시회를 할 때,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주장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말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시스템인 거죠. 그건 자기 안에서 나온 텍스트도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의 말을 짜깁기하는 건데, 제가 볼 때는 그런 행위들은 엉터리 디제이가 섞어놓은 음악처럼 보여요. 자신에게 내제된 덩어리를 텍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누군가의 요구에 말려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들을 언어로 생산하는 건 피하라는 말이에요. 그런 과정을 응축이니 생각의 정수를 뽑아낸다느니 그렇게 말들로 포장하는데, 웃기지 말라고 그래. 헛소리들이야.
그렇지만 예술가들이 텍스트를 만들어내라는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 작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또 현실이기도 하죠.
젊은 작가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를 꼰대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조금 심각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저는 예술가들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어떤 요구를 받아서 수행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소위 미션 컴플릿하는 과정을 거칠 수는 있겠죠. 아트스쿨 나와서 독일 레지던스에 가고, 어디에서 전시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아지게 돼요.
뻥뻥 열려서 확장만 생각해도 스스로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예술이라고 보는데, 그런 식의 감산만 하다 보면 작업 못 해요. 물론 어떤 공식적인 루트를 걷지 못하면 불안하겠죠. 하지만 그 불안은 미션 컴플릿을 하든 안 하든 계속 생겨요. 불안은 가시지 않아요. 자신에게 질문을 해봐요.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하면 ‘예술가’라는 이름을 들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자기 자신이 예술 그 자체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비 맞은 솜사탕처럼 몸이 작아져도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은 건지는 잘 판단해야 해요.
아무리 뾰족하게 튀어나왔다고 해도 결국 백현진이라는 예술가 역시 제도의 외피 안에 포함돼 있는 건 아닌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제도를 거부하라고 하는 게 아니고 다만 제도를 잘 이용하라는 얘기예요. 제 말이 만약 제도를 사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면 저는 굉장히 모순적인 사람이 되는 거예요. ‘삼성에서 전시하고 CJ에서 영화 만들고 노래 부르고 그런 사람이 제도를 거부하라고? 완전 꼰대네 저 새끼.’ 이렇게 되는 거죠. 대도시에 사는 한 제도에 속해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제 말은 제도에 있을 때 그 페이스에 자신을 온전히 놓아두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예를 들어서 나는 솜사탕인데 그들은 정로환 만들기를 요구한다고 하면 못 하겠다고 그 작업실을 나와야 해요. 그냥 계속 솜사탕을 만들면 돼요. 그게 당장은 정로환을 만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 방법인 거니까. 스스로 자신만의 운신의 폭을 찾으면 돼요. 왜냐하면 일정 부분 정해진 코스들을 걷지 않아도, 길은 분명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가지고 있는 걸 지키면서 기회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기회가 잘 없죠. 맞아요. 몇 사람만 할 수 있는 희박한 길이에요. 그래서 아까 얘기한 걸 다시 강조하자면 예술을 하려면 마음을 정말 단단하게 먹어야 돼요. 진짜 작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이게 죽도록 힘든 일일 수 있겠구나, 그걸 잘 알고 시작하라는 이야기예요.
미대를 자퇴하고 후에 갤러리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다고요.
학교를 그만두고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 작가로 들어갔던 게 2005년이니까 그 사이에 10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죠. 당시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에 선정된 어떤 작가가 저를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정해진 코스를 밟아야 한다는 건 전혀 생각도 안 했어요.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남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본 적도 없었고요. 운이 좋았죠.
그래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난 거니까요.
이게 희박하지만 분명 예술을 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일종의 증거가 되었으면 해요.
평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나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만들어서 노래 부르고, 몸으로 연기를 하는 그런 것들이 훌라후프가 중력을 거스르며 허리에서 계속 돌고 있는 것처럼 제 몸에 걸려있기는 해요. 이건 언어로 말하기는 힘들고, 나중에 어떤 노인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 같은 게 있죠. 예전에는 제가 되고자 했던 노인이 톰 웨이츠Tom Waits이기도 했고, 한대수이기도 했고, 홍상수나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냥 듣도 보도 못 한 어떤 노인이 거기에 등불처럼 깜빡깜빡 아주 희미하게 신호를 내고 있어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그런 긴장을 갖고 있어요.
