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무것도 아닌 12월

시인의 계절

가장 아무것도
아닌 12월

신식 농부였던 아버지는 입동 무렵이면 잘생긴 전나무 한 그루를 구해 거실 한 귀퉁이에 세워두셨다. 다락에 기어 올라가 커다란 상자를 꺼내와서 전나무에 장신구를 매다는 일은 세 남매의 몫이었다. 오너먼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가장 어울릴 만한 자리에 달아주었다. 전나무의 정수리에 별 모양의 오너먼트를 다는 일은 막내가 맡았고 맨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전구에 불을 켜는 일은 맏이가 맡았다. 예쁘다며 박수를 쳐주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바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 해 질 무렵 집에 들어가는 길이 여느 때처럼 아쉽지가 않았다. 거실 창문에서 알록달록 빛을 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어른거림을 쳐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내면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그 다음 날은 마침내 크리스마스였다. 일어나자마자 세 남매는 내복바람으로 전나무에게 기어갔다. 나무 아래에는 곱게 포장을 한 선물 세 상자가 어김없이 놓여 있었다. 자기 이름이 써진 선물을 손에 들고 포장지를 벗겼던, 해마다의 그날 아침. 달력을 넘겨 12월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보게 될 때마다 나는 아직도 그날들을 떠올리며, 곧잘 친구들에게도 전나무와 세 남매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나의 자랑이라서.
 
“그때 선물이 뭐였어?”, “산타 할아버지가 줬다고 생각했어?” 친구들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세 남매는 산타 할아버지가 그 시골의 산골 마을까지 찾아올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산타가 찾아와서 주고 간 선물이 아니라 부모가 장만해준 선물이라는 사실에 실망 같은 걸 해본 적도 없었다. 선물은 대개 생활용품이었다. 칫솔, 내복, 양말, 수저 세트 같은 것들. 그즈음에 어차피 부모가 장만해주어야 했을 것들. 선물이 겨우 그런 것들이라서 시시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물론 없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칫솔로 더 자주 이를 닦았다.

칫솔꽂이에서 내 색깔의 칫솔을 꺼내 들 때마다 생각했다.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하고. 옷장 서랍에서 그 내복을 꺼내어 목을 넣고 팔을 넣던 겨우내 크리스마스 추억을 한 번 더 떠올렸다. 그 수저가 놓인 밥상에 앉는 일을 더 기쁘게 생각했다. 반찬보다 수저에 더 눈이 갔다. 아무것도 아닌 선물들만 받았다고 친구들은 깔깔 웃으며 금세 내 얘기를 시시하게 받아들였지만, 사실 시시했지만, 시시하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갖은 스케줄을 빼곡하게 적어두고 손과 눈이 닿는 곳에 두는 내 탁상달력을, 더이상 뒤 페이지가 없는 마지막 12월로 넘길 때에 미세하게 손이 떨린다. 무얼 하며 지내야 할지에 대해 유난스레 골똘해진다. 멋진 계획 아래에서 멋진 추억을 남기며 지내본 적이 없으면서, 해마다 12월에는 가장 애틋해지고야 만다. 멋진 일이 나에게 꼭 일어날 것만 같고 온 누리에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반짝이는 기적들이 도래할 것만 같은 착각도 없이, 마지막 남은 한 달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애틋해진다. 너무 애틋해서 아무 약속도 정해두지 않은 채로 한 달을 혼자서 조용히 지내고 싶기까지 하다. 

어느 해에는 무더운 곳에서 지냈다. 여름에 그 곳에 찾아가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에 집으로 돌아왔다. 시월의 어느 날에, 훤칠한 야자수가 가로수로 심어진 길을 걸으며 상점들을 구경했다.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 거리에도 상점들의 마네킹은 가을 신상을 입고 서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 무더운 날씨에 가을옷을 사 입을까 의아해 하며 그 거리를 걸었다. 일 년 내내 여름일 뿐인 그 도시도 곳곳에서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페는 가을에 어울릴 음료를 출시했고, 영화관도 가을을 배경으로 한 외국 영화들을 선보였고, 여행사도 가을에 갈 만한 여행지를 추천하고 있었다.

몇 달을 지내도 여전히 땡볕이고 여름인 그 도시에서 나는 슬슬 여름에 대해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에 사실과 무관하게라도 가을을 새로이 판매하는 도시의 조용한 변화에 자꾸 눈길이 갔다. 10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던 그곳에서 잠든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다른 계절을 곳곳에서 찾아내었다. 미미하지만 일교차가 생기기 시작했단 것도 알아챘다. 눈 뜬 아침, 마룻바닥에는 창문과 햇살이 협업하여 그려놓은 백색의 사각형에 영락없이 봄날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를 끌어안듯, 나는 그 사각형으로 들어가 웅크리고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해주어도 시시할 뿐인 그 작은 조각의 봄을 아침마다 남몰래 즐겼다. 어떨 때는 그 사각형 안에 칫솔이나 이태리 타올 같은 걸 놓아두고 외출했다. 길을 걷다 영락없이 스콜이 쏟아질 때에 처마 아래나 나무 아래에서 비를 긋고 있을 때였다. 살갗을 드러낸 팔뚝이나 목덜미가 쌀쌀한 기온에 먼저 놀라 기척을 냈다. 카디건이 가방 속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졌다. 그날은 옷가게를 여기저기 방문해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카디건과 스산한 목덜미를 감쌀 만한 머플러를 한 장 장만했다. 

