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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프로젝터
가방에 넣고 다니는
작은
빔 프로젝터
대부분의 영상을 집에 있는 노트북으로 보고 있는 나지만, 각각의 영상들은 감상하기에 적절한 장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막역한 친구와 어느 고요한 강가에서 캠핑을 하며 봐야 더 좋을 것이고, 콜드플레이의 투어공연 영상은 자취하는 친구의 텅 빈 방에서 맥주샤워를 하며 봐야 좋을 것이다. 만약 그 상황이 정말 온다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보다는 부디 더 큰 화면이길 간절히 바란다.
작은 빔 프로젝터 Canon Rayo R4 50Ansi·170g·150min
제품정보 Canon-bs.co.kr
빔 프로젝터 고르기
작은 크기의 빔 프로젝터를 골랐다면, 아마 집을 벗어난 바깥에서의 활용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게와 충전 시간, 재생 지속 시간을 일단 살펴봐야 한다. 충전 시 전력 소비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 시간을 따져보는 것으로 여러 제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프로젝터의 밝기는 안시Ansi로 표기하는데 밝을수록 수치가 높다. 보통 가정용 프로젝터가 2000안시 정도, 강의실에서 쓰는 건 4000~5000안시 정도, 작은 빔 프로젝터의 경우 50안시 정도의 밝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큰 제품들과 비교하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50안시라 하더라도 주변의 밝기, 스크린의 종류(벽에 반사되는 것보다 전용 스크린에서 더 밝게 보인다) 등에 의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런 기술적인 부분의 기대보다 ‘숲이나 강가에 가서 볼 수만 있다면’ 식의 바람이 큰 사람이라면, 불만은 또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너무 크고, 너무 비싸고, 너무 복잡해서 회사나 강의실에만 붙어 있던 거대한 빔 프로젝터가 언젠가부터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 우리 가방 안에 들어와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만 한 제품까지 출시되었다. 누군가는 이제 극장에 갈 필요가 없다면서 방정을 떨지만, 극장의 정중함을 작은 빔 프로젝터가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필름이나 작은 화면을 크게 출력하는 개념이 같다고 쳐도, 이 둘은 비교하면 안 되는 엄연히 다른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교 대신 각각의 장점을 떠올려 보는 편이 낫다.
극장의 장점이야 말 할 필요 없겠고, 빔 프로젝터의 장점은 이렇다. 일단 마음먹으면 돈을 모아 살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고 (이젠)휴대가 가능하다. 빔 프로젝터가 있는 곳이 곧 극장이 되기 때문에 온 세상이 어설프게나마 극장이 된다는 얘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 마음껏 마시면서 볼 수도 있고, 그러다 흥겨운 장면이 나오면 춤을 춰도 괜찮다. 야단법석 떠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속옷 차림으로 얌전하게 보는 방법도 있다. 이 모든 게 극장에서는 금지된 일이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빔 프로젝터는 아마 점점 더 멋진 아이템이 됐을 것이다. ‘비밀의 극장’은 내게도 찾아 왔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곤 했는데, 돌아보면 즐거웠던 순간이 참 많았다.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친구들 모습도 좋았고, 날씨처럼 매번 바뀌는 스크린 너머의 풍경도 좋았고, 왜 이런 모임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잠을 자는, 그러면서도 매번 모임에 참여하는 괴짜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극장을 찾아가는 모임이었다면 아마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비를 챙겨서 어슬렁어슬렁 영화 보기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순간이 막상 영화를 보는 순간보다 좋았던 적도 있었으니 ‘의외의 행복’이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빔 프로젝터는 영화만을 위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아이템은 아닌 듯하다. ‘영화는 극장에서’. ‘축구는 치킨집에서’, ‘드라마는 집에서’라고 그저 그렇게 생각해 온 우리 모두에게 이 작은 아이템은 낯설고 즐거운 제안을 해온다. ‘해변에서 보는 월드컵은 어때?’, ‘지금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미션임파서블>을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뭐 그런 제안들 말이다.
빔 프로젝터로 무언가를 보는 동안, 극장에 적응된 우리들을 조금 불편하게 하는 풍경도 있다. 만약 집에서 친구들과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본다고 상상해 보자. 조금 생소한 풍경들이 펼쳐질 것이다. 맥주병과 과자봉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한다. 함부로 일어나 화면 주변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는 친구들, 한쪽에서 종종 물을 틀었다 잠그는 소리. 전화벨소리가 나도 아무도 눈치 같은 걸 보지 않는다. 극장의 풍경과는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른 종류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보나마나 이런 걸 싫어할 사람이 꽤 있겠지만, 좀 즐겨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술이나 마시는 친구들, 시끄러운 이웃과 방음에는 관심이 없는 벽, 갑자기 울어대는 고양이. 그러니까 영화에 빠진 순간을 부수는 모든 상황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것도 영화.’ 그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