다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떤 사람들은 백현진의 미술작품이 ‘자동기술법Automatisme’으로 그려졌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게 아마도 2004년쯤인가 제가 드로잉 작업을 할 당시에 나왔던 말이에요. 그 이야기가 아직도 가끔 들리기는 하는데 그렇게 유효한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설계도 없이 집을 지어나가는 것이라고 비유를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저는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스케치를 먼저 하거나 어떻게 그릴지 계획을 짜는 편은 아니에요. 가령 작업을 하는 중에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나면 그런 상태가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식이죠. 말 그대로 육체나 심리의 변화, 날씨 그 외의 복잡다단한 요인들에 의해 작품이 변하는 거니까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는 거죠.
어떤 상태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작업하는 예술가는 많이 봤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네요?
공연을 할 때도 점점 더 그렇게 돼요. 어떤 날은 30분 공연시간 동안 노래를 한 곡도 안 부르고 내려온 적도 있어요. 제 몸 상태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게 즐겁고 무리가 없다는 걸 느껴요. 이번에 어어부 새 앨범도 작곡가인 장영규 씨의 의도에 맞춰야 하는데 그 과정이 옛날보다 힘들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런 백현진의 모습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더 편한 거죠. 예전에는 메탈리카Metallica가 3분 33초짜리 곡을 라이브에서도 딱 그 시간에 끝내더라, 하는 거로 감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래서 뭐, 그 렇구나. 참 피곤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 백현진 · 평상심 Delete-Reset 2010_2014-2015 Oil, alkyd resin, enamel spay paint, charcoal, graphite pencil and graphite powder on canvas 172x230cm
마음 가는 대로 붓질을 하는 것이 실은 백현진이라는 감정이나 상태 안에서는 균형을 잡고 있다는 뜻인가요?
노래를 하거나 페인팅을 할 때 일부러 어떤 균형을 가져가야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만약 누군가 왜 균형을 지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도리어 어떤 균형을 잡아야 하지? 하고 반문하고 싶어요. 구도? 비율? 컬러? 그런 건 일종의 패러다임이고 그때그때 시대별 약속인 거지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자연에 이론이 어디 있어요.
스스로 무언가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나요?
강박이나 규칙을 깨기 위해서 그림을 그릴 때 열 번 중에 여덟 번 정도는 색깔도 안 보고 물감을 골라서 색칠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보는 거죠. 아, 이 색깔이 칠해지고 있구나. 하지만 나도 교육을 받고 이 환경에서 끊임없이 프로그래밍 되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칠할 때마다 척척 마음에 들겠어요. 일단 색을 칠해놓고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거예요. 지켜보는 거죠.
하지만 그건 작품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고, 관객이 그런 수고까지 감수하면서 작품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대상들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앞서 얘기한 멘델의 경우처럼 제 연구가 우선인 건 사실이에요. 예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우림과 함께 노래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자우림 멤버들은 일등 아니면 꼴등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는데, 딱 중간 순위를 받았어요.
그때 저는 메인스트림 쇼에 누군가의 제안을 받고 도움을 주려고 나간 거라 어쨌든 많이 정리를 하고 포맷에 맞춘 거였거든요. 그런데 다시는 그렇게 노래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껏 제가 해왔던 것처럼 제 일을 하고 싶어요. 이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가 헤아릴 문제가 아닌 거죠. 만약에 그런 저를 두고 누군가 ‘당신은 왜 그렇게 대중과 소통을 꺼리느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소비되는 것과 소통하는 건 다르다고 대답하고 싶어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입에 오르내린다고 소통을 잘하는 게 아니고 단지 소비되고 있는 거죠. 관습처럼 사용되는 소통이라는 말은 사실 구멍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럼 백현진과 대중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나요?