방글라데시였던가. 영상 4도의 한파에 많은 인구가 동사했다는 뉴스를 어렸을 때에 접한 적이 있다. 영하 14도는 족히 내려갔을 혹독한 겨울에, 그 희한한 소식이 해외토픽으로 보도되었다. 그때 방글라데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 나에게 방글라데시는 그 후로 ‘영상 4도’의 혹독한 추위가 있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있던 도시는 방글라데시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였지만, 딱 그런 조건이었다. 영상 4도가 찾아올 리가 없지만 만약 찾아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고 말 도시였다. 한낮에는 땀을 뻘뻘 흘려야 마땅할 무더위지만, 아침저녁의 쌀쌀함은 스웨터와 카디건과 트렌치코트 정도는 꺼내 입어야 할 도시였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올 때 즈음에는 더러 귀마개를 하고 장갑을 낀 사람도 눈에 띄는 도시였다. 온도계가 가리키는 것은 여전히 여름에 해당할 숫자였지만, 온도계가 계절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을 그 도시에서 처음 피부로 느꼈다. 

그때 그 도시에서 겨울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여행사를 찾아갔다. 그들이 추천하는 겨울 여행지들을 살펴보다가 그들이 별로 추천하지 않는 타만네가라에 눈길이 갔다. 야자수가 쭉쭉 뻗고 눈부신 포말이 모래사장에 가닿는 풍경 아래에서 비키니를 입고 파인애플 주스를 먹는 휴양지의 사진들이 쿠알라룸푸르를 벗어나라는 유혹으로 가득 차 보였다면, 검푸른 강물에 릴낚시를 하는 어부들과 강가에 수상가옥이 띄엄띄엄 자리 잡은 타만네가라는 쿠알라룸푸르의 옛날로 더 깊숙하게 들어와 보라는 유혹 같았다. 비상식량들을 한껏 배낭에 챙겨 넣고 타만네가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보트를 갈아타고 또 미니버스를 타면서 찾아간 그 정글에서 12월을 거의 보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 해 12월, 타만네가라에서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산책을 하다가 카멜레온을 만나면 숨죽여 그를 관찰했고, 카멜레온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뒹구는 그 동네 아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지켜보았고, 한밤중에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은 아니지만 알록달록한 형광빛을 뿜어대는 전갈과 버섯을 만났다. 아침에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차가운 강물을 한 컵 떠서 양치를 했고,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따뜻해진 강물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목욕을 했다.

낮은 너무 더워 나무 그늘 아래 해먹에서 낮잠을 자야 했고, 밤은 너무 추워 두꺼운 점퍼를 꺼내 입고 양말을 챙겨 신어야 했다. 강가에 사는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질 수 있게 됐을 때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그 동네 사람들도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전구를 바나나 나무 같은 것에 친친 감아두었고 창가엔 산타 양말을 걸었다. 가장 인기가 있던 식당 주인 내외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며 동네 사람들과 여행자들을 초대했다. 나는 식당집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생각했다. 선물을 살 수 있는 가게는 트래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리조트의 기념품가게가 유일했다. 거기서 파는 기념품들은 어쩌다 일생에 한 번 그곳을 들르는 사람들이나 신기할 뿐이었으므로, 나는 강가에 나가 가장 예쁜 돌멩이를 몇 개 주웠다. 돌멩이 위에 한 글자짜리 우리말을 볼펜으로 그려 넣었다. 꿈. 숨. 숲. 풀. 밤. 밥. 길. 커다란 낙엽을 주워 포장을 했고 밥풀로 포장을 봉했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기뻐했다. 아이들과 밤새 한 음절짜리 단어들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

또 12월이 다가온다. 다가온다고 적으니 벌써부터 떨린다. 물론 가장 아무것도 아닌 12월이 될 것이다. 가장 아무것도 아닌 선물을 또 누군가에게 줄 것이고 받을 것이다. 가장 시시한 일을 하며 가장 시시하게 지낼 것을 알면서도 해마다 12월은 무작정 설렌다. 왜 그런가를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장 시시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설렐 수 있다는 것은 무조건 축복이고 무조건 내게는 기적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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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 김소연 사진 김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