예술가가 대중과 만나는 소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는 사실 논할 자격이 없어요. 다만 저라는 사람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간단해요. 성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자기 작업을 하면 되는 거예요. 의외로 굉장히 간단하죠. 그 정성이 담긴 작품을 누군가는 소비할 거예요. 작품을 즐기거나 불쾌하거나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겠죠. 거기서부터는 제 역할이 없어요. 모두 그들 거예요. 어떤 반응이 옳은지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언젠가 술자리에서 예술가의 소명이나 윤리에 대해 답한 적이 있는데, 다 좋죠. 하지만 그건 작업을 하면서 생각할 문제인 거고, 전시가 들어간 다음에 대상들이 그걸 좋아하건 싫어하건 열광을 하건 손을 놓아야죠. 그게 끝이에요. 그런데 잠깐만요. 사진 촬영을 먼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다음에 이야기를 계속하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깐 쉬다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국가대표였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마신지 꽤 됐죠. 혼자 먹을 때는 동네 치킨집에 책을 하나 들고 나가요. 거기 앉아서 맥주 시켜놓고 책 읽죠. 그러다 여기저기 말소리가 들려오면 책을 덮고 칸막이 너머 이야기를 들어요. 그게 일종의 라디오 주파수 같아서 어떤 파트의 이야기가 딱 접속되면 그걸 계속 듣게 되는 거죠. 직장 상사 이야기, 연애 이야기, 인간극장이 따로 없어요. 살면서 혼자서 놀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고민해요. 애인이 있어도 항상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심심함을 많이 느끼나요?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을 때도 많았는데, 술을 안 마시고 나서부터 심심한 감정이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죽도록 일하고 확 술 마시고 띵, 정신이 나가면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마시고 반복. 그러다가 저녁때 약속 같은 게 없는 날이면 ‘오늘은 뭘 하지?’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작업을 안 하더라도 무언가 항상 찾아서 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어요.
문인들과도 자주 술을 마셨다고요.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인 성기완 씨랑도 친해요. 그리고 어쩌다 출판사에 볼 일이 있어서 가면 이것저것 책을 챙겨주는데, 요즘에는 심보선 시인의 책도 좋더라고요.
예전에 문예창작과에도 지원했다고 들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그쪽으로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어요. 하일지라는 소설가의 《경마장 가는 길》을 좋아했어요. 한국말로 써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고 그때 느꼈어요. 뭔가 동시대적인 소설이라는 게 이런 거겠구나 하는 생각들 말이에요. 그때 아마 하일지 씨가 제가 지원했던 대학에서 강의를 했나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거길 들어가서 시를 쓰면 멋있겠다 싶었는데 잘 안 된 거죠.
그 무렵에 음악도 처음 시작한 건가요?
고등학교 때 흥얼흥얼 대면서 내 노래들을 만들었어요. 시인을 열망했으니까 뭘 끄적거리고 거기다가 멜로디 같은 걸 간단하게 붙였어요. 말 그대로 싱어송라이터 훈련을 했던 거죠. 그러다 그때 어어부의 장영규 형을 만났고, 제가 만든 곡들이 영규 형의 손을 거치니까 이게 뭔가 멋있는 음악처럼 들리는 거예요. 와, 신기하다 하면서 95년도에 바로 공연을 시작한 거죠.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건 아니었네요?
전문적으로 뭘 해보겠다고 한 게 그나마 미대를 들어갔던 건데, 당시 제도권 교육이라는 거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친누나가 젊었을 때 엄청 매력적인 여자였어요. 매력이 많으니까 주변에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누나 덕에 그 사람들을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고 다녔는데, 그때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좋은 예술가들이었어요. 최정화(미술가), 이불(미술가), 안은미(무용가), 시나리오 쓰는 김대우, 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이니까. 그때는 다들 같이 모여서 놀았어요. 금누리(조각가), 안상수(시각디자이너) 같은 사람들 모두. 어렸을 때 그렇게 놀다가 대학을 들어갔으니 얼마나 지루했겠어요. 또래의 학생들을 보면서도 ‘내가 이런 애송이들이랑 뭘 하겠냐.’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시건방진 애였죠. 겉멋만 잔뜩 들고, 예술가로서의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것들에 잔뜩 쩔어서 살았던 거예요. 오만하고 화도 많고, 그러면서 엄청 낄낄대기도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어떤가요?
예전에 저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그때의 표정과 기운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요. 그렇게 날카롭던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져 있느냐고. 하지만 저는 그 시절 분노의 감정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오히려 방향이 구체화되면서 뾰족해졌다고 생각해요. 마구잡이 식으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분노를 운용하는 기술인 거죠.
최근 페이스북에서 ‘백주소리’나 ‘야반소리’ 같은 연작 동영상을 봤어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을 보면서 굉장히 밀집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방식만 달라진 거지 그 에너지는 아직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에요.
어렸을 때는 하루 24시간 중에 보통 15시간은 불안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불안한 시간이 거의 없어졌고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정적이고 불안해하는 것들은 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된 거죠. 머리로 하는 문제는 아니고 몸으로 체화된 담담한 시간들이에요. 그렇지만 사회 시스템이나 소위 결정권자들이 모인 집단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해서, 그런 것까지 제어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떤 격앙된 목소리를 공개된 공간에 표현하는 건 일종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단일한 사건이나 정부 시스템에 분노를 표출하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의문을 갖고 행동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내 스스로도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아웃풋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지만 과거에 내 선배들이 목숨을 바치며 했던 걸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아요. 뭔가 방법적으로 명쾌하지 않아서 올인을 할 수는 없는 거죠. 그 대신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한받’이라는 뮤지션을 지지해요.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역할을 분명하게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거든요. 구호만 앞세워서 폼만 잡는 사람들은 조금 의심하게 돼요.
진심의 문제인가요?
마음의 얘기로 넘어가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고, 이건 말 그대로 목표를 수행하는 방식의 문제예요. 목표를 수행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받이 가장 적절하다고 봐요. 내가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항상 고마운 마음은 있어요.
페이스북에서 ‘너에게’라는 곡을 들었어요. 가사가 구체적이고 노골적이더라고요.
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물건 중 하나가 이런 것일까? 하는 느낌으로 불렀어요. 그러니까 이 어두운 시절의 어른으로서 할 말을 하겠다는 생각, 돌려 말하지 않고 깨끗하게 명시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잘 아는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사소한 감정들을 함께 버무려서 가사를 쓰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낯선 것 두 개를 배치하는 방식을 자주 쓰는 것 같아요. 방금 이야기 한 ‘너에게’만 보더라도 ‘총체적으로 난국인 거대한 어두운 시간 앞에서 우연히 먹게 된 굴비 정식을 발라 먹다가 문득 니 생각이 나네 니 생각이 나네’라는 가사가 있어요.
언제부턴가 메타포Metaphor에 흥미를 많이 잃었어요. 그래서 가사도 있는 그대로를 쓰는 편이에요. 건태 씨가 지금 시청 앞에서 미술 관련자와 미팅이 있다고 가정해 봐요. 장소가 시청 쪽인 거예요. 광화문 일대를 걸으며 보니까 정부와 시민들 간의 문제로 복잡한 상태인 거야. 그럼 생각이 많아지죠. 그러고 나서 미팅장소에 갔는데 굴비가 너무 맛있는 거야. 그런데 동시에 그 지역의 조건은 내가 굴비 정식을 먹으면서 무조건 헤헤거리며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거죠. 일상에는 생각보다 그런 순간이 굉장히 많아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서로 다른 걸 억지로 찾아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택을 하는 셈이네요.
다 연결돼 있는 것들을 선별해서 다시 가사라는 프레임으로 제시하는 거죠. 맛있는 거 먹을 때 누군가 생각나기도 하잖아요. 아버지나 어머니, 연인이 생각날 수도 있고, 속초에서 배 만들면서 고생하는 내 친구가 생각날 수도 있고, 그런 마음까지 같이 가사 안에 가지고 올 수 있는 거예요. 이건 영화적 장치도 아니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기술도 아니에요. 그저 있는 그대로의 것을 추출해서 붙이는 거예요. 장면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편집은 있지만 굴비보다 더 확 마음을 찌를 만한 단어가 뭐가 있을까 그런 걸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가사 이야기가 나와서 이어가자면,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는 매우 폭력적이기도 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흥얼거렸던 곡이었는데 저는 이제 그런 가사를 못 써요. 그 인물이 비참하잖아요. 척추가 부러지고 부인이 집을 나가고 불을 내고, 그 당시에는 이게 어떤 장치였어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스펙타클한 볼거리와 결합해서 사람들 눈앞에 들이밀자 하는 욕망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의 비극을 노출할 때 내 마음은 모두가 이 가족의 슬픔과 비극의 자장 안에 긴장된 상태를 보여주겠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그런 폭력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어요. 심지어 그런 가사를 썼던 게 창피하기도 해요. 아무리 작업 속 인물이라지만 그런 비참한 인물들을 막 사용하는 것이 싫어졌어요.
최근에 나온 4집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역시 밝은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이혼하고 자살하고 이런 건 사회 도처에 널려있어요. 이혼율이나 자살률이 세계에서 손꼽히고, 알바들 시급도 낮잖아요. 그런 낱말들을 K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사용하고 싶긴 했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이야기’처럼 과격하게 쓰고 싶지는 않았죠.
그 가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인용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대목에서는 인용을 하나 할게요. 언젠가 기자가 홍상수 감독님한테 물었어요.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도대체 뭐냐고. 그때 홍상수 감독님 대답이 이거였어요. 한 영화를 만드는 일에 명확한 메시지가 있어야 할 필요를 모르겠다고. 기자는 왜 그래야 하는지 되물었죠. 메시지라고만 얘기하면 왜 한두 가지 메시지가 있어야 하냐고, 오만 가지 메시지가 있으면 안 되느냐고. 나도 가능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이게 무슨 가짜 도사의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 구체적으로 제가 약수터에 가다가 보는 바위가 하나 있어요. 어느 날은 그 바위를 보면서 중심 잘 잡고 살자는 마음을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더러운 위정자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합쳐 저 바위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나 한 사람만 해도 그 바위에 여러 가지 신호를 받는데, 거길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내 생각에는 그 바위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아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하며 만들고 싶은 그게 저의 큰 방향 중 하나예요. 물론 실패할 거라는 것도 알지만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가을 즈음에 방준석과 함께하는 앨범에 실험한 몇 개의 곡을 담을 예정이에요.
페이스북에는 가사 없는 노래들이 많아요.
뭘 해야 할까 목표가 없어서 계속할 수 있는 작업들이에요. 내가 이번에는 무슨 멜로디를 내야지, 어떤 노트에서 시작해야지, 하는 것들이 레코드 버튼 누르기 직전까지도 모를 때가 많아요.
가만히 들어보면 맥박 같기도 하고, 신음소리나 비명 같기도 해요. 처음에는 이게 작곡을 위한 재료는 아닐까, 하고 이해했는데 그런 건 아닌가요?
그 작업들이 다른 동료 연주자들과 만나 ‘덜 낯설게 만드는 작업’을 거치면 곡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저 재미가 있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붓질도, 소리 내는 일도 즐거운 데는 장사가 없죠.
어어부 프로젝트와 백현진 개인 앨범은 어떻게 다른가요?
어어부는 나와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장영규라는 음악 동료와 만든 프로젝트예요. 지금은 대부분 영규 형의 곡으로 일을 해요.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인데 나랑 음악적 방향이 완전히 다른 거 같아요. 백현진 솔로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에요. 이 엉망진창이라는 낱말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사람들도 그 엉망진창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에요. 대부분들 엉망진창으로 살잖아요(웃음).
엉망진창 음악을 하고 싶은 거네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하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할게요. 보통은 12음계 안에서 음악을 하는 거잖아요. 그게 기본 구조예요. 도레미파솔레시도. 내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하는 건 말 그대로 주파수를 계속 흘리는 거예요. 우웅~ 이런 건 냉장고나 자동차 클랙슨에서 나는 소리죠. 그걸 지속적으로 음으로 내보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음들이 섞이게 돼요. 그래서 이런 작업을 하고 나면 나는 이제 어디를 가도 노래를 할 수 있어요. 에어컨 앞에서 나는 웅~ 소리에서 노래할 수 있고요.
어렵네요.
저도 일을 더 해봐야 되는데, 일단 소리들을 막 갖다 쓰는 거예요. 언어로는 정리가 잘 안 되지만 뭔가 감이 오는 게 있어요. 결국 헤드폰으로 혼자서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관객을 설정하고 그에게 걸맞을 만한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주파수를 공부하면서 그 방향이 점차 잡혀 나가고 있죠. 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목이 다 쉬어서
인터뷰를 끝내다
본인에게 중심이 되는 작업이 있나요?
처음에는 중심이 있고 그게 분배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닌 거 같아요. 피자를 여덟 조각 내잖아요. 그런데 조각을 냈어도 한 조각 한 조각이 다 피자인 거잖아요. 그게 모듈 개념이거든요. 부분이지만 합치면 전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전체가 일부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게 진짜 피자예요? 어느 부분이 제일 맛있어요? 제일 맛있는 건 손님 취향에 따라 다르겠죠.
백현진이라는 여덟 개의 피자 조각을 멀리서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때 느끼기도 해죠. 유체이탈이라기보다는 그냥 자기를 조금 더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볼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럼 작업에 우선순위가 있나요?
우선순위는 없지만 언젠가는 유화를 못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나중에 돈이 떨어져서 재료를 못 사거나 작업실이 없으면 못하는 거잖아요. 그림을 계속 그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힘들 테고. 그렇게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니 다 힘 빠져서 누워있어도 흥얼대며 노래할 수는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우위에 있다는 말은 아니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 정도예요.
이 질문을 왜 하느냐면 오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거든요.
힘든 인터뷰일 것 같아요. 내가 스스로 나를 규정하지 않으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 미술 쪽에서도 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그래요.
체계를 규정하지 않아도 자기를 둘러싼 테두리는 그려질 것 같은데요. 적어도 내가 화가일 때는 이런 모양이겠구나 하는 느낌들 말이에요.
가끔 붓으로 그림을 그리며 이게 음악 작업에 신선한 자극이 되겠구나, 생각되는 게 더러 있어요. 그럴 때는 뮤지션이며 화가인 것이 좋은 거구나 하고 느끼는 거죠. 의도하는 건 아니고 그냥 일을 하다가 몇 달째 묘하게 둘이 맞닿는 기간이 생기거든요. 작업이 서로를 돕는 느낌으로 말이에요. 그게 형태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고, 분열됐다가 합쳐졌다가 계속 변해요.
소위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예술가라고 평가도 받기도 하죠.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같은 자기만의 색깔이 확고한 감독들이 유난히 열광하는 걸 보면 어딘가 통하는 지점이 있나요?
글쎄, 뭐 그건 내가 그분들이 아니라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냥 뭐 어쨌든 다들 뻔하게 살지는 않는 분들이니까, 그럴 때 나 같은 사람이 그 필터에 걸릴 때가 있겠죠. 작업을 시작하는 건 경우마다 다른데, 언젠가 <돈의 맛>이라는 영화가 있었잖아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그때 그 사람들>을 재미있게 보면서 임상수라면 함께 하고 싶다, 하는 마 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엔딩곡을 부르고 싶다고 연락 드렸죠.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의 작업을 다 승낙하는 건 아니고요. 까다롭게 굴 때도 있고 아닐 경우도 있고요.
작품을 보나요, 아니면 작업하는 사람을 보나요?
기본적으로는 감독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점점 더 폭력이나 자극적인 것들을 보지 않으려 해요. 그런 일은 가능하면 덜 하려고 노력하죠.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에 카메오로 출연한 걸 처음 봤어요. 그 당시에는 ‘연기 되게 어색하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면 이 연기가 괜찮은 것 같기도 했고요. 따로 주문을 받은 연기인가요?
감독님이랑 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 역할이 완전한 제 모습은 아니고, 많이 변용을 시킨 거예요. 약간 강아지처럼 꼬리 살랑살랑하는 건 제가 좋아하는 태도도 아니고요.
그런가 하면 장률 감독의 <경주>에서 술 마시는 장면은 정말로 리얼했어요.
그때 실제로 술도 많이 마시고 연기했어요. 함께 연기했던 신민아 씨도 예뻤고, 여러모로 일하기 좋은 조건이었죠(웃음).
홍상수 감독과 장률 감독의 영화는 어딘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분명 있는데, 함께 작업을 해본 배우로서 두 감독의 스타일은 어떤가요?
현장에서는 두 감독님의 성향이 달라요. 다른 건 몰라도 홍상수 감독님은 배우의 연기를 지도할 때는 굉장히 명확해요. 생각보다 많이 컨트롤하는 편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도 감독님을 오래 알고 지냈고, 현장에 놀러간 적도 많았는데 <북촌방향>을 함께 하면서 엄격한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의외였어요. 그렇지만 그 현장이 숨 막히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물 흘러가듯 잔잔하고 흐뭇하게 유지돼요. 반면에 장률 감독님은 배우 연기를 많이 열어놓는 편이고요.
영화적으로 보기에는 날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계산된 거였네요.
홍상수 감독님은 애드리브 같은 건 절대 허용하지 않는 대신 촬영 당일에 시나리오를 쓰잖아요. 누가 연기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쓰기 때문에, 배우는 정말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요. 옷으로 치면 딱 맞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장률 감독님은 빨간색 옷인데 심지어 녹색 옷을 입은 듯 연기해도 허용하세요. <경주>에서도 제가 거의 다 말을 만들어서 한 거예요.
백현진에게 홍상수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감독님은 저한테 영향을 안 받을 테지만, 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술적으로 내가 경험해본 가장 근사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니까 당연히 많은 영향을 받았죠. 90년 중반에 처음 만났어요. 내가 한창 젊었을 때 감독님이 <강원도의 힘>이라는 두 번째 영화를 찍을 당시였죠. 어어부가 영화의 엔딩 곡을 했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시대를 사는 예술가로, 그리고 한 아저씨로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 어떤 것에 영향을 받거나 신경 쓰이는 게 있나요?
저는 정말 함부로 영향을 받아요.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 웃고 떠드는 대화 중에서도 어떤 낱말에 접속되는 경우도 있고, 살아있거나 죽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서도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도 있고, 과학책이나 철학책 볼 때 오기도 하고, 누워서 빈둥대고 멍 때리다가 툭 솟아오를 때도 있고, 정말로 중구난방으로 와요.
하지만 똑같은 걸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하고 영감을 받는 것이, 몸 안에 무언가가 내제되어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저는 그게 궁금하거든요.
저도 얼마 전에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거든요. 소위 몸속에 필터와 탐지기가 있다고 생각해봐요. 필터는 거르는 역할이고 탐지기는 찾는 역할이죠. 그 두 가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큰 계기들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는데, 막상 그것들이 몸 안의 도구를 만들 때 얼마나 기여했는지 말하기는 조금 미심쩍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불쑥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건 알아요. 언제 한 번 마음을 먹고 생각해보고 언어로 추적을 해보긴 할 텐데, 아직은 대답하기 조금 곤란한 부분이 있네요.
직접 연출한 <디 엔드>와 <영원한 농담>은 보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유행을 타는 영화는 아니라 일단 외장하드에만 묶어 놓았고요. 나중에 20~30분짜리 동영상을 하나 더 찍고 나서 ‘끝’이라는 제목으로 엮어서 공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동영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영화 쪽에서는 단편영화라고 부르고 현대미술 쪽에서는 비디오라고 부르는데, 저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영상이 필요해서 사용한 거라서 영화다, 비디오다 하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냥 동영상으로 부르는 게 편하죠. 영화 쪽에서 단편영화라고 규정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백현진이라는 사람은 이름 짓는 것, 단정하는 것, 규정하는 것, 고정된 어떤 것들에 대해 조심하는 태도가 배어있는 것 같아요.
규정하는 것. 그걸 잘 안 믿어요. 그래서 아마 강박적으로 피하려고 오래 노력했고요.
그게 작품에도 반영이 되는 거라면 ‘인식’되는 것보다 거기 ‘있는’ 것을 ‘감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겠네요?
감각한다. 재미있는 말이 나왔는데, 사실 내가 더 고민을 해봐야 해요. 감각하는 대로 맡기려고 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요. 방금 질문에 대해서는 더 생각을 해봐야 해요. 지금 내가 함부로 말을 하면 삑사리가 날 거 같아요. 그런데 그건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내가 어떻게 작업해야 하지? 왜 작업해야 하지? 작업을 하는 한 계속 따라오는 질문일 테니까요.
목이 다 쉬었어요. 괜찮나요?
지금 일부러 목을 쉰 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이게 어떤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거라서.
아주 맨들맨들하고 티끌 없는 방이 있다. 그 벽 구석 어딘가에 흉물스럽게 골격이 드러난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백현진이다. 벽을 뚫고 나온 이면의 진짜 얼굴 같은 느낌 말이다.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그 노골적인 풍경은 잊으려 해도 눈앞에 남아 자꾸 뭐라고 말을 걸어온다. 그와 인터뷰를 마친 날 밤, 잠을 자려다 말고 문득 그를 떠올렸는데 동시에 바로 멍게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비린내 나고 몰캉거리는 멍게. 나는 멍게를 싫어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돌멍게는 먹는다. 멍게인 건 변함이 없는데, 한 번 먹으면 다시 찾게 되는 돌멍게가 딱 백현진이다. 내게 백현진은 구멍이자 멍게다. 나는 백현진과 대화한 다음 그에 대해 정리하기는커녕 계속해서 이상한 별명만 짓고 있다. 어떻게 불러도 백현진은 백현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